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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란 중에도 구강보건행사는 성대히 열렸다

올해로 77년 역사, 정부서 전쟁 때도 무료진료·상담 활동 등 독려
치과계 시대정신 담은 행사, 국민과 함께 하는 축제로 매년 각인
<구강보건의 날 77주년 특집> "라떼는 이랬다"

해마다 6월 9일은 치과계가 국민들 곁으로 가장 가까이 다가서는 날이다.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건 불과 수년 전이지만 그 이전에도 수십 년 동안 크고 작은 행사와 마음들이 ‘구강보건의 날’을 맞아 국민들과 치과계 사이의 간극을 메웠다. 그 시절 치과의사들이 국민과 함께 했던 노력과 공감의 흔적들을 올해 구강보건의 날을 앞두고 살펴본다.<편집자 주>

 

 

돌이켜보면 우리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격동의 세월 가운데서도 구강보건을 기념하는 행사는 늘 꿋꿋이 그 자리를 지켰다.

 

6·25 전쟁, 오일 쇼크, 외환 위기, 금융 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올해로 일흔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은 구강보건의 날은 국민, 환자와 치과계가 마주 보는 소통과 이해의 장으로 뿌리내렸다.

 

그 기원을 따지면 1928년 6월 4일 한성치과의사회가 주최한 ‘충치 예방의 날’이 우리나라 구강보건행사의 효시로 볼 수 있지만, 오늘날과 같이 6월 9일이 중심이 된 행사는 조선치과의사회가 주창한 1946년이 처음이다.

그해 조선치과의사회는 6월 9~15일까지를 ‘구강위생강조주간’으로 정했고, 이듬해인 1947년 제1회 학술강연회를 시작으로 매년 연례행사를 이어갔다.

 

‘6월 9일’의 의미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 같은 아이디어를 과연 누가 제창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쉽게도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행사 명칭도 세월과 함께 수차례 흔적을 남겼다. 최초 ‘충치 예방의 날’에서 ‘구강위생강조주간’으로, 이어 1958년 ‘구강보건주간’을 거쳐 1992년 ‘치아의 날’까지 여러 차례 이름을 바꿨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4월 치협 정기이사회에서는 치아의 날, 구강보건의 날, 이의 날 등으로 혼용돼 오던 명칭을 ‘구강보건의 날’로 일원화하자고 의결하기도 했다. 이는 보건복지부와 일부 지부가 명칭 일원화를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어 2015년 5월 18일 구강보건법에 따라 법정 기념일로 구강보건의 날이 신설되면서부터 현재의 명칭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다.

 

# 박 대통령이 직접 이동진료차량 지원

특히 구강보건의 날이 무려 77년이라는 역사를 이어온 동력은 국민 구강보건의 중요성을 강조한 당대 치과의사들의 시대정신이 반영된 행사라는 점으로 설명 가능하다.

 

일례로 6·25 전쟁 발발로 한반도가 온통 전란에 휩싸였을 때도 구강보건의 날은 그 명맥을 이었다. ‘대한치과의사협회사(2010)’를 들춰보면 ‘협회는 1953년 ‘제8회 구강위생 강조주간을 맞아 전국적으로 6.9행사를 실시하도록 서울 및 각 도 치과의사회에 시달했다’는 서술이 남아 있다.

 

비록 전쟁이 시작된 1950년부터 52년까지는 행사를 열지 못했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1953년 구강보건 주간행사를 재개해 어린이 대상 무료 치과 진료 및 유치 발거 실시, 구강위생재료 불량품 단속 등을 실시한 것이다.

 

전쟁 이후 1960년대에 들어서는 무치의촌 방문 진료에 대한 치과계의 관심이 커졌으며 이와 관련 정부 차원의 대대적인 지원이 이어지기도 했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1968년 제23회 구강보건주간 기념식은 아직까지 회자되는 일화다. 그 해 6월 8일 기념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김창원 신진자동차(전 대우자동차) 사장에게 기증받은 이동치과진료차 10대를 각 도지사에게 지급했다.

 

당시 치의신보 제17호(1968년 6월 15일자) 1면에는 치과계는 ‘이 진료차가 산간벽지까지 들어가며 농어촌민에 치과 질환 치료가 계속돼 구강보건사업이 원활히 이뤄질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특집 기사가 실렸다.

 

실제로 이후 구강보건 주간 동안에는 이동치과진료차를 이용한 무치의촌 진료가 대대적으로 전개됐으며,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조선치대 등에 이동치과진료차를 추가로 보급하며 무치의촌 진료 활동을 적극 지원했다.

