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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레시피: 시큼 달콤한 김밥―생애 첫 김밥, 어머니가 해주신 그 맛이 날까요?

수필

어릴 때 형이나 누나의 소풍날 새벽녘이면 어머니는 안방에서 김밥을 만드셨다. 자다가 졸린 눈을 배시시 뜨고 일어나 보면, 어머니 옆에는 김밥에 넣을 속 재료들과 시큼하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갓 지은 밥이 놓여 있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손으로 집어 먹어 보면 익숙한 맛이었다. 도마 위에는 길 잃은 김밥 꽁다리들이 보였다. 크기도 작거니와 보기에는 볼품이 없지만, 비몽사몽 잠결에 하나씩 입에 넣었을 때의 기쁨이란 먹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래서 소풍 전날이면 늘 설레며 잠들었다.


“일찍 일어나는 아이 김밥 꽁다리 얻어먹는다.”


진심 이런 속담 하나 만들고 싶다. 퇴근길 저녁에 들른 김밥집 사장님에게 어렸을 때 어머니가 소풍 때 싸주셨던 시큼한 김밥을 팔면 어떠냐고 제안해본 적이 있다. 사장님은 손사래를 쳤다.


“그럼 김밥이 쉰 지 알고 사람들이 난리 나요.”


사장님은 어릴 적 잠결에 일어나 시큼한 김밥 꽁다리를 드셔본 적이 없는 게 분명하다.


토요일 오후 자전거를 타고 마트에 들렀다. 김밥용 재료를 장바구니에 담았다. 계산하려니 지갑이 없다. 아무래도 김밥은 내일 싸야겠다. 집에 도착해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왜 어릴 때 먹었던 신맛이 나는 김밥, 어떻게 싸는 거예요?”
나는 어머니만의 특별한 요리법을 기대했다.


“내가 김밥을 별로 안 싸봐서 잘 모르겠네.”
내 기억으로는 다섯 자녀의 소풍 때마다 싸주셨는데… 왜 별로 안 싸봤다고 하실까? 기대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그리고 어머니는 잠시 말이 없으셨다.


“직접 김밥을 싸게?”
“애들 먹으라고 싸보려고요.”
“좀 기다렸다가 애들 엄마한테 싸달라고 하지.”


어머니와 통화를 마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다.
일요일 오후, 김밥에 들어갈 시금치와 당근, 채칼과 김밥 세트를 사 왔다. 어머니가 싸주셨던 시큼한 맛이 나는 김밥을 재현해 보기 위해 유튜브를 검색했다.


당근의 껍질을 채칼로 벗긴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채를 썰었다.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소금을 살짝 뿌린 후 볶아 주었다. 시금치는 뿌리를 손질하고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아주 살짝 데쳤다.다시 물을 짜낸 후 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려 위에 깨를 뿌려 준비해 놓았다. 약간 짭조름한 맛이 돌게.


달걀 3개를 깨뜨려 소금으로 살짝 간하고 풀어준 후 팬에서 계란지단을 부친 후 채를 썰어놨다. 김밥의 시큼한 맛을 내기 위해서 단촛물을 준비했다. 설탕과 식초를 1:2의 비율로 섞고 소금을 조금 넣고 식초의 강한 맛이 날아가게 살짝 끓였다. 갓 지은 밥을 덜어내 준비된 단촛물을 넣고 밥알이 으깨지지 않도록 골고루 섞으며 식혔다.


햄을 끓는 물에 데쳐 내고, 노란 단무지와 우엉은 물에 씻은 후 물기가 빠지도록 채에 받혀  두었다. 김밥 위에 참기름을 발라주는 것으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때맞춰 학원에 갔던 우리 아이들이 돌아왔다.


“오, 아빠 진짜 김밥 쌌네.”
“그럼, 어서 손 씻고 와.”


김밥 옆구리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썰었다. 곁들여 먹을 총각김치도 꺼내놨다. 치과 치료를 위해 지난주 올라오셨을 때 어머니가 손수 담가오셨던 김치였다. “어디 한 번 먹어 볼까?” 하고 조그만 입에 김밥을 넣고 오물거린다.


“응? 뭐가 좀 빠진 거 같은데?”
딸이 족집게처럼 집어냈다. 아들은 아무 눈치가 없다. 열심히 먹는다.


“어? 그래?”
김밥의 단면을 들여다보니 우엉이 보이지 않았다.


“진짜, 우엉이 빠졌네.”
게맛살과 단무지를 반으로 나눠 놓느라 옆으로 치워둔 우엉이 눈에 띄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맛있다. 아빠. 밖에서 사 먹는 김밥이랑은 맛이 달라.”


생애 처음으로 싼 김밥은 그렇게 순식간에 동이 났다. 김밥 속 재료가 많이 남았다. 내일 아침 메뉴도 고민할 거 없이 김밥이다. 냉장고를 들락거리다 보니, 음식 재료 버리는 게 제일 아깝다. 어머니가 시골에서 식구들 챙겨 먹으라고 보내준 거면 더 마음이 쓰인다. 이거 올려 보내주려고 준비한 어머니의 정성과 노고를 알기에.
언젠가 명절 연휴가 끝나고 햅쌀, 각종 반찬, 채소를 바리바리 싸주는 어머니를 보고 윗동네에 사는 인경이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 뭘 그리 바리바리 싸줘, 어차피 애들 서울 올라가면 제대로 먹지도 않고 냉장고에 있다가 음식물 쓰레기로 버려질 텐데.


”며칠 후 어머니의 치과 진료를 마치고, 저녁때가 되어 작은 형 내외와 함께 근처 추어탕집에 들렀다. 냄비에서 추어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동안 김밥 얘기가 화제에 올랐다.


“서방님, 단무지를 물로 씻은 다음에 살짝 데쳐주면 더 맛있어요. 오이도생으로 넣는 것보다는 소금과 식초로 살짝 간해주고요.”

역시 주부 9단 작은 형수님이시다.


“참기름 조금 넣고 밥에 맛소금 뿌려서 김밥 싸면 맛있지.”


그랜드 마스터 요다에 버금가는 대장금 어머니도 한마디 거드셨다. 행여 더운 날씨에 소풍 가서 탈이 날까봐 식초를 넣어 시큼 달콤한 김밥을 싸주셨던 어머니를 바라보니 마음이 흐뭇하기만 하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