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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認定)과 존중(尊重)의 가치

시론

양극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양단은 너무나도 복잡한 연결고리로 얽히어 있다.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거나 최소한은 덜 하였을 법한 말이나 상황들이 지금은 양극화의 영향으로 틀리다/맞다의 수준을 넘어 내 편인가-적인가로 나누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런 분위기와 함께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유기적이고 여유로우면 그저 좋을 공동체 사회가 적과의 동침을 떠올리게 하는 그런 곳이 되고 있다. 시장 자본주의가 어쩔수 없이 이끄는 경쟁 사회 및 특히 한국에서의 일등주의 교육문화가 이를 더 심화시키는 것으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산율 저하와 함께 가족내 혹은 친족내 일순위자로 성장해온 배경이 또다른 원인이 되었을 수도 있다.

 

정치적인 내용이 아님을 전제로 예를 든다면, 세대간의 갈등이나 정치이념의 좌우 혹은 보수진보진영의 양극화도 이런 내용의 일부가 된다. 세대간의 갈등 속에는 다시 젠더갈등이 존재하고, 젠더 갈등과는 별도로 찬스를 가진자와 그렇지 않은자 간의 갈등 혹은 부모찬스인가 아닌가의 문제들이 서로간의 불신과 함께 사회구조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어쩌면 이런 양극화는 교육기회의 불균형이나 사회구조의 불균형 소득분배 시스템의 불균형 등도 원인이 되지만 디지털적/이분법적인 가치 판단기준도 상당한 원인이라 생각된다.

 

복잡다양한 현대사회에서 흑백이나 정오(正誤)의 두 가지로 현상을 나누는 것은 경직된 사고 판단을 필연적으로 따르게 한다. 조금씩 다를 수 있고 그 다름을 서로 인정하고 내가 알지 못하거나 갖지 못한 남의 것도 가능성있는 또 하나의 안으로 이 사회에 필요한 하나의 요소이구나 받아들인다면 조금더 유연하고 부드러운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동서양 모두 사람사는 사회에서는 오월동주(吳越同舟) 혹은 Frenemy(Friend+enemy) 등으로 이해관계의 변화에 따라 적이 아닌 친구로 함께하거나 공동의 목표를 향해 힘을 모으기도 한다. 물론 경쟁상대의 의미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기기 위해 적을 아는 것보다 져주기위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어떨까. 져주는 것이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일전 기사에서 접한 차량접촉사고 내용이다. 어느 젊은 여성 운전자가 아이가 아파 병원으로 급히 향하던 중에 추돌 접촉사고를 냈다. 전방 차량 운전자는 중년 여성으로 사고 유발 운전자가 어찌할바 모르고 눈물을 보이자 자초지종을 묻고 얼른 병원으로 향하도록 따뜻한 포옹과 함께 진정시켜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감사한 일이고 존경할만한 어른의 자세를 보여준 부분이다. 만약 전방 운전자가 나의 입장만을 나의 일을 우선시하여 사고처리를 다하고 현장을 떠나도록 요구하였다면 훈훈한 기사는 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프다던 아이도 건강이 위해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역으로 후미 차량이 연장자이고 피해차량이 젊은 세대라 하더라도 대응하기에 따라서는 동일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세대간의 사회적 문제가 아니다. 상호 존중과 인정은 세대와 관계없는 서로의 상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개인의 가치관에 의한 것이다. 앞의 예는 피해차량의 운전자가 가해차량의 운전자 입장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또 다른 뉴스로 아파트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을 주거침입 신고한 일도 있었다. 입주민이 아닌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반대하여 아이들을 가두어 두고 겁을 준 것인데, 이는 정말 사회관계나 어른의 역할, 아이들의 사회성 교육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어른의 행동인 것이다. 내것만을 우리것만을 우선시하고 상대의 입장이나 환경을 배려하지 않음뿐만이 아니라 어린이라는 이유로 개인 인격체로서의 존중을 전혀 하지 않았기에 나타난 행동으로 보인다. 

 

얼마전 예능 프로그램에 오징어게임 출연자인 원로 오영수 배우께서 출연하여 “아름다움”이라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며, 이와 관련한 인생의 철학을 나누어 주신 바 있다. 내일을 알수 없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조금 더 배려하고 인정, 존중하며 공존하는 것이 조금더 건강하게 행복하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된다.
 
인정과 존중, 아름다운 사회가 되는데 꼭 존재하여야 하는 미덕이다.
우리 모두 서로에게 “깐부”가 되어주는 것은 정말 불가능하기만 한 것일까. 그래도 사회 곳곳에 요소수를 나누어주는 깐부들이 존재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 아름다운 사회를 꿈꿔볼 만하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