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길림성 연길에서 대표원장으로 진료를 하고 계시는 지인으로부터 초청을 받아 중국치과에서 강의를 하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었다. 직원들 대상으로 부탁을 하셔서 “중국어 못 하는데요”라고 했더니 거의 조선족과 한족인데 한국말로 해도 다 알아듣는다고…. 2시간 정도의 비행시간으로 연길 공항에 도착했다. 대국이라고는 하나 우리나라 지방 공항보다도 작은 규모였고 도시 분위기도 한글간판으로 중국이 아닌 지방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마중 나온 직원의 차로 병원에 도착하여 그룹 대표님과 인사를 나누고 병원 경영을 맡아 운영하시는 원장님과 긴 시간의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이나 중국.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은 듯 고민도 별반 다르지 않고 직원들 이직률과 주인의식이다. 그래서 첫 번째 강의 주제는 뚜렷한 직업의식과 비전을 갖게 하기 위해 필자의 한 치과에서 26년간 근속하면서 느꼈던 것과 경험들, 그리고 한국치과의 문화를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고, 두 번째 강의는 외부에 다른 치과도 함께 들을 수 있게 배려해 주셔서 상담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국의 치과 구조는 우리나라 시스템과는 좀 다르게 치료와 상담, 환자관리 등 모
올해도 어김 없이 봄이 왔습니다. 올 봄은 정말로 많이 기다려진 봄입니다. 워낙 어둡고 답답한 겨울이 길었기 때문이겠지요. 혹시 이런 제목의 글이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봄은 다시 온다.” 어릴 적에는 누구나 꿈을 꾸며 지냅니다. 꿈도 거창하게 ‘대통령이 되어서 이 세상을 한번 휘어 잡고 싶다’라는 거대한 꿈도 꿔 봅니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지만, 꿈을 꾼다는 것처럼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꿈이 있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도전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꿈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만, 수 천 년의 인류의 역사 속에서 셀 수 없이 무너진 꿈들이 있었을 텐데, 사람들은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도 꿈을 꾸며 삽니다. 참 묘한 것이 인생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수년 전, 보스턴의 하버드대학을 견학한 적이 있습니다. 에듀베리 교육연구소의 조우석 소장이 유학중이었는데, 그의 안내를 받으며 그렇게 가고 싶었던 대학을 한 번 둘러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것이 저의 머리 속에 가득했던 이유는, 저도 더 행복해지고
동무동무 씨동무 이야깃길로 가아자 옛날 옛날 옛적에 간날 간날 간적에 아기자기 재미나는 이야깃길로 가아자 박목월 시인의 이야깃길 이라는 동시다. 어릴 때 많이 불렀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인가 이 ‘동무’란 말이 남한에서는 사라졌다. 아마 해방 후 북한에서 김일성이 집권하면서 영어의 comrade란 말을 순우리말로 동무라 하면서 쓰니까 공산당 말로 인식되어 남한에서는 안쓰지 않았나 생각된다. 공산주의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뜻에서 동무란 말을 쓰는 것 같은데 실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북한이 그 예이다. 그 대신 현재 남한에서는 한자어인 친구, 순우리말인 벗 등이 많이 쓰여진다. 그러나 순우리말인 동무란 말은 해방전 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많이 쓰여왔다. 가곡 동무생각, 고향생각, 가고파 등에서도 동무라는 단어가 나온다. 그리고 5·16후 내가 어릴 땐 동무란 말을 쓰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간첩이라고 순경이 잡아가는 줄 알았다. 동무가 곧 공산당으로 인식되는 시절이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가면서 서서히 순우리말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여러 순우리말을 찾아보고 알아보았다. 그러다가 동무란 말이 참 정다운 순우리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동무라는
얼마 전 제 모교의 2017년 신입생 선발에서 일차 지원자가 정원보다 적은 미달사태가 발생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사정이야 있겠지만, 어찌 되었건 치과 대학의 인기가 많이 줄었다라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관찰되어 왔다고 들었습니다. 치과 대학이 학생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없는 과가 된지 오래라고 합니다. 제 주변에 물어보아도 치과의사가 직업으로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드문 듯 합니다. 본인은 그럭저럭 만족하고 산다는 친구들도 자식을 치과의사 시키기는 싫다고 합니다. 저희 때에는 부모가 치과의사인 친구들이 꽤 있는데 그에 비하면 치과의사로 살기가 분명 어려워진 거 같습니다. 치과의사가 직업으로서 좋지 못한 이유를 물어 보면 대체로 대답은 비슷합니다. 치과의사의 공급 과잉으로 인한 빡빡한 개원 환경을 그 이유로 제일 많이 듭니다. 주변에 치과가 워낙 많고, 저수가와 과잉경쟁 등으로 인해 동네 치과의사로 살아 남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치료를 하는 의사의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개인 사업자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점을 듭니다. 진료를 마치면 세무, 회계, 노무 등의 해야 할 일이
