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 꿈이 무엇인가요? 초등학생 시절 담임 선생님께서 내주신 숙제의 답으로 무엇인가를 쓰긴 한 것 같은데, 당최 기억은 안 납니다만 그때 써냈던 답과 지금 나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은 것은 명백합니다. 학부를 졸업하고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미래 지향적인 다짐도 없었던 듯한데, 지역치과의사회와 동창회 등 여기 저기 불려 다니며 회무를 하고보니, 다른 사람의 꿈을 이루어 주겠다는 다짐을 몇 번인가 했던 기억은 납니다. 그것 참 재미있는 물건이네하며, 처음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봤을 때도 이걸로 딱히 무얼 하겠다는 목적을 가지지 못했었던 것 같습니다. 기계적 호기심도 많은 성격이고, 유명 사진가들의 사진을 흉내 낸 최종 인화물을 받아보면서 나름 만족스럽기도 하면서 보낸 세월이, 돌아보니 어영부영 30년입니다. 사진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 동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진가로서의 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사진을 찍는 게 꿈입니다.” “어? 나도 그런데. 꿈이 같네.” 농담처럼 주고받았지만,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나의 꿈이 생긴걸 알게 되었습니다. 예술에 대해서, 그리고 인문학적 소양과 관련하여 끊임없이 고민하고 연마
2014년, 어린 시절부터 나의 우상이었던 오빠들이 돌아왔다. 2005년 7집 ‘하늘 속으로’ 이후 9년 만에, 5명 완전체로는 무려 12년 만에 god가 신곡을 발표했고, 최근 데뷔 20주년인 2019년을 맞아 최근 ‘같이 걸을까’라는 여행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방송을 볼 때면 나는 중학생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 때보다 나이도 먹고 다양한 분야에서 각자의 활동으로 바쁜 멤버들이 오랜만에 함께 생활했던 그 시간이 god에게도 추억을 되살리는 시간이었지만 TV를 보는 나에게도 그 시절을 추억하게 만들어주었고, 힐링을 안겨주었다. 그 덕분에 근 10년 만에 나의 ‘덕질’이 다시 시작되었다. 평범한 다섯 남자는 나의 학창시절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앨범이 나오는 날이면 학교 마치고 레코드점으로 달려가 모아두었던 용돈을 탈탈 털어 테이프와 CD를 사왔다. 마이마이로 테이프가 늘어지게 노래를 들으며 가사집을 펴 놓고 가사를 외웠다. 학교에서는 맨날 친구들과 함께 멤버들 프로필과 인터뷰를 외웠고, 점심시간에는 교실 TV로 ‘god의 육아일기’를 볼 것이라고 다른 가수 팬들이랑 싸우기 일쑤였다. 지금이야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검색만 하면 모든 영상을 찾아 볼
점심이 늦어져서 허겁지겁 비빔밥을 입안에 밀어 넣었더니 속이 불편했다. 쉬는 날엔 소화가 잘되는데, 출근해서 환자를 보느라 조바심을 내는 날이나 스트레스를 받는 날이면 어김없이 소화불량으로 고생한다. 진료하다 말고 원장실에 들어와 소화제를 먹어 봤지만, 복통이 계속 심기를 건드린다. 어찌어찌 하루 업무를 마치고, 퇴근길에 아내에게 누룽지라도 끓여서 달랠까 말까 하는데, 집사람은 한술 더 떠서 중3 아들 고입설명회에 자신을 태워다 줄 수 있는지 물어본다. 누룽지 얘기는 꺼내지도 못했다. 아내도 아마 저녁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입시 설명회장으로 달려갈 걸 알기 때문이다. 설명회장 위치를 물어보니 자전거를 타고 가기엔 꺽정시럽고(걱정스럽다의 전라도 사투리), 택시를 타고 가기엔 가까운 거리다. 태워달라는 사람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아파트 경비실 앞에 도착하자마자 아내를 태워서 학원 앞에 내려줬다. 내려준 곳은 도로 폭이 좁은 1차선 도로라 곧바로 우회전했는데,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는데~) 큰 대로변이라 밀리는 차들을 따라 직진할 수밖에 없는 도로 상황이다. 하는 수 없이 양평 방향으로 차를 운전했다. 속은 불편한데, 저녁은
어느덧 치과계에 들어온 지 올해로 20년째가 되어 갑니다. 초창기 때부터 지금까지 치과계를 돌이켜보면 치과계는 놀라울 정도로 급속히 빠른 변화들이 있어 왔습니다. 화려한 인테리어, 최신식 장비도입, 활발한 마케팅방법의 적용, 친절한 서비스 등 눈에 띄게 많은 변화들이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변하지 않고 세월이 갈수록 강조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담당하던 치과병원에서 진행한 JCI인증, 보건복지부인증평가 등에서 항상 중요요소는 감염관리였습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차별화된 프로토콜을 만들고 실현하기 위해 원장님들과 스탭들이 공부하고 뛰는 모습을 보고 저도 느낀 것이 있어 관련 분야를 유심히 살피고 공부했습니다. 변화하는 시대에서는 무엇보다 이 분야가 중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곧 여러 사회문제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뉴스를 보면 의료기관에서의 끊이지 않는 감염관리사고가 그것입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C형 간염 집단감염 사태, 2017 이대목동 신생아 사망사고 등 우리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분에 더 주의를 기울여야 되는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건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여러 사건들 이후 정부
