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천고의 뒤에/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이육사, ‘광야’ 중에서)
김영진 대한치과의사문인회(이하 치문회) 회장이 이육사 시인의 ‘광야’와 ‘청포도’를 암송하자 한방에 옹기종기 둘러앉은 치과의사 문인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이를 시작으로 치과의사 문인들은 문학, 역사, 예술을 논하며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일본 대마도(쓰시마섬) 문학기행의 하이라이트였다.
치문회는 지난 6~7일 대마도 문학기행을 통해 회원 간 친목을 다지고 문학적 영감을 얻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문학기행에는 치문회 회원 9명이 참여했다.
치문회가 첫 해외 문학기행지로 택한 대마도는 부산에서 겨우 48.5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이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대마도는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선 조선통신사가 일본 본토에 닿기 전 거쳐 간 곳으로 유명하다. 조선이 일본 에도 막부 최고 권력자 쇼군에게 보낸 외교사절인 조선통신사는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1607년 부터 1811년까지 12차례에 걸쳐 일본에 건너갔다. 조선통신사의 기록물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이보다 앞선 1419년(세종 1년)에는 이종무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한 조선의 대규모 원정군이 대마도를 정벌한 사실이 역사에 기록돼 있다. 오랫동안 우리나라 연안 마을을 약탈하던 왜구의 노략질을 막기 위해 이들의 본거지인 대마도 정벌에 나선 것이다.
대마도에는 가슴 아픈 한국 근대사의 흔적도 남아있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쓰시마 번주 가문의 소 다케유키 백작과 정략 결혼하며 나라 잃은 서러움을 온몸으로 마주한 고종의 딸 덕혜옹주를 기리는 ‘덕혜옹주 결혼기념비’가 대표적이다. 치문회 회원들은 문학기행 첫째 날 이 기념비 앞에서 덕혜옹주의 애잔한 생애를 여행 가이드로부터 전해 들으며 옷깃을 여몄다.
이처럼 대마도에는 우리 역사와 선조의 숨결이 묻어 있는 유적들이 여럿 있어 일본 속 한국을 느끼게 했다.
문학기행 둘째 날에는 차를 타고 대마도 남쪽에서 북쪽으로 이동하며 주요 관광지를 둘러봤다. 일본 해군함대의 이동로로 쓰기 위해 만들어진 ‘만관교’, 아소만의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에보시타케 전망대’, 바다의 신을 모신 해궁과 용궁 전설로 유명한 ‘와타즈미 신사’, 대기 상태가 좋은 날에는 부산이 바라다보인다는 대마도 최북단에 위치한 ‘한국전망대’ 등이었다.
김영진 회장은 “치문회 사상 처음으로 문학기행을 해외로 오게 됐다. 이번 대마도 문학기행에 참여해준 여러 선후배 동료 치과의사 문인들에게 감사하다”며 “치문회는 앞으로 문학상을 제정해 젊은 치과의사 문인들을 새로 발굴하고 이들이 치문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더욱더 창작열을 불태울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