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주인공은 누구일까? 질문을 던져놓고 나니, ‘매력적’이라는 말이 이미 정해진 답을 함축한 것처럼 보인다. 라틴어로 매력은 베누스(venus)니까. 로마의 천재 시인 카툴루스는 이런 시를 썼다. “퀸티아는 많이들 아름답다 하지. 내가 봐도 눈부셔, 훤칠해/ 늘씬해. 그것만은 나도 인정해./ 하지만 아름답다 할 순 없어. 매력이 없거든./ 호리호리한 몸매에 소금 한 톨이 없어./ 레스비아는 아름다워, 예쁜 건 다 가졌지./ 왠지 알아? 모든 여자들의 매력을 모두 그녀 혼자 훔쳐갔거든.” 퀸티아에게는 없지만 레스비아에게 있는 것, 모든 여자들이 도적질 당한 것, 그녀 혼자 다 훔쳐간 것, 그것이 매력인데, 카툴루스는 그것을 ‘베누스의 특성’(venustas), 모든 ‘베누스들’(veneres)이라고 썼다. 그것을 마치 음식에 마지막 맛을 완결 짓는 소금으로도 비유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아름다워 보이는 퀸티아는 사귀어보면 소금이 안 들어간 밍밍한 음식 같이 매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음식을 맛깔나게 하는 소금 같이 여성을 매력적으로 빛나게 하는 것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인간 너머 신의 영역에 있는 것이라고 해서, 로마
전자차트에 펜차팅 후 전자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몰랐었는데, 보건소 직원이 치과에 실사를 나왔다가 전자서명 되지 않은 진료기록을 보고 면허정지 15일 처분을 받을 것이라 하고 갔다는 글이 치과의사들이 많이 방문하는 커뮤니티에 올라 왔었습니다. 요즘에는 전자차트를 공급하는 회사들이 전자의무기록에 전자서명이 꼭 필요하다고 예전보다 강조하고 있지만, 아직도 전자의무기록에는 공인인증서로 전자서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시는 원장님들이 계셔서 전자의무기록 전자서명에 대한 글을 씁니다. ■ 의료법 제22조를 보면, 의료인은 진료기록부 등을 갖추어 두고 환자의 주된 증상, 진단 및 치료 내용 등 의료행위에 관한 사항과 의견을 상세히 기록하고 서명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진료기록을 작성하고 서명하는 주체가 의료인 개인이고, 날인(도장을 찍는 것)은 안되고 서명만 인정이 됩니다. 벌칙조항(의료법 66조)은, 진료기록을 작성하지 않을 경우 자격정지 15일, 진료기록부에 서명하지 않은 경우 경고, 진료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하거나 고의로 수정, 변조 등을 한 경우 자격정지 1개월입니다. ■ 의료법 제23조에는 진료기록부등을 「전자서명법」에 따른 전자서명이 기재된 전
서울시치과의사회에서 연락과 함께 자료를 보내주셨습니다. 당시 서울시치과의사회는 환자와 치과 의료진 사이 놓인 갈등을 예방, 해결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제가 받은 자료는 ‘허위진단서 발급 금지’에 대한 자료였습니다. [그림 1] 이 내용을 환자에게 전달이 잘되도록 한 페이지로 만드는 요청이었습니다. 내용을 찬찬히 살펴봤습니다. 전체를 살핀 느낌은 ‘차갑다’입니다. 느낌이 낯설었습니다. 범죄, 사기 혐의, 유죄, 징역, 형법, 벌금, 금고…. 병을 치료하는 것과 동떨어진 단어들이 많이 보입니다. 적어도 제가 만나 본 의료진들은 환자를 대할 때 차갑게 하려하지 않았습니다. 환자 아픔에 공감하려 했고, 병의 원인에 집중했으며, 본인이 할 수 있는 의술에 최선을 다하려 했습니다. 정보가 주는 내용에는 한점 틀린 것이 없지만 의료진의 진료 서비스에 담긴 감성을 느낄 수 없습니다. 진료의 ‘목표’는 완치지만 그 ‘과정’ 중 겪을 수 있는 환자 불편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의료진은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정보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위진단서 발급 금지’ 정보 전달이 목적이지만 그 과정에 환자가 느끼는 감정을 고려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정보를 우리 진료
나에 관한 얘기 따위 들어본 분이 별로 없겠지만, 사실 난 좀 딱한 처지의 소년이에요…라는 폴 사이먼의 조곤조곤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The Boxer>를 처음 듣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등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살며시 토닥이듯 기타 인트로가 시작되어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려는 찰나, 속삭임 같은 노래가 들려온다. 졸리고 힘든데 막상 누우면 걱정 때문에 잠은 안 오던 어떤 밤, 망연자실 책상에 앉아 할 게 얼마나 남았나만 자꾸 세어 보던 그런 밤이었을 것이다. 말을 꺼냈다간 울어 버릴 것만 같아서 차마 소리 내어 묻지도 못한 내 질문에 니 맘 다 안다는 듯 상냥하고 따스한 대답을 해 주는 것 같기도 했고, 랄랄랄라 랄랄라 하며 말꼬리를 흐리는 부분에선 심지어, 설령 내가 원하던 그 대답이 아닐지라도 고개를 끄덕여 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노래가 끝나자 마음속의 어떤 문 하나가 딸각 하고 닫히면서 찬바람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고 훈훈해져 오는 느낌과 함께, 욕심을 거두고 남은 시간 동안에 가능한 것만 차분히 해야겠다는 마음의 정돈이 따스한 고양이 한 마리처럼 내 품에 안겨왔다. 본과 2학년 때 동기들과 함께 트리오로 이 노래를 불러 축제 때
