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진행되는 일들은 횟수가 거듭될수록 아주 특별한 이벤트 등 기억할 만한 일이 있지 않고서는 그저 일상과 특별히 다르지 않은 그런 날이 되어가고 있다. 결혼기념일, 생일, 명절 등등…. 일상에 유독 올해는 모든 것들이 특별해지고 있다. 아마 처음이 아니라 한사람을 보내는 마지막이라는 의미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미고 엄마가 되면서 아주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내게 선물해 주셨던 집처럼 최선을 다하고, 가족들이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이해하고 편안한 가정을 꾸려보고자 노력하였다. 아이들은 돌이 되기 전부터 우리 집 여행 역사의 구성원으로 편성되어 험난한 시절을 보냈다. 그 험난한 첫 나들이는 1월에 태어난 딸아이가 맞이했던 첫 번째 어린이 날이었다. 갓 백일을 지낸 딸에게 어린이날을 기념해 주고 싶은 아주 아주 초짜 부모는 사람은 많고, 볼거리는 별로 없는 복잡했던, 놀이동산 그것도 어린이날의 놀이동산을 찾아 갔다. 아마도 그날 딸은 먼지와 소음을 선물로 받았고 기억도 하지 못하겠지만 우리 부부는 너무 너무 뿌듯했다. “아! 우린 좋은 부모야. 어린이날 아이들이 좋아하
곤도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1년 일본 쯔루미 대학에 유학을 한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쯔루미 대학의 교정과 외래교수이셔서 장기 안정을 보이는 증례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셨으니까요. 교정치료한 환자를 30년, 40년씩이나 오랫동안 관찰을 하고 그렇게 긴 세월에도 좋은 교합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놀라웠습니다. 2005년 한국에 귀국을 하고 2007년에 선생님께서 장기 안정을 보이는 증례와 그 비결을 책으로 내셨다고 하셨습니다. 너무 감동적인 책이어서 한국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같이 알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여 한국어로 2008년에 번역을 하여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Muscle wins!의 교정치과임상, 2008년, 대한나래출판) 곤도선생님께서는 한국임상교정치과의사회의 초청으로 2007년에 한국에서 강의를 해주셨고, 외국의 연자를 두 번이나 초청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한국임상교정치과의사회에서 이례적으로 2009년에 한차례 더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강의를 할 때 제가 통역을 맡게 되면서 선생님과는 좀더 돈독한 사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2011년에는 곤도선생님의 초청으로 선생님 댁에서, 한국인으로 저와, 중국교정의사
나이들 수록 세월에 가속도가 붙는다고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이 많은 사람의 시계가 정말로 빨리 돌아가지는 않겠지요.^^ 세월이 빨리 지나가는 이유는 추억이 없거나 적기 때문이지요. 지난 1년을 뒤돌아 보세요. ‘내가 지난 1년 동안 무얼 했던가?’ 치과에서 열심히 진료하고, 가족과의 여행 한 두 번 말고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 분들은 지난 1년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있는 추억이 얼마 안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1년이라는 시간이 열흘 정도의 느낌일 것입니다. 반면에 즐거운 일, 슬픈 일, 가족과 함께한 캠핑에 폭풍우가 몰아쳐 밤새도록 텐트 붙잡고 있느라 고생했던 일, 재미난 도전, 가슴이 벅차고 등골이 쏴~~~ 했던 영화, 책, 음악 등, 수많은 추억을 가진 분들에겐 지난 1년을 채우고 있는 내용물이 많지요. 그래서 지난 1년을 회상하려면 한~~~~~참 걸리기 때문에 세월이 빠르다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특별했던 순간, 처음 그 일을 했을 때의 기분을 기억하기는 쉽지만, 일상을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처음 수평매복치를 발치하느라 고생했던 손목의 뻐근함, 처음 임플란트를 식립하는 날의 긴장감은 기억을 하지만, 열 번째, 100 번째의 시술
분노의 종류를 생각해 보자. 먼저 외부로부터 오는 분노가 있다. 즉 다른 사람이나 외부 상황, 형태에 따라 발생하는 분노다. 예를 들면 주차관계로 차창 앞에 전화번호를 놓았더니, 갑자기 “야!! 새끼야 차 빼!!”라는 문자가 왔다. 상대방은 당황하고 기분이 상해 받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한다. 그러면 소액결제라 해서 25만원이 통장에서 빠져 나가는 신종 보이시피싱이 있단다. | 이는 상대방에게 욕을 해 흥분시키고 화를 내게 해 돈을 편취하는 나쁜 방법이나 이는 외부로부터 오는 분노의 일종이다. 날씨도 외부요인의 분노이다. 끈적끈적한 장마철의 불쾌지수, 잔치 날, 소풍 가는 날에 비, 논바닥이 쩍쩍 갈라지는 가뭄, 지나친 폭설로 교통 두절, 심한 폭풍우로 해안가 도시 침수, 가옥 파괴 등등 날씨로 오는 분노도 적지 않다. 환자도 외부분노다. 환자가 외부분노가 되어서는 안된다. 의사는 모든 지식과 친절로 아픈 환자를 돌보고 치료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진상 환자는 외부분노다. 외부분노 중 사람으로부터 오는 예가 제일 많다. 이유 없이 나보다 먼저 승진하는 친구, 같이 낚시를 하는데 나만 못 잡고 옆에 사람만 많이 잡을 때. 응원하는 축구팀이 지고 있을 때-전쟁이
