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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뜯어먹는 쥐들, 내가 임신부에게 뭔 짓 한 거지?

수필

가족들에게 생색내기는 영화만큼 좋은 게 없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도를 뜻하는 가심비로 최고라고 생각한다. 2015년 7월, 뷔페에서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영화를 보기로 했다. 군산에 내려오면서 보려고 마음먹었던 영화는 <연평해전>이었다. 식사 중간에 스마트폰 앱으로 영화를 검색해보니, 아뿔싸 <연평해전>은 하루 전에 상영이 끝났다. 그래서 판타지 호러 영화 <손님>을 보게 되었다. 나는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면 으레 온 가족을 극장으로 초대해 영화를 본다. 여름 휴가차 떠난 제주도 애월읍에서도 9명의 가족을 태운 렌터카를 몰고 40여 분을 달려 영화를 보러 갔을 정도였다.


김광태 감독이 직접 쓴 영화 <손님>의 시나리오는 2013년 우연한 기회에 접한 《피리 부는 사나이》 책 소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중세시대 독일의 도시 하멜른(Hameln)에서 내려오는 민담을 기반으로 한 동화책 《피리 부는 사나이》는 쥐 사냥꾼 이야기와 1284년 6월 26일 하멜른에서 130명의 어린이가 행방불명된 이야기가 합쳐져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로 탄생했을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우리에게 동화로 익숙한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감독은 어떤 프레임으로 들여다봤을까. 나는 호기심으로 설렜다.

 

#온 가족과 함께 본 호러 영화
극장 안이 어두워지고 나와 가족들은 6.25 전쟁 직후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산골 마을로 간 절름발이 악사 우룡(류승룡 분)과 그의 아들 영남(구승현 분)을 따라 영화 속으로 들어갔다.


내가 생각한 <손님>의 명장면은 단연 우룡이 쥐 몰이하는 과정이었다. 마을 구석구석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산꼭대기에 올라 쥐들이 싫어하는 흰 가루를 태우고 피리를 불어 쥐들을 유인해낸 후에, 쥐들이 좋아하는 누런 가루를 곳곳에 뿌려 놓아서 마을 밖으로 빠져나와 일렬로 모이게 한 후 돌무덤같이 밀폐된 공간에 몰아넣고 큰 돌로 입구를 막아버리던 그 장면.


아기자기한 장면들도 좋았다. 마을의 선무당 청주댁 미숙(천우희 분)이 영남의 젖니를 실에 묶어 문고리에 걸어 빼주려 했으나 우룡이 들어오면서 갑작스레 이가 뽑히고 뒤이어 영남이 울음을 터트리면서 미숙에게 안겨 엄마라고 하며 우는 장면, 영남이가 전해주라고 했다며 우룡이 갈색 종이에 싸준 머리핀을 미숙이 펴보는 장면 등. 나중에 두려움에 휩싸인 미숙이 눈물을 흘리며 “빨갱이 맞아요. 저 악사 빨갱이야”라고 말할 때 그 움켜쥔 손에서 머리핀은 마음을 도려내는 칼날이 되어 있었다.


<손님>을 보며 섬뜩했던 장면은 수많은 쥐들이 모여들어 사람을 뜯어먹고 피를 찍찍거리며 마시는 장면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미숙이 배에 칼이 박힌 채로 피를 흘리며 걸어 나와서 하는 독백이다.


“이 년놈들아! 낮에는 해가 없고 밤에는 달이 없는 하루 사이에, 아이들은 살까 죽을까? 온다. 손님이…… 아악.”


영화 중간에 잔인한 장면이 나올 때마다 아내는 어린 아들의 눈을 손으로 가렸고 딸아이도 엄마 품으로 몸을 움츠렸다.


쥐떼를 가두었던 곳에 아이들이 피리 소리에 홀린 듯 춤을 추며 걸어 들어가고, 피리 소리가 멈췄다. 마지막 우는 아기를 업은 남자아이의 두려운 눈빛, 어둠 속으로 마지막 아이가 사라지자 뒤이어 큰 돌로 입구를 막아버리고 돌아선 우룡이 정면을 응시하며 영화는 막을 내렸다.


