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지난 8월 벌어진 의사 파업 또는 의정갈등 사태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의료인이 가장 큰 물의를 빚은 사건인 것 같습니다. 의사가 파업해도 되는가? 라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한국 의료 정책의 방향과 의료인 교육까지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치과계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까요? 익명 2020년 8월 있었던 의정갈등 사태
언제부터인가 치과 개원을 준비하면서 마케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가 되었다. 보통은 홈페이지를 어떻게 할까 정도를 고민하지만, 병원을 크게 하겠다고 하는 분들은 마케팅 팀을 따로 두기도 하고 외주회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원래는 마케팅이란 것이 나쁜 게 아닐텐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 의료계의 광고판은 가장 나쁜 사람들이 가장 착한 척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나쁜 치과가 임플란트의 합리적 가격을 말하고, 임플란트를 반값에 심어주겠다고 하고, 심한 치주염 환자를 하루 만에 사과를 씹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또한 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99%를 수술없이 교정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광고판에 발을 담그지 않고 치과를 운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동네에서 오는 환자만 양심에 따라 정성을 다해 치료하고 그것만으로도 병원이 운영이 된다면 치과의사로서 반은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 네이버 검색 광고만 해도 임플란트, 교정 등 치과의 대표적인 상품(?)들은 이미 시군 단위로 광고가 이루어지고 있다. “평택 임플란트”, “안성 교정”으로 검색하면 이미 많은 병원들이 광고를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남편은 환갑이 넘어서 자기 딸들 보다 어린 여비서와 바람을 피다가 아내에게 이혼 당한다. 엄격한 가톨릭의 본고장 출신이기에 이혼은 그 동안 쌓아온 그의 명성에 커다란 오점을 남긴다. 남편은 알고 보니 꽤 바람둥이였다. 아내는 남들의 불편한 시선과 남편에 대한 배신감으로 고통의 시간을 보낸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전남편을 회상하며 그녀는 말한다. “시간이 많은 것을 덮어주더군요.” 그렇게 그를 용서하며 따뜻하게 감싸준다. 올해 초 개봉한 론 하워드 감독의 Pavarotti 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의 음악, 인간미, 인생과 음악에 관련된 여러 가지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나온다. 비평은 잠시 제쳐 두고, 인간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그는 정말 남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다갔다. 본처에게도 나중에 용서 받았고, 딸들에게도 용서 받았고, 그의 많은 연인들 중의 몇몇도 그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었으니... 무엇보다 그는 사람을 좋아했고, 사람을 잘 믿었다. A 원장은 연고지가 아닌 곳에 개원하여 몇 년이 지나 자리도 어느 정도 잡히고 안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B 씨는 A 원장 치과의 근관치료환자였고, B 씨의 어머니는 임플란트, 딸은 교정환자였다. A 원장은 B 씨를
6년 전 어느 가을날, 아이들에게 추억을 만들어주기 위해 캠핑카를 빌려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숙소도 있었기에 밤에는 아이 둘과 저만 캠핑카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잠깐 나왔을 때, 잠이 덜 깨서 환상을 본 것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형언할 수 없는 밝은 빛을 보았습니다. 제가 본 것이 은하수였는지 확인할 길은 없지만, 무서울 정도로 밝은 빛에 놀라 얼른 다시 들어가서 잠을 청했고, 다행히 쉽게 잠이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부터 별 보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몽골 테를지 국립공원에서 보았던 별들도, 그 때 처음 본 별똥별도 기억에 남지만, 하늘이라는 화면을 꽉 채운 별을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겁이 좀 많은 편이라, 실제로 보면 무서울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우주라는 것을 생각만 해도 조금 두렵습니다. 너무 넓은 곳에 먼지같은 저의 존재가 떠 있는 듯한 느낌 때문입니다. 우연히 찾게 된 인터넷 사이트 중에 빛 공해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곳이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별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갈 수 있는 지역 중에 빛 공해가 가장 적은 곳을 숙소로 삼아 1박 2일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 사이트
