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나는 아내와 첫째만 데리고 내장산에 갔다. 고2 올라가는 딸아이가 갑자기 산에 가고 싶다고 해서 지난 단풍 시즌에 찾았던 이곳을 다시 찾게 되었다. 온통 눈으로 덮인 설산의 운치가 단풍 산과는 또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눈 덮인 겨울 산에 오르니 신선하고 차가운 공기가 마음을 맑게 해 주었다.
한편,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은 맑지 않다. 여러 경제 전문 기관의 보고에서도 거의 모든 경제 관련 지표들이 부정적이다.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는 2023년 1~2분기 미국 경제는 침체의 바닥을 짚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 경제는 대외의존도가 높아서 미국 경기에 1, 2분기 정도 후행한다면, 우리 경기는 하반기에 바닥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대 러시아 경제 제재의 여파가 올해에도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며, 이들의 전쟁은 자유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대립으로 이어져 ‘신냉전 시대’를 떠올리게 한다고 혹자는 말한다.
바야흐로 세계 경제 전체는 현대판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불확실한 시대에 우리는 어떤 지혜를 가지고 올해를 맞이해야 할까 생각해본다. 올해는 검은 토끼의 해인데, 토끼는 작고 수줍은 초식 동물이지만 속담이나 설화에서는 꾀 많고 영리한 지략의 상징으로 자주 나온다. 교토삼굴(百折不屈)이라는 말이 있다. “교활한 토끼는 3개의 숨을 굴을 파놓는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교활하다는 지혜롭다는 뜻이다. 무슨 일을 할 때 지혜로운 사람은 한 가지 대책이 아니라 여러 가지 대안까지 마련해 두기 때문에 뜻하지 않은 불행에 대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전국시대 제나라의 맹상군이라는 재상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 맹상군은 풍환이라는 괴짜 거지를 자신의 식객으로 받아주었다. 당시 맹상군은 3천 명이나 되는 식객을 부양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설읍이라는 땅에 1만호의 식읍 주민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때 무위도식하던 풍환이 자청하며 “내가 빚을 받아 올테니 무엇을 사올까요?”라고 묻자 맹상군은 “무엇이든 좋으니 이곳에 부족한 것을 부탁하오.”하는 것이었다. 설읍에 당도한 풍환은 빚진 사람들을 모두 모아서 차용증을 점검한 뒤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렀다. 잠시 어리둥절했던 사람들은 그의 처사에 감격해 마지않았고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온 풍환에게 맹상군이 “선생은 무엇을 사오셨는가?” 묻자 풍환이 “당신에게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리입니다. 차용증서를 불살라 당신을 위해 돈으로도 사기 힘든 은혜와 의리를 사 가지고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맹상군은 기가 막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일 년 후 맹상군은 새로운 왕에게 미움을 받아 재상의 자리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에 풍환은 그에게 잠시 설읍에 가서 살라고 권유했다. 실의에 찬 맹상군이 설읍 땅에 도착하자 설읍 사람들은 그를 환호하며 맞이해 주었다. 그제야 그는 풍환이 한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맹상군이 크게 감동하자 풍환은 그의 손을 꼭 잡으며 “꾀 있는 토끼는 훗날을 위해 굴을 세 개씩 파 놓는다고 합니다. 살아남기 위해서요. 이것은 맹상군을 위한 첫 번째 굴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두 개의 굴을 더 만들어 드리겠으니 저를 믿어 주십쇼.”라고 말했다. 그 후에 맹상군은 풍환을 믿고 그에게 많은 일들을 맡겼고, 덕분에 재상의 자리에 다시 오르게 되어 수십 년의 재임 기간 동안 별다른 화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서 어부 산티아고는 5.5미터의 수백 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청새치 한 마리와 망망대해에서 홀로 사흘간의 사투 끝에 그 대어를 낚아 배 뒤에 매달고 귀로에 오른다. 그러나 청새치의 피 냄새를 맡고 따라온 상어 떼와 다시 한 번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다. 노인은 상어가 청새치의 몸을 물어뜯을 때마다 마치 자신의 살점이 잘려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그는 청새치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투쟁하는 동안 그 물고기에게 사랑과 동지애를 느꼈기 때문이다. 죽은 물고기를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상어와 싸우며 그는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은 어리석다. 희망을 버리는 것은 죄악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겨우 항구에 닿았을 때 청새치는 앙상한 뼈만 남는다. 기진맥진한 그는 자신의 오두막집에 걸어서 도착할 때까지 다섯 번을 쉬어야 했고, 이내 깊은 잠에 빠진다. 패배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 인간의 실존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패배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백절불굴(百折不屈)의 정신이다.
지난 연말 전국 대학교수 935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50.9%가 2022년의 우리 사회를 표현하는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꼽았다. 이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부분 비판적인 키워드가 선정되는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개선하자는 의미도 있다. 이래저래 부정적인 전망들이 많은 올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절불굴의 의지와 교토삼굴의 지혜를 가지고 계묘년을 잘 대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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