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이다, 촛불 집회다 하며 지난 겨울 인간사는 답답하고 어수선하였지만 앙상한 겨울 가지 사이로 어김없이 봄 소식이 들려 온다. 무성하고 화려했던 나뭇잎들 다 떨어 뜨리고 한 겨울 내내 벌거벗은 몸으로, 비우고 비운 마음으로 모진 바람도 매서운 추위도 수치와 분노도 다 받아 들이고 감당한 모습! 그 다져진 인내로 새 봄 새 생명의 교향악을 준비하고 있는 겨울 나무들 겨울 산들을 본다. 우리 인간은 어떤가? 자기중심을 버리고 욕심을 비운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나의 입장을 비우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참으로 쉽지않다. 상대의 입장까지 생각이 미치더라도 그렇게 하면 내가 바보가 되고 손해를 본다는 생각에 실천은 더 어렵다. 피를 나눈 부모, 자식, 형제간에도 그러한데 하물며 타인 간에야. 참된 부모가 되는 것도 쉽지 않고 참된 선생이 되는 것도 쉽지 않고 참된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것도 쉽지 않다. 대화의 단절 그로 인한 관계의 단절, 아집 속에 웅크리고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겨울 나무를 보면, 자연을 보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된다. 주어진 자리가 맘에 들든지 안 들든지 심겨진 그 자리를 온전히 받아 들이고 있는 힘껏
대부분의 남자가 그렇겠지만 마트나 백화점은 그리 구미가 당기는 장소는 아니다. 아내 손에 이끌려 마트를 돌아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려고 돌아다닌 시간이 4시간째를 넘어간다. “딱 한곳만… 딱 한곳만” 이라고 아내가 외친 것이 대략 10번? 몸 곳곳에서 이 곳을 빨리 떠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라고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아내는 아직 마지막 쇼핑을 마치지 않은 상태. 이미 4시간 지나가고 있는 시각이라 앞으로의 시간 따위는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다. 선물을 하려 어린이옷을 고르고 있는데 30대 어머니로 보이는 분과 5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 어린이가 보였다. 남자 애는 뭔가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이였고, 엄마는 거의 맥이 빠져 힘들어 하는 눈치였다. 대략 대화를 옆에서 들어 보니 집에 있는 비슷한 종류의 장난감을 아이가 골랐고 엄마는 집에 있으니 나중에 사준다는 게 줄거리. 초등학교 쯤 가야 대화가 통하겠지만 경험상 5살 난 어린이한테는 아직 그런 이해가 통하지 않는 것이 보통. 만약 아니라면 매우 성숙한 5살배기이거나. 둘이 냉랭한 분위기 조성된 지 오래된 것 같다. 뭐 대략 이런 스토리의 결말은 뻔하다. 엄마가 아들의 또 다른 좋은 장난감으로 흥정을 나서면 거의 1
한 노숙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치아가 한 개도 없었지만 웃는 모습이 정다운 사람이었습니다. 기증받은 빵 가운데 부드러운 부분만 골라 가져다주면 어찌나 고마워했는지 모릅니다. 낮에는 노숙인 상담소 근처를 서성였는데, 믹스 커피 한잔을 타다 건네면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좋아하던 사람입니다. 그는 갓 대학생이 된 햇병아리 상담원의 인사를 처음으로 밝게 받아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와의 첫인사에 무슨 말을 했었나 정확히 떠올릴 수는 없지만, 그의 환한 미소가 잊히지 않습니다. 유난히도 춥던 어느 겨울날, 그는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상담원의 걱정에 감기가 걸렸다고 답하곤 힘없이 몸을 뉘었습니다. 그것이 그와의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그는 음수대 근처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행려자로 분류되어 일정 행정 절차를 거친 뒤 무연고 화장 처리되었습니다. 거리에서 경험한 첫 죽음은, 큰 죄책감과 트라우마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괴로워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죽음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괴로움은 화로 변했습니다. 신은 이미 화풀이의 대상으로 전락해서, 그에게 기도할 때면 육두문자가 섞이곤 했습니다. 하루하루 성장하여 6개월쯤 지나면 성인군자가 되어 이곳을 떠날 줄 알았
지난 토요일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랜만에 들려오는 반가운 목소리, 그 주인공은 예전 직원이었다. 항상 그렇듯이 이런 저런 안부를 묻는다. 남편, 애들, 특히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 김태희 학교생활, 부모님 얘기와 酒님을 모시는 생활까지… 이야기는 쉴 새 없이 이어진다. 그러다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줬다. “원장님! 저 얼마 전에 취직했어요.” “정말? 잘했네. 좋은 재능을 썩히고 있는 것은 아깝지.” 취업배경과 상황을 이어서 얘기하다가 잠시 말이 끊기는가 싶더니… 이 친구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린다. “원장님….” 야가 뭔 얘기를 하려고 갑자기 분위기를 잡는다냐. 이런 애가 아닌데… 여러 생각이 스친다. 셋째 생긴 것을 말하려는 데 무안해서 그러나, 아니면 전주로 귀향한다는 얘긴가… 혹시나 안 좋은 얘기는 아니겠지. “정말 감사드려요.” 목소리에 약간의 긴장과 떨림이 전해온다. 헐~ 예기치 못한 상황이 어색하다. “새로운 곳에 취직하면서 꼭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약간 당황) 그래, 고맙네~” “나이가 들어 일하려니 힘들어요. 체력이 달려요. 호호~” 금세 목소리가 밝아진다. 예전에 내 앞에서 말 한마디 못하던 순댕이가 아니다. 흐흐~ ‘그래 이제
