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의료윤리 하면 의료인의 책임을 묻는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환자의 윤리는 없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환자와 의료인이 의료의 기본이라면, 한쪽에만 책임이 있는 것은 이상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환자의 책임이나 환자의 윤리라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익명
지면으로 새해 인사를 대신합니다. 2023년에는 모두 건강하시고, 바라는 일 모두 성취하는 한해 되시길 바랍니다.
말씀 주신 것처럼, “의료윤리”라는 분야는 보통 의료인이나 인간대상연구를 수행하는 연구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그러나, 윤리가 단순히 가부장적 전문가의 문제 행위를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의료 당사자 모두에게 해당하어야 합니다. 예컨대, 제약 및 의료 장비 회사나 환자에게도 의료윤리에 따른 책임이 부여되어야 한다는 말이 되지요. 전자는 제가 다른 자리에서 더 논의하도록 하고, 오늘은 일단 후자에 관해 살펴보려 합니다. 환자에게 의료윤리적 책임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오랫동안 이런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저는 세 가지 정도를 여기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환자와 의료인의 권력 비대칭입니다. 둘째, 환자의 수동성 또는 취약성입니다. 셋째, 의료 제도 구현의 역사성입니다. 제목만 들으면 무슨 이야기인지 파악하기 어려우실 테니,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전통적인 의료 환경에서 권력을 쥔 것은 의료인이라는 인식이 이어져 왔습니다. 가부장적 의료에 대한 우려는, 70년대의 의료 전문직에 대한 공격이나 90년대에 주도적으로 수행되었던 의료사회학적 분석을 통해 이미 이론의 자리를 확립했습니다. 이런 위계적 상황에서 하단에 놓인 환자는 책임을 지는 위치가 아닌 보호의 대상이었으며, 주로 어떤 권리를 환자에게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이것은 환자 자체가 질병에 노출된 취약한 자리라는 이해에 의해 더 공고해집니다. 환자는 질병 및 그와 관련된 상황으로 인하여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기 힘든 상황에 있으며, 따라서 질병으로 인한 영향을 최소화하는 상황에서 자기 신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환경이 환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조됩니다. 의료윤리는 자율성에 따라 환자에게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담론이라는 인식은 여기에서 나오겠지요.
이에 더하여, 의료윤리 자체가 만들어진 것이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여러 스캔들이라는 점입니다. 고대부터 이어지던 의료에서의 윤리가 있긴 했지만, 학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예컨대,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학문이 아닌 것처럼요. 현대 의료윤리는 1970년대 불거진 여러 문제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어요. 인종차별적인 연구, 환자 동의 없는 연구, 존엄사나 임신중절 등 의료에서 중요 사안과 관련하여 개인의 존엄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지금의 의료윤리학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의료윤리학은 어떤 근거로 환자를 보호할 수 있는가에 집중해 왔습니다.
물론, 여전히 의료 환경에서 의료인의 권력이 더 부각되는 상황이 많지요. 질병 앞 환자는 취약한 자로서 타인의 보호와 돌봄을 요청합니다. 의료윤리적 논의가 50년 넘게 진행되었지만, 의료환경에서 환자의 존엄성이 온전한지는 아직도 의심스럽지요.
그러나 한편, 의료윤리적 논의에서 환자 쪽에 어떤 것을 요구할 필요성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여러 사례를 들 수 있지만, 일단 개인 차원과 인구 집단 차원에서 하나씩만 살펴보려 합니다. 개인 차원에선 ‘닥터 쇼핑’을, 인구 집단에선 ‘건강 행동’을 검토해 볼게요.
닥터 쇼핑은 이미 오래 회자한 문제라서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 없을지 모르겠어요. 환자가 여러 병·의원을 돌아다니며 더 저렴한 (또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는) 의사를 찾는 것은 시장 환경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 의료 서비스는 국가를 단일 보험자로 하여 운영되는 복지 체계의 성격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이런 서비스를 시장 환경처럼 이용하면 의료 자원의 낭비가 발생하게 되지요(따라서, 국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들은 아예 개인이 방문 가능한 의료인이나 의료 기관이 정해져 있습니다).
한편, 최근 치과 과잉진료 관련하여 살펴본 글은 하나 같이 과잉진료를 피하기 위해 몇 개의 치과를 진단 목적으로 방문할 것을 권하고 있었습니다. 분명 과잉진료를 하는 문제적 의사들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므로, 그런 의사에게 진료받는 것을 피하는 일은 환자와 의사 집단 모두에게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일반화되어 ‘싼’ 진료만을 환자가 찾아다니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환자 편에 의료 제도를 적절히 이용해야 할 책임을 부여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다음, 점차 우리는 건강 및 질병과 관련하여 행동 및 환경의 영향을 더 중요하게 살피고 있습니다. 건강과 질병은 이제 운명이 아니라 (물론, 유전의 문제가 있습니다만 이 부분은 차별과 연결되므로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개인의 생활 습관과 환경에 다분히 영향을 받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식습관과 양치의 중요성을 이전부터 살피고 있었던 치과에선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긴 한데요.
물론, 환경을 개인이 통제하기는 어렵습니다. 직업이나 거주지, 기후 등 건강과 질병에 명확히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개인의 힘으로 어떻게 바꾸기는 어렵지요. 이런 쪽에 초점을 맞추면 건강과 질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강조됩니다. 한편, 생활 습관에 초점을 맞추면 건강과 질병의 개인적 책임이 중요성을 띠지요. 유해 요소(술, 담배 등)를 피하고 유익 요소(운동, 개인위생 등)를 추구하는 것이 건강에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소를 통제함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결국 개인의 실천이기에, 건강과 질병에 있어 개인에게 책임을 부여할 필요성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부 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선 안 되고, 지역사회가 환경 요인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고 있다는 전제 아래 개인에게 책임을 부여해야 하긴 하지만요.
이런 요인들로 인해 점차 환자 또는 개인의 책임을, 다시 말해 “환자의 의료윤리”를 살펴야 할 필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의료윤리는 의료에 참여하는 모두에게 좋고 옳은 행동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여기에서 환자라고 예외는 아닐 테니까요. 이런 논의가 쉽지는 않습니다. 의료인에겐 큰 권리가 부여되므로 따라서 큰 책임도 진다고 말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습니다. 반면 환자에게 책임을 부여한다는 것은, 환자 쪽에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있음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것이 쉽지 않은 작업이고 설명에도 꽤 노력이 들 것 같아서, 괜찮으시다면 이 내용은 다음에 더 소개하려 합니다. 논의를 살펴주신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할게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