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수련의 때 보던 두꺼운 교정학책을 펴들고 목차를 살폈습니다. 그 중에 제 눈이 제일 먼저 간 곳은 ‘성장과 발육’ 파트 중에서도 “사회성과 행동발달”이었습니다. 수련받을 때 “성장과 발육”을 1년간 세미나로 공부했지만, 해부학적인 성장과 발육에만 관심을 가졌지, 심리학적인 발달은 무심하게 지나쳤던 듯 합니다. 교정치료라는 것이 “해부학적이고 물리적인 치아이동”이라고 생각을 했지, 심리학자도, 정신과의사도 아닌 제가 교정치료를 하며, 환자의 마음까지 살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가씨였던 치과의사가 엄마가 되고, 우리 아이가 아가에서 사춘기 소녀가 되고 보니, 이제는 단지 12살 환자의 치아를 이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 또는 “사춘기 청소년”의 치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원 약속도 잘 안 지키고, 평소에도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은 여중생 아이를 치료하고 있는데, 치료 중에 아이가 아팠나봅니다. 그 순간 아이의 입에서 나온 욕설! 그 순간 저도, 보조를 하던 치과위생사의 손도 멈췄습니다. 이것을 아는 척 하고 혼내줘야 하나, 모른 척 해야 하나… 정말 짧은 순간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은 넘어가기로 하고, 마치
어릴 적 이따금씩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엄마 선배의 아들들 얘길 해 주시곤 했다. 엄친아 두 대학생이 여름방학인데도 책상 앞에만 있자 엄마가 토마토를 썰어놓고 대청으로 불러냈다. 둘이 마주앉아 토마토를 먹는 걸 보며 흐뭇해진 엄마가 돌아앉아 빨래를 개기 시작한지 10여분 쯤 지났을까? 등 뒤에서 두런두런 하는 소리에 돌아보니 토마토 즙만 남은 걸 서로 마시겠다고 아들 둘이 접시를 쥐고 옥신각신하는 소리였더란다. “공부만 했지 세 살짜리나 마찬가지라니까.”라는 한탄과는 안 어울리게 그 분의 얼굴에 가득하던 뿌듯함이 너무나 부러웠다는 것이 매번 엄마 얘기의 결론이었다. (늠름한) 자식은 壯士의 수중의 화살이니, 전통에 화살이 가득한 복된 장사는 성문에서 원수와 말할 때에도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는 성경말씀이 이어졌고 이내 우리 자매는 (제대로 로딩이 된 화살이라도 된 기분으로) 슬그머니 TV앞을 떠나 책상을 향하곤 했었다. 이제 와서 엄마의 훈육법을 왈가왈부 할 마음도 없거니와 토마토마냥 시큼 쌉싸름한 느낌만 남은 줄 알았는데, 오늘 저녁엔 랜덤 타임슬립 드라마처럼 기억 전체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화살이 가득찬 전통이 어디선가 날아와 내 앞에 툭 하고 떨어지듯이
지난 번에 엘레아학파의 파르메니데스는 모든 존재하는 것이 하나라고 함으로써 생성, 소멸, 운동, 변화하는 세계를 부정했다고 했습니다. 그의 이런 주장은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숙제를 남깁니다. 어떻게 하면 파르메니데스가 그어 놓은 ‘있는 것은 생성, 소멸, 운동, 변화하지 않는다’란 선을 넘지 않으면서 우리 눈앞에서 변화하고 있는 세계를 설명할 것인가. 이 숙제를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한 철학자들을 우리는 ‘다원론자’라고 부릅니다. 존재하는 것이 생성, 소멸하지 않는다는 것은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고 놓음으로써 운동하는 세계를 구했다는 것이죠.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데모크리토스가 그들을 대변합니다.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서 하나의 원리를 상정하는 것은 이론의 효율성이나 정합성의 측면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선택임은 분명합니다. 우리가 족보를 뒤져 최초의 조상으로 거슬러 올라가듯이, 만물이 발생한 최초의 지점을 찾아 그것을 기원이자 원리로 삼았던 초기 그리스 자연철학의 생각은 그만큼 또 자연스럽기도 합니다. 게다가 이렇게 시초가 되는 것으로 환원시키는 환원주의적 설명방식이 갖는 매력도 큽니다. 사실 어떤 학문이든 잡다한 세상의 다양함을 원리적
필자가 훈련소에 있었을 때이다. 때는 바야흐로 마지막 4주차였다. 종교 행사로 기독교를 갔는데 마침 옆자리에 딱 봐도 금방 들어온 신입 훈련병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았다. 바싹 깎은 머리에,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슬픈 얼굴. 그에 반해 우리들은 곧 나간다는 환호에 차 있었다. 마침 목사님도 바로 앞에 앉은 우리와 옆 연대 사이의 큰 차이를 봤는지 말을 거셨다. “여기 계신 공보의 선생님들, 곧 나가시죠? 바로 옆에는 새로 들어오신 훈련병들이시군요. 바로 들어오신 분들과 곧 나가는 분들이 한자리에 앉으셨군요.” 목사님의 말씀에 다른 연대들이 수군거리더니 우렁차게 “GOP! GOP!”를 외쳤다. 훈련소에서 곧 나가는 연대가 있으면 이를 시기하는 다른 연대들이 ‘GOP에 배정이나 받으라’고 놀리는 신호였다. 하지만 목사님이 쐐기를 박는 발언을 하셨다. “GOP요? 공보의 선생님들도 GOP를 가시나요? 그렇죠? 네, 공보의 선생님들은 GOP를 가지 않습니다.” 이 말에 다른 연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박탈감을 느끼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현재 훈련소를 나온 지 5개월 된 치과 공보의인 필자는 목사님의 말과 달리 GOP에 근무하는 공보의다. 필자의 보건
