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가 ‘아시아를 휩쓴 군대 로맨스’라고 보도했던 드라마<태양의 후예>의 원작이 재난현장에서 분투하는 의사들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인류애를 그린 ‘국경없는 의사회’란 메디컬 드라마라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주인공 유시진과 서대영은 (당연히)의사였고 군의관으로 나왔던 윤명주는 간호사였다. 진도 8.3의 강진이 발생한 우르크에 급파된 긴급구호 의료팀을 여의사 강모연이 아니라 신의 손을 가진 천재 외과의사 유시진이 이끄는 시놉시스로, 군인으론 생화학 무기를 둘러싸고 우르크 지역 갱단과 싸우는 유엔 평화 유지군이 나올 뿐이었다고 한다.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주제의식이 우수하고 소재도 특이했지만 시청자들이 좋아할 만한 내용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드라마 화 되지 못하다가 멜로를 강화하고 주인공을 의사에서 대한민국 육군 특전사 장교로 변경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김은숙 작가가 가세하여 원작자인 김원석과 공동집필한 대본이 완성되었다. 자연스레 주제도 ‘국경 없던’ 인류애에서 국가론과 연관된 휴머니즘으로 변했다. 멜로를 가미하자는 건 뭐 그렇다 치더라도 주인공이 의사인 것보다 특전사 장교인 것이 시청자들에게 더 어
역사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이에 대한 답으로 독일의 대문호 괴테는(1749-1832)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He who cannot draw on three thousand years is living hand-to-mouth. 직역하면 3천년의 시간을 끌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역사를 모르는 사람에게 미래는 없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윈스턴 처칠의 말은 더 주옥같이 와 닿는다. “The farther backward you can look, The farther forward you will see.” 더 많은 과거를 회고할수록 더 많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위인들의 생각을 발판 삼아 지난 수백년동안 치의학이 그림에서 어떻게 묘사되었는지를 칼럼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데, 조금이나마 치과의사학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림은 그 시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 시대의 역사를 말해준다. 과거의 그림을 현재의 관점으로 바라본다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 시절의 역사를 알고 그림을 본다면, 과거의 모습이 책보다 더 생동감 있고 머릿속 깊숙하게 다가올 것이다. 영국 풍자화가 Henry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개원할 때 치과의 이름을 짓고 간판을 걸면 새로운 생명체처럼 치과가 태어납니다. 적어도 개원한 그 원장에게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의미있는 꽃이 막 피어난 것입니다. ‘나는 눈이 너무 작아서 먼지가 안 들어가~~’라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언어로 유희하는 순간 콤플렉스는 뽑아내고 싶은 잡초에서 모두를 행복하게 할 유머의 꽃 봉오리로 변하게 됩니다. 직원의 숨겨진 능력을 원장이 칭찬이라는 마술을 통해서 찾아내면 직원의 잠재력이 만개하는 계기가 됩니다. balancing contact이라는 현상을 발견해서 차팅을 한다면 환자의 숨겨졌던 턱관절 통증의 원인이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게 됩니다. palate를 tongue space라고 불러줄 수 있다면 입천장이 좁을 때 혀가 저위되고
고대 그리스에서 ‘파르마콘’(pharmakon)은 약을 뜻하는 동시에 독약을 뜻하기도 한다. 같은 것이 사용하기 따라 약이 되기도 하고 독약이 되기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치료의 기술도 마찬가지로 양면성을 지닌다. 더 나아가 원리적으로 볼 때, 사람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사람을 해롭게도 할 수도 있다. 이런 이치에 따르면 질병도 막는 데 능한 이는 병을 생기게 하는 데도 능할 수 있다( 플라톤, <국가> 333e). 그래서 의사는 고래로 윤리성이란 짐을 운명처럼 지게 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의료 윤리의 기준 확립이 의료계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되어 왔다. 역사적으로 그런 기준을 최초로 분명하게 그리고 체계적으로 제시한 것이 <히포크라테스 선서>이다. 이것의 작성 시기는 기원전 5세기 말이나 4세기 초로 추정된다. 오늘날 히포크라테스 선서식에서는 현대에 맞게 1948년 수정한 <제네바 선언>이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까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제네바 선언>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원본은 <제네바 선언>에 비해 짜임새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또한 오늘날 생명의료윤리의 핵심 원칙
