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설날이 다가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새 옷으로 단장하여 새벽 일찍 할머니ㆍ할아버지를 찾아 세배를 드리고, 친지들과 어울림이 살아가는 행복으로 남아있다. 세월이 흘러 명절 분위기는 가족 단위로 해외 여행을 많이 하는 추세로 흐르는 듯하다. 시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시댁도 명절이 사라지는 듯 안타까워진다. 친정 식구들은 모두 성장한 동생들이 제각기 가정을 꾸려가기에 바쁘다. 골고루 살림이 넉넉하면 좋으련만 부모님께는 손톱의 가시마냥, 여러 가지 일로 생활이 힘든 자녀 생각에 아흔을 바라보면서도 밤낮으로 걱정을 하신다. 올해는 큰마음을 먹고 며느리의 설날 음식 장만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하여 남동생 가족과 함께 설악산에서 설날을 보내기로 하였다. 이젠 부모님도 조상을 위한 차례보다는 자식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더 즐거워하시는 듯했다. 잠깐 다녀올 여행인데도 어머님은 한달살이 마냥 많은 준비를 해 오셨다. 매일 아프시다는 얘기가 끊임이 없었는데 여행 중에는 신이 나신 듯 기분이 좋아 보이셨다. 불편하지 않으시냐고 여쭤보아도 괜찮다 하셨다. 이렇게 좋아하시는 것을 알면서도 생활이 바쁘다고 조금의 짬도 내지 못했으니 미안한 마음이 그득했다
저리도 하늘은 푸르고 이리도 햇빛은 눈부신데 봄 같지 않은 봄, 여름 같지 않은 여름 지나고 짙어지는 단풍, 서늘한 바람 보고 싶은 얼굴들 한잎 두잎 낙엽 되어 떨어지며 겨울이 오는 소리 하얗게 들리네 처음 겪는 사회적 거리두기 마음의 거리마저 멀게 하고 집안에 콕 박혀 혼자 먹는 식탁엔 외로움만 쌓이네 문밖에 나서려면 으레 신발을 챙겨 신듯 마스크 쓰고 코와 입을 막고 표정마저 감추며 서로서로 경계의 눈초리 사랑이 부재하는 ‘코로나의 거리’ 조심조심 마스크만 걸어가네 친구들과 수다 떨며 마시던 술 한 잔 간절하고 정든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마시던 커피 한잔 그립네 그저 그런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이 그렇게 소중한 행복이었는지 모르고 살았네 수천만의 코로나19 확진 환자, 수백만의 코로나19 사망자, 총 한번 쏘지 못한 전쟁 세계적 팬데믹(pandemic) 상황에 빠지면서 일상의 모든 것이 변했네. 인간의 오만을 벌하려는 자연의 복수인가. 신이 죄 많은 인간에게 내리는 징벌인가. 인간이 자초한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인간의 습관적인 과잉만남을 교정 하는 격리일까. 이제 우리는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영원히 돌아갈 수 없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코
초겨울 날씨답지 않게 따뜻한 휴일, 한낮의 햇빛은 야외활동을 하기에 너무도 행복함을 느끼게 하였다. 70세를 바라보지만 아직도 주부 초년생인 내가 김장을 하려고 하니, 초등학교 동창생 친구가 같이 도와 주겠다했다. 이웃 섬기기에 몸을 아끼지 않는 친구는 남을 위한 봉사가 몸에 저절로 배인 듯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어려운 이웃에게 된장, 고추장, 김장을 상상 못 할 정도로 많이 만들어 나눠 준다 하니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전원생활로 오래전부터 텃밭 농사를 지어왔지만, 올해도 배추는 김장을 하기엔 크기가 작아서 절인 배추를 주문하였다. 무는 우리 집 텃밭에서 제법 크게 자라 그것을 사용하기로 하여 아침부터 김장 준비를 하였다. 제일 먼저 김칫속에 넣을 무채를 썰었다. 몸에 익혀지지 않던 일이라 무 썰기도 힘이 들었다. 한낮이 되니 친구가 왔다. 물론 우리 집 김장 준비보다 더 많이 김치 속을 준비하여왔다. 이삼백 포기씩 김장을 하던 친구의 손놀림에 20 포기 김장은 소꿉장난처럼 순식간에 끝이 났다. 김장의 끝은 둘러앉아 먹는 식사 시간이듯 찹쌀밥에 굴을 섞은 김치 속과 절인 배추, 대구탕, 돼지고기 바비큐로 환상의 식사 시간이 되었다. 초등학교 동창생답게
