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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스펙트럼

어릴 적 누구나 한 번쯤은 투명망토를 입고 투명인간이 되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때 꿈꾸던 투명인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일탈을 꾀하기도 하고, 여러 속박에서 해방되는 자유를 꿈꾸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투명인간이 누릴 수 있는 여러 공간적, 시간적 확장은 결국 삶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책임이라는 명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의료법 상 명확하게 의료기관을 통해 모든 의료행위가 이루어지도록 명시하고 있다. 법문을 고려할 필요도 없이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그리고 최선의 방식인 것이다. 여러 한계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환자들의 심미적인 욕구에 따라 투명교정 시장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 팬데믹으로 인해 비대면 의료가 일부분 제한적으로 허용되면서, 이를 틈타 불법적으로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거나 혹은 법률적 제한을 우회하는 방식으로 직접 의료 소비자와 접촉하여 투명교정치료 시도들이 일부 관찰되고 있다.

 

환자는 치과의원 혹은 치과병원에 내원할 필요 없이 회사가 운영하는 소위 스마일샵 등에 방문하여 치과의사의 부재하에 3D스캐너로 치아를 스캔한다. 채득된 스캔 데이터를 바탕으로 투명교정장치를 제작하여 환자들의 가정으로 직접 배송하며,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원격으로 치료경과를 확인받는다.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이러한 비즈니스가 합법이나, 여러 피해들로 인해 이러한 비즈니스를 금지하는 주가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치아파절, 치아괴사 등으로 인해 여러 집단소송 등이 제기되어 이러한 비즈니스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경영상의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료법상 의료기관을 통해야만 투명교정장치를 이용하여 교정치료를 할 수 있다. 역시 한국은 창의성의 민족임을 뽐내듯이 이러한 법적 규제를 우회하기 위해 직접 소비자 접근 투명교정 업체가 먼저 환자 모집 후 제휴 의료기관이라는 방식으로 알선하여, 진단 및 처방의 방식을 취한 후 투명교정장치를 해당 의료기관에 공급, 판매하는 방식 또한 관찰되고 있다. 교정치료의 특성상 의료인의 장기간의 치료경과 관찰 등이 필수적이라 이러한 편법적인 방식 또한 한국의 높은 소비자 기준을 만족시키기 만무하여 다행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치과계에 있어서 긴 시간동안 문제가 되어왔던 것들은 소위 머구리라 불리는 비의료인의 의료행위와 사무장치과 등의 모습으로 대별되는 비윤리적인 의료행위로 손꼽을 수 있다. 어찌보면 투명교정치료와 관련된 여러 비즈니스 행태들은 이런 치과계의 여러 문제들을 답습하는 듯한 양상으로 관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투명교정과 관련하여 여러 관계부처 중 하나인 식품의약품안전처와 한국소비자원이 여러 전개되는 상황에 관해 관심을 갖고 면밀하게 주시하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최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직접 투명교정과 관련하여 카드뉴스 등을 통하여 대국민 피해가 양산되지 않도록 지도감독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투명교정과 관련된 여러 피해사례 등을 수집하여 적극적으로 소비자들에게 투명교정치료에 있어서 전문가의 역할과 책임의 중요성을 주지시키고 있다.

 

소비자의 피해와 동시에 자칫하면 상기의 위법적인 업체들과 연관된 치과의사들의 피해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불만족스러운 치료결과 혹은 의료사고 등의 경우에 책임소재가 모호할 수 있으며, 자칫 잘못하면 쉽게 발을 들여놓은 치과의사들이 모든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 이러한 위법적인 비즈니스의 한계로 치과의사가 마땅히 행해야 할 주의 및 설명의 의무가 충분하지 않을 수 있고, 결과적으로 업체의 여러 불법적인 행위의 책임을 치과의사가 좋든 싫든 전부 떠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소설과 영화에서 경험했던 투명인간의 본질은 결국 책임의 부재라는 주제로 귀결된다. 무책임은 어깨를 가볍게 하고 자유를 만끽할 수 있고 결과를 고민하지 않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투명망토를 벗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우리 앞에 주어진 여러 상황들은 안락하고 따뜻하지만은 않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환자를 본다는 것’은 의료행위의 직접적인 책임을 직접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