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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대 설립, 괜찮을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23)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2020년 여름 의사 파업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으나, 결국 공공의대 설립은 계획대로 진행될 모양입니다. 국회에서 예산안이 통과되었으니 진행이 안 되는 게 이상한 일일 것 같은데요. 물론, 공공의대와 치과는 당장 큰 관계가 없습니다. 하지만, 공공의대가 한국의 정치와 제도 지형에서 상징하는 바가 있을 텐데, 이것이 치과와 완전히 무관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아요. 공공의대 설립의 의미는 무엇이고, 치과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익명

 

의료 서비스는 여러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거시적 차원으로 국가 간 관계나 국가의 의료 제도가 있지요. 이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가 서로 경쟁하는 모습이 의료 서비스의 국제적 차원을 잘 보여준다면, 현재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정부와 질병관리청이 내놓는 정책은 국가 차원의 의료 서비스가 무엇인지를 모든 사람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중간 차원을 구성하는 것은 각 기관의 운영 방식입니다. 대표적으로는 병원의 운영 방침이나 계획이 있지요. 심지어 정부에서 운영하는 공공병원이라고 해도, 운영 지침은 병원 차원에서 결정합니다. 마지막으로, 미시 차원은 의료인과 환자 개인의 결정으로 이뤄집니다. 의료인이 환자를 대하는 방식, 환자가 어떤 서비스를 받을지, 어느 병원에 갈지 결정하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 세 차원은 별도로 운영되지 않습니다. 각 차원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국내 사례를 든다면, 아무리 국가가 의료 전달 체계를 확립하려 해도 역사, 문화적 영향으로 인해 사람들이 소위 ‘빅5’ 병원에서 진료받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이 있지요. 의료 서비스의 이용은 어느 한 차원이 모든 결정에 우선하지 않고, 여러 차원을 통해 종합적인 결정에 다다르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공공의대 정책 또한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공의대를 설립하는 것은 의료 서비스의 국가적, 기관적, 개인적 차원에서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국가적 차원에서 공공의대 설립은 코로나19로 대두되었던 공공의료 강화와 지방의료 격차 해소를 추진하겠다는 목적을 지니지요. 이 정책의 성패는 다른 곳에서 언급했으니 여기에선 자세히 다루지 않으려 합니다. 사실, 현재 상황에서 예측하기 어려운 점도 있지요.


굳이 하나만 지적하자면, 지금도 공공의료 영역에서 일하려는 의료인과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선뜻 선택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료인의 전문성이 인정받기 어려운 공공영역 업무 수행의 특징 때문입니다. 급여를 떠나, 의사로서, 간호사로서, 치과의사로서 배우고 생각한 것을 실천하는 것과 공공영역의 업무는 상당한 간극을 보입니다.


군 의료가 좋은 예인데, 군의관으로 일하면서 의료에 관한 이해가 없는 일반인인 상급자를 이해시키고 체계가 문제가 있음에도 그대로 따르며 아무런 생각 없이 움직이는 동료와 하급자를 끌고 가면서 좋은 진료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저도 복무하면서 너무 화가 나서, 애꿎은 대상에게 뭐라고 쏘아붙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거든요.


이제 기관 차원으로 움직여보겠습니다. 공공의대 수립과 관련 있는 기관은 교육을 담당하는 의료계열 학과겠지요. 국내 의학교육 평가를 통해 개선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의과대학입니다. 치과대학은 의과대학에서 나온 성과를 수용하며 후발주자로 따라가고 있는 형편인데, 이는 규모의 차이가 워낙 현격한 데에서 나온 결과이죠.


현시점에서 공공의대 수립은 의과대학 교육에 부정적인 신호를 전달하게 됩니다. 단기간에 설립하는 공공의대가 현재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이 요구하는 평가인증 기준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갑자기 공공의학 교육에 헌신하고 준비된 교육자가 허공에서 튀어나오지 않습니다. 외국에서 모셔 올 수도 없지요. 따라서 공공의대는 교육 공백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전 서남대학교 의과대학이 폐쇄된 것은 이사장의 횡령이 주된 이유였지만, 평가인증에서 불인증 판정을 받았던 탓도 컸습니다. 그러나 사학이었던 서남대학교와 달리 공공의대는 정부가 운영하므로 불인정 판정을 내리고 폐교 조치를 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공공의대는 기준에 못 미쳐도 예외를 봐줘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이때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이 문제가 됩니다. 의과대학(치과대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평가인증을 위해 학교는 2~4년마다 상당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런데 공공의대는 정부가 수립했다는 이유만으로 예외 처리를 한다 할 때, 다른 학교가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교육 개선, 개혁의 동력이 되는 평가인증이 와해하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 소모적인 논쟁을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개인 차원에서 보면, 이것이 의료인 개인의 수준에 관한 논의를 제기하게 됩니다. 대한의사협회 정책연구소의 실기(失機)였던 ‘1등 의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료인에게 면허를 부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이들이 적절한 의학교육을 받고 나와서 최소한의 수준을 갖추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합니다.


공공의대 설립 이후, 사람들은 질문하게 될 겁니다. 당신은 어느 의대를 졸업한 사람이냐고. 의사로서 내 몸에 손을 댈 만큼 필요한 교육을 충실히 이수했냐고. 더구나, 지금 의학은 급변하는 시점에 서 있습니다. 굳이 제4차 산업혁명을 언급하지 않아도 정보 기술이 신약, 신기술, 새로운 접근법을 내놓고 있으며, 의사들은 자신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되는 것은 아닌가 걱정합니다. 이 시점에 학생 교육은 그 중요성을 더하고 있습니다.


이를 시행하는 것은 의학 교육 기관의 변화이기도 하나, 예비의료인 각자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합니다. 여기에 공공의대 개설은 찬물을 끼얹습니다. 예비의료인은 자신이 변화를 추동하기보다 외부의 압력에 좌우될 뿐이라며 자조하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 영향은 고스란히 치과대학에도 밀려올 겁니다.


치과대학·치의학전문대학원은 여러 의미에서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치과계 자체에선 CAD/CAM, 3D 프린터, 기계 학습을 통한 정보 처리의 변화 등 기술 발전의 영향을 교과 과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압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보험 제도 등의 변화를 수용하여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경영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안배해야 하고, 앞서 말한 의학교육의 변화에 발맞춰 교과 과정을 쇄신할 필요성이 커진 상태입니다. 사회의 요구로 치과의료윤리 교육은 더는 늦출 수 없는 당면 과제가 되었지요.


이런 변화가 강압적으로 이뤄져서는 안 되고, 학생의 필요를 수용하면서 치과계가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밑바탕에는 치과 교육 기관의 성장이 있겠지요. 공공의대 설립은, 이 성장에 그림자를 드리울 겁니다.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