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일 ‘프라하의 연인’과 별이 박힌 밤을 보다 민족의 명절 추석과 함께 전 국민이 처음으로 맛본 최장 열흘의 황금 같은 연휴를 맞아 우리 가족 5명은 9박10일의 동유럽 여행을 가기로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출발해 공항에 5시간 전에 도착하니 마침 인천공항에서 국악 공연을 열어서 진도아리랑이나 경기민요 등을 듣고 프랑크푸르트까지 10시간 40분 비행을 했다. 좁은 자리에서 아내는 잘 자는데 나는 영화 보는 것이 편해서 4편의 영화를 보고 나니 도착했다. 곧바로 3시간을 차로 이동해 잘레에 도착해 쉬고 난 뒤 아침 일찍 호텔에서 나와 딸과 동네를 보니 시골인데도 너무 아기자기하고 잘 꾸며진 선진국 독일의 아침 풍경이 인상 깊었다. 아침 식사 후 3시간 정도 움직여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으로 유명해진 체코의 수도 프라하로 향했다. 가는 길에 있는 보헤미안 지방은 인도 북서부에서 300년 전에 옮겨와 사는 집시가 산다. 남자들은 일을 안 하고 학교를 보내지 않고 일부다처제가 허용된다고 한다. 집시들은 손재주가 좋고 말을 잘 탔지만 유럽에서는 이들이 죄의식이 없이 소매치기를 많이 한다고 가이드가 주의를 준다. 프라하에 도착해 구시가지로 먼저 갔다. 그곳에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은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연꽃으로 장엄한 세계)의 교주로서 진리 그 자체를 인격화한 불신이다. 이는 ‘두루 비친다’는 뜻으로 미혹한 중생을 깨닫게 하는 진리의 빛인 것이다. 진리의 세계, 즉 부처님의 말씀만 있는 세계이다. 합천 해인사 팔만대장경 장경각 앞에 앉아 있는 불상도 비로자나불이다. 그래서 화엄종의 주불로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의상대사가 화엄십찰을 전 국토에 세워 화엄불국토를 만들기 위한 통일신라의 주 이념을 담은 불상이기도 했다. 소백산 봉우리 명칭이 연화봉, 비로봉이고 그 자락에 영주 부석사가 있다. 비로자나불은 경상도 지역 사찰에 많다. 철원 도피안사, 경주 불국사, 광주 증심사, 해남 은적사 등에 비로자나불이 있다. 비로자나불이 모셔져 있는 법당을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한다. ‘적(寂)’은 크나큰 선정이요, ‘광(光)’은 크나큰 지혜의 빛을 의미한다. 고요하게 앉아서 미혹함을 깨닫게 해주는 불빛은 부처님의 가르침이요, 부처님의 사자후인 것이다. 진리의 궁전 속에 함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깊은 선정과 지혜의 빛으로 깨어나야 한다는 것을 대적광전 편액이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보통 대적광전에
'가치 있는 목표를 향한 움직임은 개시하는 순간 당신의 성공은 시작 된다.’ -찰스 칼슨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는지 신경 쓰지 마라. 더 나은 당신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매일 당신의 기록을 깨뜨려라.’ -윌리엄 보엣커 ‘가장 훌륭한 일은 모험과 도전정신으로 이뤄진다.’ -윌리엄 맥나이트 ‘시작은 그 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플라톤 ‘꿈을 꿀 수 있다면 그 꿈을 실현 할 수도 있다.’-월트디즈니 ‘꿈을 품고 뭔가 할 수 있다면 그것을 시작하라.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용기 속에 당신의 정체성과 능력과 기적이 모두 숨어있다.’ -괴테 ‘흐름에 따라가지 말라. 흐름이 되라.’ -엘리프 샤팍 ‘세상에는 뛰어난 이념이란 없다. 성실한 결과만 있을 뿐이다.’ -마윈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조금의 변화는 아주 큰 도전일 수 있다. 무엇이든 시작이 참 어렵다. 