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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대학 정원 확대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18)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정부와 여당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를 이유로 의료인을 늘리겠다며 의·치·한 대학 신설과 정원 증원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5일 당·정·청이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했다고 발표하였고,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회에서 정원 확대를 당연시하는 발언을 던졌습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익명

 

지난 3월, 코로나19 초기 확산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 중 하나는 의료자원의 지역적 편중이었습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 다량 발생한 확진 환자로 인해, 해당 지역의 의료자원 공급 불충분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환자를 다른 지역으로 이송하는 방안 등을 마련했지만, 코로나19에 집중하다 보니 다른 질병에 대응하지 못해 안타까운 사망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지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것이 의·치·한 대학 정원 확대와 의대 신설입니다. 의대 신설은 폐교 결정된 서남대 의대 정원을 활용하는 방안이 계속 논의됐고, 작년 공공의대 설립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6월 5일 발의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은 공공의대 설립 후 졸업자가 10년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정하는 공공보건 의료기관에서 의무 근무하는 것을 골조로 합니다. 이미 비슷하게 운영해 온 의대 군위탁 제도가 파행을 보이는 상황에서 그 실효성의 한계가 눈에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가 제도 개선에 열린 자세를 보인다면 이 부분은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조건 반대 의사를 표명하긴 어렵습니다.


문제는 의·치·한 대학 정원 확대이지요. 이 부분은 어떻게 봐도 정부와 국회의 논의에 찬동하기 어렵습니다. 의대 정원을 늘리고 지역 특별전형으로 선발한다 한들, 졸업자가 그 지역에서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자명한데도 지역 의료 인력 부족만을 논한다는 것은 실정을 모르거나, 알고 있음에도 애써 눈을 가리려는 장두노미(藏頭露尾)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렇게 특별전형으로 뽑은 학생에게도 마찬가지로 10년 공공보건 의료기관 근무를 의무로 부여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는 심각한 차별 조치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반론으로 OECD 주요 회원국의 의료인 수 통계를 들며 국내 의료인 수가 부족하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자원 부족 문제를 가져온 것인지를 따짐에 있어 의료인 수만 단순 비교하는 모습은 당황스럽습니다. 왜 일인당 진료 수는 따지지 않습니까? 의사 수는 적을지언정, 인당 진료 건수로 비교하면 국내 의료인이 담당하는 의료 수요는 다른 나라에 비해 절대 적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는 ‘K-방역’의 요체 아니었는지요? 의료인들의 헌신, 또는 분골쇄신하는 노력 말입니다.


이런 부분은 생각하지도 않고 단순히 숫자 놀음만 하는 정부의 모습은 보기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그런 논리라면 이미 과잉이 된 지도 한참 지난 치과의사 수는 오히려 줄여야 할 겁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년 주요 보건의료인력 중장기 수급 전망』 연구 결과는 이전과 같이 3000여 명의 치과의사가 과잉임을 발표했지요. 이런 상황은 한의사도 비슷합니다. 이런데도 의·치·한 증원을 논한다는 것은 의대만 증원을 말할 수 없으니 끼워팔기 식으로 같이 숫자를 늘림을 통해 반대 의견을 무마하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최근 한 기사는 보건복지부 관계자가 치대 정원 확대는 없다고 언급했음을 보도했죠. 그러나, 정책의 일관성과 과별 형평성 때문에 의대 정원을 늘리면 치대 정원도 늘릴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윤리에서 의사 수와 같이 의료자원의 수급과 분배 문제를 다루는 분야가 의료정의론입니다. 보통 우리가 정의라는 표현을 사법 정의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반면, 의료정의론은 크게 두 가지 영역, 차별과 자원 문제를 다룹니다. 전자는 사회 정의, 후자는 분배 정의라고 합니다. 의료인 공급은 단순히 경제성만을 평가하여 결정할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윤리적인 논의가 중요합니다.


예컨대, 영연방에 속하는 아프리카 지역 국가에서 의대 졸업자는 해당 국가에 남아있는 것보다 영국 등으로 이주하여 의사로 활동하는 방향을 택하는데, 이는 국가의 의료 설비와 대우가 매우 열악하지만,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방식을 일찍부터 학습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노력이면 선진국에서 의사로 생활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습니다. 이것을 의료 계열의 두뇌 유출(brain drain)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아프리카 지역의 의사 수가 부족하므로 의대 숫자나 정원을 늘리면 의료인 수급 문제가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지요.


오히려, 해결책은 어떻게 하면 의료인이 부족한 지역으로 의료인을 끌어들이고, 부족한 설비를 보충할까 하는 데에 집중되어야 합니다. 즉, 전체 의료자원 중에서 현재 의료 상황이 열악한 지역으로 의료자원 공급을 늘리는 방안이 고민되어야 하며, 이런 차등적인 분배 결정이 국가적으로 승인될 수 있어야 합니다. 2018년 방영된 드라마 <라이프>에서처럼, 지역에 의료시설이 부족하다고 대학병원의 과를 뚝 떼어 지방으로 옮긴다고 자원 편중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현재 의료시설이 부족한 지역에 예산을 과감히 투자하는 결정이 선행되어야 하고, 이 결정이 국가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이런 결정은 경제성이나 과학적 증거와는 달리 규범적, 윤리적인 논의를 따르는 것이죠.


사실, 이런 주장은 코로나19로 진행되고 있는 공공의료 확충 논의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공공의료 시설은 평소에 사영의료 시설보다 평소에 효용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메르스나 코로나19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감염병 전문병원은 평소에 할 일이 얼마 없습니다.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체계이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 핵심은, 그저 낭비로 여겨질 수 있는 예산을 공공의료 시설에 계속 투자할 수 있는가가 됩니다. 경영 문제로 폐쇄한 진주의료원의 사례를 다시 반복할 것이 예상된다면, ‘공공의료 확충’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즉, 우리는 한정된 의료자원을 어디에 어떻게 나눌 것인지에 관한 논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코로나19 대응에선 말할 것도 없지요. 의료인이 부족하니 늘려라, 하는 것은 미봉책이자 고식지계일 뿐입니다. 정계의 현명한 논의를 기대하며, 치과계 또한 정책이 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여야 하겠습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