지진이야 늘 일어나지 땅은 늘 살아있으니까 숨 쉬고 꿈틀거리는 거대한 생명 터지려는 분노 안으로 안으로 구심(求心)으로 끌어 누르고 용암(鎔巖)의 꿈틀거림 때로는 침묵으로 응시하라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인 시뻘건 응어리 가슴 가슴으로 품어 순수한 대지의 헐떡이는 숨소리 분노의 하늘로 치솟는 꿈꾸어라 아직은 흔들거리고만 있을 때야 아직은 꿈틀거리고만 있을 때야 어느 날 푸른 하늘이 활짝 열리고 어느 날 붉은 태양이 찬란히 빛날 때 빛과 빛이 만나 어둠을 이기고 불과 불이 만나 세상을 태우고 새로운 천지가 열릴 때까지 한 세상 마음껏 흔들려 보자 지진이야 늘 일어나지 땅은 늘 깨어있으니까 숨 쉬고 꿈틀거리는 거룩한 지진.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대한구강보건학회 회장, 연세치대 외래교수 -저서 시집 《혼자먹는 식탁》
모처럼 가족 여행을 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어렵게 정한 여행 출발 하루 전 날 막내딸이 직장 일로 갑자기 함께하지 못하게 되어, 가족들의 안타까움을 뒤로한 채 공항으로 향했다. 해외여행을 여러 번 했지만 출발하는 공항으로 향하는 마음이 이번처럼 쓸쓸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하자 가족들의 마음은 모두 들뜬 상태가 되었다. 추운 겨울에 동유럽 여행은 새로운 경험이 될 듯했다. 여름 휴양지로 떠나는 여행객들은 모두 가벼운 의상으로 갈아입었으나 우리 일행의 두꺼운 코트와 무거운 여행 트렁크가 대조되었다. 11시간여 동안의 비행 후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하니 역시 독일의 날씨답게 흐리고 습한 날씨의 싸늘함이 코끝을 스쳐왔다. 주로 여름휴가 때만 해외여행을 다녀보아 햇빛이 따갑고 눈이 부신 여름날이었는데 겨울의 쌀쌀한 바람이 코끝에 스밀 땐 상쾌함마저 느끼게 되었다. 호텔에 투숙 후 다음날 드레스덴으로 향했다. 오페라 수업을 여러 해 받았기 때문에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오페라하우스는 전경만 바라보아도 주인공의 아리아들이 들리는 듯했다. 찬바람이 흩날리는 오페라하우스 광장을 코트깃 세우며 명상에 잠겨 보았다. 인근한 곳에 괴테가 유럽의 테라스라 극찬했
누구나 사람은 자기만의 섬 하나 가지고 있다 살아서는 갈 수 없는 죽어야만 갈 수 있는 환상의 섬 어부들 꿈꾸는 피안의 섬 비바람 몰아치는 날에만 나타나는 파랑도 거기서 통곡하고 싶다 누가 이곳에 내려놓았는가 황금의 닻을! 누가 이 검푸른 바다에 숨겨놓았는가 판도라의 상자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마법의 섬 거기서 살고 싶다 거기서 죽고 싶다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대한구강보건학회 회장, 연세치대 외래교수 -저서 시집 《혼자먹는 식탁》
무서리 치는 늦은 가을날 홍시 한입 물고 지그시 눈을 감는다 여름날의 햇살 입안 가득하다 수다스런 잎들 떨 군 가지 끝 끈질기게 매달려 하늘가에 밝혀두었던 붉은 등 하나 무르익는 시간의 농축 농익는 것이 달콤하다 설익은 말과 서투른 몸짓 몸과 마음이 하나로 익어가는 기량 떫은 세월없이는 홍시의 시간도 없다 겨울로 가는 가을의 언어 선명한 입장으로 포장되어 배달된다 곰살궂은 옛정 하얀 분 곱게 서린 노을빛 눈물 무르익는 삶의 온축(蘊蓄) 농익는 것이 아름답다 두 손으로 감싸 안고 꼭지를 따니 시치미 뚝 뗀 새빨간 속살 살갑다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대한구강보건학회 회장, 연세치대 외래교수 -저서 시집 《혼자먹는 식탁》