혹시나 하는, 이것저것 걱정하는, 너무 잘하려는 욕심이 앞서서일까,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것들이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 같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현명한 자세는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내가 속한 곳에서 주인의식을 갖고 임하자’는 나의 신조에 맞게 나는 내가 소속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던 인턴 시절이었다. 공휴일에 당직을 서다가 동료가 잠시 자리를 비워 혼자 외래를 지키고 있었는데 웬 낯선 사람이 외래로 들어왔다. 공휴일이라 올 사람이 없었기에 어리둥절하던 와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갑자기 임시공휴일이 지정되는 바람에 약속이 변경된 줄 모르고 찾아온 환자였다. 환자 약속관리는 보통 데스크의 보조 인력들이 전담하던 일이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보겠다고 여기저기 전화를 했지만 별 수 없었고, 그 날 진료가 불가능 하다는 사실을 전하자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자 환자는 반말로 짜증 섞인 불만을 나에게 쏟아내었다. 적당히 죄송하다고 하고 좋게 마무리 되었으면 좋았으련만, 내 잘못이 아님에도 당직을 서고 있다는 죄로 욕을 먹고 있어야 하는 게 억울해서 욱 하는 마음에 한마디라도 한다는 게 “왜 자꾸 반말로 그러세요”라고 말을 끊었다. 순간 그 사람은 겸연쩍어 하며 존댓말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돌아갔지만, 그게 마무리 된 것이 아니라는 걸 다음 날에 알 수 있었다. 다음날은 종일 수술방에서 수술 어시스트를 하고 있었는데 오후 수술이 끝날 때 쯤 수술방으로 전화가 왔다. 어제의 그 환자가 찾아와 내 사과를 받기 전까지는
나는 치전원출신이라 치전원 입학 전에 4년간 일반 학부과정을 다녔었는데 내가 나온 학교는 대전의 한 공대였다. 원래 한참 꾸미고 다닐 나이인데다 당시 학교의 분위기상 자유롭고 독특한 복장을 한 학생들이 많았는데 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 당시 나의 외모에 대해 회고해보자면, 일단 머리는 어깨 밑까지 내려오게 장발로 길렀었고(참고로 필자는 남자임) 기본 노란색 염색에 당시 영화 ‘동감’의 유지태가 유행시킨 카키색 염색도 곧잘 하고 다녔었다. 그리고 목걸이는 물론이거니와 반지도 손가락 마다 다 끼우고 다녔고, 귀를 뚫기는 아플 거 같아 ‘귀찌’라고 하는 귀에 찝는 귀걸이도 한 귀에 2~3개씩 양쪽 귀 모두 끼우고 다녔었다. 또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지만 마치 소의 코뚜레처럼 코찌를 코에도 끼우고 다녔다. 이렇듯 화려하게 치장하고 다니던 나에게 이 모든 패션이 잘못 되었단 걸 깨닫게 해준 사건이 있었다. 공대의 특성상 남녀비율로 봤을 때 여학생의 수가 남학생에 비해 많이 적었는데 내가 나온 학교도 솔로인 남학생들이 학교 도처에 널리고 널렸었다. 햇살이 따사롭게 내리쬐던 어느 봄날 오후, 그 날도 귀걸이, 코걸이, 목걸이 등 몸에 붙일 수 있는 쇠붙이란 쇠붙이
필자가 훈련소에 있었을 때이다. 때는 바야흐로 마지막 4주차였다. 종교 행사로 기독교를 갔는데 마침 옆자리에 딱 봐도 금방 들어온 신입 훈련병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앉았다. 바싹 깎은 머리에,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슬픈 얼굴. 그에 반해 우리들은 곧 나간다는 환호에 차 있었다. 마침 목사님도 바로 앞에 앉은 우리와 옆 연대 사이의 큰 차이를 봤는지 말을 거셨다. “여기 계신 공보의 선생님들, 곧 나가시죠? 바로 옆에는 새로 들어오신 훈련병들이시군요. 바로 들어오신 분들과 곧 나가는 분들이 한자리에 앉으셨군요.” 목사님의 말씀에 다른 연대들이 수군거리더니 우렁차게 “GOP! GOP!”를 외쳤다. 훈련소에서 곧 나가는 연대가 있으면 이를 시기하는 다른 연대들이 ‘GOP에 배정이나 받으라’고 놀리는 신호였다. 하지만 목사님이 쐐기를 박는 발언을 하셨다. “GOP요? 공보의 선생님들도 GOP를 가시나요? 그렇죠? 네, 공보의 선생님들은 GOP를 가지 않습니다.” 이 말에 다른 연대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고 나는 박탈감을 느끼는 그들을 볼 수 있었다. 현재 훈련소를 나온 지 5개월 된 치과 공보의인 필자는 목사님의 말과 달리 GOP에 근무하는 공보의다. 필자의 보건
