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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부담과 구강질환

정회인 칼럼

만일 누군가에게 갑상샘 암, 간 경화, 당뇨병, 무치악 중 한 가지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이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는 있다면 무엇이 생기는 것이 그나마 나을까? 질병부담(burden of disease)은 질병으로 인해 초래되는 삶의 다양한 어려움 즉 부담을 총칭하는 개념으로, 환자가 질병으로 사망하거나 장애 또는 후유증으로 얼마나 부담을 갖게 되는지를 계량화한다. 이렇게 계량화된 질병부담은 서로 다른 인구 집단의 건강수준을 비교하고, 특정 인구 집단에서의 건강수준의 변화를 감시하며, 건강 불평등 수준을 파악하고, 질병부담의 위험요인의 기여도를 확인하며, 의료 서비스 공급과 연구에 있어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데에 사용될 수 있다. 인구 집단에서 질병부담을 측정하여 이를 지표로 삼는다면, 보건정책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보건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사업의 성과를 평가할 때 매우 유용할 것이다.


전통적으로 인구 집단에서 건강 수준을 측정하기 위하여 사용된 지표로는 유병률(prevalence), 발생률(incidence), 사망률(mortality)이 있다. 그런데 유병률이나 발생률의 경우 비치명적(non-fatal)인 질병의 질병부담을 과소평가할 수 있고, 사망률의 경우 사망 이전의 장애(disability)나 기능 저하 등의 삶의 질 감소를 고려할 수 없다. 질병 이환으로 인한 질병부담과 사망으로 인한 질병부담을 종합적으로 알려주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단일건강수준지표(summary measures of population health, SMPH)는 건강의 다양한 측면에 대한 정보를 고려하여 인구 집단의 건강수준을 하나의 숫자로 요약하여 표현해 줌으로써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자 한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단일건강수준지표는 장애보정생존연수(disability-adjusted life years, DALYs)이다. 장애보정생존연수는 치명적 건강 상실을 의미하는 “조기 사망으로 인한 수명 손실 연수(years of life lost, YLL)”와 비치명적 건강 상실을 의미하는 “장애로 인한 건강 연수의 상실(years lived with disabilities, YLD)”의 합으로 구한다. 장애보정생존연수는 조기 사망이나 상병 및 장애로 1년간 건강한 삶을 손실했다는 의미이며 크면 클수록 질병으로 인한 부담이 크다. 장애보정생존연수를 산출하는 데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는 장애가중치(disability weight)이다. 장애가중치는 특정 건강상태 및 질병의 장애 수준을 계량화한 값으로 그 값은 0(완전한 건강상태, 장애 없음)과 1(죽음과 같은 상태에서의 장애 수준) 사이에 위치한다. 만일 장애가중치가 0.9에 달하는 중대한 질환에 이환되었으나 수명이 10년 연장되었다면, 이 10년은 완전한 건강상태를 가지고 수명이 단 1년만 연장된 것과 동등하게 계산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다양한 질환의 질병부담을 산출하는 대표적 연구 프로젝트로 1995년 시작된 국제질병부담 연구(Global burden of disease, GBD)가 있고, 국내에는 2012년 한국질병부담 연구(Korean national burden of disease, KNBD)가 있다. 안타깝게도 구강질환의 경우 장애가중치가 광범위하게 개발되지 않았다. 현재 국제질병부담 연구와 한국질병부담 연구에 포함된 구강 질환은 치아우식, 치주염, 심각한 치아 상실 단 3개에 불과하다. 또한 치아우식은 “치통이 있어 먹는 데에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치주염은 “잇몸에 약간의 출혈, 불편감이 때때로 있다.”, 심각한 치아 상실은 “앞쪽과 뒤쪽을 포함하여 20개 이상의 치아를 잃고, 고기, 과일, 야채를 먹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라는 기술문 정의를 이용해서 장애가중치를 산출했기 때문에 치아우식과 치주염이 진행되었을 때 나타나는 후유증이 거의 들어있지 않으며, 심각한 치아상실에서도 기능적인 어려움만 제시되고 심미적인 어려움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구강질환의 장애가중치 산출의 과제는 턱관절 질환, 부정교합, 구강악안면부 형성이상 등 더 많은 종류의 구강질환에 대하여 질병 진행 초기 단계뿐 아니라 후기 단계까지 포함하여 개발하는 것이다. 또한 많은 경우 구강질환은 여러 가지 질환이 함께 나타나는데 각 질환의 장애가중치의 합이 곧 현재 구강상태로 인한 질병부담이라고 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치아우식이 여러 개의 치아에 다발성으로 발생할 수 있는데 이 때 환자가 경험하는 질병부담은 각 치아의 치아우식에 대한 질병부담의 단순한 합이 아닐 것이다. 2010년 국제질병부담 연구에서는 복합질환을 고려하여 질병부담을 산출하기 시작했는데, 구강질환 질병부담 측정 방법론에서도 이러한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구강질환은 세계적으로 주요한 건강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비판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으며 구강건강(oral health)이 주류 보건의료시스템(health care system)과 분리되어 있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로 제시되고 있다. 신뢰할 수 있고, 타당하며,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 측정 지표는 양질의 역학 및 의료 데이터 생산을 촉진하여 타 보건의료분야와 적절히 통합되고 가장 좋은 치과의료서비스 및 구강보건사업이 수행되는 기반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