오늘도 진료실에 들어서면서 계단을 밟았다. 아마도 하루에 한 번 이상은 계단을 밟지 않을까 싶다. 일상에서의 계단은 그저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에서 위로 공간적 이동에 필요한 수단일 것이다. 물론 우리의 생활 동선을 따라가 보면 수직적 계단 이외에도 수평적 계단도 있겠다. 나는 휘감아 도는 계단을 상상하고 어지럼증을 느낄 때도 있고 엉키고 뒤틀린 계단이 눈앞에서 떠오르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계단은 여러 가지 색깔을 입은 채로 하늘에서 쏟아지기도 하고 빙빙 돌기도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끝도 없이 이어지고 이어진 계단의 이미지도 떠오르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혼란스러운 계단이 눈앞에 펼쳐지기도 한다. 붉은색으로, 푸른색으로, 또는 색동옷을 입은 것처럼 하늘에서, 구름에서, 연처럼, 면류관처럼, 땅에서, 똬리를 튼 뱀처럼, 자갈밭처럼,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자궁 속처럼 계단이 나타난다. 환각의 상태다. 환각의 계단들은 정열로, 슬픔으로, 기쁨으로 다가온다. 혼돈이다. 참 모호하고 애매함을 계단이 갖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한 모습을 드러낸 계단이 아니고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다. 그것은 물론 나의 머릿속의 계단의 이미지가 복합적인 구
작년에 환갑이 지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젊어서는 생각지도 않게 좋은 점들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이가 들다보니, 기억력이 떨어져 가슴에 대못이 박혔던 그 쓰디쓴 고통조차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더 편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는 어귀가 마음에 절절이 와 닿는다. 쇠락해져가는 기억력을 한탄하며 가슴 아파 한 적도 있었으니 이제는 기억이 안 나면 필요 없는 것이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고 만다. 내게 나쁜 짓하고, 못된 짓 하고, 가슴에 상처를 준 사람들조차도 잊혀져 오히려 편하다. 나이가 들다보니, 술이 약해졌다. 취한 후 기분에 술집 바꿔 가며 밤새 마셨던 술이건만, 요즈음은 취하면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돌아다닐 기분도 나지 않아 빨리 집으로 갈 생각만 한다. 술을 마시면 다음날 일하는게 너무 힘들다는 것이 머릿속에 각인되어서 취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이기심이 발동한다. 다음날 술이 깬다해도 그 후유증이 사흘은 간다. 정신집중이 안되어 일이 힘들어지다 보니 술 생각이 자꾸 사라진다. 남들이 일생 마실 술을 40대까지 이미 다 마셔버린 듯하고, 담배도 20대부터 30대 중반까지 하루에 두 세갑 피워댔고 남들이 일생 피울 정
나는 따뜻한 남쪽 부산에서 수련생활을 하고 있는 전공의이다. 고향이 부산이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는 강원도 소재의 유일한 치과대학,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이다. 우리나라 지도의 저 먼 아래쪽 끝 부산에서 20년간 살아온 나에게 강원도는 실로 미지의 땅이었다. 사실 면접을 볼 때만 해도 그냥 여행 삼아 가 보자는 생각으로 갔는데, 어쩌다 보니 합격을 하게 되었고 많은 고민 끝에 결정하여 이곳 강원도에서 길고도 짧은 6년간의 학교생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굉장히 낯설었다. 날짜가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개강 첫날인 3월 초였을 것이다. 대운동장에서 입학식을 하는데, 어느 순간 스르르 눈발이 날리더니 30분도 안 되어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이는 것이었다. 눈이 잘 오지도 않을뿐더러, 눈이 내리더라도 가루처럼 풀풀 날리면서 땅에 닿자마자 녹는 장면만 익숙하게 봐 왔던 나에게 이는 실로 충격적인 경험이었기에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이때까지 지내왔던 따뜻한 나라와는 정말로 다르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눈 얘기를 할 것이 참 많다. 학교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태백산맥 줄기의 정상 근처에는 5월까지도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는데, 우리
