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장수 시대 및 기후변화 등 여러 가지 변화에 따라 병원진료실이 아닌 군부대, 긴급 재난지역, 낙도오지, 부정기적인 무료진료소, 공중보건을 위한 구제진료소, 환자의 주택, 장기 치료시설, 요양병원, 교정시설, 학교, 경로시설, 마을회관 및 기업체 등과 같은 다양한 외부환경에서 진료가 이루어져야 함에 따라 휴대용 치과장비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다양한 환경(한 사람 또는 그 이상이 방에서 방으로 또는 세계의 원거리 이동 등)에서 효율적으로 설치하고 사용한 다음 신속하고 쉽게 접고 압축할 수 있도록 설계되고 제작되어야 하며 안전성 및 효율성을 위한 표준이 필요하다. ISO/TC 106/SC 6(치과 장비 소위원회)/WG 2(치과 환자 의자 및 치과 유닛트 작업반)에서는 현재 휴대용 치과 유닛트 및 환자 의자에 대한 국제표준을 제정하고 있으며 CD(Committee Draft, 위원회 표준)까지 진행되고 있다(ISO/CD 23402-1 Portable dental equipment for use in non-clinical settings - Part 1: General requirements). 이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식약처 주관 하에 ‘휴대용
대한의사협회(의협)에서 이번에 발간되는 의학용어집 6판 내의 치의학용어를 평가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의학한림원)의 의학용어개발 및 표준화위원회(의학용어위원회) 주최로 치의학용어 평가를 위한 원탁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의협의 의학용어위원회에서 치의학용어를 담당하였던 양익 교수(한림의대)와 필자가 주제 발표하였고, 신제원 교수(경희치대)와 이승표 교수(서울치대)가 지정 토론하였습니다. 이 같은 토론회가 열린 이유는 의학한림원에서 매년 4차례의 의학용어 관련 원탁토론회를 하는데, 의사 자신들이 치의학용어를 잘 모를 뿐 만 아니라 용어집을 만드는 과정에서 치과계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다고 생각하여 의학용어집 6판의 출간에 앞서 어려움이 많았던 치의학용어를 평가해보고 싶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의학용어집 6판을 만드는 동안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자문을 구했으나, 필자가 의학한림원 회원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하기 보다는 대한치의학회에 공식적으로 협조 요청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번 원탁토론회를 위해 주제발표자 양익교수가 제출한 900여 개의 치의학용어 자료를 검토해 본 결과, dentition 등과 같이 완전히 잘못된 번역
우선순위라는 말은 누구라도 쉽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최고 경영자가 하루에 무조건 세 가지에만 집중하라는 상담을 듣고 비싼 수업료를 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왜냐하면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다르며, 잘하는 일은 그것들과 또한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논어 옹야편에는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니라.”라는 말이 있지만, 현대사회에서 정말 자기 일을 즐기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저는 항상 궁금했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도 즐기면서 하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지금도 통하는 말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재능보다 노력과 열정이 필요하다는 당연한 말이지만, 잘 하는 일, 좋아하는 일, 즐기는 일이 모두 같기는 쉽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잘 하는 일이고, 또 하고 싶은 일이라면 정말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분입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인생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습니다. 복잡하고 분주한 시대에 사는 우리는 실제로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조차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을 몇
며칠 전 보았던 TV 프로그램에서 실명 장애 개그맨의 해외여행에 함께 한 딸의 행동이 잔잔한 미소와 함께 따스한 마음으로 와 닿았습니다. 앞을 못 보는 아빠를 위해 비행기 기내식의 위치를 일일이 알려주고 여행 중에는 바다와 하늘의 색까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모습에서 짠하고 울컥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아빠의 소망은 한 번도 못 보았던 딸의 얼굴을 보고 싶다는 것과 딸이 결혼할 때 신부 아빠로서 꼭 함께 손잡고 신부 입장을 하도록 한 시간만이라도 눈이 보였으면 한다는 이야기에서는 나도 모르게 주책맞은 눈물이 흐르고 말았습니다. 이 개그맨 장애인이 오래 전 망막 색소 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어가고 있을 때 한 남성으로부터 안구 기증 제안을 받았는데 개그맨 장애인은 기증 받기를 거부하여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유는 기증자가 근육병을 앓고 있는 남성이어서 “나는 하나를 잃고 나머지 아홉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 그 분은 오직 남아 있는 하나마저 주려고 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라는 것이 거부 이유였습니다. ‘얼마나 기증 받고 싶은 망막이었고 얼마나 다시 찾고 싶은 시력이었는데 기증 받기를 거부하는 마음이 가능하였을까’하는
