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우림의 스콜처럼 폭우가 내린 주말 동안 九旬의 원로선배님과 불의의 사고를 당한 선배님이 우리 곁을 떠나셔서 마음 속 하늘에는 며칠 후까지도 비구름이 낮게 떠 있었다. 친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미소와 음성이 뇌리에 있어선지 가슴 한 구석이 많이 아파왔다. 일상적이지 않은 일들은 알고 보면 실은 거의 일상적이라고 해도 될 만큼 자주 일어나지만, 그 파동은 번번이 새삼스럽고 거센 그 소용돌이에서 빠져 나오기란 수월치 않다. 주위가 낯설어 보이고 자꾸 외로워지는 이런 느낌을 슬픔 말고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할까. 울적함을 달래려 동작대교로 한강을 건너 퇴근하기로 했다. 蓮步渡河라고 이름까지 붙여놓은 내 작은 의식인데, 항상 효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 개인 뒤 석양이 조연일 땐 금상첨화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다리 북단 쪽에선 미군기지 담벼락을 오른쪽으로 내내 끼고 돌며 한참을 한 줄로 올라가야 하는 아무리 봐도 이상한 진입로인데 차들은 별로 급한 기색이 없다. 급한 사람이야 이태원부근에서 이미 반포대교 쪽으로 내 뺐을 것이다. 지루함에 두리번거려봤자 볼거리도 별로 없는 좁은 길에 가다 서다 소걸음에도 얌전하기만 하다. 이촌동 쪽에서 오던 차들이 끼어들기
이솝 우화는 동물이 의인화되어 만들어진 이야기이지만 사람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있다. 토끼와 거북이, 개미와 베짱이, 사자와 생쥐, 도시 쥐와 시골 쥐. 모두 보편적 진리와 올바른 삶에 대한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다. 이솝 이야기는 세계 어린이들의 도덕 교과서로 사용되고 있는데, 치과대학 학생뿐만 아니라 치과의사를 위한 덕성 교육을 위한 교재로도 삼을 만하다. 의료 윤리에 대한 사회적 경종이 울려 퍼지는 상황에서 이솝 우화는 누구나 알지만, 치과에서는 누구도 깨닫지 못할 수 있다. 이솝 우화는 다양한 갈등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 치과에 뜻밖의 지혜를 선사할 수 있는 지침서다. 전국에 만 육천여개의 치과가 도시와 시골에 있다. 어디에 있든 도시와 시골을 오고가면서 치과의사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시골에는 정이 있고 도시는 삭막하다는 편견이 있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다시 이솝 우화로 돌아가서 도시 쥐는 부족함에는 불만을, 풍족함에는 예찬을 한다. 반면 시골 쥐는 부족함과 안전함에 나름 만족하며 산다. 또한 시골 쥐는 도시 쥐와 비교도 하지 않으며 비교를 당해도 절대 꿀리지 않는다. 개원의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어디서 개원을 하건 의술을 행하고 인
이번호부터 그리스 로마 원전을 연구하는 이기백 학당장이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을 주제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매주 목요일마다 진한 ‘고전의 향기’로 독자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철학을 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이나 최초에나 놀라워함으로 인해서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어떤 현상에 대해 놀라워한다고 해서 곧바로 철학이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신화도 놀라워함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는 놀라운 자연 현상을 초자연적인 신을 도입해 허구적으로 설명하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진정 철학이 시작된 것은 이 같은 신화적·종교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 자연 현상을 자연적인 요소들로 설명해내는 합리적 사고에 의해서였다. 고대 그리스는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철학을 탄생시켰을 뿐 아니라 합리적인 의학의 전통도 확립하게 된다. 곧 히포크라테스의 코스학파는 질병을 초자연적인 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신체를 이루는 자연적인 요소로 설명해냄으로써, 주술적·종교적인 의술이 아닌 합리적인 의학의 전통을 확립했던 것이다. 그리고 고대 그리스에서는 의학은 철학과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캘수스에 의하면, “애초에 치료의 학은 철학의 일부로