한참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다. 이름처럼 우아한 여자 우아진(배우 김희선 분)과 그녀처럼 되고자 안간힘을 쓰는 간병인 박복자(배우 김선아 분), 두 여성의 이야기. 아름답고 능력 있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래서 늘 여유있게 상대를 대하는 우아진은 여자가 봐도 멋있는, 그야말로 ‘품위있는 여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처럼’이라며 우아진을 삶의 목표로 삼고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박복자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누구나 ‘우아진’이고자 하지만, 누구나 그녀처럼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삶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재력과 학력과 능력의 삼박자를 고루 갖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갖춰야만 품위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이 드라마를 대하면서 나는 품위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사람이 갖춰야 하는 위엄과 기품, 그리고 고상함이란 대체 무엇일까? 박복자가 그러했듯 내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품위란 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내 주변에 품위있는 여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 아니 나조차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했다. 적어도 마티스와 칸딘스키를 논할 수 있고, 옷차림이 그럴싸하며,
2017년 2월 2일. 둘째 딸아이의 7번째 생일! 좋아하는 갈비를 사주기 위해 퇴근을 서둘렀다. 집으로 들어서는 순간 뭔가 느낌이… 딸들이 내 눈치를 살핀다. 뒤이어 퇴근한 남편도 심상치 않다. 큰 아이가 입을 열었다. “엄마, 로비에 강아지 봤어? 엄청 귀엽다. 내가 소시지도 사줬는데 진짜 잘 먹더라.” 아이의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하교 길에 강아지가 자기를 쫓아왔고, 동네 아이들 말로는 며칠 전부터 아파트 이곳저곳을 다니는 주인 없는 강아지란다. 마음 약한 큰 아이와 친구들은 상자와 담요로 집을 만들고, 용돈을 모아 소시지를 사 먹였다. 그리고, 털이 수북하게 길어서 ‘털털이’라고 부르기로 했고, “털털아~”하고 부르면 꼬리를 살랑거린단다. 털털이에게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 모두가 털털이 주인이 되길 원했지만 엄마들의 철벽방어로 모두 실패했다는… 털털이에 대한 긴 이야기를 끝내고, 털털이가 너무 가엽다고 울먹거리는 아이들. 일단 그 녀석을 만나야 했다. 큰 아이가 “털털아~”하고 큰 소리로 부르니 어디선가 나타난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손을 핥았다. 신기하고 귀여웠다. 길거리 생활을 얼마나 했는지 고약한 냄새와 함께 온몸은 털에 뒤덮여 있고 발톱도 엉망이었다
