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4일 문혁수 전 서울대학교 교수께서 향년 66세로 타계하셨다. ‘만약’이라는 가정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한없이 의미 없는 생각일 뿐이란 것을 알게 되지만, 마음 한켠에는 미련으로 남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치과계와 구강보건학계에는 아직도 미련으로 남아있는 ‘만약’이라는 아쉬움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만약 문혁수 교수가 왕성하게 계속 활동했더라면’이라는 가정은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기억하지 못하고 현실의 어려움을 맞닥뜨리는 후배들도 아직까지 되뇌이는 아련한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문 교수는 1987년부터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교직을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치과계에 길이 남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렇기에 2001년 투병이 시작된 이후, 많은 후학들은 문 교수의 부재를 안타까워하면서 그의 노력과 역량에 미치지 못함을 한스러워하고 있다. 문 교수는 대학교수로서 단순히 교육이나 연구 업적 뿐만 아니라, 스스로 검증한 과학적인 근거가 실제로 치과계에 활용되도록 부단히 노력한 바 있다. 이에 국민의 구강보건과 21세기 대한민국의 치과의료와 구강보건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여러 업적 중에 주요한 몇 가지를 소개하면서 그의 업적을 기리고자
우여곡절 끝에 소공동 서울치대 옛터에 표지석이 세워졌다. 연건동으로 옮긴지 48년만이다. 역사의 뿌리를 찾고 그 흔적을 길이 보존하고 대대손손 후손들에게 알리고 기억하게 하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다. 바로 우리들의 일이다. 소공동 치대는 역사적 가치와 구강보건 향상에 기여한 가치 및 치의학의 학술적 가치가 함께했던 자리이다. 그동안 동창회 총회 수임 사항으로 지지부진하게 끌어오다 이번 한중석 서울대치의학대학원장의 적극적 관여로 결실을 보게 되어 표지석이 세워지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1922년 설립된 경성치과의학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강당과 ‘조선총독부의원’을 빌려 쓰다가 반환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교장 나기라다스미(柳樂達見)는 조선총독부에 간청하여 아동공원으로 인가낸 저경궁터 662평을 학교부지로 무상대부 형식으로 사용토록 허가를 받았다. 1927년 6월 6일 저경궁터에 교사 및 부속병원을 착공하고 11월 17일 상량식을 가졌다. 그 후 경성치과의학교는 1929년 4년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로 인가를 받아 승격하였다. 해방후 국립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으로 발전하였다. 1969년 12월 종로구 연건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많은 치과의사 배출의 요람
SRT를 타고 내려가는 오늘의 나의 목적지는 광주송정역이다. 주변 지인들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에 장례식장에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문득 나의 부모님의 연세가 생각되었다. 팔순을 바라보시는 부모님! 급한 마음이 생겼고, 언제 내 곁을 떠나실 지 모르는 부모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그래서 한가지 다짐한 건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급적 한 달에 한번씩은 얼굴 뵈러 가자는 것이었다. 가끔 오프를 내어 아침에 가서 얼굴 뵈면서 점심을 같이 먹고 저녁에 올라오는 하루 일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많이 익숙해졌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배우기 시작한 게 카메라이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현재 가장 젊으신 부모님의 얼굴을 담아놔야지’ 하는 생각에. 두 분이 사시는 동네는 장성. KTX가 장성역에 정차할 때는 참 좋았는데. 아쉽긴 하지만 요즘은 SRT 수서역에서 출발하여 광주송정역으로 간다. 택시를 타고 점심 먹을 장소로 가서 함께 즐겁게 식사한다. 그리고 주변 커피숍에서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캬라멜 마키아토를 시켜 드린다. 그러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세월과 삶이 담긴 부모님의 얼굴. 54년을 함께 살아오신 세월로 인해 서로를 향해 한없는 신
동아일보에 멋진 美食칼럼을 쓰고 계신 석창인 선생님의 추어탕에 관한 글에서 아버님이 낚시를 좋아하셨다는 얘길 읽다보니 새록새록 옛 생각이 나고 말았다. 초등학교 내내 나는 아버지를 따라 한 달에 두 번 씩은 일요일 새벽 4시경 집 근처 낚시점 앞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전국 저수지를 돌며 낚시를 다녔다. 버스에 같이 탄 낚시꾼 아저씨들이 몇 학년이냐는 등등을 물어보셔도 눈만 내리깔고 제대로 대답도 못하는 낯가리고 숫기 없는 나 같은 딸을 아버지가 왜 몇 년간이나 낚시터에 데리고 다니셨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사실 의문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치열한 일상에서 벗어나 한가하게 세월이나 낚으려’ 엄마를 번번이 일요과부로 만들어 놓고 가시는 낚시였건만,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벌어지곤 하는 숨 막히는 계측 끝에 1~2cm차이로 대어 상을 놓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다음 주엔 최신형 일제 릴낚시 대를 새로 사서 再起(?)를 노리시는 아버지가 엄마에겐 불가사의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이율배반이요 자가당착이라고 쏘아붙이는 엄마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외할머니는 “벗어나고 싶다는 것까지야 맞는 얘기지. 그러려고 해도 안 되는 거 아니냐! 언제나 기를 쓰고 이기려 드는 본성을
