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9월 추천도서 - 관망(觀望)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옛날 궁궐은 임금이 거주하는 집의 성격보다는 적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방어용으로 세워진 초소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궁궐의 앞쪽에 대를 높이 쌓고 그 위에 높은 망루를 세운 관(觀)을 설치했습니다. 궁궐의 양쪽에 세워진 이 관은 군사용 전망대의 구실을 했는데, 여기서 바라보면서 주위를 살피는 것을 ‘관망(觀望)한다’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일이 되어가는 형세를 지켜보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대학생 때 배낭여행으로 유럽을 다녀왔습니다.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이 많지만 유독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성에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낡고 높은 이 성에 올라가면 눈에 닿을 듯이 가깝게 강이 흐르는 시내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해 질 녘 아무 말 없이 그 풍경을 관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때론 멍하게 그저 바라보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이미 내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관망하듯 책을 읽어도 좋습니다. 너무 머리를 쓰지 말고 그저 눈이 가는 대로 읽는 것입니다. 머리와 가슴은 좀 늦게 따라와도 괜찮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어지럽고 머리가 복잡해질 때 그저 관망하는 자세도 필요합니다. 정리되지 않은 머리를 너무 굴려 가며 나서면 오히려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문명사 전체를 꿰뚫어 혐오문화 파헤치고
사회·경제적 구조와 혐오의 관계 밝혀

『문명과 혐오』 아고라, 2020

 


이 책은 2008년에 『거짓된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된 바 있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이달의 책, 여러 언론사와 포털사이트의 추천 도서로 선정되는 등 주목받았으나 본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되었던 책입니다. 1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 책의 내용은 지금 현실에서 더 격화되었습니다.

 

저자인 데릭 젠슨은 이 책에서 우리 문명사 전체를 꿰뚫어 혐오 문화를 파헤치고, 사회·경제적 구조와 혐오의 관계를 밝히고 있습니다. 혐오집단의 정의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하여 폭넓은 시야로 다양한 사례들을 살피면서 산업 사회 전체에 만연한 잔학 행위들의 뿌리를 추적합니다. 소수자 린치, 강간, 포르노 사이트, 아동학대, 계급 착취, 생태 파괴, 홀로코스트 등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를 아우르고 있습니다.

 

책의 원제가 ‘The Culture of Make Believe’입니다.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자신의 신념에 도취되어 행동하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구체로 돌아가자’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보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관망의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짙은 어둠의 시대에도” “혐오와 자기합리화의 문화를 극복하는 변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코로나 시대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혐오의 문화가 퍼져있는 지금 한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의대생들의 인문적 담론 담아
학부시절 초심으로 돌아가게 해

『의과대학 인문학 수업』 홍익출판 미디어그룹, 2020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의과대학, 치과대학에는 그럴싸한 인문학 강좌가 거의 없었습니다. 최근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의사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강조되어 도입되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는 「내러티브 의학(Narrative medicine)」이라는 교양강의가 있다고 합니다.

 

이 수업은 질병과 환자와 인간의 관계를 임상 현장, 의학 연구와 교육에 활용하는 의학적 접근법을 배우는데 문학작품, 영화, 실제 의사와 환자의 경험 같은 내용으로 학생들이 토론하거나 시나 에세이를 써보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 책은 강좌에서 다루었던 19편의 영화와 의대생들이 치열하게 나눈 인문적 담론을 담고 있습니다. 강의에 활용한 영화의 선정 기준은 의료인이나 환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으로, 의대생들은 이 수업을 통해 더욱 사려 깊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는 온전한 의사로 성장하기를 다짐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내용이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것을 보니 이 강좌의 인기가 대단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강의는 의대생들에게는 쉬어가는 페이지 같은 시간이었을 겁니다.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학부 시절로 돌아가 초심으로 환자를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일독해 봅시다.

 

 

나태주 시인의 감성으로 쓴 신작 산문집
쉽게 잘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여운은 깊어

『부디 아프지 마라』 시공사, 2020

 

나태주 시인의 이름을 잘 모르는 사람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라는 간결한 시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시인의 감성으로 쓴 산문집이 나왔습니다. 간결하고 쉬운 시를 쓰고자 하는 시인의 산문은 쉽게 잘 읽히지만, 여운은 깊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당장 밥이 필요하지만, 시인은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오직 밥만 해결하기 위해 산다고 하면 너무나 슬프고 쓸쓸한 이야기가 된다고 말합니다. 밥과 함께 ‘흰 구름’도 필요하다는 시인. 밥은 당장 생명을 주지만 그 너머의 세상은 보장해 주지 않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하지만 흰 구름은 당장 효용성이 없어 보이지만 먼 그리움과 함께 대지에 비를 내려주고 축복을 약속합니다.

 

당장 주어진 밥만 보면서 살지 말고 지금 여기에 없는 것, 더욱 멀리 있는 것들을 소망하면서 사는 삶도 좋다고 얘기합니다. 처절한 현실에 감상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우리 가슴속 어딘가 묻혀있는 것들을 마구 파헤치는 쉬운 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