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최근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브랜드는 단연 메르세데스-벤츠다. ‘폭발성장’이라는 단어를 쓸 수밖에 없을 만큼 엄청난 성과를 거두며 업계 1위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4년간의 성적이 인상적이다. 2013년 2만4,780대에 불과했던 판매량이 2017년 6만8,861대로 수직 상승했다. 이제 벤츠에게 한국은 중국,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에 이어 6번째로 큰 시장이다. 인구 2배, 경제 규모(GDP) 3배가 넘는 일본도 제쳤다.
벤츠가 이런 엄청난 성장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차종 다양화와 시장 친화적인 상품 구성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심에는 바로 데뷔와 함께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E-클래스가 있다. E-클래스는 2017년 벤츠 국내 판매량의 절반에 가까운 3만2,653대가 팔려나갔다.
이번 E-클래스는 5세대다. 2016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첫 선을 보였고 국내에는 같은 해 6월 데뷔했다. 사실 이번 E-클래스는 국내 출시 이후 한동안 디자인 논란에 시달렸다. 앞서 등장한 S-클래스, C-클래스 등과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런 볼멘소리는 어느 순간 자취를 감췄다. 보면 볼수록 디테일과 균형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특히 우아한 비율과 매끈한 면 처리가 압권이다.
실내는 S-클래스의 축소판이다. 곡선이 너울진 대시보드와 이를 가로지르는 와이드 디스플레이, 그리고 4개의 원형 송풍구 등이 고스란히 겹친다. 품질 역시 S-클래스 수준. 각 장비와 패널을 빈틈없이 맞물린 후 까끌까끌한 질감의 우드 패널과 스티치를 곁들인 가죽 등 전통적인 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투입했다.
# 앞좌석 화려함 집중…공간도 넉넉
하지만 이런 화려함은 대부분 앞좌석에 집중되어 있다. 뒷좌석에 주로 앉는 S-클래스와는 달리, 오너가 직접 운전대를 잡는 비즈니스 세단인 까닭이다. 물론 공간이 넉넉하고 시트가 편안해 패밀리 세단으로서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성인 네 명이 장거리 여행을 떠나도 불만이 없을 정도. 트렁크도 골프백과 보스턴백을 각각 4개씩 삼킬 정도로 여유롭다.
시승한 모델은 E 300 4매틱. 최고 245마력, 37.7kg·m의 힘을 내는 직렬 4기통 2.0L 터보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를 맞물려 얹는다. 구형 E 300의 V6 3.5L 엔진이 252마력, 34.7kg·m를 냈으니 실린더 2개와 배기량 1.5L 가량을 덜어내 연비를(복합 10.3km/L) 높이면서도 출력과 토크는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한 셈이다. 참고로 벤츠가 E 300에 4기통 엔진을 사용한 건 세계적인 흐름 때문이다. 4기통은 날이 갈수록 빠듯해지는 환경규제에 대응하기에 가장 적합한 엔진으로 평가받고 있다. 벤츠 못지않게 고집 센 포르쉐와 BMW도 이제 4기통을 라인업의 핵심 엔진으로 사용하고 있다.
E 300의 4기통은 터보, 직분사 시스템, 가변 밸브, 다단 변속기 등 각종 첨단 기술로 무장한 최신형 엔진이다. 따라서 회전 감각과 가속 감각이 6기통 못지않게 활기차다. 큰 엔진에 누구보다 집착하던 벤츠가 큰맘 먹고 만든 ‘다운사이징’ 엔진이니 어련할까. 가속 페달을 한 번만 밟아보면 벤츠가 왜 이 차에 300이라는 숫자를 붙였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성능 역시 기존 6기통보다 뛰어나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6.3초)이 1.1초나 단축됐다는 사실이 좋은 예다. 엔진도 엔진이지만, 이런 결과에는 신형 9단 변속기도 한몫하고 있다. 신형 9단 변속기는 9개의 전진 기어와 민첩한 록업 클러치 등을 무기삼아 엔진의 힘을 바퀴에 빠르고 정확하게 전달한다.
핸들링 특성 역시 이전 E-클래스와 딴판이다. 과거 벤츠의 보수적인 색채가 말끔하게 사라졌다. 빠른 반응의 운전대와 균형 잡힌 서스펜션 덕분에 움직임이 아주 매끄럽다. 앞머리는 가볍게 돌아가며, 꽁무니는 이를 잽싸게 따라붙는다. 특히 승차감을 개선하며 주행 안정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 디자인, 성능, 효율, 장비 눈부셔
메르세데스-벤츠는 보통 신기술을 개발하면 우선 S-클래스를 통해 소개한 후, 이를 하위 모델에 점진적으로 도입한다. 가장 고급차이자 가장 중요한 모델에 대한 예우인 셈이다. 하지만 이번 E-클래스에는 S-클래스를 넘어서는 첨단 장비들이 적잖이 들어갔다. 앞 차를 따라 스스로 달리는 반자율주행 장비의 확장판인 드라이브 파일럿과 장애물을 더 정확하게 피할 수 있게 돕는 회피 조향 어시스트, 그리고 자동주차 장치인 파킹 파일럿과 측면 충돌시 탑승자를 가운데로 밀어 넣어 상해를 줄이는 프리세이프 임펄스 사이드 등이 대표적이다. 벤츠의 이런 전략은 E-클래스의 역할이 이전보다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E-클래스는 전통적으로 벤츠의 중형세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녀왔다. 세그먼트의 기준이자, 프리미엄 중형세단 시장의 진보를 이끄는 리더였다. 잘 팔리는 차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번 E-클래스는 디자인, 성능, 효율, 장비 등 모든 부분이 눈부시게 진화했다. E-클래스는 또 한 번 프리미엄 중형세단 시장의 수준을 끌어올렸다. E-클래스가 5세대까지 진화하며 쌓아온 위상이 흔들릴 일은 당분간 없어 보인다.
류 민(모터 트렌드 수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