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됐을까? 한 2년쯤 된 것 같다. 어느 날 시가 눈에 들어왔다. 그 간결함이 좋았다. 스크롤의 압박이 없었다. 단숨에 읽히고 무엇인가 가슴에 남기도 했다.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청량감을 주기도 했다. 시는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치유의 언어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 시는 작은 공감의 언어였다. 가끔 시집을 사서 읽기도 했다. 누군가 오래된 헌책방에서 가성비 최고가 시집이라고 했는데 그 말은 참이다. 마음을 무찔러 들어오는 시어를 만나는 작은 즐거움이 있었다. 점차 나만의 언어로 시를 쓰고 싶어졌다. 그냥 형식없이, 마음에 느껴지는 대로 적었다. 일기도 아니고, 수필도 아니고, 독후감도 아니고, 시만이 지닌 무엇인가가 있었다. 그 시를 지었을 때의 상황, 느낌, 생각 등이 시어에 녹아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생각과 느낌을 가지게 하는 매력이 있다. 제 삼자가 보았을 때는 또 다른 느낌과 생각을 가지게 한다. 아마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는 나 자신도 다르게 느끼고 다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점이 좋다. 시에 그림이 같이 곁들여지면 좋겠지만 아직 그림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시도 처음 싱글크라운 프렙할 때의 서투름이 두루 배어 있다. 그래도 기회가 된다
한 노숙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치아가 한 개도 없었지만 웃는 모습이 정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기증받은 빵 가운데 부드러운 부분만 골라 가져다주면 어찌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낮에는 노숙인 상담소 근처를 서성였는데, 믹스 커피 한잔을 타다 건네면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갓 대학생이 된 햇병아리 상담원의 인사를 처음으로 밝게 받아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와의 첫인사에 무슨 말을 했었나 정확히 떠올릴 수는 없지만, 그의 환한 미소가 잊히지 않습니다. 유난히도 춥던 어느 겨울날, 그는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상담원의 걱정에 감기가 걸렸다고 답하곤 힘없이 몸을 뉘었습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는 음수대 근처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행려자로 분류되어 일정 행정 절차를 거친 뒤 무연고 화장 처리되었습니다. 거리에서 경험한 첫 죽음은, 큰 죄책감과 트라우마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괴로워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죽음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괴로움은 화로 변했습니다. 신은 이미 화풀이의 대상으로 전락해서, 그에게 기도할 때면 육두문자가 섞이곤 했습니다. 하루하루 성장하여 6개월쯤 지나면 성인군자가 되어 이곳을 떠날 줄 알았
지난 11월 18, 19일 1박2일에 걸쳐 치협 대외협력위원회의 ‘닥터 자일리톨버스가 간다.’ 지방 의료봉사가 있었다. 대치 최치원 부회장, 김소현 자재 표준이사, 차순황 대외협력이사, 그리고 대외협력위원인 나까지 포함하여 4명의 의료진, 대치 남궁원차장, 허현정대리 등 지원인력, 그리고 진료보조인력 4명이 참여하여 규모가 꽤 큰 봉사가 되었는데 여기에 전라남도 윤헌식 총무이사와 오승석 사무국장까지 이틀에 걸쳐 합류하여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의료봉사 장소는 목포시 대양산단 옆에 위치한 소망 장애인 복지원이라는 곳으로 대양산단이 만들어지기 한참 전인 1996년에 설립되어 소망 자립센터, 소망 노인전문 요양원의 3개 시설을 운영하는 곳으로 2002년에 내가 유니트 체어를 기증하고 10년간 월 2회정도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다니다가 5년 전부터는 후배인 장성호 원장이 진료봉사를 다니는 곳이다. 얼마전에 시설이 대양산업단지 용지에 편입되어 바로옆으로 신축이전하면서 보담 하우스라는 중증 와상 환자 전문 요양 설까지 확충하여 4개의 시설을 가지고 있는 목포에서 규모가 꽤 큰 곳이다. 이번 봉사에서 차순황 대외협력이사가 발벗고 나서서 O사의 유니트 체어를 무상기증으로 받
우리는 자라오면서 각자 많은 꿈을 꾸었을 것이다. 어떤 꿈은 오랫동안 간직됐을 것이고, 어떤 것은 그냥 재미있는 상상으로 끝났고, 또 어떤 것은 눈물을 삼키며 접었던 상처로 남은 꿈도 있을 것이다. 어느덧 50대의 복판으로 와버린 나는 기성세대로 분류되고 꿈을 꾸기보다는 젊은이의 꿈을 재단하고 그들의 생각을 억압하는 일명 ‘꼰대’로 불리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었다고 꿈이 없을 리가 만무하고 100세 노인에게도 꿈을 물으면 분명 그만의 꿈을 말하리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대 간의 갈등을 부인하지 못할 현실적인 상황은 늘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다. 문화계의 블랙리스트는 지금도 언론에 나오고 있으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블랙리스트가 세대갈등과 꿈과 무슨 관계란 말인가? 궁금한 분도 있을 것이다. 