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치과를 읽다> 저자 지금은 종이가 너무 흔해서 다양한 종이책들을 쉽고 싸게 구할 수 있지만 고대에는 종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책의 생김새는 현대와 많이 달랐습니다. 중국에서는 ‘간독(簡牘)’이라 하여 대나무(簡)나 나무(牘)에 글씨를 쓰고 실로 엮은 형태를 종이 대신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간독을 한 꾸러미 모은 것이 책이었습니다. 한자 책(冊)의 모양이 그 생김새를 묘사한 것이지요. 본래 논어나 도덕경 같은 서적도 구전되는 내용을 간독에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간독은 중세에 등장한 종이책에 비해 매우 불편했습니다. 현대인들이 보기에 ‘책 한 권’은 간독을 사용하는 고대인들에게는 수레 한 더미 분량이었습니다. 한자 ‘전(典)’이 책을 수레에 가득 실은 모습인 이유입니다. 장자가 ‘남자라면 모름지기 수레 다섯 대 분량의 책(간독)을 읽어야 한다(男兒須讀 五車書)’라고 하였는데 장자가 살던 시기 책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내용이 많은 분량이 아님을 생각해볼 수 있
양만춘장군이 들어앉아 지키고 있는 鐵甕안시성이라도 되는 듯 도무지 뚫리지 않는 메탈 크라운을 간신히 제거 한 뒤에 양치하는 환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니, 저 분은 방금 전까지 자신의 입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던 기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과연 알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어둡고 좁은 동굴과도 같은 곳에서 조준과 포지션을 유지하려 숨도 멈춰가며 그 어떤 보호 장비도 없이 집중했던 작업이었다.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 쉴 this very moment를 내가 얼마나 고대했는지 그는 아마도 알 도리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재료비는 낼께’라는 험하디 험한 말씀과 함께 아침부터 들이닥친 먼 친척뻘 되는 환자에게 결코 찌푸린 낯을 보이지는 말자는 克己였고, 또 어쩌면 안시성에서 敗退한 뒤 長安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病死한 당태종 꼴이 되진 않겠다는 각오였다. 龍도 아니고 왕은 더더욱 아니지만 작은 상처에도 사뭇 견디기 힘든 ‘거꾸로 솟은 비늘’ 같은 부분이 나라고 없을 리야! 천진난만인지 무신경인지 모를 저 난폭한 재료비 운운에도 결코 평정심을 잃지 않을 때에야 下山할 경지에 이른 거라던 모 선배 말씀이 생각나는 울적한 오전이다. 이런 날엔 진통제 삼아, 막내 동
이번에 소개할 책은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데뷔작 “고백”이다. 이질적이고 기이한 일본 토속신앙이 주는 위화감 때문에 나는 이전까지 서점만 가면 일본 소설을 피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접하게 된 이 책은 나에게 일본 소설의 작품성에 대한 또다른, 어쩌면 매우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해 주었다. 비교적 잔잔한 제목을 가진 이 소설은 여러 인물의 주관적인 시각을 통해 계속되는 반전을 보여준다. 사고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린 딸이 사실 자신이 맡고 있는 학급 내 학생들에게 살해당했다는 여교사의 고백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다섯 인물의 시선으로 사건 전후 상황을 바라보며 마지막은 여교사의 시선으로 소설이 마무리되는데, 피해자와 가해자 2명이 속한 세 가정은 빠른 전개 속에 참혹하게 망가진다. 개인의 심리묘사를 간결한 문체로 풀어내어 읽는 데 큰 무리는 없지만 중간중간 많은 생각이 들게 해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도중 가해자의 심리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에서 저런 말을 들으면… 살인을 할 수도 있겠는데…?’ 비상식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말은 때때로 하는 쪽이 아니라 듣는 쪽의 감수성에 그 모든 것이 내맡겨진다고 했던가. 객관적 사실이 투영된 하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꼽히는 이는 단연 헬레네다. 스파르타의 공주로 태어났지만 실은 제우스의 딸이다. 제우스는 아름다운 여인 레다에게 반하여 백조로 변신하였고, 그녀가 거니는 호숫가로 날아들었다. 그 이후 레다는 두 개의 알을 낳았다. 헬레네는 그 알을 깨고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나자 세상은 눈부시게 빛났다. 그녀를 본 남자들은 매혹되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아테네 건국 영웅 테세우스였다. 그와 헤어진 이후에는 그리스의 영웅호걸들이 그녀와의 결혼을 꿈꾸며 스파르타로 모여들었고, 그녀가 메넬라오스와 결혼한 뒤에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그녀를 납치해가자 그녀를 되찾는 전쟁에 모두 참여할 정도였다. 트로이아인들은 대규모 연합군이 쳐들어 왔을 때, 헬레네를 지키기 위해 10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감수하였다. 트로이아 원로들의 말이다. “비난할 게 없소. 트로이아인들과 멋진 경갑을 찬 아카이아 인들이/ 저와 같은 여인을 두고 기나긴 시간 동안 고통을 겪었다 해도 말이오./ 놀랍잖소, 그녀는 눈으로 보기에도 죽음을 모르는 여신을 꼭 닮았소이다.”(3.156-8) 그녀는 아름다움의 화신이며, 그녀의
