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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소년병 참전의 역사를 아십니까

Relay Essay 제2534번째

독일 육군 만슈타인 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회고록 <잃어버린 승리>에서 “소위로 참전하여 1942년 전사한 나의 아들 게로와 조국을 위하여 전사한 독일 병사들을 위해 나는 이 책을 썼다”라고 징병군인들에 대한 헌사(獻辭)를 적고 있습니다.

 

롬멜 장군은 1937년 출판한 보병 전술 <Infantry Attack> 서문에 “유럽 동서남북 어디를 가나 조국을 위하여 전사한 독일병사들의 무덤을 볼 수가 있다. 전사한 병사들은 조국이 또 위기에 처할 때는 언제나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달라고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라고 징병군인들에 대한 헌사(獻辭)를 적고 있습니다.

 

호사카 작가가 저술한 <쇼와 육군>을 보면, 2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 육군의 첫 번째 병폐는 “전쟁을 일으키고 패전한 것에 대한 책임을 아무도 안 졌다”이고 일본 쇼와 육군의 두 번째 병폐는 “직업군인들이 징병군인들을 전투의 주체가 아니고 소모품으로 여겼다”라고 적혀 있습니다.

 

백선엽 장군의 회고록 6·25 징비록 서문을 보면 “전쟁을 이끌었던 일선의 직업군인 장군들이 문제였다. 먼저 등을 보이며 달아났던 자치관도 많았다. 긴장하면서 전투 채비에 나섰어야 할 직업군인들이 그 반대의 방종과 일탈을 보인 경우도 많았다”라고 적혀 있고, 피 흘리며 헌신한 징병군인들에 대한 헌사(獻辭)는 없습니다.

 

제가 위와 같은 저서의 내용들을 언급하는 것은 우리도 6·25 한국전쟁 시 무수히 죽어간 군인들, 그 중에서도 어린 나이에 징집돼 전쟁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죽어간 소년병들이 있다는 사실을 얘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6.25 참전 소년병의 아들이었고, 아들 두 명 징병군인의 아버지입니다. 아흔이 되신 아버지는 아직도 전쟁의 기억에, 전쟁에서 죽어간 친구들의 죽음을 떠올리며 슬퍼하실 때가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직업군인들이 징병군인들을 존중하는 의식(意識)과 문화는 아직 우리 국군에는 없습니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습니다. 1996년 7월 15일 6.25참전 소년병이셨던 아버지와 함께 제가 인천소년병 6·25 참전 역사 찾기를 시작하고 이제 27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2021년 12월에는 ‘인천소년병 6.25참전기’라는 책도 발행했습니다. 서당개 27년이면 훈장 노릇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직업군인들의 징병군인들에 대한 존중의식이 생겨나고 군대문화(軍隊文化)로 제대로 정착하기에는 적어도 10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6·25가 발발한지 이제 겨우 72년이 흘렀습니다. 직업군인들이 징병군인들을 존중하는 의식(意識)이 국군의 군대문화(Military Culture)로 자리 잡을 때까지 저는 보상받지도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한 6·25참전 소년병들의 헌신(獻身)에 대한 넋을 기리고 역사를 기록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소년병학회’를 창립하고 최근에 제1회 소년병학술대회까지 개최했습니다. 이는 17살도 안된 어린나이에 한국전쟁에 불려나간 소년병들의 위국헌신을 기리고, 나아가 역사로 기록하고 최종 국가로부터 인정받겠다는 것이 목표입니다.

 

소년병학술대회를 보고 한 직업군인이 얘기했습니다.

“군인인 나도 소년병의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 꼭 기억하고 의미를 새겨야 하는 일이다.”

 

앞으로 한국전쟁에 소년병들이 있었다는 역사를 계속 알려가 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잊혀진 역사로 괴로워하는 분들과 접점을 늘리며 아픔을 함께 공유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