봄꽃 중에 목련을 가장 좋아한다. 목련 중에서도 새하얀 백목련이 좋다. 매끈한 목련의 꽃잎이 치과의사들의 흰 가운을 연상시켜서만은 아니다.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고 꽃망울을 터뜨려 고귀함을 자랑하는 목련은 마치 힘겨운 학생 시절을 이겨내고 세상에 나온 새내기 의사들을 많이 닮았다. 카빙, 넘버링, 토마스 실습(모형 마네킹 이름), 임상 실습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학생 시절 겪은 일들 가운데 가장 힘들었던 것은 국가고시 준비였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인내의 결정체이기 때문에 목련이 더 아름답게 보이듯, 쉽지 않았던 4년의 여정을 마친 후 받은 치과의사 면허는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막상 ‘원내생’이라는 타이틀을 벗고 ‘새내기 치과의사’가 되니, 내가 준비가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눈이 녹지 않아도 봄을 맞이하는 목련처럼, 아직 준비가 덜 되었는데 세상에 툭 튀어나온 기분이다. 치과대학 입학 당시에는 4년이 지나면 존경하는 선배님들처럼 멋진 치과의사가 되어 있으리라 꿈꾸었다. 일단 졸업만 한다면 정말 멋진 치과의사가 되어 크라운 프렙도 완벽하게 하고 진단도 척척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졸업 후 면허를 받은 내 모습은
몸에 부치는 큰 대야를 이고 짠 젓갈 냄새를 풍기며 “새우젓 사세요” “새우젓 사세요”하며 골목을 누비는 당신이 싫었습니다. 남보다 못 사는 나의 모습이 당신의 무능 때문이라고 생각 했지요. “홀 엄마”라는 말이 난 싫었어요. 나도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습니다. 딴 엄마들처럼 울 엄마도 개가를 해서 고생을 하지 않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했지요. 빨랫골 뒷산에서 나무하다 낫에 발등을 찍혔을때 당신의 당황하는 모습을 저는 보았지요. 그렇게 사달라고 졸라도 사주지 않던 풀빵을 두 개씩이나 사 주셨지요. 왜 당신이 그렇게 했는지 그 때는 몰랐어요. 오이지를 하겠다고 사온 끝물 오이 반접을 무심결에 먹어 버린 나를 얼마나 부지깽이로 때렸는지 아세요? 나는 그 때 많이 울었어요. 매가 아파서가 아니라 오이 반접보다도 못한 내가 서러워서 그랬답니다. 중학교에 합격하였을때 중국집에서 처음 먹어보는 울면을 두 그릇이나 먹어도 아무 말 하지 않은 당신이 이상했어요. 왜 시험때만 되면 당신은 쪽머리를 감아 예민한 나의 신경을 건드셨나요? 시험을 잘 보게 천지신명께 당신은 지성을 드렸다고 하지만 주르륵주르륵 머리 감는 소리는 당신을 더욱 밉게 만들었어요. 당신은 내가 공
하염없이 내리는 가을비의 느낌과 소리를 마음에 담으며 어떤 에너지에 이끌려 긁적여 본다. 저기압의 영향으로 비가 내리지만 내 마음의 비도 깊은 상념으로 승화되어 내가 좋아하는 대금음악과 명상음악이 어우려져 나만의 아우라에 휩싸여 나도 몰래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 집 거실의 탁자에는 항상 “맑고 향기롭게” 재단에서 매달 보내 주시는 귀한 책자가 매일 나를 반기고 있다. 거참! 생각할수록 고마운 일이다. 조금은 초라해 보이는 얇은 책이지만 이 녀석을 대할 때마다 마음이 포근하고 따뜻해진다. 마치 법정께서 그윽한 염화미소의 눈길로 내려다보듯이.... 분량이 많지 않아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무엇보다도 지혜의 말씀인 법정스님의 글이 있고 맑고 향기로운 내용의 글들.... 이 세상에서 “맑고 향기롭게”보다 맑고 향기로운 단어와 문장은 없으리라! 마치 우주의 언어와 같이 나를 투명하게 받혀주고 있으며 맑고 향기롭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온갖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지식으로 버무려진 책이 나를 이리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겠는가? 현재의 나를 볼 수 있게 하고 나를 어루만지는 것은 단연 “맑고 향기롭게” 책자이다. 매달 나도 몰래 기다려지는 편지이다. 지금의 집사람과
지난 3월 6일 제주특별자치도치과의사회 회관에서 제30대 대한치과의사협회 회장단 후보자 정견발표회가 전국에서 최초로 열렸다. 후보들 중 김철수 후보와 이상훈 후보는 3년 전 제29대 회장 선거에도 나오셨던 후보자들이었다. 벌써 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지만 열정적이고 의지가 강한 멋진 분들을 다시 만나 뵙게 되어 반가웠다. 1992년 4월에 제주시에 개업했으니 올해로 벌써 개원 26년차가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감소해서 그런지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로인해 젊었을 때보다 치과진료나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으로 느껴져서 치과의사로서의 삶을 더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요인이 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번 제 30대 회장선거는 대한치과의사협회 창립 후 최초로 시행되는 직선제 선거여서 회원들에게 더욱 의미가 있고 또한 출마한 후보자들의 투명함과 열정, 의지 등이 넘쳐서 정견 발표를 보는 내내 회원으로서 행복한 마음이 들었다. 제주도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한라산과 성산일출봉에서의 해돋이가 유명하다. 하지만 50대 중반에 들어선 나에겐 유네스코 세계지질 트레일에 등재된 차귀도 앞바다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