서울대 '치의학 도서관’은 일제시대 4년제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로 승격(1928. 04) 되면서 소공동 건물 4층에 도서실을 마련한 것이 효시라고 합니다. 해방 다음해인 1946년 8월에는 2,300 여권의 장서로 소규모로 시작하여 1963년 소공동 치대 내부시설을 수리하여 건평 52.4평의 열람실을 갖추었습니다. 1969. 12. 28일 연건동 치대 1층으로 이전한 이후부터 대폭적인 도서시설 확충이 이루어져, 1975년 4월에는 27종의 학술지와 5,539권의 도서를 보유하게 되었고, 건평 390평에 열람석 90석의 시설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75. 10. 4일 서울대학교 종합화 계획에 따라 연건동 캠퍼스의 치대, 의대 및 보건대 등의 도서실(관) 등은 서울대 도서관에 합병되고 장서 및 부대 기류 등이 편입되었는데, 치의학 도서관은 1976. 2. 18일 서울대 규정 780호에 의하여 도서관 분관규정 개정과 아울러 서울대학교 도서관 의학계 분관 (의학도서관)에 병합 되었습니다. 그 후 20년 후 서울대 학칙 개정(1995. 2. 15.)과 교육부의 인가로 치의학 도서관은 치대 본관 1, 2층 동쪽에 ‘치의학 분관’으로 재개관(1995. 5. 3.)되
시험기간마다 한번 보면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을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이 든다. 그럼 시험지를 받아도 백지상태로 머리가 멍해지는 일은 없을 텐데. 너무나 바쁜 아침 차열쇠를 어디다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온 집안을 무한궤도를 그리며 어지럽히지 않아도 되며 머리를 쥐어뜯지 않아도 될 텐데, 남자친구나 여자 친구와의 기념일을 깜빡해서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로 삐진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느라 전전긍긍하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과거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모두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증상을 과잉기억증후군(Hyperthymesia)이라 한다. 이 증후군은 작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며 종종 드라마, 문학 속에 다양하게 변주되어 등장해 왔다. 인생의 매순간을 기억하며 눈앞에 플레이 버튼을 누른 것처럼, 지금 순간의 일처럼 펼쳐지는 것이다. 물건을 다른 곳에 두었다 잊어버리는 일도 없고 중요한 할 일을 놓치는 경우도 없다. 그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을까? 4년전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순간에 숨은 멎으셨지만 바로 사라지지는 않았던 온기와 시간이 지나면서 차가워지던 몸의 촉감이 기억나지만 견딜 수 있는 건 매년 새해가 찾아오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영화로도 만들어 졌던 동화책, 마당을 나온 암탉. 양계장 암탉 잎싹은 매일 알을 낳고 품어보지도 못한 채 알을 잃는다. 1년 넘게 이런 생활에 지친 잎싹은 자유로운 세상과 알을 품어보는 소망을 가지게 되고 다 죽어가는 폐계가 되어 드디어 자유를 얻게 된다. 매일 족제비의 먹이가 되는 위협 속에서도 강인한 모성애로 족제비에게 엄마를 잃은 청둥오리 알을 품어 훌륭하게 키워낸다. 청둥오리 초록머리는 멋지게 성장하여 무리들과 함께 따뜻한 곳으로 먼 비행을 시작한다. 이제 늙은 잎싹은 족제비의 어린아이들을 위해 한끼 식사가 되어준다. 잎싹의 일생이 대견하고 슬프지만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이 시대 어머니들의 모성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현실 속의 닭은 어떤지…. 한국의 닭은 대부분 A4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서 햇볕도 보지 못한 채 사육되어 퍼붓는 항생제에도 30일 이상 생존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 제주도에서 환풍기 미작동으로 토종닭 842마리가 질식사 했다는 기사는 밀집사육의 단면을 보여준다. 매년 반복되는 AI와 구제역 그리고 매몰처분. 생매장 당하는 동물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고 계란 품귀현상, 고기 값 폭등만 연일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1헥타르(30