치과의사 인생 반 백 년에 해외 학술모임에 꽤 나갔지만, 모두 교정학 일변도요, 일반 개원의의 국제대회는 경제적·시간적인 낭비라고 생각해왔다. 김철수 협회장과 후배 김명수 전 의장의 권유로 FDI 샌프란시스코 총회에 게스트로 다녀와서, 그 생각이 짧았음을 깨달은 얘기는 뒤로 미룬다. 다만 20년 만에 미국치과의사협회(ADA)와 공동 개최한 이번 총회가 소문만큼 알차고 풍성한 느낌이었다는 점만 밝혀둔다. 일정이 끝난 뒤, 워싱턴에 계신 형님(서울의대 53학번, 정형외과 은퇴) 내외분을 뵈었다. 중국집에서 식사 도중에 치과진료 얘기가 나왔는데, 형은 방문 첫날 보철(임플란트 4본)을 덜컥(?) 약정하고 왔다고 비난조요, 형수는 전문의의 권유를 거절할 수 있느냐며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다. 주차장 모퉁이 벽돌집 2층에 붙어있던, 미국에서는 낯선 ‘UD 치과’ 간판이 기억난다. “결정은 신중해야지.”라는 대답으로 얼버무렸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속담이 떠올랐다. 이제 헌재 판결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사무장·네트워크 치과 문제는 협회와 회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시간적·경제적 손실을 입혔던가? 성공의 뒤안길에는 늘 그늘이 있고, 햇살이 강렬할수
2020년이 다가오고 있다. 먼 미래의 상징이었던 그 해를 현실로 맞이하는 순간을 앞두고 있는 것이다. 2020년에 대한 상상과 예측은 예전부터 각양각색이었다. 어떤 이는 자동차가 날아다닐 것이라고도 했고, 어떤 이는 달나라에 사람이 살 수 있는 도시가 건설될 것이라고도 했다. 2020년을 너무 먼 미래로 여긴 탓인지 상상했던 것들이 이루어지지 못한 부분도 있지만, 우리가 겪고 있는 이 세상은 알게 모르게 끊임없는 발전을 이룩하였다. 과거에는 눈에 보이는 제조·건축 기술 등의 성장에 역점을 두었지만,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의해 형성된 가상 네트워크의 세계는 보다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과 직접적으로 접할 수 있게 되면서 기존에 생각할 수 없던 다양한 소통 방식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단지 기술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와 문화가 함께 변화하는 본질적인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느낌을 받게 되니 문득 20년 전의 이맘때가 떠오른다. 세계의 종말이 온다던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고, Y2K로 불리던 밀레니엄 버그로 인해 큰 혼란이 올 것이라는 예측도 큰 문제없이 지나갔었다. 이외에
고령 사회의 도래와 초고령 사회의 필연적인 현실화에 대한 우려는 우리 치의학 분야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노인치의학 분야에 대한 관심의 부각이 그것이다. 노인치의학은 당연히 노인을 대상으로 하고 노화 과정에 대한 연구, 노화에 따른 구강악안면의 변화, 노인에서의 치과질환의 진단 및 치료와 함께 관련 제도 및 규정에 대한 연구를 포괄한다. 하지만 우리보다 앞서 노인치의학을 발전시킨 나라의 예를 보면 “치과진료실에 내원한 당뇨나 고혈압을 가진 70세 환자를 진료하는 영역”이 노인치의학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다. 노인은 독립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노인, 쇠약한(frail) 노인 및 기능적으로 의존적인(dependent) 노인으로 구분될 수 있으며 노인치의학 교육은 전체 노인의 약 20~30%에 해당하는 쇠약하고 기능적으로 의존적인 노인을 대상으로 구강악안면 영역의 기능재활에 그 목표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노인치의학이 치과진료실에 독립적으로 방문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인치의학은 치과진료실에 조호자(care giver)와 함께 방문하는 뇌졸중 혹은 알츠하이머 환자에 대한 진료, 치과진료실에 방문할 수 없는 환자를 위한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고 했던가?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도 했던가? 살아가면서 흔히 들었던 문구였던 것 같다. 그러고 나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선택으로 왜 이렇게 살아가는가?’라고 물어보게 된다. 나 역시 나이 40을 눈앞에 둔 지금 인생을 돌아보면, 수많은 선택을 해왔고, 그때마다 부모님, 선배님들을 포함해 친한 지인들과 같이 고민 상담도 해왔었다. 비교적 모범생으로 큰 말썽 없이 평범하게 자라왔으며, 청소년 드라마 ‘나’를 보며 재미있는 학교생활이 이루어질 것 같은 남녀공학을 선택 지원했다. 고1 때 식중독이라고 생각하고 방치했다가 응급실로 실려가 맹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에 수술을 했었는데, 그때 만난 외과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진료로 천사 같은 의사가 되어볼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으나, 결국 여느 하이틴 수기의 주인공처럼 고등학교 생물 선생님을 3년 내내 무척이나 좋아해서, 하얀 가운을 입고 일하는 과학자, 연구원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대학 진로를 선택했다. 그렇게 꿈을 품고 대학생활을 하던 중,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관련 사건으로 온 국민이 들썩일 때 연구원의 길을 만류하는 주변인들이 생겨났었고, 그래도 주관과 목표를 가지고 연구