정부가 지난 9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을 내놨다. 치과 분야의 주요골자는 ▲노인 틀니·임플란트 본인부담률 50%에서 30%로 인하 ▲치아홈메우기 본인부담률 30~60%에서 10%로 인하 ▲12세 이하 광중합형 복합레진 충전치료 건강보험 적용 등이다. 치과 분야에 포커스를 맞춰 살펴보면 환자의 부담을 줄여주고, 예방 분야 치료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는 치협의 치과 건강보험 정책 방향에 부합된다고 평가할 만하다. 우선 노인 틀니·임플란트 본인부담률이 30%로 인하돼 65세 이상 노인 환자의 틀니·임플란트 진료비 부담이 낮아지고, 치과의료 접근성이 개선돼 이용률이 현재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 틀니·임플란트 본인부담률 인하를 기준으로 치협 보험국이 2018년 개원가에 기대되는 총 진료비를 추정한 결과 총 진료비(본인부담금 포함)가 2000억 원 가량 증가할 것으로 추정돼 경영 환경이 어려운 개원가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치아홈메우기 본인부담률도 30~60%이던 것을 10%로 완화해 어린이 치아진료의 부담이 완화되고 예방치과 강화라는 측면에서도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다만 12세 이하에게 시행되는 광중합형 복합레진 충전치료를 건강보험으로 편
필자가 30년을 개원하면서 30대 때에는 매주 학술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데 집중을 하였고 40대에는 의료봉사에 모든 휴가를 반납하고 열심히 했었다. 오늘은 의료봉사의 추억을 더듬어 아쉬움과 보람을 나누려고 한다. 의료봉사는 1997년에 ‘산호수중’이라는 스쿠버 다이빙 동호회원들과 소매물도에서 시작하였다. 동호인들과 연변에서 의료봉사를 한 뒤 백두산 천지에서 하루에 열두 번이 변한다는 하늘을 보면서 했던 한 여름에 하얀 눈이 있는 트래킹은 세상 어디에서도 없는 장엄한 감동을 주었다. 그 후 1999년에 본격적인 의료봉사를 위해 지인의 추천을 받아 열린의사회에 가입했고, 매년 1~2회 해외봉사와 매달 있는 국내봉사에 참여하였다. 2000년에 처음 몽고 울란바토르의 항울병원에서 진료를 하였다. 기존에는 발치만 하였지만 레진을 스폰 받고 대학동기인 장갑성 원장의 도움으로 치과이동장비를 만들어서 주로 전치부 레진치료를 많이 해주었다. 그 인연으로 지금도 1년에 1회씩 몽고에서 오는 의료진들과 만나고 있다. 또 맨 처음 진료에서 통역을 도와주던 학생이 얼마 전에 울란바토르 대학의 한국어과 교수가 되어서 필자의 병원을 방문해 반갑게 만나기도 하였다. 몽골 의료봉사를 15
일을 마치고 올라 탄 지하철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만원이다. 요즘 같이 30도를 웃도는 고온에 장마철까지 겹쳐 습기까지 높으니 사람마다 표정이 좋지 않지만 그나마 빵빵한 에어컨이 더위와 습기에 찌든 꿉꿉함을 지울 수 있다는 게 천만다행. “에어컨 없는 소싯적엔 어찌 살았을까?” 에어컨 덕에 더위가 좀 가시니까 본능(?)적으로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으로 손이 간다. *톡을 통한 친구들과의 대화, 챙겨보지 못했던 드라마 섭렵, 포털 사이트에 뜬 메인 뉴스 등을 검색하다 보면 어느 새 다음역이 도착지다. 지하철에서 내리려 대기하고 있는데 눈에 띤 지하철 공익 문구. 문구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휴대폰만 보고 있으면 정작 옆에 있는 인연을 만날 기회를 놓친다는 내용이다. 휴대폰 사용을 적당히 하고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라는 공익성 광고인 듯하다. 과연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 지하철의 사람들을 쭉 둘러봤다. 백이면 백 모든 사람의 시선이 핸드폰으로 고정돼 있다. “과연 지하철에 공익광고로 등장할 정도로 휴대폰 과다 사용은 일상이 돼 버렸다.” 과거에 상상도 할 수 없는 만큼 똑똑해진 휴대폰이 상용화 되면서 몇 년 새 다양한 생활 풍속을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치과를 읽다> 저자 책 읽는 속도는 개인별로 차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얘기할 만한 것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문학작품은 숨고르기를 하면서 천천히 읽는 것이 좋습니다. 함축적인 내용이 많이 숨겨져 있기 때문에 너무 빠르게 읽어 내려가면 그 의미를 놓치게 됩니다. 