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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진료,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17)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에서도 논쟁거리가 되었지만, 성소수자는 왜 그리 감염병과 관련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물론, 진료할 때 환자의 성적 지향을 물어보는 것은 아니니까 알 순 없지만, 혹시라도 우리 병원에 찾아올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고요. 성소수자가 보건에 위협이 되는 게 사실이라면, 진료에서도 주의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차별이니 혐오니 하지만, 딱히 차별이라기보다는 그저 제 몸을 지키려는 건데요. 익명


이런 생각에 잘못된 부분도 없는데 괜히 어떤 사람들이 평등을 핑계로 오히려 성소수자에게 이익을 주려 하는 건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위 표현만 받아들인다면 문제가 될 부분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두 가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성소수자와 감염병 환자를 치환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소수자가 감염병에 많이 걸려 있다는 통계적 사실에서 성소수자는 감염병에 약하다는 당위적 판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현재까지 연구된 바에 의하면, 성적 지향의 결정 요인은 불확실합니다. 유전적 영향과 환경적 요인 모두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여기에서 환경적 요인이라는 표현이 이성애가 아닌 다른 성적 지향을 옹호하는 사회문화적 경향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컨대, 동성애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동성애자가 될 가능성이 더 커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인간 동물에서도 해당 종의 주도적 성적 경향성과 다른 방식을 취하는 비율이 어느 정도 유지된다는 여러 연구 결과에 비춰 볼 때, 성소수자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성적 지향이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면, 사람의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인 성욕을 해결할 방법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통 사회에서 이들의 성욕은 배척 대상이었기에 외부로부터 숨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상대를 만나기도 어렵다 보니, 안전과 위생을 따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간 사이에서 전파되는 많은 감염병은 체액을 통해 전달되기에, 안전과 위생이 확보되지 못한 이들 사이에서 감염병은 다른 사람들보다 쉽게 확산합니다.

 

그렇다고 하여, 성소수자가 감염병 환자는 아닙니다. 감염병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감염병에 걸렸다는 의미는 아니니까요. 오히려, 현 코로나19 상황에선 모든 사람을 잠재적 감염자로 보고 높은 수준의 개인 방호(KF94 마스크, 페이스 쉴드 등 안면 보호 장비, 손 세정, 실내 환기 등)를 시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특정 인구 집단만을 감염자로 구분하는 것은 옳은 선택은 아니지요.

 

물론, 성소수자를 향한 개인적 가치 판단은 어느 쪽으로 내리셔도 됩니다. 무조건 성소수자를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은 무조건 성소수자를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선을 넘은 것입니다. 종교적 신념이나 개인적 판단으로 성소수자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문가로서 개인의 가치 판단과 전문가적 가치 판단을 구분해야 합니다. 개인으로서는 성소수자를 용인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이라고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문가로서는 성소수자를 배척하는 것은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윤리적 판단이 어떻게 두 가지로 갈라질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일상적으로 경험하시는 가족적 가치와 직업적 가치의 충돌을 떠올려 보시면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가족을 건사하고, 가족의 행복을 우선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한편, 저는 치과의사로서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을 가져올 의무를 집니다. 이 두 의무는 한 사람에 의해 구현되어야 하기에, 때로 충돌할 때가 있습니다.

 

사소한 예를 들자면, 치과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각이 가까웠고 마치면 바로, 자녀가 오랫동안 준비한 공연에 참석해야 하는 날입니다. 갑자기 길에서 다친 아이가 치과로 내원하여 급하게 처치를 해주어야 합니다. 가족을 생각한다면 아이를 치료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그러나, 환자를 생각한다면 치료를 해주어야 할 겁니다. 그리고 환자를 치료하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것이 전문가로서 의무이기 때문이죠.

 

성소수자를 향한 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적 호오와는 별개로, 의료인은 성소수자를 차별하지 않을 의무를 집니다. 이것은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인종, 언어, 계층, 직업, 성별 등 모든 차별 가능한 영역에 적용되지요.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개인적으로 성소수자 반대 운동에 참여하시는 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치과의사임을 밝히는 경우 성소수자 반대 운동에 참여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됩니다.

 

개인 윤리와 전문가 윤리의 구별이라는 부분이 쉽게 다가오지 않으시죠. 비근한 예로 돈 문제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이를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니, 비난하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죠.

 

그러나, 전문가로서 돈을 우선하는 일은 문제가 됩니다. 즉, 의료 전문가가 되는 것은 자신의 개인적 신념이나 가치와는 다를 수도 있는 전문가적 가치 체계를 수용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물론, 전문가적 가치 체계가 불변하는 어떤 초월적인 내용인 것은 아니며, 사회문화적 조건이나 구성원의 합의에 따라 변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차별 금지와 같은 내용은 상당히 오랫동안 바뀌지 않을 내용일 것이며, 우리는 여기에 따라서 전문가적 행위를 따져 볼 필요가 있지요.

 

정리하면, 질문하신 것처럼 치과 진료에서 상대방의 성적 지향을 알게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하지만, 혹시 알게 된다고 할지라도 다르게 접근할 이유는 없으며, 다르게 접근해서도 안 됩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끼실 수 있으며 이를 개인 차원에서까지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한 사람의 전문가로선 그런 생각은 잠시 보류하고 같은 한 명의 환자로 대하는 것이 윤리적인 선택입니다. 더 나아가, 공적 활동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으며, 이는 사회 속에서 전문가의 위치를 확립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