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시선 임철중 칼럼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자신을 얼마나 존중하는가 서울대학교치과대학이 예과 2년의 6년제 첫 입학생을 뽑은 것은 1959년으로, 장기복무 치과군의관들이 쌍수로 환영했다. 그 이전에도 군의관은 의과·치과가 다 함께 중위로 임관했는데, 대위 진급할 때면 문제가 생겼다. “경력(학력)에 2년 차이가 나는데 왜 동시에 대위계급장을 달아주는가?" 라는 것이다. “사관학교 출신은 소위로 시작하는데, 똑같이 4년제를 졸업한 치과군의관이 중위인 근거는?" 이 또한 당연한 항의였다. 대위 이후에도 진급심사 때마다 꺼림칙했던 이 문제는, 보건직 공무원이나 대학교수 등 계급이 있는 사회라면 항상 걸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었다. 예과제도를 도입하자는 주장도 OJT 교육 등을 통해 선진국 의료제도에 먼저 눈을 뜬 군진(軍陣)에서 처음 제기한 것으로 기억한다. 서울대치의학대학원이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항상 치전원제도를 찬성해온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다만 그 이유가 정원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교과부 방침 때문이라니 다소 떨떠름하다. 단순히 정원 삭감의 숫자적인 불이
자연치아아끼기운동 (1) 치과계의 치킨게임 자연치아아끼기운동(상임대표 서영수)이 국민의 구강건강 지키기에 앞장서는 바른 치과의사상을 고취시키자는 취지로 본지에 칼럼 연재를 시작한다. 월 1회 게재되는 칼럼에서는 자연치아아끼기운동이 말하는 의료인의 근본 자세에서부터 치과계가 안고 있는 다양한 문제점과 대안이 제시될 예정이다. “요즘은 의사도 길거리 세일하데요”. 멀리 이사를 갔는데도 찾아와 임플랜트 시술을 받은 한 단골환자의 얘기다. 병원에 오는 도중 지하철 입구에서 선물과 함께 전단지를 주어 받아보니 90만원 임플랜트 홍보물이었다고 한다. 창피해서 얼굴이 뜨거웠다. 이분의 말씀 저의가 무엇일까? 터무니없는 치료비 차이에 단골이라고 멀리서 찾아왔는데 자신에게 바가지를 씌웠다고 섭섭해 하며 좀 참고하라는 걸까? 아니면 길거리 판촉행사를 하는 의료계를 보고 세상이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하고 한심해 하는 걸까? 아마도 전자가 더 클 듯싶다. 아무튼 그분의 치과계를 보는 눈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을 믿는다는 말에 그나마 감사했다. 덤핑치과 얘기가 단연 화두 일 순
齒 & 通 Self-Ligation Bracket의 진실 <자가결찰교정장치> 어느 날 교정상담을 원하는 한 환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녀는 어느 특정회사의 self ligation bracket를 지칭하며 우리 치과도 그 장치를 사용하는지를 물었다. 우리는 그 bracket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 bracket를 사용하면 아프지도 않고 치료가 훨씬 빨리 끝난다는데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푸념 섞인 항의를 했다.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었느냐고 묻자 그녀는 ‘인터넷에 들어가면 다 나와 있는 사실인데요’하며 ‘이곳 원장님은 뭘 잘 모르는 모양이네’라며 전화를 끊었다. 교정학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열정으로 십 수년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새로운 지식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건만 한 시간의 인터넷 검색보다 못한 지식의 소유자로 전락하는 순간이었다. 최근 10년간 임상교정학에도 많은 변화와 발전이 있었다. 교정용 mini implant의 실용화, 3차원 C-T의 임상적용, 3-D skan에 의한 새로운 치료장치의 개발, 그리고 self ligation bracket의 대중화 등… 일부는 임상교정학의 발전에 획기적인 공헌을 했
세무경영 123! 이번호부터 개원의가 꼭 알아야 할 치과 세무·경영, 자산관리에 관한 칼럼을 연재한다. 칼럼은 전영창 세무사(세무법인 하나), 개원의 세무·경영,자산관리 컨설팅업체 프라임밸류에셋(주)의 임은지 대표이사와 김 홍 이사가 순번 게재한다. 나무를 볼 것인가, 숲을 볼 것인가 등산을 많이 하다 보면 매번 겪는 고민이 있다. ‘숲을 볼 것인가 나무를 볼 것인가’하는 것이다. 숲의 큰 조망만을 보고 찾아 가다가 겉보기와 달리 산세가 험한 길로 접어들어 후회하거나, 반대로 조망 없이 무턱대고 나무 사이의 길들을 따라 걸어 나와 보면 결국 더 좋고 편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왜 숲을 보지 않고 왔을까 하는 고민에 빠지는 것이다. 개원의 세무조사에서도 1997년도 이전까지는 숲보다 나무가 더 중요했었다. 그러나 그 해 도입된 주1)TIS(국세통합시스템)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국세청이 나무가 아닌 숲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주 소득원인 사업장의 매출 세부 구성 내역과 구체적인 경비내역부터 가계의 자산 취득과 현금흐름 현황까지 마치 손바닥에 놓고 보듯이 주민번호 하나로 모든 관련된 데이터들을 한꺼번에 연결해서
