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에는 5월에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했던 오스타펜코가 코리아오픈에서도 우승을 했고, 두산 베어스가 마침내(일시적일지 몰라도) 2017 KBO 시즌 공동선두로 올라섰다. 프로 테니스건 프로 야구건 달의 뒷면만큼이나 나완 거리가 먼 세상일텐데 엉뚱하다고 여기실지 몰라도 기분이 날아갈 듯이 좋았다. 혹시나 4강에서 탈락하면 오스타펜코가 일요일의 결승전엔 못 나올까봐 ‘안전하게’ 토요일 경기를 보러 방이동 올림픽 공원 테니스코트까지 갔다. 스타는 스타인지라 센터코트에는 엄청난 가을 햇살과 더위에도 불구하고 7,000명 정도의 많은 관중이 운집했다. TV로 볼 때 오스타펜코가 실수하고 시무룩해 하거나 득점하고 주먹을 불끈 쥐며 늘 바라보는 이가 과연 누구인지 궁금했었는데, 짐작대로 코치를 겸하고 있는 엄마였다.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애써 ‘뭐, 이젠 담담해요’라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온 몸이 풍기는 긴장된 분위기는 ‘담담할 리가 없지요’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범실이 거듭되어 흥분하면 게임 사이에 엄마코치가 코트로 들어와서 오스타펜코를 다독이고 하이파이브를 해 주고 나갔다. 그러고 나면 태엽 감은 인형이 오똑 서듯 스무 살의 딸이 기운차게 스트로크를 하
이번 칼럼은 정보디자인의 실무적인 이야기에 무게를 실어보겠습니다. 하루는 1층을 내려갔는데 바닥에 낯익은 종이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꾸깃하게 찌그러진 모양이었습니다. 저희 치과에서 드리는 ‘발치 후 주의사항’이었습니다. 진료 받은 환자분이 버리고 간 듯 했습니다. 선생님들이 하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임플란트나 발치 진료 받은 환자분들 소독이나 봉합사를 풀 때 술, 담배 냄새가 나는 분들이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사항이 잘 안 읽히고, 안 지켜지는 것입니다. 환자 입장에서 좋지 않은 것은 물론이지만, 의료기관 입장에서도 좋지 않습니다. 정성스럽게 한 진료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려면 환자가 함께 노력해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잘 안 읽히고, 안 지켜지는 것일까요? ‘주의 사항’ 안내지를 살펴보니 1, 2, 3…순번이 달린 서술형으로 적혀 있습니다. 가지런하게 보이지만 한 번에 읽고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읽는 입장에서 한 번에 핵심을 얻기 힘든 표현 구조입니다. 정보를 주는 입장에서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정보디자인은 내용이 너무 많을 때 핵심만 골라 단순한 표현으로 전달합니다. 하지만 ‘주의 사항’은 모든 것이 핵심 정보입니다. 내용을 뺄 수 없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수련의 때 보던 두꺼운 교정학책을 펴들고 목차를 살폈습니다. 그 중에 제 눈이 제일 먼저 간 곳은 ‘성장과 발육’ 파트 중에서도 “사회성과 행동발달”이었습니다. 수련받을 때 “성장과 발육”을 1년간 세미나로 공부했지만, 해부학적인 성장과 발육에만 관심을 가졌지, 심리학적인 발달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듯 합니다. 교정치료라는 것이 “해부학적이고 물리적인 치아이동”이라고 생각을 했지, 심리학자도, 정신과의사도 아닌 제가 교정치료를 하며, 환자의 마음까지 살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가씨였던 치과의사가 엄마가 되고, 우리 아이가 아가에서 사춘기 소녀가 되고 보니, 이제는 단지 12살 환자의 치아를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또는 “사춘기 청소년”의 치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원 약속도 잘 안 지키고, 평소에도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 여중생 아이를 치료하고 있는데, 치료 중에 아이가 아팠나봅니다. 그 순간 아이의 입에서 나온 욕설! 그 순간 저도, 보조를 하던 치과위생사의 손도 멈췄습니다. 이것을 아는 척 하고 혼내줘야 하나, 모른 척 해야 하나… 정말 짧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고, 마치
어릴 적 이따금씩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엄마 선배의 아들들 얘길 해 주시곤 했다. 엄친아 두 대학생이 여름방학인데도 책상 앞에만 있자 엄마가 토마토를 썰어놓고 대청으로 불러냈다. 둘이 마주앉아 토마토를 먹는 걸 보며 흐뭇해진 엄마가 돌아앉아 빨래를 개기 시작한지 10여분 쯤 지났을까? 등 뒤에서 두런두런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토마토 즙만 남은 걸 서로 마시겠다고 아들 둘이 접시를 쥐고 옥신각신하는 소리였더란다. “공부만 했지 세 살짜리나 마찬가지라니까.”라는 한탄과는 안 어울리게 그 분의 얼굴에 가득하던 뿌듯함이 너무나 부러웠다는 것이 매번 엄마 얘기의 결론이었다. (늠름한) 자식은 壯士의 수중의 화살이니, 전통에 화살이 가득한 복된 장사는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에도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성경말씀이 이어졌고 이내 우리 자매는 (제대로 로딩이 된 화살이라도 된 기분으로) 슬그머니 TV앞을 떠나 책상을 향하곤 했었다. 이제 와서 엄마의 훈육법을 왈가왈부 할 마음도 없거니와 토마토마냥 시큼 쌉싸름한 느낌만 남은 줄 알았는데, 오늘 저녁엔 랜덤 타임슬립 드라마처럼 기억 전체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화살이 가득찬 전통이 어디선가 날아와 내 앞에 툭 하고 떨어지듯이
