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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서와 자유

황충주 칼럼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것은 지난 11월 3일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갖는 위상과 영향력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각 나라의 정치,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와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맞붙은 이번 대선은 개표 초반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고 부재자투표, 우편 투표함이 집계되면서 상황은 바이든 후보의 우세로 상황은 바뀌었다. 현재 바이든이 306표를 얻어 당선이 확실하다. 그러나 트럼프 측에게서는 부정선거를 강력히 주장하며 경합지역에서 본인이 패배한 지역에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대부분 우편투표나 전자개표기의 공정성을 의심하는 내용으로 트럼프는 투표 불복선언을 하고 항소하고 있다. 주에 따라 소송을 기각하거나 재검표를 하는 상황인데 조지아주에서는 500만 표를 수작업으로 재검표 하였지만,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아직도 트럼프 지지층은 결국 트럼프가 재선할 것으로 생각하고 무력 시위를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후 3주 지난 11월 23일에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게 정권 이양에 협력하라고 연방 총무청과 자신의 참모들에게 권고했다고 밝히면서도, 대선 불복 소송은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부정선거라는 주장이 독재주의 국가나 아프리카와 같은 민주주의 후진국들의 토착 현상인 줄 알았더니, 민주주의 본산이자 세계 최고의 문명국 미국에서 이번 대통령선거에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일이 벌어진 것을 보니 아이러니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이든 후보에게 러스트 벨트를 뺏긴 것도, 우편투표 사기를 주장하는 것도 결국 코로나 팬데믹 때문이라고 한다. 경쟁자인 바이든 후보는 캠페인 메시지를 코로나 팬더믹으로 단순화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2월부터 사안의 심각함을 알았으면서도 국민과 국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메시지로 단순화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하는 동안 마스크도 쓰지 않고 사회적 거리 두기도 무시하였고 본인이 코로나 양성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고 마스크 쓰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개인에게 자유를 정부가 침해할 수 없으며 무엇인가를 강제하는 것은 내 자유에 반한다는 것이다. 코로나가 걸려도 내가 걸리는 것이고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는 간섭하거나 강제하지 말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이해할 수 없는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경향 때문에 미국에선 코로나 확진자의 수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화 지역에서는 바이든 후보가 트럼프보다 30% 가까이 지지율이 높았고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트럼프 지지율이 높았다고 한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이 생존의 위협과 갈등 속에서 살아가려면 대체로 강한 규범이 필요하며 이를 근거로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에게 자유보다는 질병의 통제와 나라의 질서와 통합을 요구한 것으로 평가된다.


모든 사회에는 지켜야 할 선이란 것이 있고 이 ‘선’을 우리는 사회규범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사회질서가 이뤄지며 이것을 넘으면 가볍게는 비난을 받고, 무겁게는 처벌을 받는다. 미국 메릴랜드대학교의 미셸 겔펀드 심리학 교수는 ‘선을 지키는 사회, 선을 넘는 사회’라는 책에서 문화 규범을 빡빡함과 느슨함으로 설명하였다. 빡빡함과 느슨함은 사회규범의 강도를 의미한다. 빡빡한 문화에서는 지켜야 할 규칙이 많지만, 체계가 잡혀 있어 안전하고 질서정연하다. 느슨한 문화에서는 규칙 자체도 적고 규칙을 지키지 않더라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예측할 수 없고 무질서하다.


고대 철학자들은 행복을 인간 존재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간주했다. 사회는 자유를 우선해야 하는가, 질서를 우선하려고 애써야 하는가? 자유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자아실현을 통해 사회적 행복과 경제적 진보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로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번영을 이룰 수 있는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회를 만들려면 규칙과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빡빡함과 느슨함은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시기, 그 사회에서 가장 적절한 규범을 찾아 적용해야 한다.


뉴노멀시대에 온라인 세상은 편리하고 느슨함으로 우리에게 많은 이점을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파괴적인 행동, 규범을 무시하는 행동, 공포감을 조성하는 행동과 가짜 뉴스는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어 빡빡함도 절실히 필요한 게 사실이다. 개인이 책임을 지고 인터넷에서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하여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 사회는 빡빡한 문화를 가진 사회이다. 코로나가 장기화하면서 사회의 균형추가 이전보다 빡빡해지고 있다. 11월 24일부터 12월 7일까지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로 격상하면서 강한 규칙과 규범, 무관용의 원칙 고수, 옳고 그름의 흑백 원리, 편협성이 난무하고 있다. 과거보다 개인의 자유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사회 곳곳에서 빡빡함과 느슨함이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빡빡함은 좋은 것, 느슨함은 안 좋은 것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봐서는 안 된다. 이 둘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할 수 있으며 두 가지가 공존하며 사회 분위기에 따라 균형추는 변화할 것이다.


우리가 속한 가정, 직장, 단체, 사회 모두 빡빡함과 느슨함의 조율이 필요하다. 중도를 지키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절실한 시기이다. 어느 한 극단이 우위를 차지하도록 놔두어선 안 된다. 왜냐면 어느 쪽이든 극단으로 치달으면 불행을 부르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