“선생님,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치과 하셨지요?” “예, 한 40년 했습니다.” “맞아요. 제가 내일이면 고희 칠십이니까요.” “그러면 이곳에서 한 35년 동안 계속 사신 거네요?” “네, 맞아요. 전에 선생님 집 옆에 살았잖아요. 지금도 생각이 나는데 선생님 어머님이 키가 작고 노인인데도 머리가 까맣던 거 같아요. 그리고 홀로 5남매를 기르시느라고 고생 많이 하셨다고 자주 말씀 하신 것 같아요.” “네, 기억을 잘 하시네요.” “사실 그때 내가 이혼을 하려고 했어요. 남편이 집안은 통 돌보지 않고 백수건달로 지내며 술만 먹고 빚만 지니 살아가기가 힘들고 괴로웠어요.” “그 때는 그런 일이 많았지요.” “그때 선생님 어머니 말씀이 ‘내가 30년 넘게 홀로 살면서 5남매를 기르다 보니 아무리 남편이 보잘 데 없고 무지랭이 같아도 남편이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게 나은 것 갔다’라고 하면서 가능하면 이혼을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이혼을 하지 않았지 뭐예요. 그 말씀 덕분에 지금은 3남매를 잘 키워 시집 장가 다 보내고 잘 살고 있어요. 남편도 이제는 건강도 좋아지고 생활력도 강해져 잘 살고 있지요. 가끔 그때를 생각하면 이 모두가 선생님의
나는 여행을 참 좋아한다. 하지만 군의관을 마치고 처음 치과의원을 개업했던 1986년까지 해외여행이라곤 꿈도 못 꾸었다. 개업 이듬해에 가까웠던 친구부부와 태국 파타야를 다녀온 것이 생애 첫 해외여행이었다. 물론 그 전에 고등학교 수학여행지와 신혼여행지로 일종의 해외(?)인 제주도에 다녀온 적은 있었지만 말이다. 고등학생 때의 제주도 수학여행은 말 그대로 악몽이었다. 44년 전 어느 가을날이었다. 목포에서 제주를 왕래하던 여객선 ‘가야호’가 제주에서 목포로 돌아오던 중에 기관고장으로 동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마도 추자도 근해였던 것 같다. 600명이나 되는 우리 일행을 싣고 배는 정처 없이 섬 사이를 헤집으며 떠 다녔다. 몇 시간을 파도에 흔들리며 떠돌자 모두가 심한 뱃멀미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날이 어두워진 후 출동한 해군함정에 의해 다시 제주항으로 예인된 다음날 새벽녘까지 온통 공포와 고통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 아마도 ‘세월호’사건의 전주곡은 아니었나 싶다. 1987년의 첫 태국 해외여행 이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남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세계 곳곳을 두루 다녀왔다. 특히 ‘대한영상치의학회’를 따라 인도와 남아프리카 일대를 여행한 것이
지난주 저녁식사 자리에서 갑작스럽게 마감 기한과 함께 예상치 못한 원고 작성을 부탁받고 어떤 글을 써야할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공보의 생활에 대해 편하게 수필을 작성하면 된다는 주문이었지만, 맡고 있는 직책상 오히려 공보의 생활에 대해 적어나가다가 너무 진지해질 가능성만 높아지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편하게 써내려갈 주제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던 중 주변에 굴러다니는 공들이 눈에 들어왔다. 30여년 전 이족보행을 시작한 이래로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하던 여러 종류의 공들. 이거라면 마음 편히 글을 쭉 써내려갈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재미를 붙인 종목은 야구였다. 야구를 하기에 다소 어린 나이였지만, 동네 놀이터에서 직접 파울라인과 베이스를 그려가며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들과 야구를 했다. 그 시절 일기장을 보면 매일같이 그날의 스코어와 기록을 분석해 놓은 것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꽤나 열정적으로 즐겼던 것은 분명한 듯하다. 그 덕분인지 학부 때 야구 동아리에 용병으로 초청되어 나쁘지 않은 타율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기교육의 중요성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농구와 축구로 종목이 변경되었다. 몸이 성장하
요즘 나의 최대 천적은 4살배기, 1살배기 두 조카다. 이미 가족 내 서열을 나름대로 정한 두 녀석에게 있어, 이모란 언제든지 “놀자”고 하면 반드시 놀이에 참여해야 하는 ‘부하’같은 존재이고, 자기는 맛이 없어 먹지 않는 반찬도 나이와 건강을 생각해 반드시 먹게 해야 하는 ‘막내 동생’같은 존재이며(요즘 4살 조카에게 제일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이모, 꼭꼭 씹어서 다 먹어”이다),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뚝딱 앞에 대령해야 하는 ‘백화점’같은 존재이다. 결론적으로 서열 꼴찌라는 얘기다. 최고의 VIP, 상전 중의 상전인 조카님들은 내가 본 사람들 중에 제일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자고 싶을 때는 주변 상황이 어떠하건 반드시 자야 하고, 먹고 싶을 때는 반드시 먹어야 하며, 식탁 위건 침대 위건 오르고 싶은 곳은 반드시 올라야 한다. 또 그것이 뜨겁건 차갑건 만지고 싶은 것은 반드시 만져야 한다. 자고 싶을 때는 불을 꺼라, 조용히 하라며 꼼짝 못하게 하다가, 주말에 늦잠이라도 자려 하면 몇 시가 되었건 “놀아야 하니 일어나”라며 잡아끄니 미칠 노릇이다. 어쩜 저만 생각하고 그렇게 이기적인지, 얄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사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