클뤼타이메스트라가 딸을 희생한 남편에게 복수하며 악령의 모습을 보였다면, 이번 주에 소개할 비극 여주인공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의 사랑을 되찾으려다 남편을 살해하고 그에 대한 책임으로 자결하는 고귀한 여인입니다. 그런데 그녀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네요. 데이아네이라(Deianeira)는 “사내를 죽이는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 사내가 남편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그녀의 남편은 바로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 영웅 헤라클레스입니다. 제우스의 아들로 인간사회를 위협하는 괴물들을 퇴치하기에 문명의 수호자이며 인류의 은인이라 불립니다. 그리스 비극 이전의 데이아네이라 신화는 헤시오도스의 서사시 <여걸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마음이 눈멀어 옷에 독을 발라서 남편에게 보내자 남편이 그 옷을 입고 죽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다른 여인을 사랑하자 데이아네이라가 질투에 사로잡혀 고의로 남편을 독살한 것입니다. 소포클레스의 <트라키스의 여인들>에서 데이아네이라는 다른 인물로 형상화되었습니다. 이 비극은 중년 부인 데이아네이라가 불행한 결혼생활을 한탄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헤라클레스는 문명의 수호자며 인류의 은인이지만 가정에는 너무나도
내가 은퇴 전 잠시 근무했던 S 의료원 가까운 곳에 “망우휴식공원(忘憂休息公園)”이 있다. 처음에‘휴식’이란 단어가 좀 의아스럽게 생각이 들었다. 공원이면 으례히 산책하고 휴식하는 곳인데 굳이‘휴식’이란 단어를 왜 넣었을까 궁금하였다. 알고 보니 우리 주위에 흔히 있는 일반 공원이 아니라 사자(死者)들의 영원한 휴식을 위해 만든 공간, 즉 공동묘지인 것이다. 행정당국이‘공동묘지’란 혐오단어(嫌惡單語)를 미화하여 붙여 넣은 것이다. 아마 유일하게 서울시내에 남아있는 공동묘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약 50년 전에는 성북구에 미아리와 용산구에 이태원에도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벌써 오래 전에 그곳은 모두 사라져 지금은 대단위 주택단지로 변해있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그곳이 공동묘지 자리였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기록에‘망우리공동묘지’는 1933년에 서울시가 당시에는 도심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야산에 설치한 것이였는데 80여년이 지난 오늘에는 도시 한 가운데(중랑구 망우동 산 51-1)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망우리 지명(地名) 유래도 찾아봤더니 조선 태조 이성계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았다. 1394년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지를 정하고 난 후, 무학대
치협이 지난 21일 회관 대강당에서 ‘2017 KDA 오픈 하우스’를 개최하고, 회원들을 협회 회관으로 초대해 소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졌다. KDA 오픈 하우스는 회원과의 공감·소통을 통해 회무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회원들의 의견을 회무에 적극 반영해 내실 있는 사업 수행을 하겠다는 취지로 기획된 행사다. 회관 건립 이후 처음으로 열린 공식 행사로서 치협 회관을 찾은 회원들이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면서 회관 투어를 하고,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한편 임원들과의 소통 기회도 갖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열의를 갖고 이날 행사에 응답해준 100여 명의 회원 한 명 한 명이 치협의 주인공이었다. 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없었다면 아무리 성의를 다해 행사를 준비했어도 성공적인 개최라는 열매를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2017 KDA 오픈 하우스’는 치협 회관 건립 이후 처음으로 기획된 행사였던 만큼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치협을 회원들에게 공개해 치협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소통함으로써 회원이 치협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점을 각인시켰다. 