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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장막(A sanctuary for the night) <1>

소설

“생각할수록 참으로 이상한 밤이었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해. 내가 이제 그때의 아버지 나이가 됐는데도 말이야.”


7호선 남구로역 새벽 5시, 예순이 넘은 노인의 얼굴에는 어린아이와 같이 천진한 표정이 깃들었다. 큰 두상에 통뼈로 타고 나서 젊은 시절에 힘꽤나 썼을 법한 체격이었다. 고 씨의 고향은 경남 의령군 부림면 경산리라 했다.


지난해 새벽 인력시장에서 고 씨는 성만과 몇 번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노가다 일꾼을 구하러 온 십장의 트럭에 올라탈 때도 성만을 함께 부르는 법은 없어서 같이 일해본 적은 없었다. 다만, 주경야독하며 병든 노모를 모시고 동생들을 뒷바라지하면서 3년째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는 고학생이란 이야기만 전해 들었다.


성만은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여태껏 살아계셨다면 어르신과 연배가 같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있었다.


검붉게 녹슨 드럼통 주변에 아직 잠이 덜 깬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장작불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장작불이 뱀의 혓바닥처럼 드럼통 밖으로 날름거릴 때마다 어둠 속에서 남자들의 얼굴이 드러났다 사라지곤 했다. 드럼통 안에 건축 폐기물에서 나온 장작을 얹자 불티들이 사방으로 날렸다. 대부분 잡역부 일을 구하러 나온 사람들로 핸드폰에 시선을 뺏긴 채 무표정한 얼굴들이었고 그나마 고 씨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인 사람은 카키색 군복 야상을 걸치고 있는 성만이었다. 고 씨도 그런 성만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아들뻘 되는 성만에게 아버지와 함께 밤의 장막을 걸었던 그날 밤의 기묘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 경산리 박진 고개를 넘었던 이야기만 떠올리면 지금도 모골이 송연해진다니까.”라며 너스레를 떨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와 나는 그날 밤으로 박진 고개를 넘어야 했지. 큰집에 제사가 있었거든. 박진 고개를 돌아서 가는 길은 십 리를 더 가는 셈이었어. 어두컴컴한 밤길에 십 리를 더 걷는다고 생각해봐. 끔찍하지.


고개를 넘자마자 바로 소나무들로 우거진 좁다란 숲길이 나오는데, 오른편에 공동묘지가 있었어. 그래서 사람들은 늦은 밤에 그 고개를 넘기를 꺼렸지. 지름길인데도 말이야.


공동묘지에는 볼품없는 봉분 다섯 개가 뎅그러니 놓여 있었어. 동리 사람들은 흉년에 먹을 것이 없이 화전을 일구던 일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도 하고, 누구는 역병이 돌아서 몰살된 가족을 지나는 나그네가 묻어주었다고도 했지.


아…… 글쎄, 아랫녘 김 생원은 말이야, 공동묘지 옆을 지나다가 귀신에게 홀려서 밤새 끌려다니며 씨름하고는 귀신을 혁대로 꽁꽁 묶어 놓고 다음 날 가보니 소나무였다고 했다지. 그 일이 있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건넛마을 박 서방이 공동묘지 가까운 도랑에 자빠져서 숨을 거둬서 한바탕동리가 난리가 났어.


아버지를 따라나선 칠흑같이 어두웠던 그 날 밤에 말이야…….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