마지막으로 소개할 비극 여주인공은 마법을 부리는 야만족 공주 메데이아입니다. 메데이아는 남편의 배신에 분노하여 남편과 함께 낳은 자식들을 살해하는 여인으로 알려져 있죠. 이처럼 메데이아는 모성을 저버린 무자비한 여인입니다. 메데이아 신화는 이아손의 영웅 신화와 연결된 서사입니다. 영웅 이아손을 사랑한 메데이아 공주는 이아손이 황금 양피를 구하는 모험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여 이아손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이아손은 그 성공으로 눈부신 명성을 얻었고 메데이아와 함께 자식을 낳고 살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영웅과 공주의 사랑과 모험의 로맨스라 하겠죠. 그러나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공주와 결혼하여 메데이아를 배신했습니다. 달콤한 로맨스가 쓰디쓴 리얼 스토리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메데이아는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메데이아>의 주인공으로 배신한 남편에 분노하여 자식들을 살해했습니다. 이러한 비극 신화 이전에 알려진 신화에서는 메데이아 자식들의 죽음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이를테면 메데이아가 코린토스의 왕을 살해하자 이에 분노한 코린토스 시민들이 그녀의 자식들을 죽였다고 합니다. 또 메데이아가 마법을 부려 자식들을 불멸의 존재로 만들려 했지만 마법의 실패
40년이 조금 넘는 시간을 살아오면서 또 기억이 또렷한 30여년을 살아오면서 어떤 시험이라도 합격은 큰 기쁨을 가져다주었다. 2002년 1월 국시에 합격하고 4월에 면허번호가 찍힌 면허증을 보면서 6년간 한 장의 종이를 얻기 위해 참 노력 많이 했구나 하는 감회를 아직도 기억한다. 하지만 그 생각은 불과 1년이 지나자 상당 부분 희석이 되어버렸다. 그 종이가 또 다른 시작을 알려주는 상징이었음을…. 2000년 겨울 운전면허시험을 보고 운전 면허증을 취득하였다. 동기들 몇 명과 함께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고 필기시험, 실기시험, 도로 주행까지 시험을 보고 1종 보통 면허를 받았다. 승용차만 운전한다면 2종으로도 충분했는데 그때도 앞으로 치과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배추 장사라도 하려면 1톤 소형 승합차 정도는 운전할 줄 알아야 한다며 다들 1종 보통 면허를 취득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2개의 면허증은 보통의 치과의사들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운전 면허증과 치과의사 면허증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우선 가장 큰 공통점은 끝이 아닌 시작을 알리는 의미인 것 같다. 슈마허 같은 카레이서도 속칭 김여사라 불리는 운전자도 처음에 운전 면허증을 받은 시기에는 큰 차이
지난 10월 14일 문혁수 전 서울대학교 교수께서 향년 66세로 타계하셨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없이 의미 없는 생각일 뿐이란 것을 알게 되지만, 마음 한켠에는 미련으로 남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치과계와 구강보건학계에는 아직도 미련으로 남아있는 ‘만약’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만약 문혁수 교수가 왕성하게 계속 활동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후배들도 아직까지 되뇌이는 아련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문 교수는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교직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치과계에 길이 남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렇기에 2001년 투병이 시작된 이후, 많은 후학들은 문 교수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노력과 역량에 미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고 있다. 문 교수는 대학교수로서 단순히 교육이나 연구 업적 뿐만 아니라, 스스로 검증한 과학적인 근거가 실제로 치과계에 활용되도록 부단히 노력한 바 있다. 이에 국민의 구강보건과 21세기 대한민국의 치과의료와 구강보건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여러 업적 중에 주요한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우여곡절 끝에 소공동 서울치대 옛터에 표지석이 세워졌다. 연건동으로 옮긴지 48년만이다. 역사의 뿌리를 찾고 그 흔적을 길이 보존하고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알리고 기억하게 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다. 바로 우리들의 일이다. 소공동 치대는 역사적 가치와 구강보건 향상에 기여한 가치 및 치의학의 학술적 가치가 함께했던 자리이다. 그동안 동창회 총회 수임 사항으로 지지부진하게 끌어오다 이번 한중석 서울대치의학대학원장의 적극적 관여로 결실을 보게 되어 표지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1922년 설립된 경성치과의학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강당과 ‘조선총독부의원’을 빌려 쓰다가 반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교장 나기라다스미(柳樂達見)는 조선총독부에 간청하여 아동공원으로 인가낸 저경궁터 662평을 학교부지로 무상대부 형식으로 사용토록 허가를 받았다. 1927년 6월 6일 저경궁터에 교사 및 부속병원을 착공하고 11월 17일 상량식을 가졌다. 그 후 경성치과의학교는 1929년 4년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로 인가를 받아 승격하였다. 해방후 국립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으로 발전하였다. 1969년 12월 종로구 연건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많은 치과의사 배출의 요람