또한 행사 일정 중에 인문학 강의를 배치해 치과의사의 소명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치과계의 가장 큰 난제는 과연 무엇일까? ‘지금 원장님 치과에서 어떤 점이 가장 문제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쩌면 대부분 ‘직원’ 일 것이다. 지난 2011년 이후 우리나라의 청년실업률은 7.6%에서 2016년 9.8%(+2.2%p)로 빠르게 상승했다. 특히 25~29세 청년실업률이 같은 기간 6.5%에서 9.2%(+2.7%p)로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전체 실업자 수 대비 25~29세 실업자 수 비중은 우리나라가 23.3%로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다른 나라, 다른 연령대 보다 취업에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치과에서는 이렇게 직원을 구하기 힘든 것일까? 수많은 지원자들의 이력서를 놓고 서류심사를 하고, 선별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면접심사를 거쳐 인재를 선발하는 것이 신규직원 채용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력서조차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는 원장님들이 대부분인 것을 보면 치과계의 인력시장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당히 기형적인 구조이다. 정해진 야간진료 외에 불규칙한 야근이 드물고 국가공휴일에는 대부분의 치과가 휴진한다. 냉난방은 기본이며 훌륭한 인테리어
치의신보에 아래와 같은 기사가 실렸습니다. 치의학역사 도록으로 ‘한눈에’ 서울치대 O회 기금 ‘… 역사 박물전’ 발행이란 제목으로 한국 근·현대 치의학의 발전을 사진과 함께 한눈에 볼 수 있는 도록이 만들어져 한국 치의학사의 발전을 한단계 높여 주고 있다. ‘한국 근·현대 치의학의 역사박물전’으로 명명된 이 책은 치의학박물관 도록 편찬위원회에서 편찬을 맡아 도서출판 몸과 마음에서 발간했다. 특히 이 책은 서울치대 O회 졸업동문들의 기금으로 만들어지고 서울치대 박물관이 개관한지 1주년이 지난 시점에서 발간돼 그 의미를 더하고 있으며 치대생과 치과의사들의 역사의식을 고취 시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중략) 이 책의 1부에서는 일제하 치의학의 근대성, 해방공간과 한국의 치의학, 미국을 통한 치의학 수용, 치의학 지식의 제도화 및 전문화 과정 등을 다뤘으며 2부에서는 한국 근·현대 치의학 박물전이 컬러로 게재돼 있다. 부록으로 치의학 연표가 실려있다. 2003. 1. 19일 치의학박물관 도록 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도록(p.109)은 교수사서함을 통해 전 교수에게 우선 배포 되었는데 저는 사진화보집으로 편집된 책장을 넘기다가 1969. 12
10월 2일 ‘프라하의 연인’과 별이 박힌 밤을 보다 민족의 명절 추석과 함께 전 국민이 처음으로 맛본 최장 열흘의 황금 같은 연휴를 맞아 우리 가족 5명은 9박10일의 동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해 공항에 5시간 전에 도착하니 마침 인천공항에서 국악 공연을 열어서 진도아리랑이나 경기민요 등을 듣고 프랑크푸르트까지 10시간 40분 비행을 했다. 좁은 자리에서 아내는 잘 자는데 나는 영화 보는 것이 편해서 4편의 영화를 보고 나니 도착했다. 곧바로 3시간을 차로 이동해 잘레에 도착해 쉬고 난 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나와 딸과 동네를 보니 시골인데도 너무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진 선진국 독일의 아침 풍경이 인상 깊었다. 아침 식사 후 3시간 정도 움직여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유명해진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있는 보헤미안 지방은 인도 북서부에서 300년 전에 옮겨와 사는 집시가 산다. 남자들은 일을 안 하고 학교를 보내지 않고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고 한다. 집시들은 손재주가 좋고 말을 잘 탔지만 유럽에서는 이들이 죄의식이 없이 소매치기를 많이 한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프라하에 도착해 구시가지로 먼저 갔다. 그곳에서
1968년 작 로미오와 줄리엣을 TV로 보았다.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는 올리비아 핫세는 다시 봐도 역시 천사 같았다. 회갈색의 그 커다랗고 동그란 눈이 올려다 볼 때면 그만 이 쪽은 무슨 일이든 부탁 받은 대로 다 해 주고만 싶어질 것 같았다. 이 영화 이후로 이렇다 할 성공작이 없는 덕분에 그만 줄리엣의 화신이 되어 버려서, 훗날 모든 줄리엣 역할의 배우는 올리비아와 얼마나 비슷한가를 겨루어야 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만. 한 송이 장미가 피고 지듯이/젊음도 미모도 곧 시들고/한 때의 사랑이 왔다가는 사라지지/죽음이 곧 우릴 잠재울 테고/결국 우리 삶을 지배하는 건 큐피드라네… 캐플렛 가의 연회에서 미성의 청년이 ‘젊음이란 무엇인가?’란 노래를 부르는 동안 가면을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수를 둘러싼 손님들 사이를 돌며 서로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카메라가 어지러울 정도로 같이 돈다. 장미도 젊음도 사랑도 사뭇 속절없이 스러져 간다는 느낌을 실감할 만큼 5분이 넘도록 돌고 또 도는 이 장면은 설령 무덤 속의 셰익스피어가 봤다 해도 틀림없이 아낌없이 박수를 쳐 주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를 사랑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은 원작에 충실한 대사와 청춘의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