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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 남지 못한 이유

스펙트럼

요즘 많은 선생님께서 통합치의학 학위를 따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저도 다양한 이유로 통합치의학 학위를 따기 위해 1년간 열심히 수업을 듣고 또, 시험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정리 PPT를 보며 공부를 하고 있으니 같이 있던 친구가 묻습니다. “은욱아, 너는 공보의 끝나고 다시 대학병원으로 가도 되잖아? 왜 굳이 인턴레지를 안 하고 통합치의학을 준비하는 거야?”

 

학부 분위기가 굉장히 자유분방한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입학했던 치의학대학원의 모습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입학 첫날부터 양복을 입은 선배들이 와서, 인터넷 기사에서나 볼 수가 있던 그런 부조리들을 나열했습니다. 복장 제한부터 다양한 저급한 규칙들. 하지만 그건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 다닐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수업 시간에 진열장에 있던 틀니를 잠깐 만졌다며 수백 장의 빡지(A4 용지에 무의미한 내용을 빡빡히 적어서 제출하는 벌칙 중 하나)를 다음날까지 제출하게 하거나, 어시스트를 잘 못했다고 블레이드나 엘리베이터를 학생들에게 욕설과 함께 집어 던지는 행위들, 레지던트들의 많은 부조리에 지쳤습니다.

 

처음에는 일부 레지던트들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몇몇 개인의 문제로 보였습니다. 일부 몰상식한 레지던트들이 학생들을 상대로 패악질이나 부리는 것으로 보였고, 다른 좋은 선배님들도 그들의 패악질은 막을 수가 없었음에 같이 안타까워했습니다.

 

하지만 조금 더 당해보다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치과대학 시스템의 잘못이었습니다. 군대 조직을 빼다 박은 치과대학 사회는, 교수-레지던트-학생으로 이어지는 계급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레지던트도 그저 중간에 낀 피해자일 뿐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러한 계급 조직은 너무나도 흔한 형태이며, 치과대학은 그중 하나일 뿐이었습니다. 당장 공대생 친구들에게 연구실 얘기들만 들어보아도, 교수-대학원생 간 구조적 문제에 의해서 대한민국 과학의 미래가 왜 어두운지 알 수 있듯 말입니다.

 

단지, 대한민국 사회를 처음 마주한 제가 좀 놀랐을 뿐입니다. 그들은 지식인들인 줄 알았거든요. 그래서 기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식을 많이 안다는 것과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나 독립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대학병원에 남지 않았습니다. 남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욱 맞는 듯합니다. 친했던 지도 교수님께서 병원에 남을 것을 적극적으로 권유하였지만, 도망쳐 나왔습니다. 그런 시스템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병원에 남아서 그런 부조리함을 바꿀 수 있을 자신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멀리 거제도로 도망치고 난 뒤, 이렇게 글이나 쓰고 있습니다.

 

누군가 이 부조리함을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면, 사실 그게 누군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많은 선생님께서 포기한 이유가 이 이유겠지요. 친구들은 ‘가장 위에 있는 사람이 이 시스템들을 바꿔야 한다. 적어도 교수진은 돼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또 그 상황이 되어보면 다를 거로 생각합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부조리를 바꿀 수 있는 위치란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의식이 함께 나아갈 때 올 수 있는 선물과 같은 것입니다.

 

서서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비해 치과대학과 치과병원의 문화가 많이 깨끗해졌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된 점들은 여전히 남아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이 부조리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딱히 결론 없는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이런 어두운 얘기를 제가 왜 했을까요. 그저 통합치의학 공부를 하던 도중에, 친구가 질문해서 대답했을 뿐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