내가 어릴 때에 우리집은 새해 명절과 추석 명절에 제사를 지냈다. 그래서 명절이라는 의미가 내게는 우리 가족 간에 가지는 풍성한 나눔과 즐거움의 날이라기보다는 어머니께서 힘들게 차례음식을 준비하는 때, 그리고 너무나도 많은 친척분들(아버님께서 9남매시라 작은 아버님과 고모님들 가족까지 모두 오시기 때문에 상당히 대부대이었으며 그나마 시간을 정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아침, 점심, 저녁까지 분산되어 찾아오셔서 어머님은 하루 종일 부엌에 서서 일하셨고, 우리들은 음식 나르고 인사드리고)께서 방문하셔서 복잡하고 힘들었던 날들로 기억된다. 나는 그 날들이 우리 가족들 간에 오붓하게 함께 덕담을 나누고 즐기는 그러한 때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하기는 만일 많은 친척분들께서 오시지 않았더라도 내 바람대로 화목한 우리가족의 시간이 되었을지는 미지수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도 전혀 우리집 분위기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의 흑백 TV 속에서 그래도 크리스마스라고 영화는 ‘왕중왕’이라는 예수님 나오시는 것을 항상 방영했었고,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 징글벨 캐롤은 여기저기서 들려왔는데 우리집 부모님께서는 그런 날을 즐기실
외상으로 유전치를 다쳐서 처음 병원에 내원해 당일 응급처치 받고, 이어지는 치료를 받느라 어른들에 붙들려서 탈진 직전까지 가고, 검진 때 체크만 하는데도 병원 입구에서부터 비명을 지르며 난리가 났었던 3세 공주님! 그래도 어머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꾸준히 정기검진을 데리고 와주셨는데 그때마다 도저히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던 겁 많은 꼬마 여자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가 병원에 오는 날에는 모든 스텝들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면서 기다렸다가 진료가 진행되었었다. 그러기를 어언 5년 동안 꾸준하게 해왔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갑자기 지난번 내원 때부터 울지 않고 스스로 입을 벌리면서 검진을 허용하는 의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서 그것만 해도 감지덕지로 정말 기뻤는데 이번 정기검진을 왔을 때에는 제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꼬깃꼬깃하게 접은 종이 편지를 수줍어하면서 건네주었다. 치과 선생님께 치과 선생님, 저의 이를 아프지 않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서운 저도 꾹 참는 지안이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더 양치를 잘하는 지안이가 되겠습니다. 앞으로 치과에서 무서운 걸 해도 지안이는 울지 않을 거에요. 그래도 저는(불소를 안 하고 싶긴 해요) 그래도 지안
어느 토요일 오후, 이제 10분만 지나면 즐거운 퇴근시간! 예약해놓은 영화를 아내와 보러갈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마지막 진행된 환자아이들은 어린 남자형제였는데 귀엽기도 하지만 치료를 스스로 보호자 없이도 잘 하는 아이들이어서 함께 오신 아버님은 다른 환자분들 계시지 않는 조용한 작은 대기실에서 쉬고 계셨다.아이들을 이런 저런 치료를 해주고 잇솔질 교육까지 다 마치니 어느덧 한 시간 이상 소요되어 아버님께서 꽤 지루하셨겠다 싶어 직원이 아이들 치료 잘 마쳤다라고 알려드리러 대기실로 갔다가 공포에 질린 놀란 표정으로 내게 뛰어왔다. 보호자분이 대기실에 쓰러져계시고 의식이 없다고 말이다….깜짝 놀라서 함께 가보니 아니나 다를까 대기실 소파에 아버님께서 옆으로 쓰러져서 눈을 감고 계셨고 흔들어 깨우면서 대화를 시도해보아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vital sign을 체크해보니 다행히 맥박이 약하긴 하지만 잡혔고 호흡하는 숨소리도 느껴져서 약간 안심을 하였지만 그래도 빨리 진료실로 옮겨서 응급용으로 비치된 산소를 공급해드리니 다행히 아주 약간은 의식이 돌아오시면서 작은 소리지만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본인도 왜이런지 모르겠는데 몸을 움직일 수가 없고 어지럽고 정신
몇주 전 주일에 목사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권면하시기 위해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을 비유로 설교를 하셨다. 이는 많은 수로 구성된 평가단이 ‘진정한 가수’라고 심사되는 가수만 남기고 하나씩 탈락시키는 형식이었다. 일반 사람들이 어떤 가수를 원하는가라는 것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구성된 이 내용을 예로 들면서, 마찬가지로 ‘진정한 기독교인’을 원하는 심리를 언급하셨다. 결론은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할 때에 그 단어에는 우리가 떠올리는 ‘진정한’이라는 형용사가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으므로 그 의미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추가적인 설명이 없어도 의미공유가 되어야한다 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 말씀하시기를 “건강한 명사는 보충 수식 형용사가 필요 없다”라는 것이었다.이후에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치과의사’라는 명사에도 수식 형용사가 필요가 없을가? ‘친절한, 치료 잘하는, 환자를 위하는…’등등의 형용사가 없이도 모두들 그렇게 생각해줄 것인가 하고 말이다. 과연 우리들을 지칭하는 치과의사라는 단어는 환자들에 의해서 어떻게 정의가 내려지고 인식되어지고 있을까?1년 전 쯤 이었나보다. 한 여자
여러 책이나 교양강좌에서 심심치 않게 다루어지는 개념이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나를 포함해서) 유난히 “틀리다”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혹시 다른 나라들도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우리의 한글 ‘틀리다’라는 단어에는 ‘다르다’의 뜻도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의미를 혼용해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너와 나는 다른 것이고, 이것과 저것은 다르다는 의미를 표현함에 있어서 “너와 나는 틀리다.” “이것과 저것은 틀린 문제다.”라는 식으로 많이 쓴다. 이러다 보니 그것을 잘못된 것으로 착각을 하게 된다. 우리는 여러 가지 면에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인터넷에서 이 두 단어의 의미 차이를 검색해보면 관련된 수십 가지의 글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며 그 내용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소개되어지고 있다. 학계에서, 종교계에서, 정치권에서… 그런 글들을 읽어보면 이론적으로는 그 두 가지 개념의 차이를 머리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실제의 삶속에서는 그렇지 않다. 그런 아주 사소한 이유로 너무나도 쉽게 서로를 이해 못해서 싸우고 헐
