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이웃집 우영우

스펙트럼

진료 예약표에 ‘검진’이라는 일정이 적히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구강검진은 예약표 작성 없이 막간을 이용해 수시로 진행하는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물으니 병원과 협조관계에 있는 특수학교의 장애학생 구강검진이라 시간이 소요될 수 있어 예약을 받아 진행한다고 합니다. 올 하반기부터 ‘아동구강건강 실태조사’에 조사자로 참여하며 간혹 말 안듣는 중학생의 매운 맛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터라 장애학생 검진은 또 얼마나 어려울까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검진이 시작되니 제 걱정이 기우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보호자와 함께 내원한 장애학생은 구강검진에 대한 협조도는 물론이거니와 구강상태와 구강관리 습관까지도 양호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직접 통계를 내본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제가 만난 비장애학생들과 비교해도 오히려 더 나은 구강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원하는 장애학생이 발달장애(지적/자폐)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아 의사소통이 어려워 보호자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의 구강건강관리 비결이 다름아닌 보호자의 노력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칫솔질에 도움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치실, 불소용품 사용, 설탕섭취 제한에 이르기까지 보호자의 구강건강에 대한 지식은 매우 해박하였고 이를 실천하는 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장애학생의 구강검진 협조도와 구강건강상태가 좋지 못할 것이라 속단한 제 스스로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제 편견은 여태까지 만나온 발달장애인의 기억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구강위생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지만 과자/음료수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다수 치아우식증을 치료받은 이후에야 진료실을 찾아 계속관리를 시작한 이들입니다. 물론 이마저도 치과를 찾아 치료와 예방관리를 꾸준히 받고 있다는 점에서 대부분의 발달장애인보다는 그 상태가 나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들에게 제가 제공하고 있는 진료실 중심의 예방적 접근이 과연 충분한 것인지 매번 한계를 체감합니다. 짧은 간격으로 반복적으로 내원하는 이들에 불소도포를 포함하는 전문가 구강관리를 제공하고 보호자와 함께 칫솔질 방법을 교육하지만, 구강위생의 개선 없이 치주 및 치아우식병소는 점차 늘어만 가기 때문입니다.

 

불을 꺼야 하는 소방수가 그저 이리저리 불길을 돌리고만 있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오랜 시간을 지내며 충분히 지쳐버린 보호자에게 왜 더 신경써주지 못하냐고, 특수학교의 아이들처럼 더 나은 구강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채근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발달장애인의 더 나은 구강건강을 위해 보호자 또는 치과의료인에 의존하기보다, 지속 가능한 사회/제도적 접근이 요구된다는 상투적인 주장을 또다시 꺼내봅니다. 특수학교 구강보건사업을 지원하고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에 양치시설을 확충하며 시설 근무자에 대한 구강위생교육을 제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치과의료제도적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급여화 확대, 주치의사업 확대시행 등 부족한 제 머리에서도 꺼낼 수 있는 주제가 이렇게나 많습니다.

 

물론 이러한 주제가 사회적 담론을 나아가야 할 때 넘어야 할 산이 높고 험한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블루스’ 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등장하는 발달장애인 혹은 발달장애인 역할에 뜨거운 관심이 모아지는 현상에 힘입어 이제는 우리 사회가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랑스러운 장애인’이 아닌 현실에서 마주치는 이웃의 장애인에게도 관심을 보이기를 기원해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