블랙리스트는 권력을 가진 자가 만들 수 있는 것이고, 권력은 대부분의 젊은이에겐 아직 허락되지 않은 힘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은 기성세대에게 크다고 하겠다. 기성세대는 항상 젊은이에게 꿈을 가지라고 주문한다. 그러면서도 거기에 전제조건을 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게 상당히 모순관계라는 것이 문제점이다. ‘헤르만 헤세’는 전 세계에서 사랑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첫 기억은 이렇다. 5살 때 쯤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 혼자 나와 아파트 앞에서 뒤돌아 봤던 기억. 사실 이 기억이 왜 이렇게 강렬하게 남아있던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렇게 뒤돌아봤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막 20대 중반에서 후반에 접어든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내 기억 속에는 대학교,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보다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의 기억들이 더 많이 남아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는 추억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초등학교 입학식날 교과서와 공책을 따로 구분하지 못해 울었던 기억, 공부 보다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여기 저기 놀러다녔던 기억이 어릴 때 기억이라면 고등학교 때 나에게 남아있는 건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생활, 공부, 잠 이정도 수준이였고 매일 매일 똑같은 삶의 반복이였다. 이러한 차이는 아마도 나이가 들어갈수록 여유가 없어지고 바쁜 삶에 행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병원에 들어오고 나
아침잠을 깨우는 알람이 울리면, 가장 먼저 라디오를 켠다. 그 안에는 나보다 훨씬 먼저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사연들로 가득하다. 아침 일찍 도매 시장에서 싱싱한 야채와 생선을 사 오는 식당 주인, 고소한 향이 솔솔 나는 빵을 구워내는 제빵사, 만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들뜬 마음으로 출근을 하는 신입사원. 오늘 하루도 잘 지내보자는 각자의 희망과 작은 다짐들로 아침이 시작된다. 나는 거의 10년 간 텔레비전 없이 지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 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레 텔레비전을 가까이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것이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져 당연하게 되었다. 그 대신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선생님 눈을 피해 몰래 듣기 시작하던 라디오가 그 빈자리를 채워준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진행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같은 반 친한 친구가 사연을 보냈었다. 자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수능 파이팅 이런 내용이지 않았을까. 그 때 친한 친구들의 별명을 쭉 써서 보냈는데, 어쩌다보니 별명이 죄다 동물 이름이었다. 그걸 읽은 DJ가 ‘여긴 동물의 왕국이네요’라고 한 말을 두고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내 키득키득하며 즐거워
누군가가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좋은 일 많이 하니 천국행 티켓을 예약해서 좋겠다고. 나쁜 의도가 아니라 선한의지로 칭찬해주신 좋은 말이었는데 얼굴이 화끈거리면서 반감 같은 게 치솟았습니다. 제가 진료 가는 게 천당 가기 위해 하는 일 아닙니다. 그냥 거기에 힘든 사람이 있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러 가는 것이지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닙니다. 더군다나 진료를 미끼로 선교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랍니다. 사실 단독 개원의가 병원을 며칠씩 비우기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더군다나 추석 긴 연휴를 쉰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시 문을 닫게 되면 그 달 직원들 급여 주기도 빠듯하고 환자들도 떨어져 나가 향후 수입에도 큰 지장이 생기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진료 도구를 챙겨 비행기를 타는 이유는 나보다 훨씬 절박한 사람들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치통이라는 게 겪어본 분은 아시겠지만 참기가 참 힘든 고통입니다. 평생에 치과의사 한번 대하기 힘든 사람들은 그 아픈 마취주사를 신음 소리 한번 안 내고 참아 냅니다. 그리고 그 아픔에 눈물만 주루룩 흘러 내 보냅니다. 그 눈물을 보며 진료 팀도 다 같이 안쓰러워 함께 뭉클합니다. 이윽고 아픈 이가 빠져 나가면 또 고마
