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말미에 이르러 드디어 지망과에 정착을 했습니다. 국내에 몇 없는, 진료실을 갖춘 예방치과입니다. 본격적으로 진료를 시작하기에 앞서, 각종 재료부터 진료 장비, 의국 가구에 이르기까지 살림을 갖추느라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2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곳을 거쳐 간 수련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선택에 선택이 이어집니다. 책상, 의자 등 의국 집기들을 결정하는 일부터 시작하여, 진료에 사용할 재료의 종류를 고르고 각 성질을 비교합니다. 로컬에 있는 동기들에게 조언을 구하느라 카카오톡 메시지가 분주히 오갑니다. 핸드믹스 GI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던 중, 누군가 한 마디 건넵니다. “이거 스태프들을 너무 괴롭히는 거 아냐~?” 우스개로 가볍게 건넨 이야기에는, 재료의 선택에 앞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의 분주도 등 여러 측면에서의 여건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는 속뜻이 있었습니다. 제가 미처 고려하지 못하고 있던 또 다른 선택의 기준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의 C(Choice)이다. 무한도전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관련 특집을 방영하여 유명해진 바 있는, 한 철학자의 말입니다. 당시 방송을 보면서는 그저 웃기 바빴는데
지난해 10월 말 주요 언론을 통해 보도된 ‘가장 효과적인 칫솔질은 회전법? 틀렸습니다’, ‘가장 효율적인 칫솔질은 회전법? 안 닦은 것과 비슷’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국민들에게 혼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동안 치과의사들이 대중들에게 널리 권해왔던 칫솔질 방법이 마치 모두 틀린 것처럼 비춰졌기 때문. 해당 보도는 조현재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팀이 대한구강보건학회지 2019년 9월호에 발표한 논문 ‘칫솔질 방법 간 치면세균막 제거 효율 연구’를 자극적인 기사제목으로 다룬 것으로, 이에 대해 조현재 교수가 입장을 정리해 본지에 전해왔다.<편집자주> 안녕하세요.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조현재 교수입니다. 지난해 10월 말 주요 언론을 통해 자극적으로 보도된 제 연구 ‘칫솔질 방법 간 치면세균막 제거 효율 연구’에 대해서 본래의 연구취지와 의의에 대해 글을 써봅니다. 칫솔질 방법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만 회전법을 기본 칫솔질로 권장하고 있다고 들어서 Youtube에서 ‘toothbrushing instruction’을 검색해보니 수평진동(바스법이 아닙니다)이나 scrubbing(원호 동작과 유사)법으로 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것을 봤습니
이제 스물다섯 살이 된 아들과 오랜만에 마주 앉아 밥을 먹는다. 늘 생글거리고 낙관적인 성격인데 다른 때와는 달리 필자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아빠, 강한 사람이 되어야 해? 아니면 부드러운‘사람이 되어야 해?” 언제 철이 들려나 해왔는데 엇! 이제 좀 자랐나 싶어 반가운 마음에 성의껏 대답한다. “강해야 할 땐 강하고, 부드러워야 할 땐 부드러운 사람이 되어야지. 하지만 그게 쉽지 않단다. 그게 참 어려워. 목적은 일관성을 가지고 강한 의지로 지키고, 목표는 부드럽게 하나하나 달성해 나아가라는 말이 있는데…” 하며 어쩌고저쩌고 필자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것들을 권하며 일장 훈시를 하다보니 문득 ‘내 아들이 이제 뭔가 불안하고 방황의 시기가 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시인이자 언론인이었던 김광섭(1905~1977)은 ‘성북동 비둘기’로 1970년대의 황량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슬픈 그림으로 읊었다. 그는 ‘자기가 살던 집에 번지가 없어져도 성북동 비둘기는 성북동 사람들에게 축복의 메시지라도 전하는 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돌지만, 사람을 성자처럼 보고 사람과 평화를 즐기던 비둘기가 이제 산도 잃고 사람도 잃고 사랑과 평화의 사상을 낳지 못하