정부는 지난 18일 코엑스에서 열린 제10회 치매극복의 날 기념식에서 ‘치매국가책임제 대국민 보고대회’를 갖고, 치매국가책임제의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정부가 이날 발표한 치매국가책임제의 추진계획은 ▲전국 252개 치매안심센터 맞춤형 지원 ▲장기요양서비스 등급체계 개선 서비스 확대 ▲치매안심요양병원 설치 및 치매통합수가 신설 ▲치매 의료비 및 요양비 부담 완화 ▲치매 예방 및 치매 친화적 환경 조성 ▲치매국가연구개발 10개년 계획 수립 ▲치매정책과 등 행정체계 정비 등 7가지로 요약된다. 특히 대한민국의 보건복지 정책을 이끄는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치매국가책임제를 실현하면서 치과 진료도 안심하고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목이 포함된 내용을 공식 발언 함으로써 치매에 있어서 치과진료의 중요성을 환기시켜 치과계로선 큰 의미를 갖는 행사자리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박 장관은 보고대회에서 “치매 환자가 치매 이외의 내과, 외과적 질환이나 치과 질환 등을 앓고 있는 경우 안심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치매통합진료 수가를 신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성과를 얻어내기까지 전방위 노력을 기울여 온 치협에 박수를 보낸다. 30대 집행부는 출범 직후 곧바로 19대 대
지난 7월, 전주시치과의사회에서는 ‘치과 운영 가이드북’을 발간하면서 치과 운영에 필요한 중요정보들을 보기 편하게 정리하려 노력했다. 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실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게 만든 분야가 ‘노무’였다. 이제까지 필자는 노무에 대해 나름 아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자료를 준비하면서 그동안 알고 있었던 것이 얼마나 피상적이었고 부실했는지 새롭게 깨달았다. 또한 그동안 전주지역에서 실제 벌어졌던 치과 노무관련분쟁에 대해 조사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분쟁이 잦아지고 내용이 세밀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무의 기본이자 핵심은 ‘근로계약서’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교부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개원의는 없을 것이다. 막연하게 고용노동부 표준근로계약서를 다운받아 각자 치과사정에 맞게 고쳐 사용하면 된다는 것도 알 것이다. 그러나 막상 작성하려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 우선 알아야 할 것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해 내용을 작성하면 안 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필수 기재항목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수 기재항목은 4가지로 근로시간, 임금, 휴일, 연차휴가이다. 그 중 임금 부분이 가장 골치가 아픈데,
지난 8월 20일부터 25일 까지 국제표준화기구/치과전문위원회 (ISO/TC 106) 국제회의가 홍콩에서 개최되었다. ISO/TC 106 국제회의는 치과 산업과 관련된 국제표준 문서를 제정, 개정, 폐기하는 회의로 전 세계 28개국이 투표권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고, 16개국이 참관 자격으로 참여하고 있는 대규모 국제회의다. ISO/TC 106 국제회의는 8개의 소위원회 (Sub-Committee, SC)와 소위원회에 속해 있는 각 작업반 (Working Group, WG) 안에서 소규모로 토론을 진행한다. 각각의 토론을 통해 신규 작업 항목 (New Work Item Proposal)을 제안하고, 위원회에 안건 상정, 국제 표준안 (Draft International Standard), 최종 국제 표준안 (Final Draft International Standard) 의결 과정을 거쳐 최종 국제 표준 (ISO)로 지정 된다.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기 위해 각 회원국의 의견 수렴을 통한 투표를 진행하기 때문에 시간은 물론 각국의 이해관계를 잘 파악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표준을 제정, 개정하기 때문에 ISO/TC 106 국제회의는 치과
한참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다. 이름처럼 우아한 여자 우아진(배우 김희선 분)과 그녀처럼 되고자 안간힘을 쓰는 간병인 박복자(배우 김선아 분), 두 여성의 이야기. 아름답고 능력 있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래서 늘 여유있게 상대를 대하는 우아진은 여자가 봐도 멋있는, 그야말로 ‘품위있는 여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처럼’이라며 우아진을 삶의 목표로 삼고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박복자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누구나 ‘우아진’이고자 하지만, 누구나 그녀처럼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삶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재력과 학력과 능력의 삼박자를 고루 갖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갖춰야만 품위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이 드라마를 대하면서 나는 품위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사람이 갖춰야 하는 위엄과 기품, 그리고 고상함이란 대체 무엇일까? 