한때 그날의 미세먼지 농도를 체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 적도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전일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수를 궁금해 하는게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다소 진정되는 듯 보이던 코로나 상황은 8월 15일을 기점으로 염려했던 2차 피크 양상을 보였고 방역당국은 보다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행하며 진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첫 번째 유행 때보다는 코로나가 훨씬 우리 가까이 다가서온 느낌이다. 급기야 치협도 8월 24일과 9월 2일 두 차례에 걸쳐 직원이 확진판정을 받아 협회회관이 일시 폐쇄되고 방역조치를 하는 긴박한 상황이 있었다. 어쩌면 겪지 않아도 될 고통의 시간이 연장된 배경에는 전문가 의견을 무시한 정치적, 경제적 판단도 일정부분 작용했다고 본다. 1918년 3월에 시작해 1919년 여름까지 스페인 독감 팬데믹 기간 동안에 총 3개의 질병파도가 있었고 1918년 가을의 두 번째 파도가 가장 강하고 치명적이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과 미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의 앤서니 파우치 박사가 한 목소리로 바이러스의 두 번째 파도를 경고했지만 경제회복이 더 급했던 정부는 임시공휴일까지 지정해가며 방역망을 느슨하게 풀어줬
대한치과의사협회 자재·표준위원회에서는 국제표준화기구 치과기술위원회(ISO/TC 106)에서 심의가 끝나 최근 발행된 치과 표준을 소개하는 기획연재를 2014년 2월부터 매달 게재하고 있습니다. 환자 진료와 치과산업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난 8월 20일부터 28일까지 국제표준화기구/치과전문위원회(ISO/TC 106) 국제회의가 온라인으로 개최되었다. ISO/TC 106 국제회의는 치과 산업과 관련된 국제표준 문서를 제정, 개정, 폐지하는 회의로 전 세계 28개국이 투표권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고, 16개국이 참관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규모 국제회의다. 올해는 전례 없던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미국 샌디에이고(San Diego)에서 개최 예정이었던 총회가 온라인을 통한 가상의 공간에서 개최되었다. 필자의 경우 올해로 세 번째 참석하는 총회인데, 이전 두 번의 총회 참석에 곡절이 많았던 기억이 있다. 참석을 위해 한국을 떠나기 직전까지 일정이 무척이나 꼬여서 항공권과 숙박 일정을 연거푸 조정해가며 겨우 참석하였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이번에는 전례 없는 온라인 총회라니! 온갖 세상 걱정을 다 떠안은 모양새로 밤늦게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이
임플란트가 꽤 많은 저희 치과 환자의 파노라마입니다. 지금껏 한번도 결제를 하지 않으신 저의 치과 최고액 장기체납환자(전액 미결제) 입니다. 70년대와 80년대 산업화 시절의 주역. 치과도 없었고, 치과도 잘 안가던 시절이고, 자식들 열심히 키우시고 부모님 봉양하시던 직장인이셨고. 치열하게 자식들 키우시던 시절부터 막내아들 치대 보내고 아들 본과 실습 시작할 때까지, 오직 칫솔질이 치아를 위한 유일한 치료이자 투자이셨겠습니다. 막내아들(92학번) 치대 보내시고, 5년을 기다리시다가 본인의 은퇴(96년도)와 맞물려, 막내 아들 원내생 스케일링 실습부터 본격적인 치과 치료는 시작되었습니다. 치주과 스케일링 실습이후 치주과에서 잇몸치료와 하악 4전치 발치 하셨고, 보철과에서 하악 전치부 6전치 브릿지와 36번 크라운을 하셨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환자삼아 보호자삼아, 진료 보조의 미명하에, 수련의 선생님들의 치료를 모두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아빠는 자식이 다니는 학교 수련의 선생님들께 치료 받으시면서도, 너무도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말끔해진 치주치료와 보철치료로, 아빠는 그 시절 세상을 다시 사시는 듯 행복해 하셨고, 치료해 주시던 선생님들을 지금까지 입이 닳
최근에 발간된 치과의사학회 자료는 치과전담부서가 정부 조직 내에서 거의 명맥만 유지된 채 운영되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왜 치과전담부서는 이런 모진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을까? 필자는 초창기 치과대학에서 ‘의과 기초와 치과 임상’이라는 다소 매끄럽지 못한 수업을 들으면서 치과(齒科)의 정체성(正體性)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이는 전공의 과정과 대학병원 근무를 거쳐 개업한 상황에서도 계속되어 왔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고령화시대 협회 이사로 구강정책에 참여하면서 이러한 고민의 연장선상에서 치과의 정체성에 기반한 영역 확장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 치과계가 풀어야 할 숙원 과제 해결의 출발점과 맞닿아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치료방법 측면의 근원적인 접근: 치과의료산업 체계의 구축 의과(醫科)가 약물치료 위주의 내과(內科)계에 행위치료 위주의 외과(外科)계가 합쳐져 생명과학(life & science)이 되었다면, 치과(齒科)는 치과 재료 및 장비에 기반한 생체역학적 행위치료 위주의 (구강)외과계에 이들 치료를 돕기 위한 (구강)내과계가 합쳐져 예술과학(a