중국여행이 처음은 아니지만 중국의 남방도시를 처음 방문한다는 사실만으로 내내 마음이 설레었다. 더군다나 계림(桂林)은 특유의 카르스트지형으로, 빼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유명 관광지라고 하니 더욱 더 그러하였다. 지난 11월 23일, 9명으로 구성된 대한치주과학회 대표단은 제3회 한중 젊은치주연구자 교류프로그램에 참석하기 위하여 늦은 밤 출발하는 계림행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이 행사는 (재)대한치주연구소(신형식 이사장)와 ㈜나이벡이 후원하는 한중간 치주학회의 학술행사로 올해가 세 번째다. 대한치주과학회 최성호 회장과 구 영 차기회장, 이재목 총무이사 및 고영경 국제이사가 학회를 대표하여 참석하였으며, 신형식 이사장님도 함께해주셨다. 발표연자로 초청된 이들은 부산대 주지영 교수, 원광대 장희영 교수, 서울대 조영단 전임의, 그리고 필자였다. 자정이 지난 계림은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시내로 향하는 길은 매우 잘 정비되어 있었고, 관광지답게 환하게 불을 밝힌 “주점(호텔)’들이 즐비하였다. 대회 전날의 자유시간은 이강(離江) 유람선 관광으로 준비하였다. 십 여 척의 유람선들이 일제히 열을 지어 하류로 향하는 모습은 그 자체가 장관이었다. 이 지역은 석회암
성수역 2번 출구에서 도보 11분. 처음 가보는 치협 회관이라 가는 길을 검색하고 또 확인하며 내린 성수역. 여느 역과는 다르게 지상에 위치한 역사로 올라가는 출구가 아닌 내려가는 계단에 잠시 당황도 했지만, 앞서가는 치과의사의 익숙한 뒷모습에 안도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낯선 건물에 쭈뼛쭈뼛 들어서니 5층으로 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집들이하는 새집 구경하듯 여기저기 둘러본다. 1912년 일본치과대학을 졸업한 조선인 최초의 치과의사(면허번호 1)인 함석태 한성치과의사회 초대회장님과 FDI 상임회장을 역임하신 윤흥렬 회장님의 흉상도 보고 역대 협회장님의 사진 또 다른 방의 대의원총회 의장님 사진까지 보고 나니, 아무 생각 없는 철부지가 뿌리 깊은 가문의 종손인 걸 알게 된 것처럼, 일개 개원의이긴 하지만 치과계의 조상과 역사를 듣게 되니 잠시 경건함마저 든다.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 낯선 곳까지 선뜻 오겠다고 한 것은 인문학강의 때문이었다. 쏟아지는 치과계 세미나를 따라다니기에도 벅찬 내게 ‘인문학’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으나 요즘엔 인문학이 ‘대세’라니 궁금하기도 하고 ‘이번 기회에 유식한 사람으로 거듭나 볼까’하는 무모한
감명 깊었던 다큐멘터리를 다시 볼 때는 도중에 보기 시작해도 이해에 무리가 없을 뿐 아니라, 기억에 남았던 부분이 다가올 때면 매번 가슴이 두근두근하기까지 하다고 말씀드리면 이내 눈치 채셨겠지만, 그리고 좀 쑥스럽지만, 무척 즐기는 취미이다. 가령 일주일쯤 문 밖 출입을 못하는 정도는 내게 아무런 불편도 주지 않는다. 궁금해 하실 분도 없겠지만. 엊그제는 처칠에 대한 BBC의 다큐를 봤는데, 그의 장례식 후 템즈강을 통해 生家인 블렌하임 성으로 가기 위해 유해를 실은 배가 출항할 때 항구의 타워 크레인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여 조의를 표하는 유명한 장면이 나왔다. 그 부분에서 꼭 눈물이 나는데, 도중에 기차로 옮겨 싣고 지나갈 때 들판이며 언덕에 나와 서서 모자를 벗고 예를 갖추는 사람들 때문에 계속 울게 된다. ‘늙은 사자’라 불리던 영국을 2차 대전 승전국이 되게 했던, 나치즘과 파시즘 등 모든 극단적인 것들에 맞서 극단적일 만큼 저항했던 처칠을 향한 영국인들의 이 유별난 사랑은 또한 당시 재위했던 조지6세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 콜린 퍼스의 능청스런 연기로 영화 킹스 스피치에서 묘사되었듯, 조지6세는 심한 말더듬이였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자신과는 상관없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읽혀지는 문구이다. 정말 진짜 구호대로 엔터키가 작동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한 가지 바람이 더 있다면, 문재인 케어도 역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도 정의롭게 시행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치과의사다운 치과의사가 치과다운 치과에서 직업적인 꿈과 목표를 이루기를 소망한다. 치과에서 치과원장의 진료철학은 다양하다. 수복 치료를 할 때, 근관치료를 할 때 그리고 발치를 할 때 등등. 그중에서 발치는 가장 비가역적인 치료이기 때문에 매우 심사숙고해야 한다. 발치를 함부로 속단하면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와의 분쟁 또는 동료 치과의사와의 오해 등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치과의사를 간혹 보곤 한다. 짧은 문장이 발치에 관한 생각을 잘 정리해준다. You pull out what everyone says, but do what is fair and justice. 모든 사람이 동의하는 치아를 발치해라. 그러나 공정하고 정의롭게 발치하라. 발치, 함부로 속단하지 맙시다. 가깝고도 먼 이웃