멕시코시티는 해발고도 2200m의 고지대에 위치한다. 인천 국제공항에서 멕시코시티 공항까지 13시간 40분의 긴 비행시간이다. 멕시코시티 북쪽 50Km 떨어진 떼오티와칸 문화는 라틴 아메리카의 최대 종교 도시 문화로 BC100~300년경에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를 세웠다. 남미 여행은 처음이라 많이 흥분되었다. 고원의 도시를 달리다 보면 커다란 선인장이 많이 눈에 보인다. 우리나라 제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백년초다. 열매가 달콤하고 수분이 많아 더운 나라에서 갈증을 해소할 수 있어 좋다. 먹을 때 단단한 씨앗이 있는데 씹을 수 없어 삼키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중미 최대 고대도시 떼오티와칸의 자태가 멀리서 보인다. 초등학교 시절 자유의 벗이라는 잡지에 소개된 것을 보고 호기심을 느꼈는데 60대 중반을 넘긴 나이가 되어서 보게 되었으니 무척이나 감격스럽다. 수세기 동안 번성하던 고대도시국가가 어떻게 사라졌는가는 지금도 미스터리다. 태양의 피라미드는 높이 65m 밑변 225m고, 달의 피라미드는 높이 46m 밑변이 150x120m로 떼오티와칸 최대의 건축물이다. 기원전 2세기부터 건설돼 4~7세기 까지 전성기를 누리다가 자취를 감춘 국가, 한 눈으로 봐
벌써 6년 전의 일이다. 예방치과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었을 때, 3년차가 되었고 임상예방을 하는 병원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지금은 정년퇴임을 하셨지만 당시에 서슬이 퍼러셨던 조선대학교 예방치과 김동기 교수님의 진료를 옵저베이션 하면서 분위기를 익힐 때였다. 예방치과에 환자가 올 때마다 치간칫솔로 직접 치면세균막(치태)을 제거하면서 치간칫솔에 묻어나온 출혈 정도를 보면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진단도구이면서 치료하는 도구여~!” 사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동의는 고사하고 말도 안된다고 속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직접 환자에게 치간칫솔을 사용하여 치면세균막을 제거하면서 생각이 달라지게 되었다. 치은에 염증이 있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시켜주게 되고 또한 치면세균막도 제거해주게 되니 아주 심각한 치주질환이 아닌 치간 부위 치은에서는 프로빙보다 치간칫솔이 확실하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게 되었다. 게다가 치면세균막까지 제거해주니 일석이조가 아닐 수 없었다. 사실 당시까지 나는 치간칫솔을 사용하지 않고 치실만을 사용하였다. 하지만 과거에 치료받은 대구치의 인접면으로 깊은 2급 인레이 부위에 치간칫솔을 사용해보니 출혈이 지속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서 계속 사용하
유독 어느 말 한마디가 그날따라 머릿속에 맴돌 때 가 있다. 다른 날 이었으면 그냥 스쳐지나갔을 말인데, 유독 그날은 가슴 속 나무 한그루에 작은 쪽지 하나를 매단 화살이 날아와 박히듯 하루 종일 내 가슴 속에 박혀 있기도 하고, 잊혀 졌다가 간혹 가다 생각나서 곱씹기도 한다. 좋은 말이든, 상처가 되는 말이든 간에 상관없이 머릿속에 가슴속에 맴맴돈다. 그 말은 나에게 좋은 영향력을 미쳐 내 인생에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나쁜 영향력을 미쳐 나를 삐뚤어지게도 한다. 30여년. 그 동안 수많은 말 한마디들이 모여 나를 여기까지 성장시켰다. 학교를 졸업하고 의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한지 만 3년이 되었다. 지금 치과의가사 된 나는 어떤 말들을 듣고 새기며 성장하고 있을까. 당연하겠지만 생각해보니 아직 나는 껍질 벗긴 삶은 토마토처럼 작은 손가락의 힘에도 구멍이 나는 초보 치과의사구나. 환자들에게서 듣는 말 한마디는 나에게 너무 쉽게 토마토 허리를 찌르는 포크가 되기도 하고, 다시 감싸주는 껍질이 되기도 한다. “진 선생님, 이거 내가 집에서 직접 볶은 참깨야~” “아니예요, 어머니. 저 이거 못받아요. 김영란법 때문에 잡혀가요.” “이거 몇 푼 안 해. 선생