한 평생을 사는 동안 죽을 고비를 넘겨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어린시절 딸부잣집 셋째딸로 유복하게 평탄하게 살아온 나는 1986년도 결혼과 함께 미국 유학을 떠나고 6년 동안 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고 1992년 귀국을 했다. 다행히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는 나지 않지만 그 죽을 고비를 넘긴 그 충격은 아직까지 나에게 “외상트라우마”로 나의 뇌 깊은 한곳에 남아 한번씩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하는 경험을 하게 한다. 정말 기억하고 싶지않은 경험들… 그 3번의 죽을 고비 중 하나… LA 흑인폭동사건. 1992년 4월 29일 저녁. 졸업이 불과 두 달도 남지않은 터라, USC Dental Clinic은 clinical requirement를 채우려는 student doctor 환자들로 야간 진료는 늘 북적였다. 나 또한 여느때와 같이 Nursery에서 하루종일 있는 5살 아들을 데리고 와서 나의 진료 cubicle에 앉혀두고 야간진료를 한참 하는 중이었다. 늘 즐거운 음악이 흘러나오는 원내 스피커에서 “진료하던 모든 작업을 멈추고 병원을 떠나라”는 다급한 소리의 원내방송이 연겨푸 스피커로 통해 흘러 나왔다. “All Doctors!! Evacuate the hospi
지난 8일 토요일에 타계 하신 지헌택 선생님께는 돌아가신 이를 생각하여 슬퍼하는 추도 대신 돌아가신 이를 간절히 생각하는 추모의 글을 전하려고 합니다. 90여년 평생에 훌륭한 일을 너무나 많이 하시고 오신 곳으로 돌아가셨으니까요. 지난 4월 7일, 문안전화를 큰 따님이 받아 건네주어 나눈 선생님의 육성이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한번 찾아뵌다고 한 것이, 적어도 백수는 하시리라 믿었는데 그만 영정을 마주하게 됐습니다. 선생님을 몹시도 존경하는 김규문 학형으로부터 첫 부고 문자를 받고는 멍하니 몇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올리버(APDF 사무총장)에게 부음을 전했습니다. 다음 날 받아본 올리버의 조문에 이어 스리랑카 가미니와 힐라리, 파키스탄의 알비교수가 조의를 전해왔습니다. 올리버 헤네디에게는 지선생님이 “brother”요, 우연인지는 몰라도 의사 따님의 사위는 한국인에 한복 입은 손녀 돌 사진을 품고 다녔습니다. 앞으로 인도에서 키키와 발리, 홍콩 웡과 제프리, 태국 피살과 포라니, 필리핀 디암포, 일본 쭈루마끼, 2009년 외국인에게 수여하는 최고의 ‘친선훈장’받은 몽골에서는 아말사이칸, 국제고아 처지의 대만 치과계가 국제사회에 복귀하는데 지선생님으로부터 결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치과를 읽다> 저자 해마다 이맘때면 비가 많이 옵니다. 장마입니다. 한자어로는 ‘임우(霖雨)’라고도 합니다. 나무가 빼곡한 수풀(林) 위로 비(雨)가 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면 한자인 림(霖: 장마 림)자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장마철이 되면 자연스럽게 야외 활동이나 외출이 줄고 집안에 있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프로야구 경기도 우천으로 취소되는 일이 생기고, 잡혔던 골프 라운딩도 못하게 되는 일이 생깁니다. 예정 없이 집에 있는 시간이 자연히 많아지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TV가 바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장마철이야말로 평소에 미뤘던 독서를 할 적기입니다. 사실 새로운 책을 살 필요도 없습니다.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도 괜찮고 읽으려고 샀지만 아직도 읽지 못한 책이 집 어딘가에는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시원한 과일에 선풍기를 틀어놓고 책을 펼쳐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면 장마철 무더위도 달아납니다. 참고로 무더위를 쫓아내는 에어컨은
희고 빨간 꽃들이 넘실대는 모네의 양귀비 밭과 땅에 닿을 듯 낮게 내려와 떠 있는 흰 구름, 푸른 하늘까지도 그림 속 그대로인 프라하에서 헬무트 콜 전 독일총리의 장례식을 TV로 봤다. 약 보름 전 87세로 타계했음에도 7월에야 장례식이 열린 것은 장례 절차 의논 차 찾아간 아들을 수년전 재혼한 콜의 미망인이 만나주지 않고 경찰을 불러 돌아가게 한 일들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에서 열린 전 독일 총리의 장례식을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 BBC의 중계로 체코의 호텔방에서 보며 유럽을 실감 했는데 영국의 존 메이저 전 총리와 테레사 메이 현 총리,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마크롱 현 대통령,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등 전 현직 정상들이 함께 타국의 전 총리 장례식에 문상 와 나란히 앉은 건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은 아니었다. 독일 통일과 유럽 연합 결성을 겪으며 독일 역사상 최장인 16년간 총리였던 콜은 초대총리 아데나워의 이름을 딴 묘지에 안장된다. 사별한 전 부인의 곁일 것이란 예상이 빗나간 점에 관해 어느 언론도 별 얘기 없이 지나가는 대목에서는 솔직히 약간 감동했다. “과거 독일이 피해를 줬던 다른 나라들을 유럽이란 이름으로 하
