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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는 왜 자부심을 느끼지 못할까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24)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치과의사는 의사와 비교하면 어딘가 위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사회에서 받는 시선도 그렇고요. 아무래도 의사는 뭔가 큰일을 하고 대단한 일을 하는데, 치과의사는 입 안에 갇혀서 작은 것밖에 못 보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이전부터 들어왔던 이야기이기도 한데, 그러다 보니 치과대학생들도 치과의사도 다들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익명

 

최근 한 선생님이 유튜브를 통해 올린 영상 중 한 부분이 인터넷상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의대 공부량이 치대 열 배”라는 내용이었는데요. 이 선생님은 의대를 졸업한 다음에 다시 치대를 졸업했고, 현재 치과 개원의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인의 경험이 다양하다 보니 여러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상황이고요. 의대와 치대 공부를 모두 해 봤는데, 의대는 전신의 여러 과목을 배우기 때문에 아무래도 내용이 훨씬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발언이었습니다.


의대가 훨씬 암기량이 많은 것은 사실이죠. 이 부분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표현이 조금 아쉬웠어요.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모두에게 같습니다. 따라서, 의대든, 치대든, 공대든, 경영대든, 문과대든 모두 개인이 공부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은 같습니다. 그만큼 공부를 할 것인가, 봐야 하는 양이 강제로 그만큼 주어지는가는 조금 별문제이긴 하지만요. 따라서, 하고자 한다면 공부량은 어디에서나 같습니다. 단지 당장 시험에서 봐야 하는 양이 다른 것뿐이고, 각각 해당하는 내용을 소화하기 위한 전략에서 차이가 날 뿐입니다.


물론, 의대는 당장 닥친 시험에 급급하다 한 학기가 다 지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한편, 치대는 실습에 급급하다 한 학기가 다 지나가지요. 고등학교까지 손으로 하는 작업에 친하지 않던 학생을 진료할 수 있도록 만드는 과정은 지난하고, 학생들은 많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외부에서 보기에 의사, 치과의사는 일단 전문 지식인이고, 지식량으로 이들의 전문성을 평가하게 됩니다. 의학의 지식량이 더 많으니 치과의사보다 의사가 더 대단한 것 아니냐, 의사는 전문직이지만 치과의사도 정말 전문직이냐 하는 시각이 가끔 눈에 들어오기도 하지요. 다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이런 이야기야 별로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이 치과계 내부에도 퍼져 있다는 겁니다. 제가 학생 때 교수님과 선배님을 비롯해, 여러 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왜 치과대학에 들어왔냐는 말이었습니다. 치과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데 괜히 머리 좋은 아이들이 들어와서 문제다, 다른 분야가 더 전망 있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 일은 힘이 빠지는 일이었습니다. 막 외환위기가 완전히 다 지나간 새천년의 시대상 때문이었기도 했을테지만, 이런 말이 도는 것은 내부의 자조적인 분위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치과의사, 정말 전망없는 직업이거나 아무나 해도 되는 직업일까요? 물론, 치과가 의과와 비교해 규모가 작은 것은 사실입니다. 종합병원에서 살고 죽는 드라마는 치과에서 보기 어렵고, 그런 것에 비하면 치과는 사소한 일상의 업무라는 느낌을 받기 쉽죠. 의과에선 인공지능이나 여러 기술을 통한 변화가 막 이뤄지고 있으며 산업도, 투자도 계속 늘어나는 데 비해 치과는 정적인 느낌도 없잖아 듭니다.


그러나, 저는 거꾸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치과의 전망을 보지 않았고, 아무나 해도 되는 일로 만들었던 것은 아닌지요. 치과가 할 수 있는 일을 우리가 제한했던 것은 아닌지요. 진료는 여러 요소가 모이고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이 요소들 각각은 가능성과 힘을 지니고 있기에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이를테면, 저는 방금 아산화질소를 이용한 의식하진정법을 활용하여 5세 남아에게 기성금관 수복을 막 하고 들어와서 원장실에서 이 글을 적고 있습니다. 이를 정형화하면 늘 똑같은 치료를 특별한 것 없이 반복하게 됩니다. 엑스레이 영상에서 유구치의 중등도 우식이 관찰됩니다. 보호자에게 우식이 상당히 진행되어 신경치료 가능성이 있고 충전 재료는 탈락 가능성이 커 기성금관으로 수복한다고 설명합니다. 행동 조절을 위해 아산화질소 사용도 함께 설명하죠. 보호자 동의 후 치료를 진행합니다. 마취, 치아 삭제, 금관 조정, 금관 부착과 시멘트 제거. 틀에 박힌 일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환아를 처음 볼 때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으며 혹시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관찰하여 보호자에게 어떤 치료를 권할지를 선택합니다. 보호자와의 대화에 집중하여, 미세한 신호들을 파악하여 치료 계획을 좀 더 수월하고 환자와 보호자의 필요에 맞게 조정합니다. 치료 과정에서 치과위생사와 손을 맞추고 민감하게 움직여서 최소한의 불편감과 시간으로 기성금관 치료를 마칩니다.


이 과정까지 오는 데에도 수많은 차이와 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환아의 그 날 상태에 따라 치료 부위를 바꿀 수도 있습니다. 보호자가 비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심미성을 중시하는지에 따라 재료나 방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좀 더 나가보면, 치과 재료와 기술은 많이 변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소아치과만 해도 수복 재료에도 여러 변화가 있었고 제도에 따라 어떤 치료를 쉽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지가 바뀝니다. 이것은 다른 모든 과, 영역에서 마찬가지입니다.


오히려, 치의학과 치과의사가 품는 역동성을 제한한 것은 저 자신이 아니었을까요. 고민하지 않고 쉽고 편하게 진료하기 위해. 머리를 차갑게 만들고, 매일의 진료를 편안하게 넘기기 위해.


하지만, 진료의 측면에서 보아도, 윤리의 측면에서 보아도, 행동이나 제도의 측면에서 보아도 치과가 지닌 가능성과 힘은 엄청납니다. 우리는 이제 노쇠한 노인의 구강 관리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구강 영역에서 미생물의 변화를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기술적으로는 어느 정도 완숙기에 오른 임플란트는 제도의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점차 말기 의료가 중요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구강 관리는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는 치과 인력이 어떻게 함께 일할지 고민하고 있으며, 팀을 이뤄 진료하는 모습을 확립하여 다른 의과 영역에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두에서, 치과의사가 자부심을 느껴도 충분하리라 믿습니다. 아니, 여기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찾아내고 확인하며 말하는 것, 이 또한 윤리의 일이지요.

 

 

▶▶▶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