저는 지난 2018년 11월 12일부터 19일까지 런던(London)과 모스크바(Moscow)를 다녀왔습니다. 이번 여행은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서정주·김수경 도자시화전을 기념해 ‘예술과 철학의 뿌리를 찾아서(Principles of Art and Philosophy)’를 알기 위한 여행이었습니다. 런던에서 연구자료를 수집하고, 모스크바에서 톨스토이, 푸시킨, 차이코프스키의 기념관과 책들을 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젊을 때 공부하고 교수들과 함께 연구했던 런던병원(London Hospital) 및 London Hospital의 치과대학과 의과대학을 방문했습니다. 치과병원은 시설관계로 병원본관에 바로 이전했으며, 의과대학은 옛 그 자리에 치과대학과 나란히 있었습니다. Kings College Hospital과 University College 또 Oxford와 Cambrige 대학병원과 Edinburgh 대학과 병원 등을 돌아봤습니다. 런던 중심가에서 서적들과 특히 철학, 문학, 미술에 관한 연구자료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참 행운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찾기 힘든 자료들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의 톨스토이 기념관, 푸시킨의 흔적과 차이코프스
학생 시절 내가 꿈꾸던 자동차는 1 세대 그랜저. 흔히 말하는 각 그랜저였다. 기품 있는 바디에 푹신한 소파 같은 고급 카시트, 환상적인 대쉬보드. 조용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은 순식간에 나를 사로잡았다. 어쩌다 시내에서 마주치면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이 차는 일본 미쓰비시와 공동 개발하여 차체 디자인은 현대가 맡고 메카니즘은 미쓰비시가 주도했는데 일본에서 데보네오란 이름으로 팔려 일본 여행에서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서와는 달리 일본에선 잘 팔리지 않았다한다. 개원하고 큰 맘 먹고 산 차가 각 그랜저 후속 모델인 뉴 그랜저이다. 각 그랜저 만큼의 품위는 없었지만 각 그랜저의 향수를 생각하며 십년이나 아끼며 타다 어느날 주행 중에 차가 퍼져버려 할 수 없이 폐차하였다. 그 후에도 그랜저 후속 모델이 나올 때마다 유심히 보곤 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차 디자인이 갈수록 후퇴하는 듯 해 실망을 금치 못했다. 첫 사랑에 대한 애증이 컸나 보다. 순수 현대 기술로 만든 3 세대 그랜저인 그랜저XG는 경쟁사 디자이너가 현대 차 망하라고 일부러 못생기게 만들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못생긴 모양새를 하고 있어 너무 실망스러웠다. 대우
작년 치과의료정책포럼 주제는 치과의사의 건강과 삶이었죠. 10월 말에 열린 회의에서 치과의사 건강 실태와 사망원인에 관한 주제발표가 있었습니다. 귀한 연구이고 자료였는데, 제가 주의 깊게 본 것은 우울감, 자살 사고, 질환 통계였습니다. 치과의사협회 소속 전국 회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 응답자 1600명 중 62%가 최근 2주간 우울감을 경험했으며 17%가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48%가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했으며, 고지혈증과 알레르기성 질환, 고혈압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 항목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두가 제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소아치과 수련 과정에서 얻은 어깨 통증은 진료실에 있으면서 점차 심해져 갔습니다. 잠시 의과대학에 근무하고 유학을 다녀오면서 핸드피스를 놓았더니 더 악화되지는 않아서 다행이긴 한데요. 저는 의료인문학과 의료윤리라는 다소 생소한 전공에 뛰어들어서 좌충우돌하고 있습니다. 아직 아무런 기반도, 틀도 없는 상황에서 글을 쓰고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친다고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가족에게 계속 폐를 끼치는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보니 우울감을 피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여, 이렇게 집단화된 형태로라도 치과의사
오늘 하루도 알람 소리에 힘겹게 일어나고 씻은 후, 아침 식사하고서 병원으로 출근한다. 그 하루가 월요일이면 그 주의 새출발을 잘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물씬 생긴다. 하지만, 쌓인 피로감이 가시질 않았거나 나를 힘겹게 하는 환자가 또 대기실에 앉아있거나 우리 병원 직원이 실수하는 것을 연타로 경험하면 즐겁지 않을 수 있다. 방긋하고 병원 문을 들어서면서도 이내 웃음이 사라진다. 우리는 하루에 과연 몇 번을 웃고 사는 것인가. 치대 재학 시절에는 졸업하는 그 날만을 기다리면서 미래에 일확천금도 벌고 존경받는 치과의사 선생님이 되고자 큰 꿈에 젖어 있었다. 상상만으로도 절로 미소를 띨 수 있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장밋빛 인생이 아닌 것을 깨닫고 실망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다보니 그토록 원했던 개인 병원을 열고서 지역 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이념으로 열심히 진료하고자 한다. 그런데, 병원에 내원하는 환자 수가 줄거나 예약했던 환자들이 속속 취소하는 상황을 맞이하면 마음이 더없이 불안해진다. 쌓여만 가는 고지서, 곧 다가오는 임대료와 인건비 날짜, 카드 결제일. 혹시라도 누락된 보험 청구는 없는지 미납한 환자가 아직 남아 있는지 샅샅이 뒤져서 수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