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1941–현재, 영국 옥스퍼드대 진화생물학자)의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는 1976년에 처음 출간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큰 파급력을 끼쳤습니다. 이 책은 진화론을 “유전자 중심 관점(gene-centered view of evolution)”에서 바라보며, 기존의 다윈주의를 새롭게 해석한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특히 밈(meme)이라는 문화적 전파 단위를 소개한 것도 이 책의 중요한 기여입니다. 책의 제목만큼이나 그 내용도 도발적입니다. 유전자는 단순히 생물학적·화학적 정보를 담은 분자 단위에 불과하지만, 도킨스는 여기에 인간적인 가치판단이 담긴 “이기적(selfish)”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습니다. 인간의 몸은 결국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지기 위해 활용하는 “생존 기계(survival machine)”일 뿐이며, 인간의 행동 또한 궁극적으로는 유전자의 보존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대학 1학년 때 처음 이 책을 접한 저는, 인간이 바이러스나 세균, 혹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고차원적인 존엄성을 지닌 존재라고 생각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 역시 단순히 유전자를 전달하기 위
최근 지방행사 참석차 KTX를 타러 서울역에 간 적이 있었다. 아니 웬걸 이게 우리나라 역인지, 외국역인지 모를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이 역사를 가득 채우고 있었고, 타고 가는 좌석 앞뒤 옆자리 모두 외국인 일색이었다. 뒤에서는 러시아말도 들리고, 옆에서는 영어, 기타 정체불명의 언어도 들린다. 부산행 열차이고 필자는 경주에 내리는데, 경주역에서 새로 탑승하는 사람의 대부분도 외국인인 듯 싶었다. 아마 서울을 거쳐 경주를 여행하고 부산으로 향하는 길 이었으리라. 필자 기억상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외국인이 넘쳐나는 풍경은 거의 처음인 듯 하였다. 이는 최근 십 수년간 K-culture유행을 필두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좋아진 탓도 있지만 최근의 급격한 해외 관광객수의 증가는 분명히 연일 해외 가요계와 영화계의 모든 기록을 경신중인 글로벌 메가히트 Neflix 애니메이션 “케데헌” 때문인 듯 하다. 필자도 이게 왜 그리 인기가 있나 싶어 늦게나마 보았는데, OST도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있는 곡들 답게 중독성도 있고, 스토리와도 잘 어울렸으며, 영화의 메시지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우리 한국의 전통을 거부감 없이 적절히 융합하였고, 외국인들의 관점에서 매력적으로 느낄만
얼마 전, 교회 지인을 통해 외국인 환자 한 분에 대한 자문요청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에 거주 중인 여성으로, 수개월 전 앞니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는데 보철단계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사연이었습니다. 저는 소아치과 전문이라 임플란트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어쨌든 세컨 오피니언으로 자문은 해줄 수 있겠거니 해서 병원으로 오시도록 하였습니다. 환자는 올 초에 앞니 한 개의 임플란트를 심은 후, 최종 보철물을 올리려던 과정에서 충격적인 결과를 마주했다고 했습니다. 인공치아를 만들어서 보여주는 과정에서 치아 길이가 너무 길어서 입을 벌리기가 부끄럽고, 그래서 웃을 수도 없는 모습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희 병원에 와서 검진을 했을 때에는 인공치아는 없는 상태로서 심은 픽스쳐만 있는 상태였는데 임플란트를 잘 모르는 제가 봐도 한 눈에 픽스쳐가 원래 위치해야할 치조정 중심에서 크게 벗어나 심미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적절한 위치가 아닌 매우 상방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치아를 발치하고 그 날 바로 식립했다는 진료기록부를 봐서는 발치와가 치유되면서 높이가 달라진 것이 아닌가 여겨지긴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많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웬만한 방법으로는 만족할만한 보철물이 만들어지긴
첨단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에서는 의료의 오류가 생길 리 없으며 의사의 숙련도가 더해지면 치료 결과에 결코 실패가 없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다. 이 때문에 의료사고는 완벽해야 할 의료 행위에 완벽하지 않은 의사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의사도 인간이므로 의료 행위 도중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 좋게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거나, 이와 반대로 명백한 오류가 없었다 해도 부작용이 초래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항생제 전 투약을 하지 않고 발치했으나 술후 심내막염이 생기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임플란트를 잘 식립하였으나 골유합에 실패한 경우도 있다. 우리가 자주 마주치는 수술 후유증이나 의료 사고는 이 두 가지 사이 어딘가에 있다. 여성 환자가 하악전돌증으로 어느 병원에서 통상적인 악교정 수술(하악지 시상골절단술)을 받았다. 수술 직후 한쪽의 입술 감각이 좀 더 둔하였고, 3개월 정도 되었을 때 점차 돌아오는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입술 감각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환자가 인터넷에 검색하여 보니 그것이 하치조 신경 손상이라는 것으로 알게 되었다. 수술 후 1년이 경과한 후, 환자는 다른 병원에서 구강안면통증 검사,
