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아이들을 하교시키고 교실에 혼자 남아 있던 지우는 자기도 모르게 ‘후유~’하고 한숨을 내질렀다. 오늘 하루도 별일 없이 지나가나 했더니 여지없이 문제가 터졌다. 오늘 짝이 된 지영이와 민수가 주먹다짐을 한 것이
다. 민수 말로는 지영이가 먼저 머리를 때렸다지만, 그렇다고 지영이 머리를 벽에 밀친 민수에게도 잘못이 있었다. 아이들의 엄마들로부터 오후 내내 번갈아 가며 전화가 걸려오는 통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학교업무는 손끝 하나 건드릴 수 없는 지경이었다.
지우는 멍하니 빈 교실을 응시하다가 퇴근할 시간이 30분이나 지난 걸 알게 되었다.
‘참, 6시에 영미 학교로 태우러 가기로 했는데, 깜빡 잊었네.’
영미는 지우가 지난해 근무했던 학교에 동학년 선생님이었다.
허겁지겁 책상 위에 소지품들을 핸드백에 던져 넣고, 호주머니 속에 만년필을 꺼내는 순간에 100원짜리 동전이 교실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교실바닥은 삐걱대는 오래된 목재로 돼 있어서 이음새 부분마다 틈이 있었다.
‘톡! 또르르~’
지우의 눈이 바닥에 떨어진 100원의 궤적을 좇아갔다. 동전이 레일을 따라 움직이는 기차 바퀴처럼 바닥을 구르다가 그만 틈새로 빠져버렸다.
“힝~ 내 행운의 동전!”
할아버지는 아빠가 은행에 취업해서 처음 출근하던 날, 아빠에게 1971년도에 제작된 100원짜리 동전을 건네주셨다고 한다.
“이 동전이 네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다. 늘 품에 지니고 살거라.”
그리고 그 동전은 지우가 임용고시에 합격하고 처음 발령받은 학교로 출근하던 날, 다시 지우에게로 전해졌다. 아빠는 할아버지의 말투를 흉내 내며 주먹 쥔 손을 내미셨다.
“지우야! 이 동전이 네게 행운을 가져다줄 거다. 늘 품에 지니고 살거라.”
아빠도 지우도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긴장되고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리면 동전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었다. 마치, 주술사가 주문을 외우듯이 말이다. 동전은 오랜 연식에도 불구하고 표면이 반질거렸다. 그래서 지우는 이 행운의 동전이 교실 바닥 아래에 혼자 살도록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어깨에 두른 아이보리 색 핸드백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바닥 틈새로 몸을 구부렸다. 살구색 원피스가 교실 바닥에 동그란 그늘을 만들었다.
교실 바닥 아래엔 오랜 세월 켜켜이 쌓인 먼지와 함께 가지각색의 연필과 흰색 153 모나미 볼펜, 지우개 조각, 10cm 플라스틱 자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좁은 나무 바닥 틈으로 제법 큰 몸집의 연필과 볼펜, 자들이 어떻게 비집고 들어갔는지 지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이쯤에 떨어진 거 같았는데.”
틈새 양옆을 다 살펴본 후 좀 더 앞쪽의 어두운 공간을 바라보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에 볼록렌즈처럼 붉은 수정체가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었다.
“엄마야! 웬 고양이래?”
파란색 털을 가진 스코티시폴드 고양이였다. 녀석은 지우가 떨어트린 100원 동전을 입에 물고 잔뜩 침을 묻힌 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대고 있었다.
“세상에, 교실 바닥에 이렇게 덩치 큰 고양이가 살고 있을 줄이야!”
고양이는 지루한 듯 앞발을 뻗어 기지개를 켰다.
고양이의 검은 눈동자에 압도되어 상기된 표정으로 나가려던 지우를 불러 세운 건 교실 안에 서늘하게 울려 퍼진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지금, 밖으로 나가면 안 돼.”
‘설마 교실 바닥에서 들려오는 소리?’
지우는 뒷골이 서늘해지면서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하게 돋는 기분이었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