|명|사|시|선| 양영태 칼럼<자유언론인협회장·전 치협 공보이사> 느즈막하게 병원이름 바꾼 이유? 60대 중반인 필자가 지난 5월 병원이름을 ‘양영태치과’에서‘여의도 예치과’로 조용히 명칭 변경을 하였다. 그 이후 필자를 알고 있는 많은 이들로부터 왜 치과명칭을 바꾸었느냐라는 요지의 수많은 전화가 왔었고 또 치과의사들과 회합을 가질 때면 으레 병원 명칭 변경이 생맥주의 안주꺼리가 되곤 했다. 사실상 1984년 공직에 있다가 나와서‘양영태 치과’라는 이름으로 개원한 이래, 다른 치과의사들처럼 참으로 성실하고 열심히 개원의 길을 걸어온 나로서 2011년 5월 어느 날 갑자기 ‘여의도 예치과’로 명칭을 변경한 것은 적어도 필자에 있어서는 가히 ‘혁명적(?) 변화’의 마음이 결정적이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2년여전 어느 날 오랫동안 잘 알아 왔던 어떤 환자가 본인에게 ‘치료비가 다소 비싼 것 같다’고 항의(?) 하면서 “어느 매우 규모가 크고 치과의사가 많은 치과에는 골드 인레이가 일십여만원인데 왜 여기에서는 그렇게 비싸게 받느냐?”라고 상기된 얼굴로 항의한 적이 있었다. 참으로 당혹스럽고 민망스럽고 이름 모를 화가 솟구치는 순간이었다. 이런 유형의 얘기들
|명|사|시|선| 임철중 칼럼<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치과계의 챔피언들 이수구협회장의 제27대 집행부가 퇴임하였다. 멋진 헌사를 보내고 싶었지만 앞서 양영태 씨가 멋지게 마무리 해주었으니 한 마디만 보탠다. “초대 상근협회장으로서 바람직한 모범을 보여준 것에 감사하며, 개인적으로는 ‘이수구협회장" 의 이름으로 받은 공로대상 상패가 자랑스럽다." 그는 어려운 시기에 회무를 맡아 협회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은 치과계의 챔피언이기 때문이다. 제60차 총회는 필자가 실로 오랜만에 ‘대의원"이라는 짐을 내려놓은 첫 총회였다. 비록 현장에는 없었지만 그간 중요한 의제가 있을 때마다 총회 평을 써온 여세로 두 가지만 짚어본다. 첫째 공중보건의 대의원배정 문제다. 군복무를 대신하는 공보의는 단기 통과의례인 까닭에, 정관상 임기의 불일치라는 문제가 있으며, 수련의와의 형평도 고려해야 한다. 근무조건 같은 권익보호 차원이라면, 대의원보다 협회이사가 더 타당하고 실익도 있다. 둘째는 감사문제다. 건설 불황이 금융위기로 이어지면서 저축은행의 도덕적해이가 들어나고, 감사기능 마비가 수술대에 올랐다. 본래 감사는 king"s man이 아니라,
기고 치과에서 치아에 염증이 생겨 치과에 다녀온 후 나는 양치질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치아 치료는 경험이 없어 두렵고 더군다나 치과는 보험 적용이 별로 되지 않는다는데 내 치아 손상이 심해 고비용이 드는 것은 아닌지 순서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이 복잡했다. 몸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특히 치아는 예방이 중요하고 꾸준한 관리와 관심을 요한다. 나는 입을 벌리고 받아야 하는 치료에 거부감이 생기고 그간 통증이 없어 구태여 치과를 찾지 않았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자녀의 유치부터 관리하고 양치질을 가르친다. 내가 어릴 적 유치가 흔들리면 어른이 그 이에 실을 묶어 내 관심을 잠시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고 순간적으로 잡아챘다. 뽑은 유치를 지붕에 던지며 ‘헌 이 줄께 새 이 다오’라며 영구치가 잘 나기를 바랐다. 그 시절에는 대개 그런 식으로 이갈이를 했기에 제때 제거 못한 유치 때문에 덧니가 생기는 경우도 많았다. 요즘은 어릴 적부터 치아 관리를 잘하기에 영구치가 비교적 고르고 치아교정을 하기도 한다.나는 운이 좋아 충치나 잇몸 병 없이 지금껏 살아왔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치아 뿌리가 들어난 잇몸 사이로 균이 들어가 충치가 되었
기고 이승종 자연치아아끼기운동 공동대표·연세치대 교수 작은 일에 충성하는 즐거움 나는 크리스천은 아니지만 치과의사로서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작은 일에 충성하라’는 예수의 말씀이다. 이 구절은 마태복음의 달란트비유로 가장 유명하지만 누가복음에서도 작은 것에 충성되지 않는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치과의사의 일은 큰일인가? 나는 늘 학생들에게 치과의사의 일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크게 사회적인 임팩트를 줄 만한 일도 많지 않다. 그러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치과의사의 일은 단지 돈을 버는 수단 정도로 제쳐 놓고 그 돈을 가지고 사회사업이나 정치나 문화 활동 등을 하면서 보람을 찾는다. 분명히 치과의사 중에도 일부는 여러 방면의 사회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야 하고 그럼으로써 전체 치과계의 위상을 높일 수 있겠지만 모든 치과의사들이 그렇게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 보면, 치과의사 만큼 자신의 일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직업도 그리 많지는 않다. 우선 우리는 진료 일선에서 거의 일대일로 환자와 마주 한다. 어쩌다 보면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아갈 때가 있다.