지난 번에 엘레아학파의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존재하는 것이 하나라고 함으로써 생성, 소멸, 운동, 변화하는 세계를 부정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런 주장은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숙제를 남깁니다. 어떻게 하면 파르메니데스가 그어 놓은 ‘있는 것은 생성, 소멸, 운동, 변화하지 않는다’란 선을 넘지 않으면서 우리 눈앞에서 변화하고 있는 세계를 설명할 것인가. 이 숙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한 철학자들을 우리는 ‘다원론자’라고 부릅니다. 존재하는 것이 생성,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놓음으로써 운동하는 세계를 구했다는 것이죠.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가 그들을 대변합니다.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의 원리를 상정하는 것은 이론의 효율성이나 정합성의 측면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선택임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족보를 뒤져 최초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듯이, 만물이 발생한 최초의 지점을 찾아 그것을 기원이자 원리로 삼았던 초기 그리스 자연철학의 생각은 그만큼 또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시초가 되는 것으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적 설명방식이 갖는 매력도 큽니다. 사실 어떤 학문이든 잡다한 세상의 다양함을 원리적
지난 8월 20일부터 25일 까지 국제표준화기구/치과전문위원회 (ISO/TC 106) 국제회의가 홍콩에서 개최되었다. ISO/TC 106 국제회의는 치과 산업과 관련된 국제표준 문서를 제정, 개정, 폐기하는 회의로 전 세계 28개국이 투표권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고, 16개국이 참관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규모 국제회의다. ISO/TC 106 국제회의는 8개의 소위원회 (Sub-Committee, SC)와 소위원회에 속해 있는 각 작업반 (Working Group, WG) 안에서 소규모로 토론을 진행한다. 각각의 토론을 통해 신규 작업 항목 (New Work Item Proposal)을 제안하고, 위원회에 안건 상정, 국제 표준안 (Draft International Standard), 최종 국제 표준안 (Final Draft International Standard) 의결 과정을 거쳐 최종 국제 표준 (ISO)로 지정 된다.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해 각 회원국의 의견 수렴을 통한 투표를 진행하기 때문에 시간은 물론 각국의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표준을 제정, 개정하기 때문에 ISO/TC 106 국제회의는 치과
책은 왜 읽는 것일까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듣던 잔소리 중 하나는 ‘책 좀 읽어라’라는 말이었습니다. 학창시절은 물론 유아 시절에도 책 읽는 것엔 학을 뗐고,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책은 그저 인생에서 ‘싫은 것’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1년이 흐른 대학교 2학년, 갑자기 찾아온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꽤나 힘들었습니다. 가장 큰 역경은 관계의 부재였는데, 이를 이겨내기 위해 병원, 한의원 치료 모두 받아봤으나 크게 효과가 없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하루 3시간 수면에 굴복할 즈음 저는 서점에서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이 책은 당시 저에게 있어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책 속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는 제게 필요한 모든 말을 향유하고 있었고 구절 한마디 한마디는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막연했던 불안감은 조금씩 사라져갔고, 책을 10번 정도 정독할 때엔 불면증과 우울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절실한 필요에 의해 저자의 절절한 정신을 탐구한다면 책의 진의를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서 외에도 문학에선 올바른 가치관과 직관의 지혜를, 역사에선 자아와 세계관에 대한 통찰을,