매년 겨울이 시작되면 너는 스마트폰의 날씨 앱(application)을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겨울 날씨는 변심한 애인의 마음처럼 변화무쌍하다. 기온이 영하 7℃ 이하로 내려가면 너는 퇴근 전에 7개의 세면대 중에서 안전하다 싶은 몇 개를 골라 물이 방울방울 떨어지도록 수도꼭지 손잡이를 미세하게 조절하느라 무척이나 애를 먹는다. ‘또로로록’ ‘또로록’ ‘또록’ ‘똑, 똑, 똑……’ 물이 방울져 세면대 바닥에 일정한 간격으로 굴러떨어질 때까지 수도꼭지 손잡이를 들었다 내리기를 무한 반복하는 것이다. 벌써 퇴근준비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직원들은 네가 나오기만을 아까부터 간절히 기대하고, 기다리고, 또 기도하고 있다. 너는 그런 직원들의 마음에 온통 신경이 쓰인다.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면 살필수록, 너는 세면대 앞을 쉬이 떠나지 못한다. 세면대 바닥 제일 깊은 곳에 동그란 휠 모양의 물막이 장치를 세로로 세워 놓고 물이 잘 흘러내려 가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도 너는 여전히 그 자리를 떠나지를 못한다. ‘혹시라도 물이 고여 넘치진 않을까’라며 수차례 머릿속으로 물이 내려가 하수관을 빠져나가는 시뮬레이션을 반복해본다. 이때쯤이면 광야에서 한 외치는 소리가
이상하게도 저는 바다를 참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바다를 항해하는 요트에 대한 로망이 어렸을때 부터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치과대학 입학 후 나중에 개업해서 돈을 벌면 요트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계속해왔었습니다. 개업 10년차 가 된 2015년 절위한 인센티브로 그 동안 조금씩 따로 모아두었던 자금을 요트구입에 과감하게 썼습니다. 이탈리아의 요트 전문회사인 Azimut(세계 유명 인사들이 소유하고 있는 최고급 요트회사)의 특정요트(물론 제일 작은 걸로)가 전시된 김포 요트 전시장에서 요트를 보고 한눈에 반했습니다. 그래서 주말마다 이 전시장에 가서 꼼꼼히 체크하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몇 번이고 확인하였습니다. 정말 눈에 아른거려서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돈입니다. 이런 전시장에 전시된 요트들은 기본적인 브로커 비용과 부가세, 기존 전시 임대비용까지 모두 소비자가 부담하여야 합니다. 그 비용이 실제 이탈리아에서 사는 비용과는 꽤 차이가 많이 났습니다. 결국 이탈리아 Azimut 회사에 직접 전화해서 아시아 브로커와 연결하여 새 요트를 직구를 하게 되었습니다. 큰 덩치로 인해 자동차 구입과는 달리 엄청난 연결비용과 중간 부대비용이 발생되었고 배송에
오늘 오후, 몹시 더웠지만 환자가 많았다. 약속을 하지 않고 온 환자는 많이 기다려야 했다. 흠흠~ 머리에 두건을 두른 여성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차트를 보니 30대 후반이었고, 2011년에 온 이후 처음이다.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뭔가 답답함을 하소연하는 그녀의 얘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원장님이 치료해주고 10여년 정도 아무 문제없이 좋았어요. 그런데, 작년 말에 뭐 먹다가 왼쪽 아래 어금니가 안 좋은 것을 느껴 집 가까운 곳(수도권)에서 치료를 했어요. 금으로 때웠는데 그 이후로 이상하게 불편한 거예요. 이가 안 맞는 것 같이 느껴지고, 잘 씹어지지도 않고… 그래서 그곳에 가서 얘기하고 치료를 3번 정도 했어요.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는데… (잠시 멈칫) 저에게 정신과치료를 해야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치아는 멀쩡한데, 이상하게 받아들이는 거라고.(중략) 또 마지막에는 치아에 금이 갔다고 했어요.” 그녀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주었고, 이것저것 관심있게 물어봤다. 그렇지만 대꾸를 쉽게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치료하지 않은 치아에 대해 진단하기도 어렵지만, 평을 하는 것은 더욱 조심스럽다. “그런데 제가 갑자기 지난달에 림프암 진단을 받아 항암치료를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