3E 시스템은 병의원을 관리하는 데 있어 중요한 관리방법이다. 모든 의사결정을 근거에 기반해서 하려면 일단 정확한 우리병원만의 경영재무지표가 확보되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재무지표를 매월 혹은 매주 만드는 과정은 생략되거나, 현금흐름위주의 결산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경영을 총괄하는 원장 입장에서는 주먹구구식의 감각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 3E 시스템은 결국 경영의 기본원리인 평가-추정-예측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데, 그 개념은 아래와 같다. 1) Evaluation(평가) 과거의 경영실적을 평가하여 우리병원 경영지표의 추세를 분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본적인 데이터가 필요한데 그 데이터는 재무제표에 거의 모두 나타나 있다. 주로 분석해야 할 재무제표로는 손익계산서, 재무상태표, 사업장현황신고서, 고정자산관리대장 등의 자료를 확보하여 매년 혹은 매월의 매출, 비용, 이익 및 여러가지 경영지표들의 추이를 분석해보아야 한다. 매출을 구성하는 환자의 진료데이터는 청구프로그램의 데이터를 활용한다. 2) Estimation(추정) 대부분의 개원의들은 지난달 수입에서 카드결제, 급여 등 대략 지출된 것을 차감해서 얼마 남았는지 파악하는
보슬비가 내리던 저녁 분당 인근을 지나다 길가의 한 설렁탕집에 들어갔다. 토요일 8시를 넘긴 시각이니 그럴 듯 해 보이는 곳들은 거의 만원이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들어가 보니 나름 분위기가 있는 집이었다. 재즈(!)가 흐르는 홀에는 충분히 간격을 띄운 테이블들이 스무 개 쯤 되고, 입구 쪽으론 원두커피 포트와 컵 등이 줄을 잘 맞춰 놓여 있었다. 누구든 얌전히 컵을 하나만 뽑아 조심조심 커피를 따르고 설탕도 흘려선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정갈한 커피코너 본 적 있으시죠? 테이블 마다 종이냅킨도 아마 개수를 맞춰 꽂아 놓은 듯 두께가 비슷해 보이고, 배식구 옆의 접시며 물 컵들도 일렬로 줄을 맞춰 쌓여 있었다. 김치 깍두기도 40대의 여사장(으로 보이는)이 직접 썰어다 준다. 손님들이 마구잡이로 꺼내도록 놔 둘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이는 상냥하지만 단정한 인상이었다. 설렁탕집 분위기 치고는 특이했는데 뭐랄까 이 사람들은 무슨 음식점을 하던 결국 이런 스타일로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언제고 성공을 하긴 할 것 같지만 또 어쩌면 성공 따위엔 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하루하루 자기방식 대로 사는 정돈된 일상 같은 것이 굳이 느끼려고 하지 않는데
중년에 들어서다 보니 같은 치과의사지만 삶의 모습은 매우 다양한 것 같다. 개원을 하거나 공직에서 전일제로 일을 할 수도 있고 자유계약직으로 일을 할 수도 있다. 아니면 아예 치과 일을 그만두고 자녀교육과 함께 가사 일을 하는 치과의사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어떠한 모습이던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개원해서 크게 성공하거나 공직에서 큰 명예를 얻으면 행복한 것일까? 치과 일을 하지 않으면 불행한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치과 일을 하는 것보다 하지 않는 것이 행복한 것일까? 10대, 20대 때는 에너지가 충만하고 의욕도 많아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자주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행복감이라는 것을 이제 와서 반추해 보면 작은 일에도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이었고 만일 나의 상황을 옆 사람과 비교하기 시작하면 행복감은 사라지고 씁쓸한 기분만이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에는 너무 어려서 비교라는 것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며 내가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 행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등수로 표현되는 교육, 비교의 습관은 우리 시절 많은 학생들의 마음에 획일적으로 내면화 되
부자들은 절대, 돈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새로운 천년의 시작인 뉴 밀레니엄에 출판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부자들로부터 배우는 여섯 가지 교훈 중 하나이다. 같은 해에 필자는 아빠가 되었고 개원도 하였기에, 심기일전을 다짐하는 의미로 이 책을 구입하였다. 그러나 신규 개원의에겐 너무 먼 이야기처럼 들려서 조금 읽다가 말았다. 최근 칼럼을 준비하면서 책을 뒤척이다 무릎을 치게 만드는 좋은 내용이 있어 아래에 소개한다.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골프채 세트를 사면서 그것으로 경기력이 향상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프로 골퍼의 태도나 사고방식, 그리고 믿음 같은 것은 상관하지 않죠. 엉터리 골퍼는 새로운 골프채 세트가 있어도 여전히 엉터리 골퍼로 남을 뿐입니다.” 치과 개원의에게 새로운 장비, 기구, 재료 그리고 세미나는 책의 저자가 예를 든 골프채 세트와 같은 도구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성공한 개원의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인다. 백점짜리 개원의가 되기 위해서는 영어 단어 태도(attitude)가, 99점짜리 인생을 위해서는 생각(thought)이 필수라고 본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니 재산은 부자인데 마음은 놀부인 치의도 보았고, 재산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