하지만 일반 교양서적들은 저자의 명확한 설명이 거의 드러나 있기 때문에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내용의 신비로움을 일부러 미리 드러내지 않으려는 문학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목차와 머리말에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이 대부분의 교양서인 인문, 사회, 과학 서적들의 특징입니다. 저도 머리말과 목차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하면서 책을 썼던 것 같습니다. 특히 머리말은 책 내용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장 잘 요약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따라서 책을 구입해서 읽을지를 결정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이 머리말입니다. 머리말을 읽어보고 목차를 살펴보면 마치 책
야구가 약간 일찍 끝난 일요일 저녁에 이리저리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야생의 오소리를 찍으려고 가파른 산기슭에 촬영 팀 두 명이 카메라와 자신들의 몸을 숨길 은신처를 만드는 장면을 보았다. 관목수풀 뒤로 간신히 두 사람 앉을 만큼의 평평한 곳을 만들어 나란히 앉아서는 이따금씩 소곤거린다. 이러고 며칠을 기다려도 오소리가 안 나올 수도 있지요? 초보의 질문에 한동안 머뭇거리던 고참이 말한다. 그런 생각은 안 해. 틀림없이 나온다고 믿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거든. 오소리는 오게 되어있으니 난 기다리다 찍으면 되는 거다… 이런 자세가 아니면 다큐는 못 찍어. 단 5분도 견딜 수가 없어. 정말이야. 아주 큰 병에서 막 회복된 사람처럼 조심스러우면서도 연약하게 반짝이는 생기 같은 것이 잠깐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는데, 순간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주위의 그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닌 맑고 투명한 시선으로 자기가 갈 곳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는 저런 표정. 애들 학부형 모임에서 알게 되어 내게 치료도 받고 가깝게 지내던 분이 하루는 병원으로 찾아왔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내내 망설이다 결국 꺼낸 사연은 하긴 딱 이만큼의 사이에서 의논하기 좋을
이 둘은 궁합이 잘 맞는 연인관계나 다름없네. 서로를 너무 잘 알아 마치 ‘내가 이거하면 자기는 저 거해!’하는 형태지. 앞에 언급했듯이 이것만 갖고도 드로우와 페이드를 조절할 수 있네. 왼편으로 체중이동이 잘 안된 골퍼가 교과서에서 볼의 위치가 왼쪽 발 안쪽 끝에 놓아야 된다고 해서 고집스럽게 반드시 그리할 필요는 없네. 사고의 유연성을 가져야 되네. 라운딩 때마다 우리 신체 리듬이 똑같질 않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대처능력이 필요하다네. 그 능력이 스탠스이고 볼의 위치가 될 걸세. 매 번 똑같이 스윙을 하고 신체조건이 똑같다면 그건 로봇일세. 그런데 싱글들은 매 라운딩 때마다 똑같아 보인단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건 그들의 사고에 대한 유연성과 상황에 맞는 적응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일세. 첫 번째 두 번째 홀을 지나면 싱글들은 대부분 그날 본인의 샷에 대한 평가와 신체적인 상황을 어느 정도 정리한다네. 예를 들면 그날 볼이 조금씩 밀리는 샷이 나온다면 두 가지 채가 늦게 따라오든지 채를 너무 밀어서 생기는 현상이므로 스윙을 점검하고 스피드를 더해야 하겠지만. 그리하지 않고 스탠스만 살짝 좁혀주면 해결이 되는 경우가 있지. 너무 아침 일찍 라운딩을 하게 되면
자연철학자들이 우주의 궁극적 구성요소를 알아냄으로써 우주의 온갖 현상을 설명하고자 했듯이, 이들의 영향을 받은 의사들은 인체의 구성요소를 알아냄으로써 이 요소들로 질병이나 건강을 설명하려 했다. 이러한 경향은 히포크라테스학파의 의사들 사이에서 큰 흐름을 형성했다. 그런데 그들 중 이런 흐름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의사도 있어 주목된다. <전통 의학에 관하여>의 저자는 인체의 구성요소로 한두 가지를 ‘가정’하고서 그것을 의학적 이론들의 기초로 삼는 의사들을 비판한다. 다시 말해 그는 온, 냉, 건, 습 중 한두 가지를 질병의 원인으로 가정하는 의사들을 비판한다. 이는 곧 철학적 의사들에 대한 비판이며 의학을 철학에서 분리시키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는 특히 철학의 영향으로 의학 쪽에 도입된 가정의 방법에 대해 비판적이다. 그 방법으로는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도 새로운 발견들을 이루어낼 수도 없다고 그는 단언하고, 의학에서 오랜 기간 사용해 온 경험적인 시행착오의 방법이야말로 의학의 올바른 방법이라고 역설한다. 저자가 경험적 방법을 의학의 방법으로 제시하고, 의학과 철학을 분리하고자 한 것은 그 나름으로 큰 의미가 있다. 의사와 철학자는 주된 관심에서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