|명|사|시|선| 임철중 칼럼 <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가장 편안한 자세 해군은 계급의 이름이(영어) 타군과 다른 만큼이나 장병간의 유대도 유별나다. 문자 그대로 한 배를 탔으니 근무도 사생활도 지극히 좁은 공간을 공유해야 한다. 벽에 달린 고리에 ‘해먹"을 걸고 각자 알아서 잠자던 수병들에게, 비록 3단일망정 고정된 침대를 쓰게 된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 항상 서로 스치는 스킨십과 망망대해에서 서로 믿어야 산다는 마음으로 전우애가 쌓이는 것이다. 반대로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함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요, 비상시 즉결처분을 포함한 사법권까지 갖는다. 그래서 타군에서 대위인 ‘Captain"이 해군에서는 대령이요, 장병 수천 명의 슈퍼 항공모함 함장도 대령 이상은 없으며, 해군대령은 국제공항에서 장성급 예우를 받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별 하나는 함대 편성을 위한 임시계급으로, 제독 보다는 전단사령관(Admiral Vs. Commodore)이라고 부른다. 오사마를 같은 오씨 성에 마자 돌림의 오바마가 해결했다 하여 ‘종중분쟁"이라는 우스개도 있지만, 아들 부시가 9·11 때 시작한 일을 마무리하려고 아버지 부시(항공모함)가 출동하는 것도
명사시선 양영태 칼럼 <자유언론인협회장·전 치협 공보이사> 이수구 전 회장님!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지난 4월 30일 제27대 대한치과의사협회 이수구 협회장이 괄목할 업적을 남기고 임기를 종료했다. 지난 3년, 이수구 집행부가 국가적인 큰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론 금융대란의 공포속에 갇혀야만했던 가장 힘든 역경의 시대 상황을 극복하고 놀라운 업적을 쌓아놓은 집행부로 기록된 것은 무엇보다 이수구 전 협회장의 탁월한 리더십! 그리고 어려운 상황을 뚫고 이겨내려는 억척스럽고 끈질겼던 그의 투혼! 그리고 치과계를 사랑하는 멋들어진 그의 희생정신! 바로 그것이었을 것이다. 지난 3년간 짧다면 짧은 기막힌 시공 속에서 치과계가 그토록 원했었던 숙원과제를 흔쾌히 풀어낸 것에 대해 치과계 선배의 일원으로서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반세기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치과전문의제도의 문제를 의료전달체계의 틀 속에 정착시킨 이수구 전 회장의 성취는 한마디로 그가 치과계를 발전시키고야 말겠다는 굳은 신념과 집념에 지주된 산물이다. 의료인단체의 권한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분투
|명|사|시|선| 임철중 칼럼<전 치협 대의원총회 의장> “9988 123!” 암호 같은 이 숫자를 처음 얘기해준 사람은 소강 민관식씨다. 최장수 문교부(교육)장관에 약사회장 7선의 명예회장이어서, 약사회 일을 맡았던 집사람을 통하여 알게 되었다. 올림픽위원장 당시 태릉선수촌을 건립한 전설적인 인물답게 골프도 싱글 수준이었는데 독특한 습관이 하나 있다. 첫 홀에서 어려운 퍼팅을 가볍게 집어넣고는, “자, 봤지? 이제부터 그린에 올라오면 무조건 투 퍼트 OK야." 한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고 하루 이틀 앓다가 사흘 만에 가자(?)는 “9988123" 의 전도사였는데, 정작 본인은, 아차! 88을 먼저(1918년 생, 2006년 서거) 하셨다. 전날 많은 지인들을 만나고(작별인사?) 테니스를 즐긴 다음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하여, 웰 다잉의 표본으로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다. 필자가 담배를 끊는 일에 백만 원의 내기를 약속하셨는데, 2001년 현충일의 금연 이후 만나 뵐 기회가 없었다. 나중에 만나면(?) 꼭 결제해달라고 떼를 써야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