 

“국민과 가까이” 건치인 선발대회 각 지부마다 활성화

건치미인 선발대회 1966년 처음시작…서울지부 건치인 선발 유명세

2016년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 본격적인 정부 주최 행사로 진행

 

 

 

# 공중파 탄 건치 아이콘 ‘미스덴탈’

치과계가 구강보건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진료봉사활동에만 매진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1947년 제2회 행사 때는 방송극 ‘보건생활 첫걸음’(김문조 작)이 방송을 탔고, 1949년에는 치협 차원의 행사실시 관련 지시사항이 각 지부에 전달돼 체계적인 행사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전쟁 이후 1956년 제11회 구강위생강조주간을 맞아서는 서울시치과의사회가 ‘이 닦기 노래’(윤석중 작사, 한용희 작곡)를 선보였으며, 같은 해 서울시와 공동으로 주최한 강연 및 음악회에는 5000여 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건치인 선발대회 역시 당시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킨 각별한 이벤트였다. 특히 서울지부에서 1966년 처음 시작한 건치 미인 선발대회는 1970년 대회 당시 공중파(MBC) 방송을 타기도 하며 큰 관심을 끌었다. 치의신보 제50호(1971년 6월 20일자) 1면을 그해 미스 덴탈 ‘진’에 선발된 단현국 양(당시 20세)의 사진이 장식하기도 했다.

 

72년 ‘건치 여왕’으로 명칭을 바꿨다가 75년 대회를 끝으로 자취를 감추고, 16년 만인 1991년 대한여자치과의사회가 ‘미스덴탈 선발대회’를 주최하면서 깜짝 부활했지만 단발성 행사로 마무리된다.

 

이어 1997년 경기지부에서 ‘미스경기덴탈’이라는 명칭으로 건치미인을 선발했지만 역시 2005년을 끝으로 선정을 중단했다.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여성 회원 및 단체들의 항의, 그리고 내부 논의 등이 중단 이유였다. 당시 제1회 미스경기덴탈로 선정된 인물이 지금도 활발한 방송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배우 함소원 씨다. 그는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당시 미스덴탈의 상금이 100만 원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서울지부에서는 2009년 건치 스포츠맨에 이동국 축구선수를 선발하고 건치 연예인으로 윤해영·박지윤·유정현 등을 선정하기도 했다. 이는 현재도 지부별로 행해지는 건치인, 건치 아동 선발 행사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듯 당시의 건치인들은 구강보건의 중요성을 알리는 홍보대사로서 적극 참여, 사실상 구강보건의 ‘아이콘’ 역할을 했다.

 

# ‘위기 넘어 기회’ 치과계 역량 결집

긴 역사만큼 위기도 적지 않았다. 우선 1973년 3월 24일 국무회의 결의에 따라 구강보건주간을 비롯한 보건관계 각종 기념행사가 세계보건 일인 4월 7일로 통합·진행되기도 했는데 당시 정부의 기념일 통합 정책으로 구강보건의 날 기념행사가 다소 위축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했다. 치과계는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며 구강위생 사상을 홍보하는 데 있어 주체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같은 해 ‘구강보건시상식’을 별도 개최하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치과계 내부의 노력에 비해 구강보건의 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낮아 아쉽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치의신보 1994년 6월 4일자 5면 ‘그루터기’는 이 같은 문제를 지적하면서 ‘일간지나 방송사 기자들이 건강관리협에서 나오는 건강 캘린더를 보고 취재 일정을 잡는데 그 캘린더에는 구강보건의 날 표시가 없기 때문’이라고 매스 미디어 노출 부족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기도 했다.

 

특히 2007년 6월의 구강보건의 날은 치과계의 냉담한 반응 속에서 빛을 잃었다. 직전 해 열렸던 중앙회 차원의 행사 역시 진행되지 못했다. 그해 초 보건복지부 내 구강보건 전담 부서인 구강보건팀이 전면 해체 수순을 밟으면서 치과계와 정부의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부터 법정 기념일로 구강보건의 날이 지정된 이후부터는 보건복지부 주최로 행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치협, 시·도지부, 치과계 유관단체는 더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하고, 정부와의 협업을 제안하는 등 국민에게 구강보건의 중요성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다시 6월이다. 구강보건의 날은 이 땅에 치과가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속될 행사라는 점에서 늘 남다른 의미를 치과계와 매년 공유하고 있다. 그런 일상의 노력이 한 해, 한 해 모여 다시 구강보건의 날, 그리고 치과계의 역사로 퇴적된다. 돌이켜봐도 ‘라떼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