18세기 치과 진료는 주로 두 곳의 장소에서 행해졌다. 이발외과의(barber-surgeon)는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 공간인 응접실(Salon)에서 상류층을 대상으로 치료하였고, 반면에 떠돌이 발치사(itinerant tooth puller)는 실외인 시골 장터(market)에서 민초의 치과주치의 역할을 하였다. 장이 서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시골은 이발외과의와 발치사가 없어서 소위 말하는 치과치료 사각지대였다. 이처럼 격리된 마을에서 치통 환자가 발생하면 참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바로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이 마을의 대장장이(Blacksmith)였다. 대장장이는 뛰어난 손재주와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었고, 집게(tong) 사용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였다. 또한 필요한 기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제작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이러한 대장장이의 직업적 특성이 시골 사람들을 위한 발치사 역할이 가능하게끔 하였다. 그 덕에 사람들은 앓던 이를 뺀 후 시원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대장장이의 부업인 발치는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영어 단어 대장장이(blacksmith)에서 접미사인 smith는 금속을 다루는 직업을 뜻하며, ‘장인(匠人)’이라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경우에 심한 단계의 치매는 묘사하기 여러 가지로 곤란하여, 중기 무렵이 그 한계라고 한다. T.S.엘리엇이 일찌감치 간파했듯 너무나 사실적인 것에는 견디기 힘들어 하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일까. 나중엔 막대한 인적 물적 자원이 필요해 지고, 개인생활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의 운영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기 때문에, 가급적 그 발병과 진행을 늦추어야 고령사회의 고단함을 줄일 수 있다고 역설하는 신경과의사와 자리를 같이 하게 되었다. 제약회사들이 관련되어 치매관련 위험을 부풀리는 느낌이라고 누군가가 말하자, 그는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진 않았지만, 수 만년의 진화과정을 통해 인류가 깨달은 진리가 있다면, 위험 가능성이 클수록 원래보다 과장되게 지각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점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일어 날 수 있는 일이라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다음으로 할 일은 해결 혹은 예방법 강구가 되겠다. 지금 아무리 젊은 당신이라 해도 이 해결노력에 동참하는 일부가 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문제의 일부가 되어버릴 지도 모르니까. 타이밍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중증의 치매로 급속히 진행되지 않도록 약물 치료 등이 가능하다는
“제논은 엘레아의 참주인 네아르코스를 축출하고자 했으나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네아르코스에게 심문을 받을 때 자신의 혀를 물어 끊어 그에게 뱉었고, 그러고는 맷돌에 던져져 으깨어져 가루가 되었다.” 수다(Souda) 또는 수이다스(Souidas)라고 하는 10세기 말 비잔틴에서 편찬된 일종의 그리스 백과사전의「제논」항목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제논입니다. 거북이와 토끼 또는 아킬레스를 경주시키고, 거북이가 조금이라도 앞서 출발한다면 결코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앞지를 수 없다고 했다던 그 제논이 맞습니다. 이 사람만이 아닙니다. 제논이 살던 도시 이름을 딴 철학학파인 엘레아학파에는 멜리소스라는 인물도 있었는데, 제논과 달리 사모스 사람이었던 그는 아테네의 페리클레스가 함대를 이끌고 사모스를 쳐들어갔을 때, 장군의 직을 맡아 페리클레스의 함대를 무찔렀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리고 그는 제논 못지않게 우리가 보는 상식적 세계를 부정하며 “그러므로 이처럼 있는 것은 영원하며 무한하고 하나이며 전체가 같다. 그리고 그것은 소멸하지도 더 크게 되지도 재배열되지도 고통스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자연학」3권 18절 중)라고 말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치과를 읽다> 저자 감수성이 극에 달했던 스무 살을 전후로 해서 누구나 책 한권의 사색에 빠져본 경험이 있을 겁니다. 저는 유독 ‘데미안’을 여러 번 읽었습니다. 그중 유난히 마음에 와 닿았던 문장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자기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는 무엇인가를 미워하고 있는 것이야. 우리 자신의 내면에 없는 것이 우리를 흥분시키는 일은 절대로 있을 수 없거든.” 정말 미워하는 사람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가 아닌가 싶네요. 미워하는 사람이 생겨도 결국에는 쉽게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은 결국 자신을 가장 사랑하니까. 책읽기는 작가의 시선과 가치관을 빌려서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알고 사랑하고 있을까요? 책읽기를 통해서 자신의 깊은 내면의 세계에 빠져들어 갈 수 있습니다. 진정한 자신과 맞닥뜨려 본 사람만이 진정한 자기애를 가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