아 망했다…내가 임신부에게 무슨 짓 한 거지?
영화가 끝나고 조명이 켜지자 배에 손을 얹고 계단을 내려오는 조카를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거였다.
‘오늘, 영화관에 오지 말았어야 했다. 적어도 조카 부부만큼은 데리고 오지 말았어야 했다.’


커다란 쥐가 몰려나올 때마다 징그럽고 섬뜩섬뜩했는데, 임신부가 보기에는 무리수였다. 아 망했다. 가족들 표정이 심상치가 않다. 작은 형의 촌철살인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임신부가 보기에는 너무 잔인한 영화인데. 설마 이런 영화인지 모르고 예매한 거야?”


“나는 그냥…판타지 영화인 줄 알고….”

가족들에게 영화를 보여 주면서 이렇게 민망해지기는 처음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잠시 들른 화장실에서 어릴 적 기억이 설핏 떠올랐다. 20여 호가 모여 살던 우리 마을에도 구장(시골 동네의 우두머리) 아저씨가 있었다. 아버지는 글을 모르셨고 빈손으로 이곳에 오셨다. 손님이셨다. 원래 이곳은 노 씨, 양 씨들 텃세가 심한 곳이라 했다.


어느 해인가. 면사무소에서 농사꾼인 아버지가 당연히 받아야 할 혜택을 받지 못한 억울한 일이 있었다. 구장에게 따졌지만 예순을 넘긴 아버지에게 돌아온 건 반말과 비아냥거림, 욕설이었다. 당시 구장의 나이는 사십대 중반이었다. 구장은 동네 사람들 중에서는 가장 면사무소와 가깝게 닿아 있었고 그것도 권력이라면 큰 권력이었다. 그 억울함에 술에 만취한 아버지를 보고 당시 중2였던 작은 형은 울분을 참지 못했다. 동네 구장 아저씨를 찾아가서 자신도 똑같이 욕을 퍼부어 주겠다고 했다. 자신도 어른과 싸울 만큼 힘이 세어졌고 아버지보다 스무 살 나이 어린 구장이 욕을 했으니, 나이가 서른 살 아래인 자기도 욕을 하고 온다고 했다. 대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걸 어머니가 뒤에서 안으시고 내가 울먹이면서 작은 형 다리를 붙잡고 매달렸다. 역시 중2는 예나 지금이나 무서울 게 없는 나이였다.

 

#손님과 아버지
아버지는 배움이 없어서 늘 구장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고 처분만 바라야 했던 상황이었다. 동네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음에도 동네 어른 그 누구 하나 아버지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게 서글펐다. 그분들은 내 친구들의 아버지였고 형과 누나들 친구의 부모님이기도 하셨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그게 바로 아버지가 마을에서 손님이었다는 증거였다.


우리가 이사 다닐 때 따지는 ‘손 있는 날’의 유래가 날짜에 따라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니는 귀신을 뜻하는 단어인 ‘손’에서 온 것이라는 걸 영화를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귀신이 무서워서 ‘님’자를 붙여서 ‘손님, 손님 오셨다’고 한 거란다. 이방인으로서의 손님을 우리가 너무 멀리하고 배척한다면 그 손님은 그 손님(귀신)이 될 수도 있다고 영화는 말하고 있었다.


“사회적 약자, 이방인 등으로 표현된 손님을 배척하는 집단 이기주의를 경계하자. 사회적 약속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영화에 담고자 했다는 김광태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자, 판타지 호러 영화를 표방한 영화 <손님>이 징그러운 ‘쥐떼’로 인한 ‘손님의 배신’이 아닌 ‘손님의 귀환’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해 11월, 그날 함께 영화를 보았던 조카가 첫아기를 출산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건강하게 출산해줘서 고마워 조카. 그리고 외삼촌이 그땐 미안했어.’
조카의 건강한 출산 소식은 한동안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