출발 오전 9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5시부터 일어나서 부산스럽게 준비했다. 이번 여행은 PFA 일본부회 50주년 기념 학술행사와 총회를 축하하기 위해 PFA 한국회를 대표해서 참석하는 자리였고, 나는 통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2박 3일 일정에 나름 간추린 가방을 메고 새벽 공항버스를 탔다. 잠을 설쳤지만 공중보건의사 신분으로 처음 가게 된 외국이고, 7년 동안 유학 생활을 했던 일본이라 감회가 새로웠고, 기대감에 부풀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총회에 참석하실 PFA 한국회 박일해 회장님, 김종원 교수님을 비롯해 회원 선생님들과 사모님들이 계셨다. 봄에 통영에서 열린 PFA 한국회 정기총회에 참석한 적이 있는지라 여러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아주셨고, 부담 없이 인사드릴 수 있었다. 비행기를 타니 피로했지만 일정 확인과 통역 준비를 하느라 잠이 오지 않았다. 첫째 날 비행기 착륙 소리와 함께 실감이 났다. 서울과 달리 도쿄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의 첫 임무는 공항에서 우리가 묵을 도쿄 프린스 호텔까지 안내를 하는 것이었다. 흐린 날씨 때문인지, 모시고 가야 해서인지, 중압감은 배가 되었다. 사전에 준비해둔 지하철 시간표와 지도를 몇 번이나 확인하고 안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DA와 FDI의 세계치과대회(2019년 9월 5~7일)는 1996년 올랜도(Orlando) 총회 이후 23년 만의 공동 개최였다. 개원의 세계총회에 처음 참석한 필자에게는 느끼고 깨달은 것이 많았다. FDI는 넉넉한 체격에 열심히 일한 캐스린 켈(Kathryn Kell)에 이어 신임 게르하르트 씨버거(Gerhard Seeberger) 회장이 취임하고, 새로운 이사 일부를 뽑는 총회였다. 후보 5~7명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실시간 전자투표로 최저득표자를 한 명씩 제외해 가는 Elimination 방식은 배울 점이 많았다. 대한여자치과의사회장을 역임한 이지나 선생이 과감히 도전하여, FDI에 여자치과 부서를 신설하고 개원(Practice)위원회 이사에 당선된 일은 얼마 전 박영국 이사의 당선과 함께 경하할 일이다. 제프리 콜(Jeffrey Cole) ADA 회장은 개막연설에서 미국 치과계가 당면한 현실과 이에 대응할 협회의 정책방향을 시사하고 있었다. 현 시점을 체제가 파괴되는 ‘혼란(Disruption)’시기로 보고 그 징후로, 환자는 진료의 편의성과 부담비용에만 관심을 가질 뿐 의사에 대한 충성심(Loyalty)은 사라지고, 치과의사는
종종 유튜브로 자기개발과 관련된 콘텐츠를 보곤 합니다. 업무에 지치고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슬럼프에 빠져 우울해질 때 그 기분을 탈출하려고 할 때 도움이 약간 되기도 합니다. 안정적인 직업이고 개업의처럼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되는 스트레스를 겪지는 않지만 대신에 연구와 학생지도 그리고 이를 뛰어넘는 다른 업무들이 강한 스트레스를 주는 것 같습니다. 연차가 어느 정도 되신 원장님들도 진료 외 다른 업무들이 더 어렵다고 하십니다(물론 진료도 쉬운 것은 아닙니다). 치과의사가 아닌 일반인들은 안정적인 전문직이 무슨 스트레스가 있냐 하겠지만 제 생각에는 스트레스 없는 직업이란 없고 오히려 없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페이닥터 일 때 보다 개업한 원장이 되면 스트레스가 더 많은 것처럼 저도 전공의 때 보다 교수가 된 지금이 스트레스는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유튜브의 제임스 비디오란 채널에서 나온 한 영상입니다. 비슷한 제목의 영상들이 많은데 오늘 소개해드릴 영상의 제목은 ‘당신의 삶을 즉시 바꿀 수 있게 도와줄 과학적 방법’입니다. 여기서 10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딱 2번째 방법까지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2번째 방법이
2012년 서울대학교 치과병원 구강내과 펠로우와 2014년 국립중앙의료원 치과 펠로우를 마치고 5년간 개원가에서 일반 진료 봉직의로 있었다. 그 후 2019년 7월부터 서울대학교 병원(본원) 치과에서 입원환자들을 대상으로 치과 진료를 하게 되었다. 6개월이 지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시점에서 그동안 느낀 부분에 대해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구강이 불편하면 식사가 어렵고 식사가 어려우면 환자의 영양상태가 불량해져 질병의 치료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 당장 구강으로 식사가 어려운 경우 완전비경구영양(total parenteral nutrition)으로 일시적인 영양공급을 할 수는 있으나 구강 식사를 완전 대체하기 어렵고 감염의 위험도 있다. 따라서 의과병원 내 치과의사는 적극적으로 환자의 구강 불편감을 일시적으로라도 해결해 주어 입원기간 중 질병의 치료를 돕고 퇴원 후 적절한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안내를 해야 한다. 내가 보는 환자분들 중에는 항암 및 장기 이식으로 면역이 떨어져 당장 침습적인 치과치료를 받을 수 없고 이동도 제한되는 분들이 많다. 그러한 분들을 왕진으로 보면 구강캔디다증이나 구강헤르페스 감염으로 약물 조절이 필요한 경우도 있고, 기존 치주염이