목성에서 온 환자 전승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널리 읽히는 책 중에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있다. 원래 남자와 여자는 태생이 달라서, 남자는 화성에서 왔고, 여자는 금성이라는 별에서 왔으며, 그래서 서로 생각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감정 표현하는 어휘도 다르기 때문에 많은 갈등과 대립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나 또한 인상적으로 읽은 바 있다. 그 책을 읽은 후에 문득, 남자와 여자만 서로 다른 별에서 온 것이 아니라 치과병원의 의료진과 환자도 서로 다른 별나라에서 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의료진은 토성쯤에서 온 것이고, 환자는 목성에서 온 것이 아닐까? 라고 말이다. 왜냐하면 개원해서 진료를 한 일수가 늘어날수록 치과의료진과 환자(보호자)가 사용하는 단어가 다르고, 항상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사건(?)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실제로 병원에서 일어났던 일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아이들의 구치부 인접면에 우식증 여부를 교익촬영으로 검사할 때에, 초기 인접면 우식증이 발견되면 무조건 치료하지는 않고, 우식
Spectrum 환자와 직원 사이 소설이나 유행가 제목 중에 ‘냉정과 열정사이’, ‘사랑과 우정사이’ 같은 제목이 종종 눈에 띈다. 드라마에서도 한 사람이 두 연인 사이에서 사랑의 갈등을 하는 삼각관계의 구도가 많이 소재가 된다. 또 자기 부인과 어머니(부인의 입장에서 시어머니) 사이에서 고뇌하는 남자의 이야기만큼 많이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 소재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소중한 두 존재 사이에서 어느 한 편을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치과의사가 되어서 오랫동안 치과를 운영하는 동안에 너무나도 소중한 두 존재와의 삼각관계 속에서 살아오면서 어느 쪽을 선택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너무나도 많이 해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환자와 직원사이에서의 고민이다. 환자를 우선으로 생각하면 직원들이 힘들고, 직원들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방향으로 직원들을 편하게 해주다보면 꼭 진료과정에서 준비가 덜 되거나 응대 미숙으로 큰 컴플레인이 발생한다. 그래서 치과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어져야 할 대상이 환자와 직원들 중 어느 쪽으로 선택해야하는 것에 대한 고뇌를 해오고 있는 것이다. 철저하게 고객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운영의
Spectrum 견적이 얼마예요? 전 승 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출퇴근용으로 이용하는 차가 2005년에 구입했으니 어느덧 나이가 8년이 되어간다. 그러다보니 달린 거리는 그리 많지 않아도 이제 슬슬 부속이 하나 둘 수명이 다하는가보다. 한 달여 전부터 약간 높이가 있는 둔턱을 지나갈 때 마다 ‘삐거덕’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그런가보다 생각했고 차의 본질인 달리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어서 애써 무시하면서 참고 지내오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소리가 더 커져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결국 차량정비소를 방문해야지 하고 마음먹게 되었다. 마음을 먹었지만 막상 시간을 할애해서 고치러 가는 것을 차일피일 연기하다가, 어느 날 친구와의 약속장소에 이상하게도 1시간 이상 일찍 도착하게 되어 시간을 보낼 방법을 강구하던 차에 눈앞에 한 차량정비업소가 눈에 보였다. 집에서는 먼 곳이었지만 수리가 간단하면 해야지 하고 들어갔다. 차량의 증상을 이야기하고 직원분이 시운전과 검사를 하는 것을 휴게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검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리기에 ‘심각한 상황인가?’하는 생각에 조금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체크를 마친 직원이 휴게실로 들어와서
Spectrum 다시 산다면 전 승 준 분당예치과병원 원장 위잉~~ 핸드피스와 석션 소리가 그치면 하루의 일과가 마무리된다. 마무리 할 일이 남아서 직원들 먼저 퇴근시키고 책상에서 조금 더 이것저것 정리를 한 후에 전원을 내리면 좀 전 까지도 북적대던 대기실 소파위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을 보면서 경보장치를 작동시키고는 집으로 발걸음을 뗀다. 아침에 집을 나서서 병원에 도착, 그날 올 환자들의 차트를 하나씩 미리 보고나면 어느덧 환자들이 들어서서 진료가 시작되고 이런저런 치료와 상담 속에 또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게 된다. 퇴근길의 쭈욱 뻗은 고속화도로를 달리면서 머릿속에서 고등학교 학창시절이 다시금 떠오르고, 많은 조언 속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대학 학과를 선택할 때의 그 순간에 나는 치과의사의 길을 선택하였다. 노랗게 물든 숲속의 두 갈래 길, 몸 하나로 두 길을 갈 수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덤불 속으로 굽어든 한쪽 길을 끝까지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른 쪽 길을 택하였다. 똑같이 아름답지만 그 길이 더 나을 법하기에. 아, 먼저 길은 나중에 가리라 생각했는데! 하지만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법. 다시 돌아오지 못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