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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협 문화복지위원회 기획>
차 한 잔의 사색
김영호(미·서울치과 원장)

영혼을 흔드는 순간들
“내 인생을 돌이켜보면 온통 섹스와 적개심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다." 어느 정신과 의사가 그의 수필에서 고백한 충격적인 말이다. 이는 인간의 가장 강한 본능이 성욕(종족보존본능)과 적개심(공격성-생명보존본능)이라는 가설을 성립시킨다. 물론 시대가 발전하고 다양해지면서 과거의 단순 본능은 보다 다양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표현되고는 있다. 수많은 계약과 인간 관계 속에서 엄청난 사유재산을 적립하기도 하고, 혹은 크고 작은 꿈을 성취하는 등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내 자신의 일상을 돌아다보면 결국 앞에서 말한 정신과 의사의 고백과 그리 멀지 않다는 비애를 느낀다. 그리고 삶의 가치와 존재의 가치가 지나치게 가볍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이럭저럭, 젊음(누군가가 젊음을 ‘그 길고 어두운 터널과 같았던 시간"이라고 표현했지만)은 시시하게 지나갈 것이고, 우리는 자식들의 벗어놓은 겉껍질처럼 낙엽이 날리는 오후의 벤치에 덩그렇게 놓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공부하고 일자리가 생기고, 결혼해서 아이를 얻고, 생(生)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맛보았던 갖가지 감동과 충일감은 날마다 회상이 되어 쌓인다. 시간은 우리 영혼을 고목처럼 건조하고 견고하게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무의미한 생활의 반복이 벗어버릴 수 없는 타성이 되어서 하루 하루를 미봉하며 살기에 우리를 지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겨울의 환』으로 <이상문학상>을 받은 김채원은 수상소감에서 ‘아줌마"라고 자신을 푸대접한 동사무소 직원에게 ‘나의 가슴에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어, 나는 남과 달라 !"라고 속으로 외치며 자기 자신을 확인했다고 했다. 우리들 각자는 모두 ‘나는 달라"라고 부르짖고 싶다. 그러나 과연 남과 다른 무엇이 있는가? 날마다 본능적인 일상을 뛰어넘어 무엇을 창조하고 있는가? 그리움의 샘이 말라버린 이 소시민적 생활 속에 남과 다른 무엇이 있는가? 그것은 기적같은 만남에서나 이룰 수 있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보통의 우리들은 감히 기적을 바랄 수가 없다. 우연히 펼쳐 본 한 페이지의 문장, 산책길에서 스친 작은 감동, 문득 떠오른 지난날의 약속, 진료를 하다 무심히 바라본 창가의 햇살... 이런 사소한 아름다움도 우리 영혼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우리 곁에 쓰레기처럼 나뒹구는 성욕과 적개심을 뛰어 넘어야겠다. 한 줄기 바람처럼 기운을 소생케 할 무엇을 찾아내야겠다. 포기하지 말고 깨어서 기다려야 한다. 소극적으로 앉아서 기다리지만 말고 그렇게 되도록 내가 그쪽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필자 약력> 김영호(미·서울치과 원장) ·시인, 의학박사 ·前 가톨릭의대 교수 ·‘차를 끓이며 외 10편"으로 시대문학상 수상 ·시대시 동인