오늘은 서울사대부고 30회 동기 친구들과 강화역사기행을 가는 날이다. 10여 년 전 열린의사회 몽골 의료봉사에서 만난 노건 친구의 역사 문화해설로 대한민국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역사의 현장으로 떠나는 것이다. 오후에 비 예보가 있지만 아침에는 날씨가 너무나 좋다. 더구나 남녀 공학이라서 여자 친구들이 전날 저녁 늦게까지 준비한 감 등 과일과 당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정성 들여 요리한 음식을 감탄하며 맛있게 먹었다. 강화대교를 건너 54개의 돈대(현재의 해군초소) 중 하나인 월곳돈대 연미정에 도착하니 한강하구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을 보이는 정자가 있고, 600년 된 두 그루의 느티나무 중 한 나무가 지난 태풍으로 쓰려져 있다. 이곳은 정묘호란 때 여진족과 형제의 맹세를 한 치욕의 역사 현장이다. 해협을 낀 유일한 성인 문수산성을 배경으로 강화의 멋진 가을 풍광을 즐기면서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120여 기의 고인돌이 있는 강화 고인돌마을에 갔다. 이곳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53톤의 상부돌이 영국의 스톤네이즈의 돌보다 크다고 한다. 3000년 전에 500명의 장정이 동원되어 돌을 옮겨 만들었다고 추정한다. 잠시 토굴에 들어가 선조들의
전 세계에서 최초의 치과대학은 1840년에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세워진 볼티모어 치과대학(the Baltimore College of Dental Surgery)이다. 이는 헤이든 박사(Dr. Horace H. Hayden)와 해리스 박사(Dr. Chapin A. Harris)가 메릴랜드대학교에 치과를 설립하고자 요청하였으나 거부되자, 따로 치과대학을 세워 메릴랜드 주의회의 공인을 받은 것이다. 이 볼티모어 치과대학은 메릴랜드대학교 치과대학의 전신이기도 하다. 볼티모어 치과대학과 메릴랜드치과대학(Maryland Dental College, 1873년에 설립), 메릴랜드대학교 의과대학 치과(the Dental Department of the University of Maryland, 1882년에 설립), 그리고 볼티모어의과대학 치과(the Dental Department of the Baltimore Medical College, 1895년에 설립)의 4개 기관이 1923년에 합병하여 메릴랜드대학교 치과대학(University of Maryland School of Dentistry)으로 되었다. 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의 전신인 경성치과의학교가 1922년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다시 새로운 해를 맞이했습니다. 새로 맞이하는 해가 익숙할 만한데 좀처럼 해가 바뀌는 풍경이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해를 맞아 사람들은 또다시 인생에서의 덧셈과 뺄셈을 결정합니다. 누구는 새로운 것을 더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새로운 것을 더하지 말고 빼라고 합니다. 자신에게 무엇을 더하고 뺄지는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해야 할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실천하지 못할 뿐이죠. 하지만 때로는 내 인생의 덧셈과 뺄셈을 생각할 때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 책읽기는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무엇을 더해야 할 지 혹은 빼야 할 지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혜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자신에게 더하고 또는 뺄지 결정하기 어렵다면 새해에는 책
치과 일, 가정 일, 개인적인 일로 염려가 많았던 어느 날이었다.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다니는 교회가 치과와 십 분 거리라 다이어트 삼아 점심은 교회 근처 편의점에서 우유와 치즈로 간단히 먹고 교회에 가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실로 오랜만의 기도 자리, 분위기는 잡혔고, 기도를 해보는데… ‘나’이어야 할 기도의 타깃이 엉뚱하게도 외부와 타인을 향하고 있었다. ‘이 일 좀 어떻게 해 주세요.’, ‘저 사람 좀 바꿔주세요.’ 등등 외부를 향한 기도가 쏟아져 나왔다. 나올 것 다 나오고 나면 ‘나’를 향한 기도도 나오겠지… 문득, 치과 일을 위해 기도하던 중에 치료가 상해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가 나왔다. 개원 생활 십수 년, 치과에서 환자들 치료하는 게 버겁게 느껴졌나? 졸업할 때 받은 치과의사 면허증의 잉크가 이제 슬슬 말라가는 것인가? 내가 하고 있는 ‘치료’라는 일이 얼마나 리스키한 일인지 깨달음이 일어나고 있었다. 강도는 돈을 빼앗기 위해서 칼을 든다.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상해를 입힐 마음도 강도는 가지고 있다. 의사는 치료를 하기 위해서 칼을 든다. 그러나 간혹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본의 아니게 치료가 상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