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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 <1>

소설

찻잔에서 노란빛의 송화밀수가 김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이 차는 꿀물에 잣을 띄워 마십니다. 원기를 북돋는데 그만이죠.”


친절한 설명과 함께 주인이 곁들여 내온 감자 맛은 그 작은 씨알만큼이나 소박했다. 빗방울들이 통유리 너머 나뭇가지에 염주처럼 매달려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 소리가 을씨년스러웠다. 밤새 내린 비로 불어난 계곡물이 바위를 끼고 돌며 모였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둘은 한참이나 대리석 교각 위에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손을 맞잡고 계곡을 따라 아치형 통나무다리를 향해 천천히 발걸음을 뗐다. “나는 오빠가 안타까워 죽겠어.”


“뭐가 안타까운데?”
“싫다는 소릴 못해. 그래서 사람들이 오빠를 우습게 알잖아.”


둘은 다리 위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민혁이 순영을 살며시 안았다. 그의 온기와 심장의 박동이 순영에게 전해졌다. 다리 위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민혁은 순영의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을 때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가 순영의 입술 안으로 혀를 밀어 넣자 갑자기 순영이 비명을 지르며 입안에서 뭔가를 뱉어냈다. 바닥에 떨어진 분홍색 물체가 다리 틈새로 떨어졌다. 민혁이 무슨 말인가를 하려 했지만, 제대로 된 말이 흘러나오진 않았다.


“느 흐어…….”
그는 다리 바닥 틈새에 얼굴을 대고 떨어진 분홍색 물체의 흔적을 찾았다. 당황한 민혁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메모 앱에 쓴 걸 순영에게 보여주었다.


(내 혀가 물에 빠졌어.)
“뭐 오빠 혀라고?”
순영이 소스라치게 놀라자 민혁은 다시 휴대폰에 글자를 썼다.


(7살 때 교통사고로 혀가 절단됐거든. 그동안 병원에서 만든 혀를 붙이고 있었어.)
“얼른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야?


”민혁이 신발을 신은 채 차가운 계곡물 속을 첨벙거리며 걸어 들어갔다. 금세 그의 입술이 새파래졌다.
“오빠, 입술이 파래.”


그런 민혁의 머리 위로 붉은 단풍잎들이 흩날렸다. 민혁은 30분이나 계곡을 더듬다가 다리 위로 올라왔다.
(금속탐지기로 찾아봐야겠어)


계곡에서 나온 민혁이 떨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을 눌렀다. 글자들은 경련을 일으키며 화면 위로 떠올랐다.
오후에 그들은 가슴 장화를 신고 금속탐지기로 잃어버린 혀를 찾기 시작했다. 금속탐지기는 인터넷에서 값을 치르고 빌렸다. 유속은 어제보다 느렸다. 오후 내내 하류 100m까지 샅샅이 수색했지만 나온 거라곤 녹슨 동전과 금속 캔이 전부였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그들의 작업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인근 마을 아주머니가 다슬기 수경을 가져와 도와주었지만 허사였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 가고 있었다. 저무는 날만큼이나 표정이 어두워진 민혁이 휴대폰에 다시 글자를 썼다.
(내일도 와서 찾아볼게.)


그는 혀 보형물이 없는 상태가 걱정됐다. 보건소 치과 업무야 마스크를 쓰면 된다고 해도 경로당과 학교 방문 교육이 문제였다. 하필이면 1주일 뒤 순영의 부모님을 만나 뵙기로 한 약속까지 잡혀 있었다.


이튿날 보건소에 출근하자마자 민혁은 직속 상관인 최우철 과장을 찾았다. 그는 5급 사무관으로 나이로는 민혁보다 한 살 위였고 민혁은 보건소 기간제 공무원이었다. 과장은 민혁의 서류철을 책상 위에 내던졌다.


“이걸 일이라고 했나 참!”
민혁이 대답 대신 양복주머니에서 편지를 건넸다.


“이건 또 뭐야?”
과장이 신경질적으로 편지를 낚아챘다. 편지를 읽은 과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혀를 다쳐서 말하기 곤란한 상황이라 1주일 병가를 내시겠다 이거지.”
“왜 갑자기 말을 못 한다는 거야? 여자랑 키스하다가 혀라도 잘렸나?”


민혁이 휴대폰 메모 앱에 서둘러 글을 썼다.
(아닙니다. 혀를 좀 크게 다쳐서…….)


“하여튼 잘났어. 의사 양반. 1주간이나 병가를 내버리면 진행 중인 일은 어떡할 건데. 이러다 내년에 재임용이 안 될 수도 있어.”


고개 숙인 민혁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다음에 계속 이어집니다>

 

 

임용철 원장

 

선치과의원
<한맥문학> 단편소설 ‘약속’으로 신인상 등단
대한치과의사문인회 총무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원
<2013 치의신보 올해의 수필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