동아일보에 멋진 美食칼럼을 쓰고 계신 석창인 선생님의 추어탕에 관한 글에서 아버님이 낚시를 좋아하셨다는 얘길 읽다보니 새록새록 옛 생각이 나고 말았다. 초등학교 내내 나는 아버지를 따라 한 달에 두 번 씩은 일요일 새벽 4시경 집 근처 낚시점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전국 저수지를 돌며 낚시를 다녔다. 버스에 같이 탄 낚시꾼 아저씨들이 몇 학년이냐는 등등을 물어보셔도 눈만 내리깔고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낯가리고 숫기 없는 나 같은 딸을 아버지가 왜 몇 년간이나 낚시터에 데리고 다니셨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사실 의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세월이나 낚으려’ 엄마를 번번이 일요과부로 만들어 놓고 가시는 낚시였건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벌어지곤 하는 숨 막히는 계측 끝에 1~2cm차이로 대어 상을 놓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다음 주엔 최신형 일제 릴낚시 대를 새로 사서 再起(?)를 노리시는 아버지가 엄마에겐 불가사의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이율배반이요 자가당착이라고 쏘아붙이는 엄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외할머니는 “벗어나고 싶다는 것까지야 맞는 얘기지. 그러려고 해도 안 되는 거 아니냐! 언제나 기를 쓰고 이기려 드는 본성을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딸을 희생한 남편에게 복수하며 악령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주에 소개할 비극 여주인공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의 사랑을 되찾으려다 남편을 살해하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자결하는 고귀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네요. 데이아네이라(Deianeira)는 “사내를 죽이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사내가 남편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 영웅 헤라클레스입니다. 제우스의 아들로 인간사회를 위협하는 괴물들을 퇴치하기에 문명의 수호자이며 인류의 은인이라 불립니다. 그리스 비극 이전의 데이아네이라 신화는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여걸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마음이 눈멀어 옷에 독을 발라서 남편에게 보내자 남편이 그 옷을 입고 죽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다른 여인을 사랑하자 데이아네이라가 질투에 사로잡혀 고의로 남편을 독살한 것입니다.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의 여인들>에서 데이아네이라는 다른 인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이 비극은 중년 부인 데이아네이라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헤라클레스는 문명의 수호자며 인류의 은인이지만 가정에는 너무나도
치의신보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치의학역사 도록으로 ‘한눈에’ 서울치대 O회 기금 ‘… 역사 박물전’ 발행이란 제목으로 한국 근·현대 치의학의 발전을 사진과 함께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록이 만들어져 한국 치의학사의 발전을 한단계 높여 주고 있다. ‘한국 근·현대 치의학의 역사박물전’으로 명명된 이 책은 치의학박물관 도록 편찬위원회에서 편찬을 맡아 도서출판 몸과 마음에서 발간했다. 특히 이 책은 서울치대 O회 졸업동문들의 기금으로 만들어지고 서울치대 박물관이 개관한지 1주년이 지난 시점에서 발간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으며 치대생과 치과의사들의 역사의식을 고취 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중략) 이 책의 1부에서는 일제하 치의학의 근대성, 해방공간과 한국의 치의학, 미국을 통한 치의학 수용, 치의학 지식의 제도화 및 전문화 과정 등을 다뤘으며 2부에서는 한국 근·현대 치의학 박물전이 컬러로 게재돼 있다. 부록으로 치의학 연표가 실려있다. 2003. 1. 19일 치의학박물관 도록 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도록(p.109)은 교수사서함을 통해 전 교수에게 우선 배포 되었는데 저는 사진화보집으로 편집된 책장을 넘기다가 1969.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