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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테스형

최치원 칼럼

지난 추석 무렵 그리스 아테네의 철학자인 소크라테스가 대중가요 가사에 등장하면서 대한민국은 온통 나훈아의 <Again대한민국>신드롬에 빠져들고 말았다. 시청률이 무려 40%를 넘어서면서 장안의 큰 화제가 되었던 ‘테스형!’.


서양철학의 스승격인 소크라테스를 동네 형 불러세우듯 도발적인 가사는 어찌보면 불경스러울 법도 했지만, 소크라테스를 형!으로 불렀던 가수에게 가황(歌皇)이라는 극찬의 수식어를 붙여주는데 있어 대한민국은 주저함이 없었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물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이유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하였거늘 ‘툭 내뱉은 말’이라 하고 ‘모르겠소’로 답한 나훈아의 ‘테스형!’ 이 외침 한마디에 많은 사람들은 신기루 같은 인생의 여정에 대해 공감과 위로를 받는 듯하다.

 

진료시간에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아! 테스형~~ 아! 테스형~~’의 허밍은 나 역시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뇌의 배설이자 고백이 되어 이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장난기가 발동한다. 이름도 똑같은 테스형인데...ㅎ
지극히 불완전체인 인간으로서 소크라테스형에게 하소연을 하였었다면, 우리네 의료인들이 겪는 의료정의의 명제와 의료인의 양심을 의심받고 살아가는 대한민국 의료인의 한사람으로서 히포크라테스형에게 하소연이라도 해보고자 개사를 해본다.

 

아! 테스형! 의료가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히포크라테스형! 정부는 또 왜 이래~~  의료인의 일생을 명예와 봉사로 바치라 툭 내뱉고 간 말을 공공재로 여기려하니... 모르겠소 테스형!

 

대한민국 사회와 국가는 자연인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짐과는 별도로 의료인면허영구취소, 비급여수가통제 등과 같은 무거운 짐을 추가로 의료인에게 올려놓기 위한 명분으로 삼는 것이 바로 히포크라테스선서이다.
모든 의료인은 히포크라테스선서 속 삶을 살아야 하며, 인류애와 박애를 실천하는데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희생을 솔선수범해야만 하는 공공재의사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오역(誤譯)을 하면서 말이다.

 

히포크라테스선서를 보자!
“이제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 나의 생애를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중략) 나의 양심과 위엄으로서 의술을 베풀겠노라고...(중략) 이상의 서약은 나의 자유 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

 

의료인은 윤리적인 양심과 품위 있는 위엄을 근본으로 의술을 베풀어야 한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다짐들은, 의료인 개인의 자발적 동기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코 공공재로서의 역할에 전력하여 의료인 생애를 통째로 인류봉사에 헌신하겠다는 의미가 아닌 것이다.

 

테스형의 다짐 마지막에는 “나의 자유 의사로 나의 명예를 받들어 하노라”라고 분명히 기술되어 있듯이 기원전 400년 전의 고대 그리스에서 조차도 의료인을 공공재가 아닌 개인의 양심과 위엄을 최고의 가치로 인정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의료인 역시 경제적인 활동을 통해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는 노동자라는 것은 대한민국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에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에 분명하게 적시되어 있다.

 

대한민국 의료인 99%는 퇴직과 연금, 재해, 상해, 공상, 휴가도 보장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의 신분으로 묵묵히 살아가고 있지만, 유독 의료인들에게만은 노동자가 아닌 특권층에게나 적용할 법한 엄격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대해 이제는 정당한 노동자로서 의료인의 건강추구권, 행복추구권을 당당히 주장하여야 한다.


법과 원칙에 맞게 의료업무를 수행하고 노동을 통해 개인행복을 추구하며 공동 선(善)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적 제도를 우선적으로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여야 한다.

 

의료인 모두에게 히포크라테스가 될 것을 강요할 일은 아닌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