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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서 아날로그의 가치

시론

최근에 필자는 환자의 편의를 위해 자필 작성한 소견서와 함께 개원가 병원으로 진료를 의뢰하였다. 의뢰받은 원장님께서 ‘교수님도 참 악필’이라는 농담인사를 전해오셨다. 과거에는 천재는 악필이라는 말로 위로하고 지나갔지만, 악필은 교정해야한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컴퓨터를 사용하고 엄지족 검지족으로 살아가는 이 디지털 시대에는 악필이 더악필로 변해가는 것이 현실이다. 손글씨에서만이 아니라 디지털 문명은 다양한 생활역역에서 폐해 아닌 폐해를 가져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디지털의 장점으로 빠르고 정확하며 반복/재현 가능성이 있고, 기록의 집적이 유리한 장점 등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장점을 바탕으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한 4차 산업혁명을 추구하고 있고, 우리는 실생활에서 반자동 운전 차량이나 점점 똑똑해지는 로봇 청소기를 경험하고 있다.   


컴퓨터 사용의 기초가 되는 디지털 언어 0과 1을 이용한 이분법적인 디지털 기술은 숫자로 표기되는 디지털 시계(과거에는 전자시계라 불렀다)와 전자계산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디지털 세계에서 시간의 흐름은 스포츠의 경우 백분의 1초 단위의 순간 순간까지도 기록하기는 하지만, 초단위 그 사이에 실제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지 못한다. 즉, 디지털 세계에서는 “흐름”이라는 연속성이 없는 것이다. 꼭 이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디지털에 몰입되어 적응이 된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삶은 단편적으로 드러나는 표식자(디지털에서의 0과 1)만을 바라보며 판단을 하고 평가를 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우가 아니라 한계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 워치에 아날로그 시계의 디자인을 차용하는 것도 아날로그의 추억과 정취를 그리워하는 정서를 반영한 것이겠지만, 디지털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치과인들은 디지털 기기를 하나둘 도입을 하며 속도와 편의성을 추구하며 만족과 불만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안상재를 사용하지 않고 비교적 낮은 technique sensitivity를 가진 스캔 과정을 거쳐 만든 디지털 인상체로 여러 수복물/보철물의 디자인을 시도하는 장점도 있지만, 예각부를 재현하지 못하는 캠의 한계(현재상황에서의)는 술자의 아날로그적인 치아 삭제 기술을 필요로 한다. 


근관치료 영역에서도 디지털 기술의 도입을 시작하였고 일부 캐드캠 관련 기술은 guide surgery나 guide access preparation 등으로 근관치료 임상에도 도입하고 있다. 그러나, 일상 진료의 많은 부분 중에 디지털 기초가 되는 숫자에 연연하는 것이 근관치료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즉, 파일에 의존하여 근관확대와 성형을 하는 것을 배우고 이를 진료에 접목하다 보니 그 디지털이라는 숫자에 너무 민감하고 의존하고 추구하는 경향이 높다. 즉, 15번 20번 25번 30번 숫자의 크기와 18mm, 18.5mm, 19mm 등의 근관작업장에 얽매이다 보니 근관 속에 헤아릴수 없는, 디지털화 할 수 없는 미생물의 존재와 그 감염의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오히려 집중하지 못하는 경향이 많다.


의학계에서 감염 조절이라는 것이 디지털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biology이고, 이는 어떤 절대적인 기준을 갖고 나았다-낫지 않았다로 구분하기에는 시간적 공간적 한계가 존재하고 시공의 조건은 디지털적인 기준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근관장 18.2mm가 더 정확한 길이일 수 있고 33번 크기가 더 적절한 확대일 수 있다. 이런 길이와 확대는 우리가 가진 기구로 정하기도 어려울 뿐만아니라 아날로그로 움직이는 사람의 손이 18.2mm로 성형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다. 즉, 그 근처 어딘가 길이로 그 정도의 크기로 디지털적 성형을 하고 아날로그적인 세척을 잘 하는 것이 실제 근관치료 임상인 것이다.


아날로그의 연속적 특성은 끊이지 않음을 의미하고 이런 연속성은 부드러움을 내포한다. 임상에서도 조금은 여유로운 생각을 갖는 것이 더 나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폭넓은 아날로그적 생각과 정확한 디지털적 판단이 필요한 치과의료인에게 아날로그적 생각과 판단 기준이 없으면 디지털 자료와 기구도 활용 가치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진료 과정에 대한 고려나 평가 없이 술전 방사선 사진과 술후 방사선 사진만으로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수 없듯이,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세상에서 옳고 그름으로만 평가할 것이 아니라 0과 1사이에 무수히 많은 존재와 의미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 전반에 양분화 대립이 늘어가는 것이 0과 1로 만들어진 디지털 시대의 폐해는 아닌지 되돌아볼 때이다. 한번쯤 더 생각해보고 말하고, 한번 더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아날로그적 지혜가 필요하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