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게 동료 교무님의 권유로 경복궁 야간개방 관람을 가게 됐다. 십여년 전에 서울, 그것도 경복궁 주변에서 살때도 가지 않던 곳을 시간들여 공들여 가는 아이러니라니…원래 그 고장에 살때는 옆에 두고도 가지 않던 곳을 다른 지역에 가서야 애써 찾아오지들 않던가! 먹거리 볼거리가 많은 삼청동 골목을 거닐다 전에 가본 적이 있는 단팥죽집 앞을 지났다. 그냥 내부를 힐끗 들여다보며 지나치려는데 때마침 눈이 마주친 주인 할머니가 곧장 뛰쳐나와 화들짝 반가운 낯빛으로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니트 모자를 눌러쓴데다 자유복장이어서 내 신분을 알기 어려울텐데… 내가 사람을 잘 못 알아보는 데는 타고난 특기가 있긴 해도 정말로 처음 보는 얼굴 같아 순식간에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당황하긴 그쪽도 마찬가지, 사람을 잘못 보신 것이다. 아시는 모 교수님의 사모님과 너무 닮아 착각했단다. 말하자면 우린 서로 모르는 사이이다! 멈춘김에 들어가 팥죽 한그릇을 주문하고 계산을 하려는데 한사코 손을 물리며 돈 받기를 사양하신다. 이 가게가 왜 문전성시를 이루는지 그 비밀이 읽혀져 마음이 훈훈했다. 무엇보다 그집 이름이 명물이다. ‘서울서 둘째로 잘하는집!’ 이토록 여유로운 상호가 또
중독이 무엇인지를 요즘 확실히 경험하고 산다. 벌써 6개월째다. 지인에게서 구피라는 아주 조그마한 열대어를 선물받은 후 일어난 현상이다. 다 자라봐야 손가락 한마디 남짓한 크기에 치마처럼 화려한 꼬리를 가진 구피는 보고 있어도 보고싶은 애틋한 대상이다. 길을 걷다 멈춰있던 자동차의 출발하는 모습에서 구피의 움직임을 연상하는 일은 다반사다. 같은 자세로 오랜 시간 관람한 대가로 어깨가 안 움직여 한의원을 찾아 침 맛을 봐야 했던 일, 너무 안력을 써서 들여다보는 바람에 눈이 뻑뻑하여 안과를 찾았던 일 등 웃지못할 중독의 후유증들을 맛보아 왔다. 우리집 구피들은 깨어있는 동안은 한시도 가만히 있질 않고 뭐 대단한 일이라도 하는양 분주히 움직인다. 그래봤자 행동패턴은 몇 안된다. 먹고 연애하고 싸우고 자는 일이다.먹이반응은 신기하고도 재미가 있다. 배가 부르면 누가 지나가든 아무 관심도 없다가 배고플 시간쯤 되면 앞을 지나다니기가 미안할 정도로 이리저리 내 눈치를 보며 모여든다. 내 위대한 존재감이 빛을 발하는 유일한 순간이라 일부러 왔다갔다 장난을 쳐보기도 한다. 이들의 연애는 도가 지나치리만치 삶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인기가 높은 암컷은 서너마리의 수컷이 몰
무엇인가 정리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마음이 드는 시기입니다. 주말이나 월말과는 다른 차원의 성찰이 연말에 주로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진짜 다른 사람이 되어보겠다고 연초에 작심한 조목들은 해마다 패배감만 더해놓고 멀어져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앞으로만 달리던 호흡을 늦추고 마음의 정리정돈을 해야할 시간입니다. 정리란, 불필요한 것들을 줄이거나 없애는 것입니다. 정돈이란, 흩어져 있는 것들을 제자리를 찾아 가지런히 둔다는 뜻입니다. 쓰레기는 정리해야지 정돈하지 않습니다. 주변 환경이나 일도 그렇지만, 특히 중요한 것은 마음의 정리정돈을 잘하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람은 마음의 정리정돈을 잘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있어 정리란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할 생각들, 감정들을 버리고 없애는 것이고, 정돈이란 제대로 정신차려 사는 것입니다. 정리해야 할 대표적인 마음이 누군가를 용서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마음에 원망이나 증오심을 품고 살 때 그 가장 큰 피해자가 자기 자신이란걸 우리는 잘 알면서도 바보같이 깜빡하고 삽니다. 나의 잘못이든 저쪽의 잘못이든 먼저 손내밀어 용서를 구하고 용서하는 사람은 약한 사람도, 자존심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가 참으
선물로 받은 다운점퍼가 거짓말 조금 보태 종이 한 장 든 것처럼 가볍다. 게다가 부드러운 촉감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고 품질도 좋아서 손이가는 애용 1순위다. 옷이건 신발이건 노트북이건 보다 더 가벼우면서 성능은 최고로 만드는 것이 각 업체들의 화두다. 초경량 고성능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초경량 마음은 곧 고성능과 직결된다. 행복과 불행의 결정적 요인이 마음의 무게다. 최대한 비우고 가벼워야 행복하고 능력있고 자유롭게 된다. 마음속에 넣고 다니는 불필요한 것들을 빨리 비우는 사람이 초경량의 마음을 갖게 된다. 걱정, 섭섭, 고민, 미움, 질투, 불안, 자만, 자책 등이 마음을 무겁게 하며 능력을 저하시킨다. 마음을 초경량 최고성능이 되게 하려면 화나고 불쾌하게 하는 상황에 바로 응하지 말고 일단 숨을 돌려 틈을 만드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고싶은 말을 하지 못해 후회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을때 더 오래 후회하게 된다. 바로 대응하지 않으면 공간이 생기고 차츰 상황이 가벼워진다. 고승들, 위인들은 유머의 달인들이기도 하다. 유머는 모든 심각한 것들을 가볍게 해체시키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