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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학 교실의 필요성

배광식 칼럼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은 무엇인가? 초등학생에게 질문하여도 쉽게 《직지》라는 답변이 나온다. 필자가 초중등생일 때는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최초의 금속활자를 발명하였다’고 배웠다.


《직지(直指)》로 약칭되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의 원제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鈔錄佛祖直指心體要節)》이다. 흔히 《불조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등으로 불리고 있다. 《직지심경(直指心經)》으로 부르는 경우도 있으나, 경은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책이고, 이 책은 조사(祖師)들의 법어(法語) 등을 모아놓은 책이므로 엄밀히 말해서 ‘경’이라 부를 수는 없다.


원제를 쉽게 풀이하면, “백운 경한(景閑) 스님이 뽑아 적은, 부처님과 조사들의 ‘마음의 본바탕을 직접 가리키는’ 요긴한 말들”이다.

 

프랑스 파리국립도서관 동양문헌실에 소장된 《직지》는, 1377(우왕 3)년 7월 청주목의 교외에 있었던 흥덕사(興德寺)에서 금속활자인 주자(鑄字)로 찍어낸 것이다. 이 때 간행된 상하 2권 가운데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하권 1책(첫 장은 결락)뿐이다.


1894~1896년 프랑스의 서지학자 쿠랑(Courant, M.)이 고려시대의 《상정고금예문(詳定古今禮文)》에서 한말의 《한성순보(漢城旬報)》에 이르는 3821종의 도서를 엮은 ≪한국서지(韓國書誌) Bibliographie Coréenne≫의 부록에 일찍이 소개되었으나 책의 행방이 묘연하였는데, 1972년 ‘세계도서의 해’를 기념하기 위한 도서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여기에는 파리 국립도서관의 특별연구원이던 박병선(朴炳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졸업, 1928~2011. 11. 22) 박사의 역할이 컸다. 1955년 프랑스로 유학 간 그녀는 1967년부터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한국 한문 자료를 분류하고 해제하는 작업을 하다가 《직지》를 발견하였다. 박병선은 이 책이 구텐베르크의 성경보다 78년이나 앞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책이란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 도서의 해 기념 도서 전시회’에서 《직지》가 현전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세계적인 공인을 받았다. 이로 인해 1455년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42행성서(行聖書)’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자리를 직지에 내주어야 했다.


2001년에는 직지와 42행성서가 UNESCO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또한 2004년에는 UNESCO에 직지상(直指償)이 제정되어 2년에 한 번 시상을 하고 있다. 이런 연유로 박병선은 직지대모라는 별칭을 얻었고, 이외에도 약탈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직지》의 주자본은 상권이 결권인 채로,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하권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나, 흥덕사주자본보다 한 해 뒤인 1378년 6월에 개판된 목판본은 현재 국립중앙도서관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에 상하권 1책이 각각 소장되어 있으며, 그 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 소장본은 1992년에 보물 제1132호로 지정되었다. 목판본이 온전히 남아 있어 그 내용이 실전(失傳)되지 않고, 선(禪)을 닦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가 없었다면, 오늘날 초등생에게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분명히 ‘구텐베르크의 42행성경’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서양의 치의학이 들어오기 전에도 치과진료는 있었고, 동의보감에는 ‘아치문(牙齒門)’과 ‘구설문(口舌門)’이라는 두 개의 챕터에서 치과부문을 다루고 있다. 내용 중에 오늘날의 치약과 성분이 유사한 ‘백아약(白牙藥)’이라는 것이 있고, 치석제거용 겸도(鎌刀)는 지금의 스케일러 용도로 쓰이는 기구이다.


2009년 7월 31일 유네스코에서 《동의보감》의 시대정신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 등의 가치를 인정하여 1613년 허준이 간행에 직접 관여한 초판 완질 2본(오대산사고본, 적성산사고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였다. 이는 한국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이었으며, 의학서적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었다.

 

1884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선교의사 알렌이 1885년 제중원에서 서양식 치과진료를 처음 시작한 지도 136년째이다. 또 1922년 경성치과의학교가 개교한 이래 전국에 11개 치과대학(또는 치의학대학원)이 있다.


그런데 아직 치과대학(또는 치의학대학원)에 치과의사학 연구와 교육을 담당할 치과의사학 교실이 하나도 없다. 개원가의 열정적이고 선구적인 분들에 의해 겨우 치과의사학의 명맥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진작부터 치과계의 박병선이 출현할 수 있는 치과의사학 교실의 필요성이 심대하게 대두되어 왔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