기존의 치과진료가 대부분 구강의 국소적 병인에 대한 반응적(reactive)·환원적(reductive) 치료에 머물렀다면, 초고령화사회의 도래로 개인과 지역사회의 구강 및 전신 건강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는 전인적(holistic)·다학제적(multidisciplinary) 치과진료가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는 치아 우식, 치주염, 임플란트 주위염 등 구강질환이 구강에 국한된 요인만이 아닌 전신질환(당뇨, 심혈관질환 등), 생활양식(lifestyle) 등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기에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치과질환도 보다 근원적, 전인적 및 다학제적으로 치료하고 관리해야 하는 비전염성질환(NCDs, non-communicable diseases)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관점에서 내원 및 방문 치과진료의 자연스러운 연계는 물론 장기적으로 구강 및 전신 건강의 개선과 유지가 가능한 ‘생활양식치의학 진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약술해보고자 한다. 라포(Rapport) 기반한 근원적 진료 ‘생활양식치의학 진료’란 구강 내 증상에 대해 그들의 전신병력과 약물복용, 생활양식(식이, 수면, 스트레스, 흡연과 음주 등), 심리사회적 요인, 직업적 요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중 어떤 것이 맞을지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요즘엔 사람이 다니는 곳마다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어서 유리알처럼 비춰지며 살아가고 있다. 아주 드물게 사각지대로 피해서 범행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그 현장에만 포착되지 않았을 뿐 동선의 경로를 몇 군데만 찾아보면 대다수 범인을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카드 영수증만으로도 신원을 특정 짓는 것은 시간문제라 하니 나쁜 짓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바른생활을 하며 살아야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일순간 남의 물건을 갖고 싶다는 그릇된 욕망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지는 경우가 간혹 있다. 처음이 두렵지 두 번, 세 번 거듭하면 할수록 대범해져서 죄의식도 희박해지고 말도 안 되는 자기합리화에 빠진다고 한다. 전에 가게 앞에 전시된 화분을 지나가는 행인이 쓱 들고 가거나 오토바이 타고 가면서 가게 앞의 물건을 집어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버려진 우산인 줄 알고 들고 갔다가 절도로 고발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근본적으로 남의 물건에 눈독 들이는 자가 나쁘지만 가게 앞에 놓인 물건들을 매일 각별이 관리해야 할 책임도 있다. 이렇게까지 삭막한 사회가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지구의 역사는 약 46억 년에 달합니다. 그러나 인류가 본격적으로 문명을 이루고 농경을 시작한 것은 고작 1만 년 전, 지질학적 관점에서 보면 눈 깜짝할 순간입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은 자연의 일부에서 지구 환경을 바꾸는 주체로 빠르게 변모해왔습니다. 원래 지구의 기후는 약 2만~26만 년을 주기로 빙하기와 간빙기를 반복하며 변화해 왔습니다. 이러한 기후 주기는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 변화, 공전 궤도의 이심률 변화, 세차운동 등과 같은 천문학적 요인에 따라 조율되는 리듬으로, 이를 우리는 흔히 ‘밀란코비치 주기’ 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산업혁명 이후, 이 느긋한 자연의 흐름에 인간이 가속 페달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화석연료의 대량 사용은 이산화탄소와 메탄, 아산화질소 같은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축적시켰고, 지구 복사에너지가 대기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가두는 ‘온실 효과’를 강화시켰습니다. 이와 동시에 오존층 파괴와 같은 환경 문제도 복합적으로 기후 시스템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 이후 지구 평균 기온은 약 1.1℃ 상승했으며, 수천 년에 걸쳐 일어날 변화를 단 100여 년 만에 압축해버렸습니다. 더 이상 기후 변화는 자연
며칠 전, 일상 속에서 자칫 사소할 수도 있는 작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오후 진료가 한창일 때, 책상 위에 놓인 사용한 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냥 둔다면, 직원이 본연의 일이 아님에도 씻게 될 것 같아, 내가 사용한 컵은 내가 닦자는 생각에 세면대에서 씻기 시작했습니다. 컵 가장자리를 돌려가며 세척 하던 중, 갑자기 손안에서 ‘부지직’ 하며 컵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컵 가장자리를 닦느라 움직이던 손을 멈추지 못해, 깨진 유리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깊게 베이고 말았습니다. ‘앗!’ 하는 순간 피는 세면대 전체를 뒤덮었고, 손으로 눌러도 좀처럼 지혈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친 생각은 “이러다 손가락을 잃는 건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었습니다. 다행히 거즈로 단단히 압박하자 겨우 피가 멎었습니다. 움직임을 봐서는 신경이나 인대는 손상되지 않은 듯했고, 살만 깊게 베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물론 정확한 진단은 병원을 가봐야 알 수 있었지만, 남은 환자가 있었기에 불편한 손가락에 위에 큰 사이즈의 장갑을 덧대어 겨우 진료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외과를 찾아갔습니다. 원장 선생님께서 거즈를 조심스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