우리 치과의사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보면 하루 종일 좁은 공간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갇혀서 반복되는 일상생활이 너무 답답하다고 서로 한탄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병원마다 크기는 모두 다르긴 하겠지만 어느 치과라도 야구장 만하게 드넓은 곳은 없을 것이고, 야외의 공기를 마시면서가 아닌 실내에서 하루 종일의 생활을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치과의사들이 다르지 않은 현실인 것 같다. 요즘 특별한 드라마적인 극적 주제를 억지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의 일상생활을 주제로 하는 어떤 PD분의 작품이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시리즈로 시청자들의 공감대속에 인기리에 방영되었고 아마도 앞으로도 한 동안은 그 후속작들이 만들어져서 우리들의 눈과 귀를 행복하게 해줄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 그 중에서 ‘슬기로운 감빵생활’이라는 드라마를 볼 때에 신기하게도 드라마속의 주인공과 우리 치과의사가 묘하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탄탄대로의 인기절정의 프로야구선수가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범인을 잡으려 몸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실수로 죽이게 되면서 살인죄로 징역 1년형을 선고 받아 감옥에서 일상을 보내게 되면서 그려지는 이야기인데 그 안에서 같은 방 동기들뿐만 아니라
내 제 1대구치는 모두 어릴 적 아말감으로 치료받았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덕에 보험으로 치료받은 아말감이다. 진안에서 버스타고 나와 어머니 손잡고 전주시내 치과에서 구개측에 마취주사액이 들어가던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난다. 입천장이 얼얼해지던 그때 그 느낌은 내가 환자들에게 구개마취하며 떠올리고 있다. 그 당시 치과치료 보험이 공무원만 가능했다고 한다. 보험으로 아말감 치료 받는 건 흔한 경우가 아니었다. 치과치료가 비싸던 시절이었으니 아말감 보험은 참으로 큰 혜택이었을 것이다. 비싼 치료비 덕에 또래 친척 하나는 내 이름과 생일, 엄마·아빠 이름, 나이 등등을 모조리 외우고 내가 다니지 않았던 치과에 찾아가 내 신분으로 아말감치료를 받기도 했다. 힘들고 가난한 시절 치과의료보험은 그야말로 큰 혜택이었던 것이다. 공무원만 적용되던 보험이 전국민으로 확대되고, 치과의료보험이 이제는 임플란트에 틀니까지 적용된다. 세상 많이 좋아졌다. 레진도 보험이 되기 시작했으니 크라운과 인레이도 머지않아 보험 적용이 될 것이다. 의료와 교육에 불평등은 없어야 한다고 한다. 의료와 교육은 평등이라는 기치아래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주기 위한 복지다. 복지, 정치다. 치과의사로서
코로나 사태로 집에 박혀있게 되자 휴대폰 보는 시간이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된 2월에는 분명 책도 읽고 운동도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9월이 된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면 휴대폰 사용량만 늘었다. 내 휴대폰 사용량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 것은 SNS이다. 애매하게 짧은 시간을 보낼 때 SNS 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이 때 올라오는 여러 게시물들을 보면 친구들이 재밌게 살아가는 모습도 있지만, 갈등의 장이 되어있는 게시물들도 꽤 보인다. 대표적으로 서로 다른 세대 간 갈등이라든지, 아니면 남녀 갈등 등이 있다. 이런 글들을 보면서 댓글창의 사람들은 왜 서로 갈등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갈등의 원인 중 하나와, 이에 대처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내가 SNS상 느낀 갈등 중 가장 흔한 유형은 ‘너가 뭔데?’로 시작하는 갈등이었다. 즉,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시작한 갈등이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뭐라도 할 시도를 해야지, 불만만 표출하다니 배가 불렀다’, ‘우리는 ○○을 경험하는데 그런 것도 겪지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언쟁을 심심찮게 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