박복자가 그러했듯 내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품위란 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내 주변에 품위있는 여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 아니 나조차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했다. 적어도 마티스와 칸딘스키를 논할 수 있고, 옷차림이 그럴싸하며,
책은 왜 읽는 것일까요.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듣던 잔소리 중 하나는 ‘책 좀 읽어라’라는 말이었습니다. 학창시절은 물론 유아 시절에도 책 읽는 것엔 학을 뗐고, 이후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책은 그저 인생에서 ‘싫은 것’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다 1년이 흐른 대학교 2학년, 갑자기 찾아온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인해 꽤나 힘들었습니다. 가장 큰 역경은 관계의 부재였는데, 이를 이겨내기 위해 병원, 한의원 치료 모두 받아봤으나 크게 효과가 없었습니다. 모든 걸 포기하고 하루 3시간 수면에 굴복할 즈음 저는 서점에서 아들러 심리학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만난 이 책은 당시 저에게 있어 한 줄기 빛이었습니다. 책 속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는 제게 필요한 모든 말을 향유하고 있었고 구절 한마디 한마디는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막연했던 불안감은 조금씩 사라져갔고, 책을 10번 정도 정독할 때엔 불면증과 우울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절실한 필요에 의해 저자의 절절한 정신을 탐구한다면 책의 진의를 한껏 느낄 수 있습니다. 자기계발서 외에도 문학에선 올바른 가치관과 직관의 지혜를, 역사에선 자아와 세계관에 대한 통찰을,
2017년 2월 2일. 둘째 딸아이의 7번째 생일! 좋아하는 갈비를 사주기 위해 퇴근을 서둘렀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뭔가 느낌이… 딸들이 내 눈치를 살핀다. 뒤이어 퇴근한 남편도 심상치 않다. 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로비에 강아지 봤어? 엄청 귀엽다. 내가 소시지도 사줬는데 진짜 잘 먹더라.” 아이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하교 길에 강아지가 자기를 쫓아왔고, 동네 아이들 말로는 며칠 전부터 아파트 이곳저곳을 다니는 주인 없는 강아지란다. 마음 약한 큰 아이와 친구들은 상자와 담요로 집을 만들고, 용돈을 모아 소시지를 사 먹였다. 그리고, 털이 수북하게 길어서 ‘털털이’라고 부르기로 했고, “털털아~”하고 부르면 꼬리를 살랑거린단다. 털털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 모두가 털털이 주인이 되길 원했지만 엄마들의 철벽방어로 모두 실패했다는… 털털이에 대한 긴 이야기를 끝내고, 털털이가 너무 가엽다고 울먹거리는 아이들. 일단 그 녀석을 만나야 했다. 큰 아이가 “털털아~”하고 큰 소리로 부르니 어디선가 나타난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손을 핥았다. 신기하고 귀여웠다. 길거리 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고약한 냄새와 함께 온몸은 털에 뒤덮여 있고 발톱도 엉망이었다
18세기 치과 진료는 주로 두 곳의 장소에서 행해졌다. 이발외과의(barber-surgeon)는 고급스럽게 꾸며진 실내 공간인 응접실(Salon)에서 상류층을 대상으로 치료하였고, 반면에 떠돌이 발치사(itinerant tooth puller)는 실외인 시골 장터(market)에서 민초의 치과주치의 역할을 하였다. 장이 서지 않을 정도로 한적한 시골은 이발외과의와 발치사가 없어서 소위 말하는 치과치료 사각지대였다. 이처럼 격리된 마을에서 치통 환자가 발생하면 참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바로 이때 구세주로 등장한 사람이 마을의 대장장이(Blacksmith)였다. 대장장이는 뛰어난 손재주와 강인한 체력을 갖고 있었고, 집게(tong) 사용에 관한 지식이 해박하였다. 또한 필요한 기구가 있으면 언제든지 제작할 수 있는 능력도 있었다. 이러한 대장장이의 직업적 특성이 시골 사람들을 위한 발치사 역할이 가능하게끔 하였다. 그 덕에 사람들은 앓던 이를 뺀 후 시원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고, 대장장이의 부업인 발치는 19세기 후반까지 지속되었다. 영어 단어 대장장이(blacksmith)에서 접미사인 smith는 금속을 다루는 직업을 뜻하며, ‘장인(匠人)’이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