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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친구 (제888번째 이야기)

설을 쇠러 광주에 온 깨복쟁이 친구와 함께 소주잔을 기울였다. 오래 전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미국에 조기유학을 갔다면서 이제야 얘기를 꺼냈다. 왜 일찍 유학을 보냈냐고 했더니 본인이 원해서 갔다는 것과 할머니는 극구 반대 하셨지만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 보냈는데 아주 열심히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또한 빨리 그 나라의 문화를 습득하고 영어를 우리 한국말처럼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일찍 보냈다고 했다. 아버지와 엄마의 강요는 절대로 없었다는 강조와 함께.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전에 보지 못했던 느낌을 그 친구얼굴에서 볼 수 있었다. 옛날의 친구가 아닌. 뭔고 하니 자부심, 긍지, 과시 같은 그런 모습이였다. 내가 조기유학 자체를 모두 부정하거나 반대한 것은 아니지만 꼭 하고싶은 한 마디가 (속으로만) 시험보고 간 학교도 아니지 않느냐고 하고 싶었지만 꾹 참기로 했다. 피차 비슷했지만 어렸을 때 그 친구는 더 가난하여 시골에서 통학을 했으며 대학 때는 다른 친구 자취방에 얹혀 살면서 모 기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고 그 대가로 약 10년 이상 봉사해주는 조건으로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하게 되는 악 조건이었다. 하지만 워낙 성실하기 때문에 늦깍이 공부를 했어도 국가에서 자격증을 주는 시험에 합격 하였다. 지금은 재력이 좋아져 아들 뒷바라지 하는데 문제가 없으며 그곳에 단독주택을 얼마에 임대했다거나 학자금이 비싸기는 하지만 학생들과 잘 어울려 굉장히 만족하면서 하버드 대학에 목표를 두고 있다고 했다. 그래 너만 개천에서 용난 줄 알았는데 아들도 잘 한다니 참 다행이다 싶었다. 술이 좀 더 취하자 묻지도 않은 자랑을 계속 했다. 꼭 돌팔이가 보철 잘 한다는 얘기로 들려 자리를 박차고 싶었지만 그래도 그 친구의 감정이 있어 웃는 얼굴로 계속 듣기로 했다. 워낙 가난하고 고생만 해서인지 자식은 그렇게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남다른 각오까지 베어 있었다. 대리만족(?)하는 느낌도 있었다. 대리만족은 곧 자식을 위한 것 같지만 뒤집어 보면 자신의 명예, 집안의 체면 때문에 혹시 유학을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부모와 자식간의 대화가 필요로 할 때, 또 고등학교라도 졸업을 해서 우리말을 제대로 익히고 대한민국의 역사가 뭔가를 알고 나서 보내도 늦지 않느냐고 했더니 날카로운 반격이 온다. 너는 지금도 촌놈이야 촌놈. 그렇게 늦게 보내면 뒤죽박죽 되어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어 오히려 안 보내는 게 나아. 조심스럽게 유학생들의 탈선에 대해 얘기하자마자 촌놈이 꼭 그런 것 만 보고, 너 진짜 촌놈이구먼하며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식은 절대로 술, 마약, 여자와는 거리가 아주 먼 착한 아들이며 어렸을 때 자신을 빼 닮아 별 문제가 없다고 했다. 결국 영어를 잘 배우려고,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별거 아닌 별거를 하면서 돈 만 버는 기계로 전락한 기러기 아빠가 되어 있었다. 학교생활을 즐기면서 인생이 뭔가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시험문제만 푸는 선수로 만들어버린 공교육, 왕따 문제 같은 이유로 결국 유학을 보내게 되지 않았나 자문해 보았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 유학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좋은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못하고있는 어른들, 사회에서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아빠, 유학 가 있는 자식, 영어를 잘 하는 자식, 중 상류층의 재력을 가진 친구야, 부러울 것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씁쓸한 뒷맛을 뒤로하며 헤어졌다. 불과 몇 일전, 술 한잔 거나하게 걸치고 그 친구에게 안부전화 했더니 야, 우리 마누라도 아들 뒷바라지하고 사설 연수원에 영어 공부하러 미국 간다면서 촌놈의 사고를 깨라는 소리에 뒤통수를 강하게 맞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최영욱 / 최영욱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