2010년 경 하버드 로스쿨 교수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원제 : JUSTICE)”를 통해 우리 사회에 정의론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적이 있다. Justice의 어원은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는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쥐고 있다. 저울은 개인간의 권리 관계에 대한 다툼을 공평하게 판단하는 것을, 칼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자에 대하여 국가권력이 제재를 가하는 것을, 눈을 안대로 가린 것은 사심 없이 공평한 자세를 갖는 것을 각 의미한다. 치과의사 면허를 취득한 이후 페이닥터도 해보았고, 치과대학 동기들이 개업해서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경험이 있는 변호사로서 유스티치아를 다시 한 번 자세히 들여다 보니 문득 ‘방패는 어디있지?’, ‘안대는 풀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만약 수사기관이 특정 개인의 문제점을 일일이 파헤치고 칼을 들이대기 시작하면, 적절하게 방어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업을 하면서 상식에 근거해서 결정한 수많은 행위들을 수사기관이 의심의 시각을 갖고 현미경처럼 일일이 들여다보고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미시적 판단을 내린 후
개업하고 아주 빠른 시기에 병원이 잘 됐습니다. 제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성과였죠. 이때도 물론 열심히 와인을 구입하고 마시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러다 병원이 조금씩 알려지면서 성형외과의 견제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동종 치과의 견제도 있었지만 그런 건 성형외과와 비교도 안 되는 수준 이었구요. 조금씩 환자가 줄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성형외과 분위기도 안 좋아지면서 전체적인 양악 경기도 안 좋아지게 되었죠. 심지어는 몇 달간 집에 생활비를 못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와인은 열심히 마셨습니다. 아주 몰상식한 가장의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달랐죠. 이마저도 하지 못하면 더 큰 불화가 닥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직장에서도 스트레스, 집에서도 스트레스. 이 것을 적절하게 해소하지 못한다면 환자를 볼 때도, 집에서도 모두 좋지 않은 형태로 분출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마음 고생하는 저를 위해서도 뭔가를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와 아내, 다른 가족을 위한 선물 말고 저 자신을 위한 선물. 병원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집에서 짜증을 내거나 직원들에게 잔소리 하는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럴 때 일
정상을 비정상으로 바꾸는 것이 비틂이다. 모양을 비틀면 형태가 달라지고 달라진 형태는 망가짐이나 새로운 창조를 통해서 무엇인가 분명히 달라진 새로운 혁신을 만든다. 일상을 부수며 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은 한길로 법도를 지키며 윤리를 존중하고 올곧게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궤도 이탈로 우리들의 지루한 삶에 신선한 탄력을 부여하는 변화를 갖자는 말일 것이다. 여행을 하는 것은 최고의 비틂의 하나이다. 경험을 통해서 머릿속에 수 많은 그림을 갖게 하고 각양 각색의 세계를 우리들 마음속에 수용케하는 대단한 학습이기 때문이다. 훌훌 털고 일어나 어디론가 출발을 하다보면 목적지에 간다는 선망도 중요하지만 출발전부터 설레임이 있다. 그 설레임부터 여행자의 마음은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상황속에서 매 순간의 감흥이 신선한 에너지를 얻게 되는 것이다. 여행을 함으로써 일상을 간단하게 비트는 것이지만 그 여행을 통해서 우리들 영혼의 풍성한 학습은 보이지 않는 재화가 되어 우리들 삶을 풍족하게 하는 것이다. 여행은 설렘으로 시작해서 설렘으로 끝이 난다. 매 순간마다 새롭고 미지에 대한 탐방과 모색과 발견의 수업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비틂을 최고의
