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지난 8월 벌어진 의사 파업 또는 의정갈등 사태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 의료인이 가장 큰 물의를 빚은 사건인 것 같습니다. 의사가 파업해도 되는가? 라는 기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해 한국 의료 정책의 방향과 의료인 교육까지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데, 치과계는 이 사건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응해야 할까요? 익명
2020년 8월 있었던 의정갈등 사태는 기존 의사 파업과 구분되는 특징을 지닙니다. 일단, 지난 의사 파업의 약사(略史)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는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가 결성한 의권쟁취투쟁위원회(이하 의쟁투)의 주도로 2000년 6월부터 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7월 전공의 파업에는 국립대 병원 전공의 92%, 사립대 병원 전공의 86%가 파업에 참여했고, 8월에는 전국 병·의원 91%가 휴진했습니다. 한국 의료 역사에서 가장 큰 파업이 벌어졌던 것이죠.
2014년에도 원격진료, 건강보험 수가 등을 쟁점으로 한 파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업은 하루였으며, 의료기관 중 29.1%가 참여했고, 전공의 42.3% (보건복지부 추산 약 30%)가 진료하지 않았습니다.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한 2014년 파업은 조용히 끝났습니다.
공공의대, 의대 정원 10년간 4,000명 증원, 원격의료, 첩약 급여화의 소위 “4대 악”을 쟁점으로 내건 2020년 파업 참여율은 어땠을까요? 병·의원은 가장 많이 참여한 시점 기준 10.9% 휴진했습니다. 전공의의 68.8%, 전임의의 28.1%가 근무하지 않아 병원의 진료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만, 교수진과 기타 근무 인원으로 진료에 완전한 공백이 발생하진 않았습니다.
2000년과 2014년의 파업은 복잡한 의료 정책 논의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파업에 참여한 이도, 정부도, 지켜보는 사회도 논의를 망라하기 어려웠습니다. 각자에겐 각자의 이해가 있었고, 이는 파업을 정당화한 것은 아니었으되 손쉽게 파업을 찬성하거나 반대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2020년의 파업은 비록 의협이 네 가지 정책을 문제시했으나 핵심 쟁점은 의대 증원이었습니다. 이를 놓고 모두는 손쉽게 자신의 견해를 정할 수 있었지요. 두 가지로 입장이 구축되자, 사람들은 반대편을 공격할 지점들을 쉽게 찾아냈습니다.
더구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건강에 관해 상당한 염려를 품고 있는 상황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실제 감염률과 사망률과는 별개로 경제에 문제를 일으키면서 일상에 바로 변화를 가져오는 감염병의 경우, 사람들은 상당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됩니다. 코로나19로 이미 심한 공포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응급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언론 보도를 사람들은 자신에게 심대한 위협이 가해진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두 가지 요소, 의대 증원이냐 아니냐의 이분법과 코로나19로 만연한 공포가 2020년의 의사 파업을 기존과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합리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들끓게 했던 것은 정책의 근거나 실현 과정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공공의대 입학을 시민단체가 추천”한다는 것이나 의협의 “1등 의사 대 지역 의사” 발언이었습니다. 의사도, 정부도, 시민도 감정을 소모했습니다. 파업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모두는 상처를 받았고 이를 봉합할 방법은 당장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시간이 약이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의사 파업으로 인한 의료 전문직의 신뢰 하락을, 더는 작동하기 힘든 전문직업성(professionalism)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사람들은 의사와 치과의사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의사가 미운털이 박히면 치과의사에게도 영향이 미칩니다. 학생들은 의대생의 참여와 그 실패를 보고, 사회가 자신들의 의견을 받아주지 않고 그저 “공공재”로만 소비하고 있음에 좌절을 느낍니다. 이들을 놓고 전문직의 책무를 통한 권리를 말하는 전문직업성을 가르치는 것은 별로 다가오지 않는 말이 될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시점에서 생각해봐야 합니다. 2020년 이후의 치과의사는 신뢰를, 전문직업성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를.
이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치과계의 신뢰 저하 문제는 이미 심각한 상황에 부닥쳐 있습니다. 치과 과잉 진료나 ‘먹튀 치과’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 이미 신뢰에 금이 가고 있는데 더하여, 모 네트워크의 대표원장이 쓴 책이나 ‘양심 치과’ 등이 내부에서 흠집을 내고 있지요. 이제 치과계는 의사 파업이 남긴 불씨까지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90년대생 이후의 학생들은 자신의 노력에 보상을 받고 싶어 합니다. 이들을 ‘공정 세대’라고 부르는 이유지요. 이들은 타인과의 경쟁이 공정하길 원하고, 외부 요소로 인해 자신의 노력이 부정되는 것에 크게 반발합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요원 정규직 전환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이 이들 세대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이것이 공정한 경쟁을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세대에게 공적 책무를 수행할 필요를 말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지금의 성취는 모두 자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는 이에게, 공적 책무가 다가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이유로 우리는 더욱 신뢰를 말하고 전문직업성을 말해야 합니다. 치과계와 치과의사의 신뢰를 저해하는 여러 요소 앞에서 우리는 사회와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찾고 논의하며 실행해야 합니다. 공적 책무를 상기하지 않는, 아니 부정하는 학생들에게 우리는 전문직의 의무가 오히려 전문직에 독점권과 자율규제, 적절한 보상이라는 권리를 부여하는 근거가 됨을 더 잘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운 과제입니다. 그러나, 2000년 의약분업 사태가 이후 한국 의료를 바꾸었듯, 2020년 의정갈등도 이후의 한국 의료를 바꿀 겁니다. 치과 또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준비를 위해 다시 신뢰와 전문직업성을 어떻게 말할지 지금 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치과의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치과계에,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부탁드립니다. 어떻게 우리가 다시 사회와 신뢰를 쌓을지, 치과의사의 전문직업성이란 무엇인지 함께 살펴 주십시오. 그 결과를 치과계의 구성원과 공유하고, 학교와 사회에서 구체적인 교육과 캠페인, 정책으로 이어가 주십시오. 이것만이, 2020년 파업이 치과계에 밀고 올 여파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동력이 될 겁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