이탈리아에는 ‘친구를 찾은 자는 보물을 찾은 것과 같다(Whoever finds a friend finds a treasure)’라는 속담이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잘 설명하는 문장이다. 이탈리아 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가족만큼 친구 또한 소중한 존재이다. 친구란 서로 간에 신뢰, 충성, 열정, 이해, 용서와 감사가 있어야 한다. 우선 만남으로 시작해서 앞에서 언급한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세월이 흐르다 보면 비로서야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친구는 몇 명인가요? 나에게는 36년 지기 친구와 자랑스러운 친구이자 동창이 있어 이곳에 잠시 소개할까 한다. 내 친구 기아와 인연을 거슬러 올라가면 82년 탄생한 해태 타이거즈부터 시작된다. 비록 중간에 친구의 이름이 변경되었지만 36년 동안 여전히 우리의 우정은 굳건하다. 해태 타이거즈부터 기아 타이거즈까지 우승은 내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있었다. 83년 중3때 우승, 86년 고3때 우승, 89년 대학교 3학년 때 우승, 93년 인턴 때 우승, 96년 공보의 1년차 때 우승, 09년 개원의 9년차 때 우승 그리고 2017년 우승 등등. V11의 원동력은
전남 영암의 한 조용한 마을에서 개원하여, 10여년간 마을 어르신들의 구강건강을 나름 최선을 다해 관리하던 치과의사였습니다. 하지만 광주가 고향인 저는 광주로 올라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드디어 어느날 좋은 기회가 되어 광주의 새로 조성되는 아파트단지에 이전개원하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환자를 두고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환자를 관리한다는 것은 모험이었습니다. 특히 대도시는 아시다시피, 경쟁이 장난이 아니어서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사람이 모이는 곳, 즉 동호회 등을 가입하여 사람들과의 새롭고 넓은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즉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한 탁구…. “탁…타닥…탁,탁,탁…” 3층으로 들어서자, 바쁘게 타닥거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립니다. 요즈음은 탁구치는 사람을 거의 못봤는데, 이곳 탁구장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탁구장이 거의 보이지 않아, ‘요즘은 탁구는 별로 안치는 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치과의사들도 최근에는 골프에서 배드민턴, 탁구, 수영, 테니스 등의 다양한 운동으로 취미가 많이 바뀌어간다고
SRT를 타고 내려가는 오늘의 나의 목적지는 광주송정역이다. 주변 지인들 부모님들의 부고 소식에 장례식장에 가는 날이 많아지면서 문득 나의 부모님의 연세가 생각되었다. 팔순을 바라보시는 부모님! 급한 마음이 생겼고, 언제 내 곁을 떠나실 지 모르는 부모님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었다. 그래서 한가지 다짐한 건 아무리 바쁘더라도 가급적 한 달에 한번씩은 얼굴 뵈러 가자는 것이었다. 가끔 오프를 내어 아침에 가서 얼굴 뵈면서 점심을 같이 먹고 저녁에 올라오는 하루 일정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많이 익숙해졌고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배우기 시작한 게 카메라이다.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 ‘현재 가장 젊으신 부모님의 얼굴을 담아놔야지’ 하는 생각에. 두 분이 사시는 동네는 장성. KTX가 장성역에 정차할 때는 참 좋았는데. 아쉽긴 하지만 요즘은 SRT 수서역에서 출발하여 광주송정역으로 간다. 택시를 타고 점심 먹을 장소로 가서 함께 즐겁게 식사한다. 그리고 주변 커피숍에서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캬라멜 마키아토를 시켜 드린다. 그러면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른다. 세월과 삶이 담긴 부모님의 얼굴. 54년을 함께 살아오신 세월로 인해 서로를 향해 한없는 신
내가 은퇴 전 잠시 근무했던 S 의료원 가까운 곳에 “망우휴식공원(忘憂休息公園)”이 있다. 처음에‘휴식’이란 단어가 좀 의아스럽게 생각이 들었다. 공원이면 으례히 산책하고 휴식하는 곳인데 굳이‘휴식’이란 단어를 왜 넣었을까 궁금하였다. 알고 보니 우리 주위에 흔히 있는 일반 공원이 아니라 사자(死者)들의 영원한 휴식을 위해 만든 공간, 즉 공동묘지인 것이다. 행정당국이‘공동묘지’란 혐오단어(嫌惡單語)를 미화하여 붙여 넣은 것이다. 아마 유일하게 서울시내에 남아있는 공동묘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약 50년 전에는 성북구에 미아리와 용산구에 이태원에도 공동묘지가 있었는데 벌써 오래 전에 그곳은 모두 사라져 지금은 대단위 주택단지로 변해있어 지금은 모든 사람들이, 과거에 그곳이 공동묘지 자리였었는지도 모르고 있다. 기록에‘망우리공동묘지’는 1933년에 서울시가 당시에는 도심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야산에 설치한 것이였는데 80여년이 지난 오늘에는 도시 한 가운데(중랑구 망우동 산 51-1)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다시 망우리 지명(地名) 유래도 찾아봤더니 조선 태조 이성계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알았다. 1394년 이성계가 한양에 도읍지를 정하고 난 후, 무학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