땅속을 달리는 지하철에 두더지들이 바지런히 드나든다. 무리에 떠밀려 보사노바 리듬에 맞춰 뱅글뱅글 군무를 추며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을 시작한다. 달이 차고 기우는 동안 햇볕을 등지고 살다 숨구멍을 찾아 잠시 지상으로 올라 답답하고 숨 막히는 하루를 게워낸다. 작두를 타듯 타닥타닥 춤추는 하이힐을 신고 배불뚝이 애물단지 백팩을 메고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린 고양이처럼 보낸 하루 의자에 비뚜름하게 기댄 채 몇 번이고 떨궈졌다 일어서는 고개 화들짝 놀라 미어캣처럼 정차역을 두리번거리다 잠드는 당신 당신의 유일한 소원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갖지 않고 아무도 되지 않기 당신은 꿈속에서 바람이 늘 쉬어가는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 누워 단잠을 청하고 전능하신 이가 보낸 수호천사는 그대를 어루만지며 먹이고 쉬게 함으로 물 흐르듯 숨을 고르는 시간 티키타카 흐르던 보사노바 음악이 멈추고 지상의 시간이 쏟아져 들면 하나둘 잠에서 깨어난 두더지들은 나비의 꿈을 좇아 천상으로 날아간다. ---------------------------------------------------- *자작시 시상: 지하철 안에서 의자에 기댄 채 가방을 안고 잠든 분이 있었습니다. 몇 번이
벽에 걸린 시계 속 나무 둥지에 뻐꾸기 한 마리 비틀어진 시간을 먹고 하늘을 꿈꾼다 어둠 깊은 곳에서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복받쳐 올라 목울대를 칠 때 비로소 울음이 완성된다 약속의 시간 열린 문을 박차고 자식을 버린 어미를 저주하며 뻐국! 뻐국~ 뻐국! 뻐국~ 청아한 울음소리 한번 피맺힌 울림소리 한번 남의 둥지에 버려진 기막힌 생명은 전설이 된다 눈물도 말라버리고 사연도 희미한데 헛되도다! 헛되도다! 나그네 세월 뻐꾸기 나이 오십이다 울던 손자 울음 뚝 그치고 방긋방긋 웃는다 할아버지 틀니가 덜그럭거린다 부서진 날개 안간힘 다해 단 한 번의 날갯짓으로 허공을 꿈꾼다 약속의 공간 문 닫고 들어가면 님을 향한 그리움 휘어진 허공에 시간은 강물이다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 -대한구강보건학회 회장, 연세치대 외래교수 -저서 시집 《혼자먹는 식탁》
주머니 속 꼬깃꼬깃해진 종이 위에 시냇가 징검다리처럼 꾹꾹 눌러 쓴 새까맣고 단단한 글씨 발이 달려서 어딘가로 줄행랑 이 세상 틈새로 사라졌다 찾으려야 찾을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을 붙들어 세우고 새하얀 머릿속을 이 잡듯이 뒤져봐도 결국 붉은 입술이 터지고 가슴은 새까맣게 쪼그라들었다 인절미에 조청 찍은 맛 그 맛을 잃어버렸네 눈코입 손가락 그대로인데 나 아닌 누구일까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
사람의 체온보다 더 높은 날은 늘 침묵이었다 온통 뜨겁게 달아오르는 지열 속에 사방천지의 살아 있는 것들의 호흡은 잠시 멈추고 더 살기 위한 숨 고르기는 바람 한 점 없는 몽환 속을 헤맨다 오후의 뜨거운 빛은 느릿느릿 느슨하게 흐르고 나뭇잎들에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스며들고 불타오르는 태양을 향해 분노의 눈을 들면 수억만 개의 빛들이 생멸로 반짝여 눈이 먼다 온통 숨죽이는 대지의 인내는 먼 기억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가고 첫사랑도 옛사랑도 마지막 사랑도 비비적거리고 온몸을 움츠리며 벌어진 땀구멍을 막아버린다 제 몸무게보다 서너 배 삶의 무게를 지고 까맣게 타버린 대지를 횡단하는 개미의 여름날 땀방울은 최고의 포식자의 배설물이다 달아오르게 하는 것들은 식히는 것들에 의해 언제나 평형을 이루는 몸부림이다. 온천지가 뜨거울수록 옷을 하나씩 더 껴입어야 하는 이 외로움은 언제 해동이 될런지 죽어도 죽어지지 않는 밤 권태의 덧문을 걸어 잠그고 더울수록 더울수록 외롭다 외로워지는 환한 밤이다. 김계종 전 치협 부의장 -월간 《문학바탕》 시 등단 -계간 《에세이포레》 수필 등단 -군포문인협회 회원 -치의학박사 -서울지부 대의원총회 의장 -치협 대의원총회 부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