2021년 10월 2일은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 100주년 기념일이다. 100주년 기념일까지 만 2년이 채 남지 않았다.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꼭 기념일에 맞추어 행해지는 것이 아닌 만큼 100주년이 되는 해의 초반에 이루어지는 행사들은 준비기간이 1년 남짓 밖에 안 남았다고 할 수 있다. 광복 직후인 1945년 12월 9일 대한치과의사협회 전신인 조선치과의사회가 창립하였다. 이후 30여 년이 지난 1981년 4월 25일 경주 보문단지 내 관광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0차 대한치과의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에서 창립기념일을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총회일로 제정한 바 있다. 구체적인 제정 경과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서울지부(최재경 대의원)와 군진지부가 공동으로 제안한 치협 창립기념일 제정안 요지는, ‘개인, 단체, 국가 등 모든 곳에 생일이 있으나, 치협은 아직 생일이 없기 때문에 이를 제정하여 매년 기념행사를 가져야 함.’이었다. 박명규 군진대의원의 제안 설명에 따르면, 1921년 10월 2일 조선치과의사회 창립총회일을 기념일로 정하든가, 6월 9일을 기념일로 정할 수 있다는 예시를 하고, 대의원총회에서 날짜까지 확정하기는 어려우니, 제정하는 것
최근 학회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근관치료 수가의 정상화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근관치료와 치주치료 및 예방치료는 자연치아를 살리는 가장 중요한 요체임에도 보험의 파이 논리에 묶여 저평가되어 왔고 그로 인해 치과의사들이 기피하는 진료항목이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결과적으로 일반진료를 하는 치과의사들에게 ‘성심진료를 택하자니 병원경영이 안 되고 기피를 하자니 의사로서는 껄끄러운’ 의료윤리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았다는 데에 있다. 의료인은 남을 돕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지만 그에 대한 대가로 보수를 받는다. 의료인들이 의료행위를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은 처음부터 봉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학교 윤리교육 시간에 의사의 보수와 관련되어 학생들에게 늘 하는 네 가지 질문이 있다. 1. 낮은 보수와 양질의 치료 2. 낮은 보수와 저질의 치료 3. 높은 보수와 양질의 치료 4. 높은 보수와 저질의 치료 중 윤리적 순서를 매겨보라는 것이 그것이다. 1번은 프로정신의 면에서 보면 단연 최고일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허준이나 장기려 박사, 이태준 신부, 슈바이처 등이 이 범주에 속한다. 지금 우리 주변에도 많은 분들이
우리나라의 GDP가 세계 12위이고, 일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에 육박하면서 세계 33위라고 한다. 나와 나의 연배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상태를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에 얼핏 들었던 기억으로는 국민소득이 수 백 달러에 머물러 있었다. 거리에는 구걸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아침 저녁에는 그릇을 들고 밥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문 앞에서 구걸하는 일은 매일 보는 일이었다. 1000불 소득, 100만 불 수출을 캐치프레이즈로 걸고, 수출 드라이브를 하던 시대. 그리고, 경제 대국으로 성장된 지금의 시대까지, 그 과정을 모두 보면, 또한 누리며 살아 올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복이라고 생각을 한다. 엘론 머스크, 그는 테슬라 전기자동차의 창업자로서, 현재 space-x를 진행하는 주역이다.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면서 두 가지의 인상적인 그의 말이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바라는 꿈을 내가 살아 있을 때 보지 않더라도 좋습니다. 이 꿈을 다음 세대가 계속해서 가지고 나가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죽기 전에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터뷰의 많은 내용 가운데 이 두 마디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