10월말에 경주에서 1년에 한 번 열리는 정기학회가 있어 다녀왔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경주에 가본 적이 있어도 학회로 경주에 방문하기는 1999년 이후 무려 18년만이었습니다. 18년 사이에 나는 얼마나 많이 변하였던가. 아니, 내 주변의 상황이 변한 것인가요? 그 때는 수련을 받을 때라 혈혈단신 자유로왔고 학구열도 넘쳤던 때였지요. 지금은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이번처럼 지방에서 학회가 열릴 때면 병원 스케줄 조정은 이차적인 문제고, 아이 혼자 집에 두고 와야 하기에 자유의 기쁨을 누리기 전에 내가 없는 동안, 아이와 집안일에 문제가 없도록 준비해두어야 하는 마음의 무거움이 더 큽니다. 사실 지방학회 뿐만이 아닙니다. 오늘은 이른 아침에 열리는 세미나에 다녀왔는데, 아이를 깨우고 고구마 두어 개를 에어프라이에 돌려놓고는 허둥지둥 집을 나서야 했습니다. 예전에는 치의신보를 보면 이번에는 어떤 재미있는 강의가 있을까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신문을 보면서도 “어떤 강의”를 들을까가 아니라 “어떤 날짜”에 하는 세미나를 갈 수 있을까를 보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일요일에 열리는 세미나에 가서 여자선생님들을 보면 “저 선생님은
11월의 시카고 날씨는 생각보다 훨씬 매서웠다. 거기다가 첫눈까지 내리고 있었다. 잊지 못할 4박 5일의 여정은 시카고 특유의 겨울날씨와 함께 시작되었다. 필자는 치주질환 분류를 위한 워크숍에 초청을 받고 참가하였다. 1999년 Gary Armitage를 중심으로 한 치주질환의 분류가 발표된 지 18년 만에 새로운 데이터를 바탕으로 치주질환을 새로이 분류하고, 특히 임플란트주위염에 대한 분류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이 지난 주 미국 시카고에서 있었다. 미국치주학회(AAP, American Academy of Periodontology)와 유럽치주학회(EFP, European Federation of Periodontology)가 공동으로 개최한 이번 워크숍은 2년반의 준비작업 끝에 전 세계의 석학 10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시카고대학에서 역사적인 작업을 진행하였다. 워킹그룹은 ▲Periodontal Disease and Conditions, and Periodontal Health, Gingivitis ▲Periodontitis ▲Developmental and Acquired Conditions and Periodontal Manifestations of Sy
인간은 모두 건강과 더불어 영생을 원합니다. 육신의 영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영혼의 영생을 위한 종교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종교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것을 보면 인간은 항상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 아닐까요? ‘셀프/리스’라는 영화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나이 많은 억만장자가 다른 사람의 몸뚱이에 자신의 기억을 이식해서 새로운 몸으로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셀프리스 서비스를 이용한 후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그린 영화인데요. 실제로 이런 상상을 현실로 이루려는 시도가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황당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유명한 미래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처럼 뇌는 정상이지만 사지마비인 환자의 머리를 뇌사자의 몸에 이식하려는 시도가 있습니다. 뇌사자의 간이나, 신장, 각막을 이식하는 것은 현재도 시행되고 있지만 다른 사람의 머리를 이식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좀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실제로 2016년 중국에서 한 원숭이의 머리를 다른 원숭이에 이식하는 수술을 해서 이식한 원숭이가 살았습니다. 물론 아직은 신경 접합까지 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