나는 얼마전에 끝난 SBS 월화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를 애청했다. 평소 드라마를 챙겨보는 편도 아니고 그럴 시간도 없기 때문에 처음부터 시청하진 않았고 주말에 아내와 얼마전에 태어난 딸을 돌봐주면서 재방송으로 본 것이 정주행하게 만들어 본방사수는 못하더라도 재방송은 챙겨봤다. 대략적인 내용은 권위와 돈에 굴하지 않으며 최고의 의사가 되고자 하는 2명의 의사를 가르치는 천재 의사 김사부의 이야기를 그린 메디컬 드라마이다. 빠른 전개를 비롯해 사실적인 의학 장면과 무결점 연기 등으로 시청자들을 사로 잡고 있다. 주인공 김사부(한석규)의 경우 일반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라는 트리플보드를 달성한 국내 유일의 천재외과라는 설정은 좀 과하기는 하지만 시골 돌담병원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들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여기서 나오는 여러 명언이 있지만 제일 와 닿았던 것은 강동주가 돌담병원을 떠날려고 마음먹고 김사부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 “어느 쪽입니까? 좋은 의사? 최고의 의사?” 거기에 김사부는 “필요한 의사”라고 답변한다. 사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어떤 의사인가를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이었다. 돌고 돌아 뒤늦게 치전원 4년을 졸업하고 인턴, 레지던트를 숨
새해 들어 가장 먼저 본 연극이 ‘전화벨이 울린다’란 작품이다.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친절과 웃음을 노동의 수단으로 삼아야 하는 감정 노동자인 콜센터 상담원들의 이야기다. 전화 상담원 수진은 고객에게 표현해야 하는 감정과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 사이의 간극, 즉 감정 부조화 때문에 괴로워한다. 연기한다고 생각하면 된다는 유능한 선배 지은의 말을 듣고, 연극 배우 민규에게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다. 고객이 원하는 감정을 자신이 실제처럼 느끼고 ‘연기’하려는 노력이다. 수진은 연기 수업을 통해 가면 쓰는 법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어느 정도 자신감을 찾아간다. ‘연기’와 ‘감정 노동’, 두 단어가 나를 극장으로 이끌었다. 두 번의 개원을 경험하면서 스트레스를 이겨낼 돌파구로 찾았던 것이 연극이었기 때문이다.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경영과 소신 진료 사이의 갈등으로 혼란스럽던 첫 개원 때 처음 덴탈씨어터(연극을 사랑하는 치과인 모임)를 알게 되었다. 그러나 혼란을 극복 못하고 치과를 접으면서 덴탈씨어터와도 거리를 두게 되었다. 2년 조금 넘게 쉬는 동안 뉴질랜드의 한 작은 도시에서 여러 달을 머물렀다. 현지인들과의 교류가 조금씩 생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치과의
세계 여러 곳을 안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누비고 다닌 어느 가이드가 꼭 가볼만한 여행지로 네팔을 꼽는 걸 예전에 들은 적이 있다. 언젠가 꼭 가보려고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네팔. 그 곳을 이번에 병원 식구들과 가게 되다니. 기뻤다. 걷고 또 걷는 반복되는 동작속에서 일상속에 묻혀서 하기 힘들던 생각들을 정리하고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 수 있다고들 하는데 특히나 그 환경이 이 곳과는 너무나 다른 태초의 풍광속 이라면 좀 더 큰 생각들을 품어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았다. 히말라야 트레킹의 대표적인 코스로 푼힐(hill이라고 이름붙었지만 3000m가 넘는다고 한다)과 ABC가 있는데 신비로운 설산을 눈앞에서 보고 싶었기에 우리는 ABC로 일정을 잡았다. 병원 일정 조정 때문에 직항대신 경유를 통해 가느라 밤늦게서야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그 다음날 일찍 포카라로 가기 위해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했는데, 프로펠러로 돌아가는 정말 조그만 비행기를 보고 다들 꽤나 놀랐다. 그 좁고 흔들리는 기내에서 40분의 짧은 시간동안 커피를 나무스틱까지 챙겨 서빙해주는 승무원은 더 놀라웠지만 말이다. 창문밖으로 구름위로 솟은 설산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히말라야로 가고 있다는
저녁 모임이 있을 때 음주를 해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자가 운전이 익숙한 관계로 대중교통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운전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대중교통이 편하지 않냐는 얘기도 하지만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로 아마도 그 만큼 편한 것에 길들여져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하지만 의외의 변수는 일상생활에서 항상 존재한다. 잘 굴러다니던 애마가 속을 썩이더니 결국 몇일 정비소에 들어가 오랜만에 지하철을 이용하게 됐다. “간만에 지하철 여행이나 할까”라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타자마자 앉을 자리를 물색하는 내 모습을 보며 학생 때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빈자리가 보여도 앉지 않곤 했는데 “너도 나이가 들었구나”라는 생각을 문득했다. 나이 드신 어르신이 몇 분 지나간다. 그 분들께 자리를 양보해야 하지만 오래 가야 하는 관계로 딴 짓을 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들 저도 무릎이 좋지 않아서요.” 예전엔 사람들의 손에 신문 또는 책이 들려져 있었지만 핸드폰을 들고 있는 모습을 제외하면 오랜만에 탄 지하철의 풍경은 많이 변하지 않은 듯 했다. 여느 사람들처럼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던 찰라 내 자리 바로 옆에 낯이 익은 내 또래의 남자가 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