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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면허취소법, 윤리적으로 괜찮은가요?

의료윤리학자에게 물어본다 (49)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의사면허취소법 때문에 꽤 시끄러운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진료와 상관없는 다른 잘못으로 의사면허를 취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해가 잘되지 않는데요. 윤리학을 하시니 생각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여쭈어봅니다. 이런 법, 괜찮습니까? 익명

 

이미 여러 곳에서 들으셨겠지만, 2021년 고영인 의원 등이 발의한 의료법 일부개정안이 2023년 2월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해 본회의에 직회부 의결되면서 논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의사면허 취소법’이라고 불리는 해당 개정안의 골자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은 사람의 경우 의사가 될 수 없거나, 의사인 경우 면허를 취소하도록 하며, 면허 재교부 또한 10년간 금지하도록 하고 있지요.

 

법적으론 해당 개정안은 의사 직무 관련성이 없는 범죄도 의사 결격 사유 또는 면허 취소 사유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침해로 해석됩니다. 법 조항은 과잉금지의 원칙을 따라야 하는데, 해당 조항이 목적의 정당성이나 침해의 최소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 의료법이므로 의사의 직무 관련 제한을 두어야 하는데 개정안은 그와 상관없는 사유를 통해 면허를 박탈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법안이 타 직역과의 형평성을 말하고 있으나, 형평성을 따지더라도 변호사와 의사는 다르지요. 법을 다루는 사람이 법을 위반하는 것과, 치료 및 돌봄 업무를 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하는 것은 애초에 다른 일입니다.

 

저는 법학자가 아니므로 법적인 검토는 이 정도로 하려 합니다. 저는 제 역할에 맞게, 이런 법이나 관련 논의가 어떤 윤리적 함의를 지니고 있는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윤리’나 ‘의료윤리’가 어떤 의미인지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 제가 여기에서 내어놓는 견해가 바로 다가오지 않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 순서대로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포괄적인 윤리라면 (주로 사회적, 종교적 의미의) 선한 행동을 촉구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 의료윤리는 의료 환경과 행위에서 보건의료의 목적을 위해 각 행위자가 따라야 할 것을 살피는 분야이므로, 그저 착한 행동이나 헌신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보건의료의 목적은 건강임이 명확하지요.

 

단, 70년대까진 병원 환경에서 환자의 건강이 의학적 평가를 통해 객관적으로 결정될 수 있다고 보았기에, ‘의료윤리적’ 논의는 의료 행위 자체보다는 의사의 품위 유지에 초점을 맞추었어요. 그러나, 이젠 환자의 선호와 가치, 사회문화적 조건을 반영하여 환자가 원하는 건강을 실현하기 위해 진단과 치료에 접근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의료윤리의 핵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최근엔 비인간과 환경을 함께 살펴야 건강을 이야기할 수 있으므로 의료윤리의 내용은 점차 복잡해지고 있긴 하지만요.

 

환자를 포함한 시민의 건강을 향상하기 위한 선택은 다양한 요소를 포함합니다. 이를 위해 의사에겐 다른 직업에선 찾아볼 수 없는 상당한 의무가 부과되지요. 하지만, 그것이 과도해지면 오히려 의료 서비스의 작동을 저해하며 의료 질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되기 때문에, 무조건 의무만 강화하는 것은 건강 향상에 이득이 되지 않습니다. 필요한 것은 선택의 의도와 결과를 함께 고려하는 것이며, 기본적인 환자-의사 관계를 포함한 의료 환경의 네트워크에서 서로 수용할 수 있는 합의점의 모색입니다.

 

그렇다면, 의사면허 취소법은 건강 향상에 도움이 될까요? 현재 법안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론 사회가 염려하는 부분들, 예컨대 2021년 해당 개정안이 발의된 (표면상의) 이유였던 대리 수술이나 성범죄 등은 더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고려해야 하고, 이는 의료계 일각에서도 원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잘못된 소수의 행동으로 인해 다수가 피해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재 개정안은 과도한 처벌로 의료 전반에서 마땅히 행해져야 할 일을 위축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볼까요.

 

첫 번째로 방어 진료를 확대합니다. 개정안은 처음 의료인의 업무상 발생한 과실치사상으로 받은 처벌도 포함하여 면허 취소 요건으로 하고 있었으나, 이 부분만은 의료계의 의견 수렴으로 진료 중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로 인한 금고형 이상은 예외로 두었습니다. 그러나, 의료 환경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가 꼭 ‘불가항력적 의료사고’만 있는 것도 아닌데다, 의사 쪽에서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환자나 사회 쪽에서 고의적 잘못으로 볼 수 있는 상황도 종종 생깁니다. 치료 결과를 둘러싼 환자, 가족과의 극심한 의견 충돌이 좋은 예겠지요. 물론, 이런 부분은 다른 방식, 예컨대 협상의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러나, 짧은 진료 시간을 강요당하고 있는 현재 한국 의료 제도 아래에서 사려 깊은 접근은 과잉의 요구일 수 있으며, 의사 다수는 최대한의 자료를 확보하고 ‘몸을 사리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이것은 전체적인 의료 비용의 상승과 환자-의사의 골을 더 깊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두 번째로 의사의 정치 참여를 봉쇄합니다. 요새 시대에 정치 관련 활동을 하다가 형을 받는 일이 얼마나 되겠으며, 의료 업무와 정치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반복해서 말씀드린 것처럼 의사는 정의로운 의료 제도를 구현할 의무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학술적인 노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치적인 접근을 바탕으로 합니다. 간단히 말해, 해당 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사의 파업은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 될 겁니다. 정부가 하향식으로 통제하고 있는 한국 의료에서 파업마저 못 하게 된다면, 의사는 정부 정책에 반발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두 아시는 것처럼, 정부가 매번 현명한 결정만 내리는 것은 결코 아니지요.

 

걱정되는 사안이 더 있습니다만, 지면의 한계로 일단 이 정도로 줄이려 합니다. 개정안을 지지하는 쪽은 의료 업무의 수행이 높은 도덕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정 형량 이상을 받은 자가 의료 업무를 수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전문직업적 영역에서 의사는 이미 많은 의무를 지고 있으며, 의사의 의료 업무 수행을 규율하는 것으로 법의 역할은 충분합니다. 의사가 군자나 신사일 필요는 없습니다. 개정안 지지자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의·치대 교육과정은 모두 윤리학과 사회봉사로 채워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제 연구 분야가 의료윤리요 의료인문학입니다만, 저도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애초에, 사회 또한 윤리와 의료윤리를 혼동해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선생님이 진료하시거나 치과의사로 생활하시면서 가지셨던 윤리와 관련한 질문을 기다립니다.

dentalethicist@gmail.com으로 보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